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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나비처럼 자유롭게 -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손유동 [No.225]

글 |이솔희 사진 |정철환 2023-07-07 3,061

 

 

“나비, 아름다운 생명체지. 몇 번이고 경이롭게 모습을 바꾸잖아.”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속 바이런은 존의 집에 걸려 있는 그림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수차례 변태 끝에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나비처럼, 자신의 한계를 넘어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무대를 누비고 있는 손유동. 그가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매혹적인 인물 바이런으로 다시 돌아온다.

 

 

현실과 환상 사이

 

작품 사이 쉬는 기간 없이 꾸준하게 활동하는 편인데, 지난해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초연을 마친 후 3개월 정도 쉬었더라고요. 오랜만의 휴식 시간은 어떻게 보냈나요? 

누나가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려서 한 달 정도 미국에 다녀왔어요. 결혼식에 참석하려면 1~2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직업 특성상 제가 원하는 기간에 휴가를 낼 수 없잖아요. 공연 중이든, 연습 기간이든 그렇게 장기간 자리를 비우는 건 작품에 피해를 주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미리 넉넉하게 스케줄을 비워뒀어요. 그랬더니 공연 연습 기간을 빼고 오롯이 쉴 수 있는 시간이 한 달 정도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오랜만에 자유를 즐겼죠.

 

미국에서 보낸 시간은 어땠어요? 

장기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정말 좋았어요. 미국 여행을 하면서 앞으로 종종 이렇게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저는 원래 관광지보다는 휴양지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촘촘히 계획을 세워서 여행하는 것보다는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다니는 걸 선호하거든요. 계획에 쫓기다 보면 길 가다가 발견한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를 수도 없고, 우연히 마주한 풍경을 즐기지도 못하잖아요. 그래서 미국에서도 큰 계획 없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어요. 하루는 누나가 브루클린 브리지에 가자는 거예요. 그 다리를 도보로 건널 때 보이는 풍경이 최고라고요. 처음에는 별로 내키지 않았어요. ‘그 긴 다리를 뭐 하러 걸어서 건너?’ (웃음) 그냥 구경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가봤는데, 저희가 도착하니 마침 해가 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덕분에 해가 떠 있을 때의 탁 트인 경관부터 노을이 지는 모습, 그리고 반짝이는 야경까지 브루클린 브리지의 모든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어요. 만약 제가 브루클린 브리지에 가는 걸 미리 계획해 두었다면 그런 예상치 못한 행복은 누릴 수 없었을 거예요. 저는 그런 우연한 행복이 모여서 여행을 완성한다고 생각해요. 

 

여행을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와 바쁘게 활동하다가 1년 만에 다시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를 만나게 됐네요. 다시 출연하기로 마음먹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초연을 함께했던 배우들이 다시 모인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어요. 초연 당시 배우, 창작진 모두 고군분투하면서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지애가 생겼고, 공연할 때도 정말 즐거웠거든요. 그래서 초연 멤버가 다시 모인다면 그때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더 재미있게 공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초연과 달리 작품의 틀이 확실히 짜여 있는 상황에서 다시 만나는 거니까 초연 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고요. 

 

초연 창작뮤지컬은 첫 공연을 올리기까지 여러 난관을 거치잖아요.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는 어땠어요?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역시 초연 연습 과정에서 대본이 많이 수정됐어요. 어느 날에는 연습을 중단하고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대본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내용을 수정한 적도 있죠. 그러면서 장면의 순서가 바뀐다거나, 뮤지컬 넘버를 삭제하는 등의 변화가 생겼어요. 작품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배우들끼리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나요. 코로나19가 재유행하던 시기라 코로나19에 걸려 격리된 사람이 있을 때는 연습할 때 화상 회의 프로그램인 ‘줌’을 자주 활용했거든요? 그래서 작품에 대해서 의견을 나눠야 할 것 같다 싶으면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저녁 공연을 마치고 줌 회의방에 모였어요. “이따가 공연 언제 끝나? 그럼 10시 반까지 줌 들어와.”이런 대화가 자주 오갔죠. (웃음)

 

말 그대로 모두가 다 함께 공연을 만든 거네요. 고충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큰 보람을 느꼈겠어요.

