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세상
강홍석
뮤지컬 좀 안다는 사람들에게 ‘롤라’와 ‘류크’의 교집합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10초 안에 세 글자의 정답을 외칠 것이다. 바로 ‘강홍석’ 말이다. 하지만 2021년을 기점으로 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롤라’와 ‘류크’ 그리고 ‘헤르메스’의 교집합은? 올 한 해를 <하데스타운>으로 시작해 <데스노트>를 거쳐 <킹키부츠>로 눈부시게 장식한 그의 ‘인생캐’ 여정을 돌아보자.
“저는 제 자신한테 긍정적인 편이에요.”
아까 사진 촬영할 때, 요즘 한강을 열심히 달려서 팔다리가 까맣게 탔다고 했잖아요. 체력 관리를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 건가요?
아니, 체력 향상의 목적보다는 체중 관리를 위해서…. 하하! 저는 먹는 걸 너무 좋아하거든요. 직업이 배우인데도 패션, 꾸미기, 이런 거엔 관심 없고, 제 유일한 취미는 먹기, 그리고 먹기 위해 운동하기예요. 스물여덟 즈음 달리기를 시작했으니까 벌써 십 년 정도 됐는데, 일주일에 많게는 다섯 번, 적게는 두 번 정도 뛰어요. 한 번 달릴 때 10km씩. 무릎을 다친 이후로 그 이상 뛰면 몸에 무리가 가더라고요.
10년 동안 꾸준히 달렸다니 대단한 걸요.
달리기는 다른 운동에 비해 시간 제약을 덜 받아서 선택한 건데, 저랑 같이 뛰기 시작한 친구들은 준프로가 돼서 대회도 나가고 그래요. 근데 솔직히 말하면 달리기 자체가 좋은 건 아니에요. 뛰는 게 즐겁냐고 물어보면, 전혀! 저는 달릴 때 음악도 안 듣거든요. 노래를 들으면서 달리면 자꾸 리듬을 타게 돼서 운동이 안 되더라고요. (웃음)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못 하는 성격이라, 뛸 때는 오직 뛴다는 행위에만 집중해야 하죠.
오늘 촬영을 통해 강홍석에 대해 새로 알게 된 점은 '장꾸미'가 넘친다는 거예요. 게다가 핑크 컬러가 이렇게 잘 어울린다니!
『더뮤지컬』 표지에 저 혼자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뭔가 제대로 촬영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파격적인 시도를 해서라도요. 혼자 막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꽃에 둘러싸인 어떤 아이돌 사진을 봤는데, ‘이거다!’ 싶은 거예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저의 투박한 이미지와 반대되는 사물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으면 재밌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저희 회사에 이런 분위기로 촬영하면 어떻겠냐고 말했는데, 촬영 시안에 ‘장난꾸러기 소년’이랑 ‘아름다운 왕자님’이 등장할 줄은 몰랐어요! 저랑 왕자 조합은 진짜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사람들이 강홍석에 대해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이미지가 뭘까 생각해 봤더니 몇 개의 단어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이런 게 어울린다, 또는 안 어울린다, 데뷔 초 그런 편견에 많이 부딪혔을 것 같아요.
제가 데뷔했을 때는 팝 뮤지컬이 많지 않았어요. 특히 대극장 작품은 대부분 클래식한 발성이 요구됐고요. 그래서 데뷔 초에는 어떤 역할에 어울린다, 안 어울린다를 논하기 전에, 아예 뮤지컬이란 장르에 맞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어떤 분들은 제 발성이 ‘뻐터’ 같다고 하더라고요. 주위에서 성악을 배워보라고 그랬는데, 저는 제 목소리, 제 창법을 고집하고 싶었어요. 막연히 어딘가엔 나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면 분명 제가 어울릴 것 같은 작품들이 꽤 있었단 말이죠. 하하! 만약 그때 제 소리에 대한 정체성을 잃었으면, 지금 이렇게 노래하지 못했을 거예요.
신인 시절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사실 데뷔 초에는 소위 말하는 배고픈 시절을 좀 겪었어요. 저랑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데뷔는 했는데, 그 후론 오디션에서 자꾸 떨어져서 일 년에 한두 편씩 겨우 공연했거든요. 근데 일이 잘 안 풀릴 때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다른 일 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람들 말에 덜 흔들렸던 것 같아요. 저는 좀 긍정적인 편이에요. 제가 제 자신한테요. 건강한 몸과 정신에 대한 자부심이 있죠. (웃음)
“<킹키부츠>는 붙을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데뷔 후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서른 전에 인생작 <킹키부츠>를 만나게 됐어요. 그때 홍석 씨의 『더뮤지컬』 첫 인터뷰를 제가 담당했는데, 오디션 준비를 얼마나 치열하게 했는지 말했던 게 생각나요. 오디션 전에 드래그 퀸 롤라의 마음을 상상하기 위해 여장을 하고 대학로 거리를 걸어봤다고 했죠.
