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귀환, <오페라의 유령>
유령이 돌아왔다. 그것도 무려 13년 만에. 2001년, 2009년 공연 이후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던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공연이 지난 3월부터 시작된 부산 공연을 마치고 7월 서울 개막을 앞두고 있다.
1986년 런던에서 초연한 <오페라의 유령>이 3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답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아름다운 음악과 마리아 비욘슨의 화려한 무대 미술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특집 기사는 <오페라의 유령>의 매력을 좀 더 다각도에서 들여다보고자 한다.
먼저, 지난 한국어 공연을 돌아보며 이 작품이 국내 뮤지컬 역사에 무엇을 남겼는지 짚어보았다.
다음으로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 한국어 공연에 모두 참여한 배우들, 그리고 마리아 비욘슨의 제자로서 의상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해외 스태프의 인터뷰를 통해 오랜 세월 이 작품과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마지막으로 음악과 무대 미술에 비해 평가 절하당하곤 하는 <오페라의 유령>의 서사를 정수연 평론가가 멜로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지난 4월 16일 <오페라의 유령> 브로드웨이 공연이 막을 내렸다. 1988년에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래 35년 만의 일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2012년 1만 회 공연을 달성하며 브로드웨이 최장기 뮤지컬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지금까지 총공연 횟수는 1만 3,981회에 이른다. 그동안 브로드웨이 공연에 참여한 배우만 400여 명이고, 스태프까지 포함하면 작품에 참여한 총인원은 6천 5백여 명에 달한다. <오페라의 유령> 브로드웨이 공연의 35년 치 매출액을 합치면 13억 6천만 달러(한화 약 1조 7천억 원)다.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지 않은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5년간 한국 뮤지컬 시장 매출액을 합친 것보다 큰 액수다. 돈으로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문화·예술적 가치와 대중문화에서의 파급력까지 감안한다면, <오페라의 유령>은 한 편의 뮤지컬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비록 브로드웨이 공연은 막을 내렸지만, <오페라의 유령>의 신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브로드웨이보다 2년 앞서 개막한 웨스트엔드 프로덕션이 여전히 건재하고, 전 세계에서 매일 밤 관객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초, 최고의 기록
<오페라의 유령>은 우리나라 뮤지컬 역사에서도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흥행의 가장 큰 지표인 관객 동원 기록을 살펴보면, 2001년 국내 초연한 <오페라의 유령>은 올해 누적 관객 150만 명을 달성했다. 국내에서 공연된 뮤지컬 중 15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오페라의 유령>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캣츠>와 <맘마미아!>가 누적 관객 200만을 돌파한 바 있다. 두 작품이 비교적 자주 공연된 데다가 시즌마다 여러 도시에서 공연되며 200만 관객을 달성했다면, <오페라의 유령>은 라이센스 공연과 내한 공연을 합쳐 단 6번의 프로덕션 만에 150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 모은 것이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 한국 초연은 최초, 최고라는 기록을 다수 남기며 이후 한국 뮤지컬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뮤지컬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페라의 유령>은 24만 관객 동원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이는 철저한 준비와 노력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가 대중에게 생소했던 시기, <오페라의 유령>은 개막 1년 전부터 홍보·마케팅을 시작해 적극적으로 작품을 알렸다. 최적의 캐스트를 찾으려고 아홉 차례나 오디션을 진행하는가 하면, 거대한 기둥 세트를 설치하기 위해 1년도 되지 않은 LG아트센터의 반입구를 허물면서까지 공연을 성사시켰다. 총제작비 120억 원이 투입된 <오페라의 유령> 한국 초연은 7개월의 장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192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는 당시 한 해 뮤지컬 시장 매출 총액을 넘어서는 액수였다. <오페라의 유령> 초연의 성공은 뮤지컬 장르가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어 2005년 첫 내한 공연은 서울에서만 3개월 동안 관객 19만 명을 동원했다. 당시 유료 객석 점유율 95%, 객석 점유율 99%로 거의 매 공연이 매진되는 진기록을 남겼다. 뮤지컬 마니아 사이에 ‘빵 아저씨’로 친숙한 브레드 리틀이 유령으로 출연해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2009년 두 번째 라이선스 공연은 서울과 대구에서 공연되었다. 총 11개월간 이어진 공연은 총 33만 관객을 모았는데, 이는 국내 뮤지컬 중 단일 프로덕션으로 30만 관객을 돌파한 최초의 사례다. 공연 초반 라울 역을 맡았던 뮤지컬배우 홍광호가 공연 후반에 유령으로 무대에 올랐다. 국내 <오페라의 유령> 프로덕션 중 한 배우가 두 배역을 맡아 연기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2012년에는 <오페라의 유령> 초연 25주년 기념 내한 공연이 성사됐다. 국내에서는 네 번째 <오페라의 유령> 공연이었는데, 이때 누적 관객 100만을 돌파했다. 2019-2020년 내한 공연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공연이 일시 중단된 상태에서 진행된 공연으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연된 <오페라의 유령> 프로덕션으로 화제가 됐다.
