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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인터뷰] <너와 함께라면> 미타니 코키 - 의미조차 휘발한 웃음 [No.85]

글|박병성 | 사진제공|이맹호 2010-10-18 5,910

‘그것은 어떤 의도로 한 것인가요?’ 국내 기자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자 해외 아티스트들이 가장 꺼려하는 질문이 바로 작품의 의미에 대해 묻는 것이다. 작품을 느끼기보다 이성의 테두리 안에 받아들이려 하는 기자들의 습성상 자꾸만 의도나 의미를 묻게 된다. 기자 입장에서는 넓은 지면을 그냥 재밌다고만 쓸 수는 없다보니 자꾸만 작가의 의도나 장면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한다. 그것은 코미디도 피해갈 수 없다. 개인적으로 웃음 이외의 잔여물이 남지 않은 코미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블랙 코미디처럼 웃음 뒤에 현실의 아픔을 깊게 건드리는 작품에 더 애정이 간다. 일본 최고의 코미디 작가 미타니 코키를 만나고 그런 생각에 조금 변화가 생겼다. 의미조차 한바탕 웃음으로 휘발할 수 있는, 웃음 그 이후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청명한 상태, 웃음을 웃음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때로는 더 열린 자세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와의 짧은 만남은 나를 조금 가볍게 해주었다.

 

사람을 통해 웃는다
미타니 코키는 TV 드라마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 이후 1983년 극단 ‘선샤인 보이스’를 창단하여 극작 활동을 한 후 TV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코미디 작가이다. 국내에는 그의 작품 중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와 연극 <웃음의 대학>, <너와 함께라면>이 소개되었다. 웃음을 제거하려는 검열관의 황당한 지시를 받아들일수록 더욱 재밌어지는 희곡에 관한 이야기인 <웃음의 대학>이나, 스물여덟 딸의 남자 친구로 70세 노인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너와 함께라면>처럼 그의 작품들은 언어유희나 슬랩스틱적인 코미디보다는 특정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들의 모습에서 웃음을 주는 작품이 많다.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연기로 주는 웃음도 있는데 내가 작가이다 보니 대사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웃음을 좋아해요. 인간이 가장 재미있는 경우가 거짓말을 했을 경우에요. 마음의 생각과 입으로 나오는 것이 완전히 다른 경우잖아요. 그런 상황이 굉장히 재미있어요. 그래서 배가 고픈 상황에서 ‘배고프다’라는 대사는 절대 쓰고 싶지 않아요. 배가 고픈 상황에서도 배 안 고프고 일할 수 있다고 해요. 그 차이에서 재미가 생겨요.”
그의 작품이 워낙 유쾌하고 코믹해서 그 역시 그런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는데 한편으로는 그렇고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는 그다지 사교성이 있어 보이지 않았고 말수도 적었다. 그 스스로도 ‘지금은 인터뷰니까 대답을 하기 위해 말을 하는 것이지만 평소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낯가림이 심한 사람처럼 보였는데 내성적이지만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 같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곤 했다.
그의 엉뚱함은 종잡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받은 것이 없냐고 하자 오래 머물지 않아 아이디어로 삼을 만한 기회가 없었다고 하면서, 갑자기 주머니에서 비비빅 아이스크림 빈 봉지와 소시지 비닐을 꺼내놓았다. 인터뷰 시간보다 먼저 도착한 그는 편의점에 들렀는데 다들 비비빅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더란다. 그래서 그 역시 샀는데 너무 달아서 먹을 수가 없어 다시 들어가 소시지를 샀다고 한다. 그런데 소시지는 너무 맛이 없어 다시 비비빅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을 지경이었는데 이것이 꼭 코미디의 한 장면 같지 않냐며 웃는다. 그가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에선 디테일한 묘사와 인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모두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나온다. 그에게 작품의 기본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사람이 무엇을 보고 웃는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데 결국 사람은 사람을 보고 웃어요. 사람이 하는 몸짓이나 말투나 사용하는 말을 통해서 웃게 돼요.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을 잘 관찰하고 접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그는 대답을 끝내고 마치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는 듯 앞에 앉은 여기자의 큰 귀걸이에 관심을 보였다. “그 귀걸이는 마치 지하철 손잡이 같군요. 사람들이 헷갈려 하지 않습니까.”