아, 그때 오디션 준비 정말 치열하게 했죠. 50만 원이란 거금을 들여서 원피스와 재킷, 구두를 제작하고, 오디션 날 아는 분장 팀 도움을 받아 헤어, 메이크업까지 완벽히 하고 오디션장에 갔거든요. 근데 1차, 2차, 3차 오디션으로 올라갈수록 롤라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겠더라고요. <킹키부츠>를 만나기 전까진 여장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기 때문에, 롤라가 편견에 부딪히면서 살아온 삶이 어떤 것일지 막연했어요. 사람들이 무심코 상처 줄 때마다 롤라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슬픔? 분노? 좌절? 대본 속 롤라의 감정을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어서 3차 오디션 날 여장을 하고 도심 거리를 걸었던 거예요. 요즘에는 유튜브에서도 드래그 퀸 콘텐츠를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여장 남자를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특히 저처럼 덩치가 큰 사람이 노란 원피스를 입었더니, 와, 사람들이 정말 많이 힐끔거리며 쳐다봤어요. 신기해하거나, 무서워하거나, 이상하게 보는 시선으로요. 그 순간, ‘아, 롤라의 삶은 평생 이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롤라는 자신을 두려워하거나 만만하게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드래그 퀸 캐릭터를 낯설게 느꼈는데, 어떤 점에서 이 작품에 강렬하게 끌린 걸까요?
<킹키부츠> 브로드웨이 공연의 롤라 역 오리지널 캐스트가 빌리 포터인데, 제가 어렸을 때 빌리 포터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고등학생 시절 한창 흑인 음악에 빠졌을 때, ‘러브 이즈 온 더 웨이Love Is On The Way’라는 곡을 듣고 빌리 포터를 좋아하게 된 거예요. 노래를 너무, 너무, 너무, 잘해서요. 근데 빌리 포터가 뮤지컬배우로 활동했단 건 몰랐어요. <킹키부츠> 오디션 소식에 어떤 작품인지 영상을 찾아봤더니, 세상에, 롤라가 빌리 포터인 거예요! 어쩐지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것처럼 낯익다 했죠. 어릴 적 노래를 많이 따라 불렀던 사람이 맡은 역할이니까 그 자체로 흥미가 팍팍 생겼어요. 그리고 빌리 포터가 예전엔 저처럼 몸집이 살짝 컸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완전 홀쭉해졌더라고요! 그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고 나도 저렇게 롤라로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죠. 하하. 나중에 유튜브에서 빌리 포터가 젊었을 때 <그리스>의 ‘뷰티 스쿨 드롭아웃Beauty School Dropout’을 부른 영상 한번 찾아보세요. 정말 최고예요.
초연 라이선스 뮤지컬, 게다가 대극장 작품에 신인 배우가 타이틀 롤로 캐스팅되기란 쉽지 않잖아요. 오디션 과정에서 붙을 거란 인상을 받았나요?
솔직히 말해 <킹키부츠>는 붙을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하하. 왜냐하면 제가 자신 있는 스타일의 노래거든요. 그리고 오디션장에서 해외 스태프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영어 원곡을 다 외워 갔더니, “한국어로 불러도 되는데?” 하면서 다들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게다가 제가 분장도 ‘파이팅’ 넘치게 하고 갔잖아요. (웃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킹키부츠>랑 저랑 인연이 되려고 했던 건지, 국내 음악감독을 맡은 양주인 감독님과 바로 전작 <하이 스쿨 뮤지컬>을 같이 했어요. 오래전 일이니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식으로 말하면 <하이 스쿨 뮤지컬>은 개런티가 너무 적어서 할지 말지 고민했던 작품이에요. 근데 양주인 감독님이 저한테 따로 연락하셔서 “홍석 씨 노래 스타일, 제가 참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우리 같이 재미있게 작업해 봐요” 그러시는 거예요. 그 말에 엄청 감동을 받았죠. 신인 시절에 제 목소리가 뮤지컬에 어울린다는 이야기는 거의 못 들어봤거든요.