한국 뮤지컬 시장 성장의 출발점
현재 한국 뮤지컬 시장은 미국, 영국, 일본에 이어 세계 4대 뮤지컬 시장으로 꼽힌다. 지난 2000년 불과 100억 원대 규모였던 한국 뮤지컬 시장은 2022년 4천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한국 뮤지컬 시장 성장의 출발점에 <오페라의 유령>이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페라의 유령> 한국 초연의 성공은 영세한 장르라고 여겨졌던 뮤지컬이 문화 산업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 줬고, 오리온, CJ ENM 등 대기업의 관심과 투자를 끌어내 뮤지컬 시장을 성장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 팬층을 확장하고, 뮤지컬 배우층을 넓히는 데에도 기여했다. <오페라의 유령> 초연 당시, 대중의 뮤지컬에 대한 이해도는 매우 낮았다. <오페라의 유령>이 오페라인 줄 알고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치밀한 홍보·마케팅과 뮤지컬 마니아의 뜨거운 반응은 <오페라의 유령>을 알리는 데 한몫했다. 제작 발표회, 프레스 투어, 티켓 분할 오픈, 홍보용 래핑 버스 등 지금도 관행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공연 홍보·마케팅 모델은 대부분 <오페라의 유령>에서 처음 시도한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 초연을 5개월 앞둔 2001년 7월, <오페라의 유령> 팬들이 포털사이트 프리챌에 팬 커뮤니티 ‘더 팬The Phan’을 개설했다. 6개월 만에 9천 명이 가입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 더 팬은 적극적인 온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공연 정보나 후기를 나누며 작품을 알리고 즐기는 데 앞장섰다. <오페라의 유령> 제작사에서는 더 팬 회원을 대상으로 혜택을 제공하며 작품의 서포터즈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90년대에는 연극 단체에서 뮤지컬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고, 연극배우가 뮤지컬에 출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롯데월드 예술극장에서 뮤지컬 전문 배우를 양성하기 시작하고, 뮤지컬 전문 제작사가 하나둘 생기면서 뮤지컬배우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00년 초반만 하더라도 한 해 공연되는 뮤지컬 편 수가 30~40편밖에 되지 않아 뮤지컬배우층이 두껍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뮤지컬 전문 배우라 하더라도 연극배우보다는 연기를 못하고, 노래 전공자보다는 노래를 못하는 어중간한 배우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특히 클래식계에서 뮤지컬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기 때문에 성악 전공자가 뮤지컬에 출연하려면 온갖 편견을 감내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페라의 유령>은 성악 전공자들이 뮤지컬에 유입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줬다. 초연 유령 역의 윤영석, 크리스틴 역의 이혜경, 김소현, 라울 역의 류정한이 모두 성악 전공자였다. 또 국내외 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던 성악가 윤이나가 칼롯타 역으로 출연해 뮤지컬 무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페라의 유령> 오디션에는 클래식 전공자뿐만 아니라 뮤지컬 외의 다른 장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뮤지컬배우의 외양을 넓혔다.
프로덕션마다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역사를 쓴 <오페라의 유령>이 올해 부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서울 공연을 이어간다. 약 4개월간의 공연을 마치면 다시 대구 공연이 시작된다. 이번 프로덕션이 한국 뮤지컬 역사에 어떤 기록을 남기게 될지 기대가 크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6호 2023년 7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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