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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아트> 박은석 - 지금 여기, 다시 시작 [No.217]

글 |최영현 사진 |강지영 2022-10-18 1,151

<아트> 박은석
지금 여기, 다시 시작

 

2010년 데뷔 이래 드라마와 연극을 오가며 쉼 없이 활동했던 박은석이 지난해 처음으로 긴 휴식을 가졌다. 숨 고르기를 마친 후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연극 무대다. 배우로서의 출발점에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박은석을 만났다. 

 

 

다시 새롭게 무대에서

 

지난해 드라마 <펜트하우스> 종영 후 1년간 휴식기를 가졌더라고요. 데뷔 후 이렇게 쉬어본 적이 없었죠?
아예 작정하고 쉰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데뷔 이후 계속 앞만 보고 달려오기도 했고, <펜트하우스>로 폭풍 같은 시기를 보낸 터라 좀 쉬고 싶었어요. <펜트하우스>가 끝날 무렵 부모님께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오셔서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도 필요했고요. 사실 처음부터 쉬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어요. 작품 제의가 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일정이 취소됐거든요. 이 기회에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자고 마음먹었죠. 

 

<펜트하우스>로 폭풍 같은 시기를 보냈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일까요?
그전에도 연극과 드라마를 오가며 활동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배우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펜트하우스>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대중적인 인지도가 생기면서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고, 부수적인 스케줄도 많이 생겼거든요. 저를 둘러싼 상황이 순식간에 바뀌니까 폭풍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정신이 없었어요. 배우로서 감사한 일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차분한 마음으로 저 자신을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했죠. 

 

쉬는 동안에는 뭘 하면서 지냈어요?
이것저것 취미 생활을 즐겼어요. 테니스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죠. 테니스는 이번에 쉬는 동안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아마추어 선수 대회까지 나갈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웃음) 온전히 저에게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까 스스로 좀 달라진 게 느껴져요.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까 인내심이 생겼달까. 테니스를 시작하고 나서는 목표를 향한 의지나 추진력이 더 강해졌고요. 근육으로 따지면 흔히 쓰는 대근육이 아니라 그 안에 잔근육을 키우는 시간을 보냈어요. 적당한 타이밍에 저에게 꼭 필요한 시간을 잘 보낸 것 같아요. 

 

휴식을 마치고 선택한 작품이 <아트>와 <히스토리 보이즈>예요. 2021년 <아마데우스> 이후에 1년 반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는데,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소감이 어때요? 
제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에요. 무대는 배우로 첫걸음을 뗀 곳이라 흔한 말로 배우 박은석의 집 같은 곳이에요. 떠나 있으면 늘 그립고, 다시 돌아가고 싶죠. 드라마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도 무대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지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드라마를 하면서도 꼬박꼬박 무대에 서려고 노력했어요. 재충전을 마친 뒤에 좋은 작품으로 무대에 설 수 있게 돼서 다행이에요. 무대만큼 연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곳은 없어요. 두세 시간 동안 나를 내려놓고 온전히 연기에 몰입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 

 

지난 출연작 중에는 초연이 많았어요. 근데 <아트>와 <히스토리 보이즈>는 여러 번 참여했더라고요. 그만큼 특별한 걸까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새롭게 틀을 짜고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기다 보니 초연작에 많이 참여했어요. 또 초연 작품 제의를 많이 받았고요. 작품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스스로 즐길 수 있느냐는 거예요. 제가 먼저 작품에 빠져들어야 무대에서 관객을 기만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아트>나 <히스토리 보이즈>는 그런 면에서 재미있는 작품이에요. 또 두 작품 다 각별한 의미가 있죠. <히스토리 보이즈>는 무명이었던 저를 연극배우로 알리는 계기가 됐고, <아트>는 기존과 다른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었거든요. 

 

<아트>는 벌써 세 번째 시즌에 참여하는 거예요. 은석 씨가 생각하는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연극은 무겁고 심오한 주제를 다루는 장르라는 인식이 강하잖아요. 하지만 <아트>는 공연 보는 게 익숙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누구든 재미있게 볼 수 있어요. 새하얀 그림 한 점을 두고 세 친구들이 펼치는 끝없는 허세와 유치한 말다툼이 견딜 수 없이 웃겨요. 그런데 단지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는 게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이에요. 신나게 웃으면서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정에 대해, 또 예술에 대해 생각하게 하죠.