공개 오디션을 통해 한참 선배와 한 역할에 나란히 더블 캐스팅되고, 이듬해 뮤지컬 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까지 받았으니, 이 작품으로 배우 인생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남우주연상은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 한 가지 아쉬운 건, 그해 메르스 여파로 시상식이 취소됐거든요. 수상자 발표날 담당 피디님이 전화로 “홍석아, 네가 됐어!” 그러시는데, 와, 그때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까요.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막 느껴졌다고 할까, 서울예대에 합격했을 때보다 더 짜릿했어요. 펑펑 울다 아버지께 전화해서 “아버지 나 상 받았어!” 그랬죠. 저는 <킹키부츠>가 저라는 배우를 선택한 것 자체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라는 작품의 메시지를 따라간 거라고 봐요. 왜냐하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신인 배우에게 기대작의 주연을 맡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큰 결정을 내린 스태프와 제작사에 감사하죠.
<킹키부츠> 이번 시즌 연습 기간에 오리지널 안무가 겸 연출가 제리 미첼이 한국에 다녀갔잖아요. 내한 당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때 홍석 씨 이야기를 빼놓지 않더라고요.
초연 오디션 때, 제리 미첼이 제 오디션 영상을 보고 이 배우는 꼭 캐스팅해야 한다고 말했대요. 롤라는 바로 이 친구라고. 하지만 제리 미첼이야말로 롤라의 표본 같은 분이에요. 어떤 사람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주 멋진 사람이죠. 그래서 <킹키부츠> 팀 모든 배우들이 엄청 좋아하고 잘 따라요. 저는 이번에 약간 감동했던 게, 저를 보자마자 딸은 잘 크고 있냐면서 아이의 안부를 물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저보고 언제 이렇게 예쁜 아이의 부모가 됐냐면서 울컥하시더라고요. 정말 따뜻하신 분이죠. <킹키부츠> 세 번째 시즌에 한국에 오셨을 때는 입국 날 제가 출연하는 다른 작품의 대기실로 캐리어를 끌고 오셨어요. 단지 안부 인사를 하려고요! 심지어 전 그 시즌의 출연자도 아니었거든요. 정말 고마웠어요.
제리 미첼을 롤라 같은 인물이라고 표현했는데, 강홍석 인생의 롤라로 떠오르는 얼굴이 있을까요? 말하자면 인생의 새로운 장으로 나를 한 발 내딛게 해준 사람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중학교 동창을 만났어요. 근데 그 친구 교복 스타일이 너무 ‘까리’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빡빡머리에 수박 같은 초록색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웃음) 친구한테 무슨 학교 다니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는 인문계가 아니라 예술고등학교를 다닌대요. 학교에서 노래, 춤, 연기를 배운다는 거죠. 저는 생각도 못 했던 거라, 그럼 수학 수업은 일주일에 몇 번 하냐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수학을 일주일에 한두 번밖에 안 배운다는 거예요. 거기서 더 충격! (웃음) 다음 날 미술 시간이었나, 중간고사를 앞두고 자습을 하는데, 문득 ‘나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따라 유독 교실이 철창 없는 감옥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한테 연락해서 계원예고 오디션을 보러 간 거예요. 곧바로는 아니고, 1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기회가 생겼을 때요. 오디션 첫 관문으로 국어책 읽듯 정직하게 대본을 읽었더니 선생님들이 깔깔 웃으셨는데, 특기로 노래를 부르는 순간 다들 깜짝 놀라셨어요. 그날 앙코르 요청까지 받았어요. 하하.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휴머니즘은 제가 추구하는 연기의 기본항이에요.”
그런데 대체 서른에 무슨 운이 작용했던 걸까요. <킹키부츠>의 롤라에 이어 <데스노트>의 류크까지, 인생 캐릭터를 연달아 만나다니 예상하지 못한 일의 연속이었을 것 같아요.
<킹키부츠>를 끝내고 나서 <달빛요정과 소녀>라는 소극장 작품을 한 편 하고 그 뒤에 바로 <데스노트>를 하게 됐어요. ‘롤라’와 ‘류크’사이의 텀이 겨우 여섯 달이에요. 그때 그 시기는 배우 강홍석의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 중 하나였죠. 두 작품이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고 할 수 있거든요. 배우로서의 입지나 경제적인 상황까지 모든 게 달라졌으니까요. 아시겠지만, <데스노트> 초연 캐스팅이 어마어마했잖아요? (홍)광호 형, (김)준수, (정)선아 누나, 거기에 (박)혜나 누나까지. 아직도 기억나는데, 쇼케이스 당시에 인터넷 검색어 1위가 ‘데스노트’였어요.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뮤지컬이 오르다니 엄청난 일이었죠. 그런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저를 캐스팅한 건, 제작사로서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괴짜 사신 류크로 인상적인 캐릭터를 보여준 덕분에 사신 전문 배우라는 별명을 얻게 됐죠. 나중엔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도 사신 역할을 맡았고요.
