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우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는 것은 곧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얼굴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매 작품 새로운 얼굴로 인사했던 그가 이번에 만난 캐릭터는 <트레이스 유>에서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 우빈이다. 윤승우는 우빈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서 또 어떤 얼굴을 찾아낼까?
여느 90년대생 남학생이 그랬듯 버즈, SG워너비 등 당시 인기를 끌었던 발라드 가수의 음악을 즐겨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낸 윤승우는 스스로를 그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겸손한 설명과 달리, 고등학생 시절 음악 선생님이 그의 노래를 듣고 ‘직접 지도를 해줄 테니 성악과에 진학하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할 정도로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소년이었단다. 성악에는 뜻이 없어 거절했지만, 그 제안은 윤승우의 마음 한편에 가수라는 꿈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힌 윤승우는 음악과는 무관한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군 전역을 앞둔 어느 날 그는 두 개의 선택지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학교로 돌아가 관심 없는 전공 공부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끄집어낼 것인가. 그가 고른 선택지는 후자였다. 그는 실용음악과 진학을 위해 다시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가수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확고한 목표가 있었던 윤승우가 뮤지컬배우로 방향을 튼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다>를 본 후 뮤지컬이라는 신세계가 그의 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입시 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아이다>를 보았는데, 공연을 보는 내내 저 무대 위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사실 뮤지컬배우가 되는 건 엄청난 노력과 연습이 필요한 일이잖아요. 근데 그때의 저는 내가 그 노력과 연습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한번 돌아온 길인 만큼, 이제는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거든요.”
뮤지컬배우를 꿈꾸며 연기의 중요성을 깨달은 윤승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들어가 배우의 기반을 다진다. 2016년 데뷔작인 <전설의 리틀 농구단>과 2018년,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출연한 <어림없는 청춘> 역시 한예종 재학 시절 동기, 선후배들과 힘을 모아 만든 작품을 정식 공연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짧으면 3일, 길어야 2주 정도로 단기간 공연된 작품이지만 윤승우는 이 두 작품을 자신의 출연 목록에서 절대 빼놓지 않는다. “학교 안에서 좋은 동료들과 함께 탄생시킨 작품이면서 처음으로 학교 밖 관객을 만나게 해준 작품이에요. 그래서 애정이 남달라요. 절대 잊을 수 없죠.” 그리고 2021년, 탄탄한 마니아층을 지닌 작품인 <쓰릴 미>에 출연하면서 윤승우의 배우 행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처음 <쓰릴 미>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많은 감정이 교차했어요. 설레고, 긴장되고, 기대되면서 부담도 되고…. 처음으로 <쓰릴 미> 무대에 오르던 날 첫 대사를 입 밖으로 꺼내는데, 글자들이 제 조음 기관 하나하나를 거쳐서 나오고 있다는 게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떨렸어요.” <쓰릴 미>를 통해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확실히 알린 그에게 <은하철도의 밤> <빈센트 반 고흐> <베어 더 뮤지컬> 등 대학로 인기작이 연달아 찾아왔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많은 것을 배웠지만, <베어 더 뮤지컬>은 제게 특히 많은 가르침을 줘서 유독 기억에 남아요. 긴 호흡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세 시간 동안 캐릭터의 중심을 잃지 않고, 드라마의 흐름을 이어가는 법을 배웠어요.” 이번에 새롭게 만나는 작품은 초연 이후 10년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창작뮤지컬 <트레이스 유>다. 그는 록 클럽 ‘드바이’의 기타리스트 우빈을 연기한다. 록 음악이 주가 되는 작품인 만큼 윤승우는 작품의 역동적인 에너지에 집중한다. “저는 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어요. 학창 시절에도 발라드만 즐겨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연습을 하면서 제 안에 록 스피릿이 숨겨져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웃음) <트레이스 유>는 이전에 출연한 작품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한층 더 많은 에너지를 발산해야 해서 재미있어요. 전작에서는 주로 부드러운 이미지의 인물을 보여드렸다면 <트레이스 유>에서는 한층 에너제틱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해요. 제가 에너지를 발산하는 만큼 관객분들이 공연에 더 몰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쓰릴 미>의 치기 어린 천재 ‘그’, 형을 위해 헌신하는 <빈센트 반 고흐>의 테오, 마음속 깊은 곳에 두려움을 지닌 <베어 더 뮤지컬>의 제이슨, 그리고 비밀을 품은 <트레이스 유>의 우빈까지. 꾸준하게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윤승우이지만 다채로운 캐릭터를 향한 갈증은 여전하다. ‘천의 얼굴’을 지닌 배우가 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윤승우의 눈빛에서 순도 높은 열정이 뿜어져 나왔다. “시간이 흘러 백발이 될 때까지 무대 위에 서 있는 게 제 목표예요.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더욱더 다양한 캐릭터를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간 제가 연기했던 인물과 반대되는 매력을 지닌 캐릭터면 더 좋고요. 관객분들에게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5호 2023년 6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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