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는 배우가 상상한 결말 이후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코너이다.
이 글은 <호프>에서 과거 호프 역을 맡은 김수연 배우의 상상을 바탕으로 한 가상 에필로그로,
거장의 미발표 원고 소유권을 둘러싼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과 노인 호프의
재판이 끝난 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30년간 이어진 재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호프는 스스로에게 일상을 선물했다. 깨끗하게 씻고 개운하게 잠드는 일, 장을 봐온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해 먹는 일, 산책하며 자연의 소리를 듣는 일처럼 작고 평범한 행복으로 일상을 채워나갔다. ‘내 자리’를 빼앗긴 여덟 살 생일 이후 내내 멈춰 있던 호프의 삶은 그렇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호프는 길을 걷다 한 서점 창가에서 원고와 재회했다. 멋진 장정을 입고 진열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는 원고는 자신의 품에 있을 때와 사뭇 달라 보였다. 그 모습을 자세히 보려고 다가간 호프는 이내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호프는 오랜만에 원고에게 말을 건넸다.
“제자리를 찾았구나. 너도, 나도.”
그날 호프는 장바구니에 책을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책을 펼쳐 처음으로 그 안에 적힌 내용을 읽어보았다. 책은 한 번도 제대로 읽히지 않았던 호프의 삶을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호프 또한 마침내 책으로 거듭나 많은 사람에게 읽히게 된 원고를 응원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호프는 책을 덮어 선반에 꽂아두고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호프에게는 지키고 사랑해 줘야 할 자신, 그 무엇도 아닌 호프 자신이 있으니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5호 2023년 6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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