 

웃음을 세상에 되돌려주다
미타니 코키(三谷 幸喜), 그의 이름 코키(幸喜)는 ‘행복과 기쁨’을 의미한다. 마치 그의 운명을 예언하듯 그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는 지금까지 슬픈 장면을 쓴 적은 있지만 전체가 비극인 작품을 써본 적이 없다. 수영 선수가 달리기를 하지 않고 수영을 하는 것처럼 자기에게는 코미디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희극만을 쓴다고 한다. “제 생각에 사람이 슬픈 이유는 세 가지 정도밖에 없는데 기쁘거나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굉장히 많아요. 작품을 만들 때도 정말로 즐겁고 보람을 느껴요.”
보통 작가들은 비극보다 코미디를 잘 쓰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그는 예외인 모양이다. 그는 희극을 쓰면서 혼자 폭소를 터트리기도 하고 빨리 써서 보여주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급해지기도 한다.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이 어떻게 즐기는지 확인하는 게 즐겁고 재밌다고 한다. 자신의 희곡이 해외에 소개되면 반응을 확인하고 싶어서 거의 대부분 찾아간다. 이번 한국 방문도 <너와 함께라면>의 반응이 궁금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진심으로 순수하게 웃고 웃음을 주는 것을 좋아했다.
검열이라는 정치적인 색채가 많은 작품인 <웃음의 대학>도 그에게는 보편적인 웃음을 주는 작품이었다. “검열을 받는 내용이지만 작품을 넓게 본다면 한 사람이 역경을 겪으면서 그것을 지혜로 극복해가는 이야기잖아요. 작가뿐 아니라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공감할 여지가 많아요.”
고백하자면 2년 전 <웃음의 대학>을 보고나서 정치 사회적인 문제가 얽혀 있는 작품을 너무 가볍게 만들었다고 불평했다. 웃음 뒤에 씁쓸한 삶의 잔흔들이 남지 않아 아쉬웠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올라간 공연 사진을 보니 무대를 구성한 것만 봐도 내가 원했던 진지한 접근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미타니 코키가 본 러시아의 <웃음의 대학>은 ‘내 작품 같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자신의 의도와 거리가 있었다. “검열이라는 것이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근접한 일이다 보니 연출 방향이 많이 달랐어요. 중간에 대본에 없는 배우의 옷을 벗기는 장면이 들어가기도 했어요. 하지만 관객들이 많이 웃었고 어느 나라를 가도 웃는 지점은 비슷했어요.”


작품이 작가를 떠나면 그것은 관객의 몫이라는 생각을 지지한다. 그래서 나의 해석이 작가의 의도와 다르다 해도 불만은 없다. 오히려 작가의 의도를 관객의 한 사람으로 다르게 받아들이는 차이가 재미있다. <너와 함께라면>도 작품을 읽어내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나만의 시각으로 읽어낸 부분이 있었다. 그의 작품 <웃음의 대학>이나 <모든 이의 집>, 2011년 개봉할 <멋진 악몽>까지 제목이 작품의 내용을 함축하면서 다양한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그런데 <너와 함께라면>은 제목이 너무 밋밋하고 재미없는 로맨틱 코미디를 떠올리게 해서 이 작품이 미타니 코키의 것이 아니었다면 아마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제목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엉뚱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제목을 짓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성명학을 이용해 글자 획수로 점을 쳐서 작품의 제목을 결정한다고 한다. “한국은 그렇지 않나요?” ‘정말 제목이 안 떠올라 고민될 때’라는 전제를 붙였지만 의외였다. <너와 함께라면>은 ‘너와 함께라면(君となら)’을 일본어로 읽으면 ‘키미 또 나라’인데 이것이 일본인이라면 대부분 아는 유명한 라디오 로맨틱 드라마와 음차가 비슷해서 발음상의 패러디로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 속사정을 알 수 없는 나로서는 나만의 해석을 내리고 있었다. 제목의 ‘너’는 28세와 70세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하는 두 사람이 아니라, 어떤 거짓말을 해도 서로를 믿고 배려하려고 했던 ‘가족’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런 생각을 전하자 “과연 그렇군요. 앞으로 내가 사용해야겠어요”라며 농담을 건넸다.

 


그는 내년 50세 생일을 맞아 그동안 자신을 사랑해준 관객들과 함께해 준 배우, 스태프들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연극 4편, 영화, TV 드라마, 소설 각 1편씩 신작 7편을 준비 중이다. 그에게 왜 그렇게 웃음에 집착하냐고 묻자 그는 “내가 괴롭고 우울하고 절망했을 때 <햄릿>이나 <맥베스>를 보고 힘이 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코미디를 보고 힘을 얻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내 작품을 보고 힘을 얻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져서 웃을 일이 드물다. 미타니 코키는 그런 세상이 됐지만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며, 그러려면 자신의 작품을 ‘꼭!’ 보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5호 2010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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