한 작품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언제나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요. 관객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겠다는 목표죠. 모두가 협업해 작품을 완성해서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보람은 정말 커요. 대본을 점점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게 창작진의 몫이라면 그 대본을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는 게 배우의 몫이잖아요. 그래서 배우와 창작진이 의견을 조율해 대본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대본을 쓸 때와 읽을 때, 그리고 직접 연기할 때 느껴지는 부분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재연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초연만큼만 하자.’ 그 생각으로 연습을 시작했어요. 이미 작품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초연과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연기해도 자연스럽게 더 좋은 부분을 찾아낼 것이고, 1년이 지나면서 잊어버린 부분이 있을지라도 초연만큼 하려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억날 테니까요. 이번 시즌에도 대본이 약간 수정됐는데, 제가 초연 때 구축했던 캐릭터와 조금씩 부딪히는 부분이 있어서 매끄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에요. 여담이지만, 저는 창작진의 의견을 웬만하면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받아들이기 힘든 의견이라면 먼저 이야기를 나눠보고, 논의 끝에 창작진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는 결론이 나면 무조건 지켜요. 그러다 보니 무대 위에서 캐릭터로서 행동할 때 내가 왜 그 행동을 하게 된 건지 다 기억나요. 그 행동의 이유에 대해서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눈 후 움직이는 거니까요. 그래서 이번 시즌 연습 초반에 초연 때의 동선을 그대로 재현하니 다른 배우들이 소름 돋는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냐고. (웃음)

 

유동 씨는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작가 조지 고든 바이런과 존 폴리도리가 쓴 소설 『뱀파이어 테일』 속 뱀파이어 루스벤을 오가며 연기하죠. 두 인물의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나요?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는 조지 고든 바이런과 그의 전 주치의인 존 폴리도리의 실화에 소설 『뱀파이어 테일』의 이야기를 녹여낸 작품이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그 두 세계를 연결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바이런이 루스벤의 모습을 드러내며 부르는 뮤지컬 넘버인 ‘너에게만 살아있는 나’가 캐릭터를 잡아갈 때 많은 도움을 줬어요. 루스벤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너에게만 살아있는 나’라고 노래하는데, 그 가사가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바이런이 실재하는 건지, 아니면 존이 바라보는 환상인지 알 수 없도록 모호한 선 위에 서 있고 싶어요.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는 초연 때 많은 사랑을 받았잖아요. 관객이 이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다 보니 극 중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실화와 비교해 볼수록 점점 더 많은 게 보이는 작품이에요. 소설과 현실을 오가는 묘한 분위기 때문에 제가 연기하는 인물이 바이런이라고 생각해도, 루스벤이라고 생각해도 언제나 상황과 맞아떨어진다는 점도 흥미롭고요. 그래서 연기할 때 어느 날에는 바이런에 더 몰입하고, 어느 날에는 루스벤에 초점을 맞춰요. 그렇게 매번 미묘한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이 연기할 때 재미있죠. 특히 에필로그 장면에서는 제가 마지막에 바이런으로서 퇴장할지, 루스벤으로서 퇴장할지 선택할 수 있거든요. 미리 정해두지 않고 그 장면을 연기하는 순간 저에게 더 인상적인 인물이 누구인지에 집중해요. 매 공연 감정의 흐름에 맞게 연기할 수 있다는 게 배우의 입장에서 즐거운 일인 것처럼 관객도 매번 새로운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요?

