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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인터뷰] <그와 그녀의 목요일> 박철민, 행복의 희로애락 [No.123]

글 |나윤정 사진 |김수홍 2014-01-02 5,233

박철민을 떠올리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그간 톡톡 튀는 감초 역으로 특유의 입담을 발휘하며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 한 가지 색깔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올 겨울엔 그의 다채로운 색깔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들을 연이어 만나볼 수 있다. 첫 멜로 연기에 도전하는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부터 진한 부성애를 전해줄 첫 주연작 <또 하나의 가족>까지. 박철민이 즐겁게 준비하고 있는 색다른 변신들. 그는 지금 날것 그대로의 희로애락을 전하기 위한 노력에 한창이다.

 

 

새로운 도전의 즐거움
<그와 그녀의 목요일>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게 된 건가요? 초연 때도 출연할 뻔 했다고 하던데.
처음엔 이야기로 먼저 접했어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무렵 (조)재현 형이 연극 한 편 하자는 말을 했죠. 황재현 연출이 대본을 쓰고 있다고. 대략적인 스토리를 들어보니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두 가지 부담이 있었어요. 과연 이 역할이 나에게 어울릴까? 또 하나는 시간적인 부담감. 당시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상태였거든요. 어쩔 수 없이 출연을 고사하고 나중에 공연을 보러 갔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울기도 하고, 신나기도 하고. 정민이란 인물 속으로 훅 들어갔죠. 그날 바로 술자리에서 연출에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정민으로 꼭 불러달라고 당부했어요. 덕분에 이번엔 아무 고민 없이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제작 발표회 때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멜로 연기는 처음이지만, 인간 박철민은 14살 때 처음 사랑을 했고 어제도 사랑을 했다고. 문득 인간 박철민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이 궁금했어요.
흔히들 말하는 설렘에 동의해요. 일상의 무료함 속에서 의욕이 생기고, 엔돌핀이 도는 것! 즐겁고 신나는 만큼 아픔과 고민을 동반하지만 그 자체가 바로 사랑이지 않을까요? 아내와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해보는데… 글쎄요. 늘 설레는 감정이 1~2년이라면, 5~10년이 자났을 땐 가끔 뭉클하고, 울컥하기도 하고. 점점 무르익고 은은해지면서 가끔씩 감동을 주는 것. 그 또한 사랑의 한 모습인 것 같아요.

 

30여 년 동안 많은 작품을 했지만 이번 작품처럼 부담을 느낀 경우는 처음이라면서요? 계속 대사를 잊어버리는 악몽도 꾸신다고.
가장 큰 고민은 대사량이에요. 영화와 드라마를 동시에 찍고 있어서 아무래도 시선이 많이 분산돼요. 절대적으로 정민에게 집중할 수 없다는 게 불안한 점이죠.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쪼갤 시간이 참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동안 이동 시간에 차 안에서 거의 잠을 자거나 인터넷 서핑을 했거든요. 근데 이제 대본을 외우니깐 그 자투리 시간이 참 달콤하더라고요. 그냥 흘려보냈던 시간에 대본을 읽고 서정민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신나요. 어린 시절 철지난 아버지의 옷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500원을 발견한 그런 느낌. 그야말로 횡재한 기분이에요.

 

그간 맡았던 역할과 아무래도 느낌이 많이 달라서 더 부담이 될 것 같아요.
주로 웃음을 주는 역할을 많이 맡았기 때문에 그간의 이미지가 관객들이 정민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어요. 극복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또 다른 캐릭터를 만나는 것에 대한 부담만큼 설렘도 따라와요. 섬세한 내면 연기를 해보니깐 재밌더라고요. 아주 신나고. 그동안 주인공들이 이렇게 연기했었구나. 새삼 느꼈죠. 한창 내면 연기의 재미에 빠져 있는 상태에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일에만 즐거워하는 줄 알았는데, 슬픈 감정을 토해낼 때도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같은 배역에 캐스팅된 조재현, 정은표 배우와의 차별화도 기대되는 부분이에요.
(조)재현 형이랑 (정)은표 형이랑 저는 아무래도 같은 대사를 말해도 무조건 다른 느낌이겠죠. 관객들이 누구의 정민이 더 좋고 나쁘다를 생각하기보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음을 느꼈으면 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정민이의 캐릭터를 표현할 때 좀 더 거칠고 생짜 같은 느낌이 강할 거예요.

