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국내 뮤지컬 이슈
2022년은 코로나19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공연계가 2년 만에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해였다. 특히 전체 공연 시장에서 가장 높은 매출 비중을 차지하는 뮤지컬이 회복을 견인하며 코로나19 이전을 넘어서는 호황을 기록했다. 반가운 소식이 많았던 올 한 해,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관심을 모았던 각종 이슈를 정리해 본다.
<데스노트>
팬데믹 끝에 맞이한 호황
2020년 연초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인해 군집이 필수인 공연계는 셧다운 공포에 시달렸고, 매출은 바닥을 쳤다. 2년이 지난 올해 1월에야 비로소 공연장에 필수적으로 적용되던 방역패스가 해제되었다. 4월에는 밤 10시 이전에 공연을 마쳐야 하는 규정이 사라지고, 좌석 띄어 앉기도 자율화되면서 정상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사라졌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약칭 KOPIS)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1,826억 원으로, 2020년 상반기 853억 원, 2021년 상반기 910억 원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심지어 코로나19 확산 이전과 비교해도 역대 최고의 호황을 기록했다.
KOPIS가 발표한 상반기 뮤지컬 티켓 예매 순위 10위권에는 2021년 하반기 개막해 올해까지 공연한 <하데스타운> <지킬 앤 하이드> <레베카> <프랑켄슈타인>을 필두로 <라이온 킹> <데스노트> <아이다> <마타하리> <웃는 남자>가 이름을 올렸다. 3분기에는 <킹키부츠> <서편제> <엘리자벳> <미세스 다웃파이어> 등이 예매 순위 20위권에 들었다. 초연작 <하데스타운>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제외하면 모두 인지도 높은 작품의 재연이다. 오디컴퍼니가 제작을 맡아 LED 영상을 활용한 무대를 선보인 <데스노트>, 대본과 음악, 무대 전반에 변화를 준 <마타하리>처럼 새롭게 탈바꿈한 작품도 주목을 받았다.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집계된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3,262억 원으로, 여기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물랑루즈!> <스위니 토드> 등 대형 화제작이 즐비한 연말 성적까지 반영된다면 올해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4,000억 원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데스타운>
뮤지컬, 독립 장르로 인정받다
2022년 한국 뮤지컬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또 하나의 사건은 뮤지컬이 독립 장르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동안 뮤지컬은 전체 공연 매출의 80%에 달하는 절대적인 매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장기적인 정책적 지원을 받기 어려웠다. 법적으로 뮤지컬이 독립 장르가 아닌 연극의 하위 분야로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뮤지컬협회와 한국뮤지컬제작자협회는 공연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꾸준히 국회를 설득했다.
마침내 지난 1월 뮤지컬을 연극, 음악, 무용, 연예, 국악, 곡예와 함께 공연의 한 장르로 분류하여 표기하는 공연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7월부터 시행되었다. 9월에는 게임, 애니메이션과 함께 뮤지컬을 문화예술 장르에 포함시키는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뮤지컬 업계에 주어진 다음 과제는 뮤지컬산업 진흥법 제정이다. 정책적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개별 진흥법이 존재하는 게임, 애니메이션과 같이 뮤지컬도 별도의 진흥법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국뮤지컬협회와 한국뮤지컬제작자협회는 지난 8월 뮤지컬산업 진흥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뮤지컬 프로듀서, 창작자 등 업계 종사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법 제정을 위해 힘쓰고 있다.
스타 배우의 인맥 캐스팅 논란
지난 6월 13일, 올해로 국내 초연 10주년을 맞은 <엘리자벳>의 캐스팅이 발표된 후 배우 김호영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아사리판은 옛말이다. 지금은 옥장판.”이라는 글을 게재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의 주인공은 뮤지컬계에서 가장 티켓 파워가 센 여성 배우로 꼽히는 옥주현이다. 아이돌 가수 핑클 출신인 그는 2005년 <아이다>의 타이틀 롤로 뮤지컬에 데뷔해, 현재까지 거의 모든 출연작에서 주연을 맡았다. 활동 초반에는 연기력 논란이 있었지만, 17년간 무대 경력을 쌓으며 가창력과 연기력을 두루 갖춘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김호영이 SNS에 올린 글로 인해 옥주현이 <엘리자벳> 캐스팅에 관여했다는 인맥 캐스팅 의혹이 일었고, 이에 옥주현은 김호영에 대한 고소를 선언했다. 뒤이어 1세대 뮤지컬배우 남경주, 최정원, 박칼린이 “배우는 동료 배우와 스태프를 존중하고, 캐스팅 등 제작사 고유 권한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하여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에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가 옥주현은 캐스팅에 관여한 바가 없다고 공식 발표하고, 옥주현이 고소를 취하하면서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여진은 오래갔다.
사실 스타 배우가 자신과 친한 배우 혹은 같은 소속사의 배우를 제작사에 추천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뮤지컬보다 대중적인 영향력이 큰 방송이나 영화에서는 공공연하게 이뤄져 온 관행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논란을 계기로 그동안 뮤지컬 시장이 스타 배우의 티켓 파워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그들의 편의를 다른 배우와 스태프의 권리보다 우선시하는 제작 환경을 조장해 오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물랑루즈!> ©Matthew murphy
15만 원 넘어선 VIP석 티켓
VIP석 티켓은 2010년 이후 12만 원부터 서서히 가격이 상승하다가 팬데믹 전후 15만 원을 기록했다. 그러다 11월 개막작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가 VIP석 가격을 16만 원으로 발표하자 관객들은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2월 개막작 <물랑루즈!>가 VIP석 가격을 18만 원으로 발표했고, 내년 1월 개막작 <베토벤>도 VIP석 가격을 17만 원으로 책정했다.