솔직히 류크는 저한테 맡겨주면 저만의 색깔로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어요. <데스노트>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만화라 어떤 작품인지 잘 알고 있었거든요. 롤라는 제가 한 번도 안 해본 캐릭터에 도전하는 거였다면, 류크는 언젠가 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역할군에 있는 캐릭터였어요. 시켜주면 잘할 자신이 있었죠. (웃음) <데스노트>가 저한테 준 선물 중 하나는 이 작품으로 소속사에 들어가게 됐다는 거예요. <데스노트>는 씨제스컬쳐(과거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자회사)가 제작한 작품이었잖아요? 첫 공연이 끝나고 대표님이 오셔서 저 보고 영화나 드라마에도 잘 어울리겠다고 하시더니, 다음날 진짜 같이 일해보자는 연락을 주시더라고요. 연예매니지먼트 소속이 되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매체 활동도 하게 됐고요.
<데스노트>는 지금까지 세 시즌 공연되는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참여했어요. 작품에 대한 애착이 큰 거겠죠?
그럼요. 그리고 저한테 류크는 꼭 한 번 더 맡고 싶은 캐릭터였어요. 초연, 재연 둘 다 정말 재미있게 공연했고 관객분들한테 큰 사랑을 받았지만, 저 스스로는 류크로서 보여줄 게 아직 더 남아 있다고 느꼈거든요. 연기에 대한 의문점도 두어 개 있었고요. 이번 삼연은 제작사가 오디컴퍼니로 바뀌었는데, 대본과 음악 빼고는 새롭게 만든다고 해서 어떨지 궁금했어요. 씨제스컬쳐랑 일본 제작사(호리프로)가 공동 제작한 공연은 무대에 여백의 미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론 조금 더 채워진 무대 버전을 보고 싶었거든요. 세트가 ‘확확’ 돌아가는 볼거리 있는 무대가 우리나라 관객 정서에 더 맞는 것 같아서요. 이번 시즌이 전 회차 매진 속에 공연된 걸 보면, 관객분들도 새로워진 무대가 좋았던 거겠죠? 원작이 우리나라 작품이 아닌 게 조금 아쉽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 만들어진 건 뮤지컬배우로서 기쁜 일이에요.
<데스노트>의 류크처럼 인간이 아닌 캐릭터를 연기할 때도 인간적인 면모를 살려내는 게 배우 강홍석의 특징 아닐까 해요. 새로운 인생캐 <하데스타운>의 헤르메스도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사회자였고요.
저는 휴머니즘이 살아 있는 캐릭터가 좋아요. 휴머니즘은 제가 추구하는 연기의 기본항이죠. <하데스타운>이 좋았던 것도 그리스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작품 배경에는 휴머니즘이 깔려 있거든요. ‘공감’과 ‘위로’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작품이니까요. 특히 헤르메스는 전령의 신이자 극 중 사회자로서 관객과 소통해야 하다 보니 인간적인 느낌이 묻어나도록 노력했는데, 관객분들이 제가 의도한 바를 알아봐 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예를 들어, 오르페우스를 가만히 바라보는 제 시선에서 그를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을 발견해 주시더라고요.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거의 매 시즌 빠짐없이 참여했으니까, 언젠가 <하데스타운> 재공연이 올라가면 강홍석의 헤르메스도 다시 볼 수 있겠죠?
물론이죠, 헤르메스는 앞으로 10년은 해야죠! 하하. <하데스타운> 팀과는 지금도 자주 연락해요. 배우들 단체 채팅방에서 여전히 시끄럽게 대화가 오가는데, 누가 새 작품에 들어가면 서로 응원해 주느라 난리도 아니에요. (웃음) 다들 이 작품을 아끼는 마음이 커서 공연이 끝난 후에도 돈독한 관계가 유지되는 게 아닐까 싶죠. 사실 <킹키부츠>나 <데스노트>처럼 한 작품에 꽤 오랜 시간 참여하다 보면, ‘언제까지 이 작품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아무래도 나이에 따라 보여줄 수 있는 에너지가 다를 텐데, 이제는 후배 배우들이 저보다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거죠. 그리고 후배들에게 기회를 넘겨줄 필요도 있으니까요. 음, 롤라나 류크는 다음 시즌에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지만, 헤르메스는 그런 생각 전혀 안 해요. 앞으로 10년 더 해야 하니까! 하하하. <하데스타운>이 대중적인 작품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저한테 기회가 허락된다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7호 2022년 10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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