 

 

그와 그녀의 사랑법

작품 속 정민과 연옥의 관계는 좀 독특해요. 이들의 사랑, 처음 마주했을 때 어땠나요?
설정 자체가 특별하죠. 연옥은 정민과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고.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극히 평범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더라고요. 남자의 본능. 여자의 속성. 그야말로 내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죠. 지금까지 나의 사랑 이야기를 풀어놓은 듯해서 훨씬 가깝고 뜨겁게 느껴졌어요.

 

그들의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꼽는다면요?
마지막에 정민이가 연옥이 처음 보낸 편지와 사진을 받았을 때요. 많은 감정들이 북받쳐 오르는 순간이죠.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할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 이 사람이 정말 정민을 사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죠.

연옥과 정민이 목요일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토론을 하잖아요. 만약에 내가 정민이라면 연옥과 어떤 주제로 이야기해보고 싶나요?

아예 토론을 안 할 거예요(웃음). 진지하게 어떤 주제를 갖고 토론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이런 점이 정민과 내가 가장 다른 부분일 거예요.

지금 현재의 정민과 비슷한 나이인데, 젊은 시절의 정민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정민과 저는 비슷한 부분들이 참 많아요. 무언가 책임지려 하지 않고, 까불대고, 사람을 가볍게 만나기도 하고. 한편으론 주관적으로 그를 바라보다가도 때론 나와 다른 부분들도 있어서 객관성을 갖게 돼요. 정민이 자신의 딸이 있다는 걸 처음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정민은 당황하고 충격을 받는데, 저라면 더 적극적인 액션을 취했을 것 같아요. 정민이가 틀렸고, 내가 맞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굳이 비교를 한다면 그래요. 제 캐릭터라면 할머니가 죽고 혼자 남겨진 딸을 봤을 때 어떻게든 곁에 있었을 거예요.

 

정민은 계속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연옥은 자꾸 자존심을 앞세워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그만큼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어요.
두 사람이 사랑하고 있을까? 둘 중에서 누가 더 사랑하는 걸까? 의문이긴 하지만 절대 비교를 내릴 순 없는 부분 같아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 작품이 더 재밌고 매력적이죠.

 

그들은 지금 행복할까요?
마지막까지 그들은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예쁘게 사랑을 놓지 않고 있잖아요. 행복할거예요.

 


오늘을 행복하게

요즘 가장 즐겁게 생각하는 건 뭐예요?
예전엔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을 먹는 게 즐거웠는데, 요즘엔 야구 연습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죠. 그리고 무대를 상상하면서 연습하는 것도요. 대학로에 와서 오전 연습을 하는 게 십수 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아요. 오전의 바람, 햇빛, 공기 이런 것들이 참 좋더라고. 대학로의 오래된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진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하고. 오전의 일상을 느낄 수 있는 게 행복해요. 무대를 상상하면서 뜨겁게 연습한 다음 점심 먹으면서 낮술 한잔, 캬.

