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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익숙하지만 낯선 소리 - <베니스의 상인들> 김수인 [No.225]

글 |최영현 사진 |표기식 2023-07-07 1,976

 

 

<팬텀싱어4>의 유일한 국악 참가자 김수인은 예선 라운드에서 ‘쑥대머리’를 불러 주목받은 후 매 라운드 색다른 시도를 선보이며 결승에 안착했다. 무대에서 제대로 놀 줄 아는 젊은 소리꾼 김수인의 본업은 국립창극단 소속 배우. 2021년 국립창극단 입단과 동시에 <나무, 물고기, 달>로 처음 관객을 만난 후 창극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김수인을 만났다.

 

 

팝을 좋아하는 젊은 소리꾼

 

<팬텀싱어4> 결승 진출을 축하해요. 처음 출연을 결심했을 때 결승까지 오를 거라고 예상했나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죠. 초반에 하차하겠거니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어요. 애초에 <팬텀싱어4>에는 결승 진출처럼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참여한 건 아니고 창극 배우도 다른 무대에서 잘 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출연했어요. 제가 팝을 좋아하는데 <팬텀싱어4>를 통해서 팝과 국악을 매시업 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고요. 그런데 라운드를 거듭하면서 생각보다 멋진 무대가 만들어지니까 살짝 결승 진출 욕심이 생기긴 하더라고요. (웃음) 좋은 무대에 함께한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결승까지 진출하게 되어서 영광이죠.

 

처음 방송에 등장했을 때 멘트가 인상적이었어요.

“언제까지 고영열만 찾으시겠습니까!” (웃음) 사실 작가님의 아이디어였어요. (고)영열 형이랑 막역한 사이라 형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허락받았죠. 이런 멘트로 방송에 나갈 건데 괜찮냐고. 그랬던 정말 쿨 하게 그러라고 하더라고요. 아! 그리고 영열이 형 앞에서도 한 번 했어요. “언제까지 고영열만 찾으시겠습니까!” 듣자마자 엄청나게 웃더라고요.

 

본선 1라운드에서 부른 ‘Dangerously’를 듣고 남다른 그루브에 깜짝 놀랐어요. 팝에 관심을 가진 건 언제부터였나요?

어렸을 때부터 비욘세의 노래를 듣고 팝에 눈을 떴죠. 가요보다 팝을 더 많이 들었을걸요. 팝이 국악과 음악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아요. 예를 들어 국악의 단조 스케일이 팝의 느낌과 비슷해요. 슬픈데 신나는 느낌의 곡을 좋아하는 편인데 팝 음악에 그런 스타일의 곡이 많아서 찾아 들었어요. 켈리 클락슨, 아델, 라나 델 레이, 에이미 와인하우스… 좋아하는 팝 가수 이름을 대자면 끝이 없어요.

 

어릴 때부터 국악 신동으로 유명했다면서요?

신동은 아니었고요. 소리가 좋아서 곧잘 따라 부르는 정도였어요. 어머니가 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예능 보유자여서 아주 어릴 때부터 소리를 듣고 자랐죠. IMF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한동안 어머니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생활한 적이 있어요. 근데 그 상황이 저에게는 전화위복이었어요. 그때 하루 종일 어머니가 제자들과 춤추고 소리하는 걸 보면서 많이 배웠거든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이 제가 음악을 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되었어요.

 

소리를 좋아했는데 중고등학생 때는 무용을 전공했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소리와 춤을 함께 배웠는데, 초등학교 6학년쯤에 변성기가 찾아왔어요. 목소리가 한 번 팍 꺾이더니 별의별 수를 다 써봐도 소리가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소리는 잠시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중학교 때부터 쭉 무용을 전공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넌지시 다시 소리를 해보지 않겠냐 물어보셔서 그러면 다시 해볼까 하고 소리를 시작했죠. 근데 5년 동안 춤만 췄으니 소리를 다시 따라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어머니에게 특별 훈련을 받고 열심히 준비해서 중앙대에 판소리 전공으로 입학했어요. 근데 학교에 가보니 주변에 소리를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대학 입학 전에는 소리에 자신이 있었나요?