 

초연 당시 ‘손유동의 재발견’이라는 반응이 많았어요.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를 유동 씨의 대표작으로 꼽는 관객도 많고요. 이렇게 많은 호평을 받은 작품에는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될 것 같아요.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처럼 초연작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조금 더 애틋해요. 저조차도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질지 모르는 작품에서, 처음 만나는 인물을 그저 최선을 다해 연기했을 뿐인데 관객분들이 좋게 봐주신 거니까요. 한 작품, 한 인물에 대한 나의 해석이 관객을 성공적으로 설득했다는 점에서 배우로서 성취감을 느끼죠. 다만 그런 좋은 평가들에 쉽게 휩쓸리지는 않아요. 항상 같은 마음으로 캐릭터를 마주하고, 같은 마음으로 무대에 서죠. 어린 시절에는 외부의 평가에 일희일비한 적도 있지만, 배우 생활을 할수록 뿌리가 점점 깊게 자리 잡아 이제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는 걸 스스로 느껴요.

 

 

 


새로운 시작점에 서서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는 만우절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죠. 살면서 가장 거짓말 같았던 순간이 있나요?

지금도 무대에 서는 하루하루가 거짓말 같아요. 배우가 되기 전의 저는 남 앞에 서는 걸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여전히 무대가, 나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두려울 때도 있는데, 그럼에도 매일 어떤 캐릭터로서 무대에 서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거짓말처럼 느껴져요.

 

배우가 되기 전, 학창 시절 내내 축구 선수로 활동했잖아요. 어느덧 데뷔 13년 차인데, 계산해 보니 이제는 축구를 하면서 살아온 시간보다 연기를 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더 길더라고요. 

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웃음) 저는 이제야 비로소 다른 배우들이 어떤 마음으로 연기를 시작했는지 알게 됐어요. 어느 날 문득 ‘다들 이렇게 설레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연기를 시작했겠구나’ 싶더라고요. 사실 저는 배우의 삶이 두렵고 불안할 때가 많았거든요. 십대 시절 내내 하던 축구를 그만두고,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일을 하게 된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조금이나마 연기를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제야 다른 사람들의 시작점에 서게 된 거죠. 무대를 두려워하던 사람이 무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변태의 과정을 거친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나비처럼요.

 

축구를 포기하고 연기에 뛰어드는 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듯이, 배우가 항상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유동 씨의 출연작을 돌아보면 매번 다른 결의 인물을 연기하는 게 눈에 띄더라고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에 두려움이 없는 편인가요?

경건한 마음으로 ‘그래, 새로운 걸 도전해 보자!’라고 다짐하는 건 아니고, ‘한번 해볼까?’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편에 가까워요. 저는 현실적인 꿈을 꾸는 사람이거든요. 매년 내가 이룰 수 있을법한 목표를 세 개 정도 정해서 하나씩 이뤄나가요. 군대에 있을 때도 수첩에 그런 목표를 하나둘씩 적었는데, 그중 하나가 ‘『더뮤지컬』과 인터뷰하기’였어요. 지금 인터뷰 중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요! (웃음) 저는 그렇게 현실적인 목표를 하나하나 이루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살면서 자신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이 있나요?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자주 해보려고 노력하는 질문은 있어요. ‘네가 네 삶의 주체로서 살고 있느냐’라는 질문이요. 내가 내 삶의 주체로서 살고 있는지 계속 생각하려고 해요. 내 삶의 주체가 타인이 될 때 마음이 괴로워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로 연기의 주체가 내가 아닐 때, ‘어떻게 연기할까’가 아니라 ‘내 연기가 어떻게 보일까’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흔들리죠. 

 

그 질문을 지금의 손유동에게 던지면 어떤 대답을 할 거예요? 

음… ‘아니다. 미안하다. 내 삶의 주체가 내가 될 수 있도록 자주 물어봐 주라.’ (웃음) 제가 제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에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러운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전에는 멋있어 보이는 옷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편한 옷을 찾게 돼요. 단편적인 예지만 그게 내가 주체가 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남들에게 보여지고 싶은 내가 아니라 ‘진짜 나’를 받아들이는 거요. 나 자신을 받아들이면 내 삶의 주체가 내가 될 테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배우로서의 삶도 좋은 방향을 향해 나아갈 거라고 믿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5호 2023년 6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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