 

대신 재미있는 공연을 위해서 세 배우가 엄청난 분량의 대사를 쉴 새 없이 주고받아야 하죠.
<아트>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요. 세르주가 산 흰 캔버스에 대각선으로 흰 줄이 그어져 있는 그림을 두고 세 친구가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예요. 처음에는 그림의 가치에 대해서 논쟁하다가 결국은 서로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며 유치한 말싸움을 벌이죠. 배우들이 대사를 주고받으면서 극적 긴장감을 잘 살리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세 배우가 얼마나 합을 잘 맞추냐에 따라서 작품의 맛도 달라지고요. 상대가 나에게 어떻게 대사를 던지는지 잘 듣고 곧바로 받아쳐야 해요. 마치 세 사람이 함께하는 테니스처럼요. 세 배우가 합이 잘 맞을수록 관객들이 즐거워지죠. 연기하는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점에서 <아트>는 연기를 하는 재미, 연극을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마크는 은석 씨가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에 제일 생활감이 있어요. 
처음에는 이반을 하려고 했어요. 대본을 읽었을 때 이반의 우유부단함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이반으로 첫 리딩을 마쳤는데 저도 뭔가 이상하고, 다른 분들도 저한테 이반은 아닌 거 같대요. (웃음) 혼자 대본을 읽을 때와 상대와 호흡을 맞췄을 때 느낌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다른 배우들과 같이 리딩을 하니까 오히려 마크가 저랑 잘 어울렸어요. 다행히 제작사랑 이야기가 잘돼서 마크를 연기하게 됐죠.

 

어떤 점에서 마크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마크는 변화를 싫어하고 고전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제일 친한 친구 세르주가 유행에 굴복해서 짜증 나는 거죠. 그 큰돈을 쓰면서 나한테 상의를 안 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고, 세르주가 나 말고 잘나가는 사람들과 어울리니까 삐치고. 그래서 계속 세르주한테 딴지를 거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마크가 셋 중 제일 유치하고 찌질해요. 근데 저도 그런 면이 없지 않거든요. 겉으로 티를 안 내니까 사람들이 모를 뿐이죠. <아트>를 하면서 저의 찌질하고 유치한 면을 끄집어내고 있어요. (웃음) 

 

나중에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 보고 싶진 않나요?
세르주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랑 공통점이 정말 없는 캐릭터라서요. 세르주는 고가의 물건이나 인맥을 과시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물이거든요. 처음에는 저랑 너무 달라서 소화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저와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지금 공연 팀 세르주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탐이 나기도 하고요. 

 


새로운 도전 그리고 시작

 

<히스토리 보이즈>에서는 맡은 역할에 변화가 있었어요. 데이킨이 아니라 어윈으로 돌아왔죠. 
<히스토리 보이즈>는 초연을 보고 언젠가 꼭 저 무대에 서리라 다짐한 작품인데, 운 좋게 재연부터 다섯 시즌을 참여해서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사실 그동안 ‘내가 언제까지 데이킨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늘 했어요. 올해도 데이킨과 어윈 사이에서 정말 많이 고민했고요. 근데 이제는 새로운 각도에서 작품을 봐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데이킨은 박은석의 인생 캐릭터라고 불릴 만큼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높았어요. 그런 캐릭터를 떠나보내게 되어서 섭섭하진 않아요?
저도 처음 데이킨을 만났을 때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딱 저였거든요. (웃음) 외적인 조건이 닮았다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이 가진 특징이 저랑 너무 닮은 거예요. 사실 처음 <히스토리 보이즈>에 캐스팅됐을 때는 데이킨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제작사 대표님이 제가 연기하는 걸 보시더니 데이킨이 더 잘 어울리겠다며 역할을 바꿔주셨어요. 데이킨은 제 발에 꼭 맞는 신발 같은 캐릭터였어요. 데이킨과의 이별은 섭섭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니까 받아들여야죠. 

 

같은 작품이지만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어 마치 초연을 준비하는 기분일 거 같아요.
그렇죠. 설렘 반 걱정 반이에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그럴 거 같아요. 박은석의 데이킨을 기대했는데, 갑자기 어윈으로 돌아왔으니까요. 기존의 데이킨의 이미지를 깨고 어윈으로 새롭게 자리 잡는 게 지금 저에게 가장 큰 숙제예요. 제가 어떤 모습으로 무대 위에 설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자신 있게 해야죠. 저도, 관객도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연습실에서 새로운 데이킨들을 만날 텐데 기분이 어때요?
풋풋하고 보기 좋아요. 처음 데이킨을 맡았을 때도 떠오르고요. 요즘은 제가 <히스토리 보이즈>의 ‘히스토리’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많은 배우가 이 작품을 거쳐가는 걸 지켜봤고, 한국 공연의 히스토리도 알고 있고요. 또 저만큼 <히스토리 보이즈> 대본을 많이 외우고 있는 사람도 없을걸요? 데이킨을 하면서 다른 학생들 대사까지 다 외웠었는데, 이젠 어윈 선생님 대사까지 외우게 됐으니까요. 나중에 헥터 선생님까지 하게 되면 그때는 정말 누가 뭐래도 <히스토리 보이즈>의 히스토리가 되지 않을까요? (웃음) 그때까지 이 작품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이전 인터뷰에서 40대엔 할리우드에 가겠다고 했어요. 준비됐나요? 
큰일 났다! 하하하. 제가 할리우드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꿈을 너무 크게 갖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제 생각은 달라요. 꿈은 공짜인데 아낄 필요가 없잖아요. 꿈은 크게 가져야죠! 저는 할리우드 진출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정 안되면 할리우드에 가서 사진이라도 찍어서 올릴게요. 하하하.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7호 2022년 10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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