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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OLUMN]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 귀신과 맺은 계약을 지켜야 할까 [No.225]

글 |고봉주(변호사) 사진 |랑 2023-07-05 1,065

 

 

산 자와 죽은 자의 계약이 가능할까?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에는 산 자와 죽은 자가 등장한다. 주인공 해웅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쿠로이 저택에 들어갔다가 지박령 옥희와 귀신들을 만난다. 해웅은 얼떨결에 옥희의 성불을 돕기로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지만, 지박령과 약속을 함과 동시에 해웅 역시 저택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다. 결국 둘은 함께 쿠로이 저택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합치기로 한다. 이들의 약속을 법률적으로는 계약 체결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법률적으로 산 자와 죽은 자가 계약을 맺는 게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죽은 자에게는 권리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권리능력이란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이나 지위를 말한다. 민법 3조는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라고 규정하여, 권리능력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자격임을 명시하고 있다.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권리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옥희는 죽은 자라서 권리능력이 없다. 결과적으로 해웅과 옥희가 체결한 계약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권리능력은 있지만 행위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다. 행위능력은 단독으로 법률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성년은 행위능력자, 만 19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행위능력이 제한되는 제한능력자에 해당한다. 다만 성년이라도 질병, 장애, 노령 등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 처리 능력이 불완전한 사람은 가정법원으로부터 성년후견개시의 심판을 받아 제한능력자가 될 수 있다. 이때 사무 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은 피성년후견인, 사무 처리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피한정후견인으로 구분된다.


민법상 제한능력자인 미성년자가 법률 행위를 하려면 원칙적으로 부모 등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법정대리인은 미성년자의 법률 행위를 취소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피성년후견인의 법률 행위는 성년후견인이 취소할 수 있으며, 피한정후견인은 가정법원이 정한 일정한 범위의 행위를 할 때 한정후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불리한 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큰 제한능력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만약 옥희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미성년자인 옥희는 원칙적으로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없는 한 단독으로 본인이 의무를 부담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

 

 

 


손가락만 걸고 약속해도 계약이 성립할까?

 

옥희가 살아 있으며 성년에 해당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에 해웅과 옥희가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는 행위는 구두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구두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다. 구두계약의 효력은 서면계약과 차이가 없다. 하지만 말로만 약속하는 경우, 사후에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 한 약속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먼저 상대방이 약속을 해서 계약이 성립했다는 사실 자체를 증명해야 하고, 상대방이 약속을 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약속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면 계약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입증해야 한다. 그러니 가능하면 구두계약보다는 입증이 용이하고 내용이 명확한 서면계약을 체결할 것을 권한다. 이때 서면의 형식이나 종류에는 제한이 없다. 만약 서면계약을 체결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구두로 약속한 내용을 녹음하거나 상대에게 이메일, 휴대폰 문자 등을 보내 약속한 내용을 확인받아 두면 사후 분쟁이 발생했을 때 계약 체결 사실과 내용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해웅과 옥희가 체결한 계약의 종류

 

계약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민법에서는 15개 종류의 전형계약을 규정하고 있다. 증여, 매매, 교환, 소비대차, 사용대차, 임대차, 고용, 도급, 여행계약, 현상광고, 위임, 임치, 조합, 종신정기금, 화해가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데 증여는 증여자가 주겠다는 의사만 있으면 성립한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증여자의 주겠다는 의사와 수증자의 받겠다는 의사가 합치하여 체결되는 계약이다. 하지만 사적 자치 원칙에 따라 당사자끼리 합의하면 전형계약 외에도 얼마든지 다양한 종류의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불법 행위를 내용으로 하는 계약만 아니라면 말이다. 이러한 종류의 계약을 비전형계약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개인 간에 많이 체결하는 비전형계약 중 하나가 용역 계약, 컨설팅 계약이다. 이 역시도 계약의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마케팅 용역 계약, 마케팅 컨설팅 계약 등으로 무한정 세분화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웅과 옥희가 체결한 계약의 종류는 무엇일까? 이들이 체결한 계약의 목적은 쌍방이 궁극적으로 쿠로이 저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는 당사자가 용역 의무를 부담하는 내용이므로, 실무상 이런 내용의 계약은 ‘구조 또는 탈출 용역 계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5호 2023년 6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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