전 세계적인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티켓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제작사의 사정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오픈런 공연이 가능한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와 달리 국내 뮤지컬은 통상 약 3개월의 공연 기간 안에 손익 분기점을 넘겨야 하는데, 공연장 대관비와 인건비를 비롯한 전반적인 제작비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국내 대다수 공연 제작사가 코로나19로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에 이 정도 가격 인상으로 폭리를 취하기도 어렵다. 다만 제작사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티켓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그만큼 완성도 높은 공연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다. 비싼 돈을 지불한 관객에게 가격에 상응하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결국 뮤지컬은 시장에서 외면받고 말 것이다.
<시데레우스>
한국 뮤지컬의 해외 진출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되었던 한중일 뮤지컬 교류가 올해부터 재개되었다. 일본에서는 <웃는 남자> <시데레우스>, 중국에서는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시데레우스> <빨래>가 라이선스 공연을 올렸다. <어린왕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뮤지컬 해외진출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대만에서 한국과 대만이 공동 제작한 라이선스 공연을 올렸다. 이 밖에도 <마리 퀴리>가 폴란드 음악 페스티벌에서 공연 실황 상영회와 갈라 콘서트를 개최했으며, <광주>는 뉴욕에서 현지 배우들과 함께 콘서트 형식의 쇼케이스를 가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개최하는 ‘K-뮤지컬 국제 마켓’은 작년에 이어 올해 2회를 맞았다. 국내외 뮤지컬 제작사와 투자사를 초청하여 한국 뮤지컬 작품을 시연하고 투자를 제안하는 행사다. 여기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영국과 중국에서 현지 배우들과 함께 낭독 공연을 올릴 수 있도록 지원한다. 창작뮤지컬의 해외 진출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하는 프로젝트이지만 민관의 협동으로 조금씩 그 목표에 다가가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한국계 작가와 작곡가가 참여한 < KPOP >이 오랜 개발 기간을 거쳐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은 아이돌 연습생이 기획사의 훈련을 거쳐 미국에서 데뷔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동안 미국에 사는 중국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룬 <플라워 드럼 송>, 일본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룬 <엘리전스>가 브로드웨이에 진출하여 아시안 배우들에게 출연 기회를 열어준 것처럼, 이 작품에도 아시안 배우가 대거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대극장 창작뮤지컬의 고군분투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1,000석 이상의 대극장은 여전히 대부분 라이선스 뮤지컬로 채워지고 있다. 더욱이 한국 제작사가 해외 창작진에게 의뢰해 만든 작품이 아닌, 한국 창작진이 만든 대형 창작뮤지컬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창작뮤지컬은 흥행이 불확실해 위험 부담이 크고, 대관 경쟁에서 밀려나기도 쉽기 때문이다.
올해 1,000석 이상 대극장에서 공연된 신작 창작뮤지컬은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공연한 <아몬드>와 <사랑의 불시착>뿐이다. SM엔터테인먼트가 2015년부터 한류 체험 문화공간으로 운영해 온 코엑스 아티움은 2021년 말 인터파크가 새롭게 운영을 맡아 1,000석 규모의 뮤지컬 및 콘서트 전용극장으로 재개관하였다. 이전까지 중소극장에서 공연되어 왔던 <팬레터>를 시작으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몬드>, 동명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사랑의 불시착>이 이곳 무대에 올랐다.
이 밖에 올해 1,000석 이상 대극장에서 공연된 한국 창작진의 창작뮤지컬로는 <프랑켄슈타인> <잃어버린 얼굴 1895> <블루헬멧: 메이사의 노래> <광주> <모래시계> <서편제> <용의자 X의 헌신>이 있다. 12월에는 <영웅>이 뮤지컬 영화 개봉과 함께 무대로 돌아올 예정이다. 창작뮤지컬을 꾸준히 공연해 온 700석 규모의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는 올해도 <곤 투모로우> <번지점프를 하다> <어차피 혼자>가 관객과 만났다.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소극장 창작뮤지컬 트렌드는 예술가
중소극장에서는 올해도 실존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이 인기를 끌었다. 예술가 뮤지컬은 실존 예술가에 대한 대중의 관심, 예술적 고뇌를 숙명으로 삼는 비범한 캐릭터, 출연자 수를 최소화하면서도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대본과 음악,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를 소화하는 배우의 역량이 흥행 여부를 결정한다. 이러한 작품에 대한 제작자의 공급 의지와 마니아 관객의 소비 의지가 맞아떨어지면서 예술가 뮤지컬은 창작뮤지컬의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올해 초연한 예술가 뮤지컬로는 <디아길레프> <프리다>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카파이즘> <실비아, 살다> <안나, 차이코프스키> <브론테> <라흐 헤스트> <에곤 실레> <모딜리아니>가 있다. 이와 더불어 <라흐마니노프> <빈센트 반 고흐> <니진스키> <랭보> <루드윅>도 재연을 올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영리 프로덕션에서 개발한 신선한 소재와 형식의 창작뮤지컬이 관객과 만났다. 노년의 부부를 주인공으로 한 <렛미플라이>는 우란문화재단이 2020년 트라이아웃 공연을 선보인 후 2년 만에 대학로에서 정식 초연을 올렸는데,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국립정동극장이 기획 공연으로 선보인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는 블랙 코미디와 휴머니즘을 결합한 이야기로 독특한 여운을 남겼다. 2018년 초연한 서울예술단의 <금란방>은 이머시브 시어터의 성격을 한층 강화한 버전으로 돌아왔다. 서울시뮤지컬단은 일본의 압제와 가난,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을 벗어나기 위해 조선을 떠나 하와이로 시집간 세 여자의 이야기<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초연했다.
>> 2022 뮤지컬 결산② - 배우에게 묻다, 스타 캐스팅 현상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9호 2022년 12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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