그럼요! 하하하. 못하진 않았으니까 중앙대에 입학했죠! 그런데 대학 동기들에게 자극받아서 열심히 연습해도 높은 음역을 낼 수 있는 발성을 터득하지 못하니까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결국 무용을 다시 하겠다고 마음먹고 군악대에 무용병으로 입대했어요. (무용병이요?) 쉽게 설명하면 군대 행사 때 춤추는 병사예요. 근데 춤을 출 기회보다 소리할 기회가 많았어요. 행사 때 ‘난감하네’ ‘쑥대머리’를 정말 많이 불렀죠. 전역하고 복학할 때만 해도 저는 무용수를 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했어요. 국립창극단 전 예술 감독이셨던 유수정 선생님이 저에게 좋은 목을 가지고 소리를 안 하냐고 하시면서 국립창극단에 가면 소리도 할 수 있고 무용도 할 수 있으니 무용만 고집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소리도 하고 춤도 출 수 있다는 말에 혹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그때부터 소리 연습을 다시 시작했어요. 군대에서 춤 대신 소리를 했던 게 도움이 되었던 건지 때마침 고음 발성법을 터득해서 거침없이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부터 국립창극단에 입단해서 창극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하지만 국립창극단은 비정기적으로 단원 모집을 하잖아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대학교 4학년 때 5년 만에 국립창극단 단원 모집 공고가 떴거든요. 가슴이 엄청 벌렁거렸어요. 국립창극단은 소리하는 사람에게는 꿈의 직장이에요. 다양한 경험은 물론 늘 좋은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지거든요. 무엇보다 단원들이 최고의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요. 그러니 단원 모집 공고가 떴을 때 난리가 났죠. 저도 서둘러 지원서를 냈어요. 국립창극단은 서류 시험을 통과하면 소리, 연기, 무용 실기 시험을 봐요. 실기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학교 연습실을 폐쇄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주차장이나 공터에서 연습했던 기억이 나네요.

 

3차는 면접과 토론 시험이라고 들었어요. 토론 시험은 2021년에 처음 실시된 시험이라면서요?

네. 맞아요. 왜 하필 제가 시험 볼 때 토론 과목이 생겼을까요? (웃음) 토론은 예술인으로서 사회 문제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지적 소양은 얼마나 갖추었는지를 보는 시험이에요. 문화예술계 이슈를 하나 정해서 찬반으로 나눠 토론을 진행하는데, 어떤 주제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에 꾸준히 공부해야 하죠.


결국 15:1의 경쟁률을 뚫고 국립창극단에 입단했죠? 입단하고 보니 가장 좋은 점은 뭐예요?

제가 좋아하는 춤과 노래를 다 할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아요. 후배들이 국립창극단에 있으면 어떠냐고 질문하면 제가 늘 하는 대답이 있어요. 내가 1등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바로 위에 선배가 김준수, 유태평양이고, 그 위에는 까마득한 선생님들이 계시는 곳이 바로 국립창극단이에요. 실력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죠. 실제로 저는 입단하고 연습량이 더 늘었어요. 선생님들, 선배님들 따라가려면 어쩔 수 없어요. 국악인으로서, 또 예술인으로서 계속해서 실력이 향상되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행운이죠. 아, 시즌마다 좋은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국립창극단의 장점이에요.

 

 

 

 

셰익스피어 희극과 창극

 

국립창극단의 이번 신작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을 각색한 <베니스의 상인들>이에요. 제목에서부터 변화가 느껴지는데 어떤 작품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야기 전개는 원작과 거의 비슷해요. 하지만 원작과 비교해 안토니오와 샤일록의 설정이 달라진 점이 눈에 띄어요. 무역업자 안토니오는 소상인 조합의 조합장으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선박 회사를 운영하는 자본가로 바뀌었어요. 제목이 ‘상인’이 아닌 ‘상인들’인 이유는 바로 안토니오의 소상인 조합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품에 더 녹여냈기 때문이에요. 판소리 적벽가가 유비, 관우, 장비의 영웅적인 이야기 속에 이름 없는 군사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처럼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따로 공부하나요?