 

무대에 올라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건 참 멋진 일인데, 타고난 끼가 있었던 건가요? 아니면 남다른 노력 덕분인가요?
따로 노력하는 건 아닌 거 같고(웃음). 어렸을 때부터 건방지고, 나서고, 삐쭉대고, 깐죽대고, 익살떨고 그랬어요. 가만히 있질 못했죠.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게끔 말하고 행동했어요. 상대가 웃는다는 건 나한테 호의적으로 변한다는 거잖아요.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천성처럼 몸에 배어 있지 않나 싶어요.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2013년 박철민의 3대 뉴스를 꼽아본다면?
젤 큰 뉴스는 영화 <또 하나의 가족>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 다들 만들기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작품을 끝마친 것이니 가장 인상적이에요. 두 번째는 큰 딸이 들으면 서운할 텐데. 작은 딸과 둘이서 1박 2일 여행을 갔다 온 거요. 물론 TV 프로그램 촬영 차 간 것이었지만, 작은 딸과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좋았죠. 세 번째는… 이 연극으로 해야겠죠? 하하. 그동안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무대에 오르게 됐으니깐.

 

<또 하나의 가족>은 첫 주연작이라 기대도 되지만, 삼성 백혈병 피해자와 가족의 실화를 그린 만큼 제작 전부터 주목을 받았어요.
이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단순히 대기업이란 거대한 자본과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인상 깊은 가족사였죠. 딸의 죽음으로 한 가족이 해체되기도 하고 또 다시 튼튼해지기도 하고. 가족과의 약속 속에 눈물과 웃음이 공존하는 따뜻한 가족사. 가족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어서 더 매력적이었어요. 처음엔 투자가 너무 안 돼서 어려움을 겪었는데,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참 행복하겠다. 그 중간에 내가 서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죠.

 

7천여 명의 개미투자자들이 이 작품에 십시일반 도움을 줬다면서요.
거대한 자본에 맞서는 작품인 만큼 큰 투자자를 모으기가 힘든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크라우드펀딩을 모았는데, 묘하게도 여기저기서 작은 투자자들이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이어졌어요. 봉고차에 과자, 음료수 등 간식을 잔뜩 사들고 오시기도 하셨고. 이런 작은 마음들이 아주 크게 모여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죠.

 

많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작품인 만큼 더욱 살아있는 연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건 자신하지 못하지만, 무엇보다 아버지 역할을 맡아서 기뻐요. 박철민이 아버지 연기를 아프게 참 잘 만드는 구나. 관객들이 이렇게 느끼게 된다면 그게 완결일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로도 따뜻한 아버지이신 것 같아요. 매년 크리스마스 땐 가족들과 대학로에서 시간을 보낸다고도 하던데.
십수 년 전엔 이맘때쯤에 늘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거든요.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니깐, 제 공연 끝나고 대학로에서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거죠. 큰 딸이 어렸을 때부터였어요. 그게 반복되다 보니깐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이자 가족 모임이 된 거예요. 아내와 딸들에겐 그 날 대학로 가는 것이 참 예쁜 추억이 된 거죠. 5여 년간은 드라마나 영화 촬영 때문에 내가 가운데 없어서 덜 신났었는데, 올해는 예전처럼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니깐, 함께 공연을 보고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게 돼서 행복해요.

 

한 인터뷰에서 기나긴 무명 시절에도 지금과 다름없이 행복했었다고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평소에도 행복이란 말을 참 많이 쓰시네요.
단순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깐. 예전에 소극장 공연을 많이 했었는데, 비록 수는 적지만 관객들은 늘 있었어요. 그들을 만나기 위해 갈고 닦고 준비하는 순간이 행복했죠. 무엇보다 전 만족을 잘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을 뽑아보라고 하길래 나는 늘 최고였었다고 말했어요. 중학교 때 처음 성극을 연출했을 때, 고등학교 연극반에 들어갔을 때, 대학 시절 연극반에서 주인공으로 멋지게 무대에 올랐을 때, 프로 무대에 데뷔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을 때, 영화와 드라마를 찍고 난 뒤 많은 사람들이 날 알아볼 때…. 늘 최고의 날이었죠.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걱정도 많지만, 늘 행복을 더 크게 느끼기 때문에 자연스레 행복이란 말을 많이 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3호 2013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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