연출을 맡은 이성열 연출님이 원작 스터디를 일주일간 진행하셨어요. 원작 희곡을 읽고 관련 영화도 보고 난 후 캐릭터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죠. 국립창극단에서 신작을 준비할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스터디를 따로 진행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하지만 『베니스의 상인』은 아무리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더라도 작품의 정서가 우리의 정서와 달라서 그 정서를 해석할 시간이 필요했죠. 

 

이 작품에서 바사니오 역을 맡았어요. 바사니오는 어떻게 보면 모든 사건의 발단이죠.

맞아요. 바사니오는 사랑하는 포샤와 결혼하기 위해 안토니오에게 큰돈을 부탁해요. 하지만 당장 돈을 마련하기 어려웠던 안토니오가 샤일록에게 살 1파운드를 담보로 큰돈을 빌리면서 나중에 위기에 처하죠. 바사니오는 철부지인데, 철이 없어서 낭만적인 인물인 것 같아요. 저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흥이 많은 저랑 닮은 점이 많아서 굳이 연기하려고 하기보다는 평소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딱 바사니오가 될 것 같아요. “김수인 인생캐 만났다”라는 말을 들 수 있을 정도로 잘 해보려고요.

 

주역들이 젊은 단원 위주로 꾸려졌더라고요. 특히 50대의 샤일록 역할에 김준수 배우가 캐스팅된 게 특이해요.

이 점도 <베니스의 상인들>의 관전 포인트예요. 젊은 배우가 표현하는 샤일록은 어떤 모습일까요. 근데 제가 옆에서 볼 때는 준수 형이 의외로 샤일록 역이 정말 잘 어울려요. <리어>의 리어 이후에 또 한 번의 연기 변신으로 관객 여러분을 깜짝 놀라게 할 것 같아요.

 

대본을 읽어보니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장면이 많더라고요. 연습할 때도 꽤 재미있게 연습할 것 같아요.

<베니스의 상인들>이 희극이라 곳곳에 재미있는 장면이 많이 나와요. 저는 포샤에게 청혼하러 왔다가 차이는 바이킹 군나르손이 나오는 장면이 제일 웃겨요. 말로 재미있게 설명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으니 꼭 극장에서 확인하시길 바라요! (웃음) 이번에 <베니스의 상인들>은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기 때문에 볼거리도 많을 거예요. 창극이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아주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는 작품이니 꼭 한번 극장에 오셔서 보시기 바랍니다.

 

2021년에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후 조금씩 입지를 다지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목표가 있는지 궁금해요.

이번에 <팬텀싱어4>에 출연하면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어요. <팬텀싱어4>를 통해 처음으로 무대에서 외국어로 노래를 불러봤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앞으로 좀 더 다양한 외국곡에 도전해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소리꾼, 국악인을 넘어서 한 사람의 예술인, 가수로 사랑받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그리고 주어진 역할을 잘 소화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국립창극단 선배님들, 선생님들만큼이나 실력을 쌓아서 무슨 역할을 시켜도 손색없다는 소리를 듣는 게 창극 배우 김수인의 목표예요.

 

혹시 국립창극단 작품 중에 출연하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패왕별희>에서 준수 형이 했던 우희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너무 매력적인 인물이라 탐이 났는데, 그 역할은 준수 형에게 특화된 역할이라 제가 할 순 없을 거 같아요. 대신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처음 참여했던 <나무, 물고기, 달>이란 작품을 다시 해보고 싶어요. 제가 힘들 때 힘이 되어준 작품이에요. 그리고 극 중 물고기를 정말 행복하게 연기했던 기억이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물고기를 만나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5호 2023년 6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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