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정 공연 평론가가 매달 하나의 테마를 정해 뮤지컬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이번 토니상에서 작품상을 타게 될까?” 요즘 자연스럽게 오가는 대화 내용이다. 한국 창작뮤지컬이 토니상 후보에, 그것도 대본과 스코어(작곡·작사)를 포함해서 열 개 부문에 오르다니. 확실히 우리 뮤지컬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대박 사건’이다. 그뿐인가. 뉴욕 평론계가 주관하는 드라마데스크상의 작품·대본·작곡·작사·연출·무대 부문을 수상했고, LGBTQ 엔터테인먼트 비평가 협회(GALECA)가 선정하는 도리안상(Dorian Theater Award)의 극예술 부문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또한 뉴욕 드라마 비평가 협회(New York Drama Critics' Circle Awards), 외부 비평가 협회(Outer Critics' Circle Awards), 드라마 리그(Drama League Awards)에서도 작품상 등을 수여 받았다. 각각 뉴욕 주요 언론사의 평론가들, 그 외의 뉴욕과 미국 전역에서 활동하는 평론가들, 관계자와 관객들의 투표로 진행된 것이다. 수상 실적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작품의 가치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이처럼 다양한 성격의 시상식이 동시에 주목한다는 점은 의미 있다.
‘윌휴’의 작업 방식과 브로드웨이의 호응
<메이비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브로드웨이 제목)은 창작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뮤지컬에서는 낯선 로봇 소재인 만큼 초반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온전히 작품성으로 입소문을 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화제작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과는 ‘윌휴’라 불리는 윌 애런슨 작곡가와 박천휴 작가의 작업 방식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들은 한국어와 영어의 이중 언어 구사자로서 창작도 두 언어로 동시에 진행한다. 영어 대본을 함께 쓰고 나서 윌이 작곡을 하면 휴가 한국어 가사를 입히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두 나라의 문화도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특히 이 작품은 윌휴가 2014년 비영리 단체인 우란문화재단에서의 개발 단계부터 미국 공연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 따라서 2015년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열린 트라이아웃 공연 이후 2016년에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뉴욕에서도 리딩을 진행했고, 리처드로저스상(Richard Rodgers Awards for Musical Theater)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 상은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황금기의 전설적인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가 1978년에 제정한 이래 뉴욕의 신작 뮤지컬 창작을 지원해 왔다. 조나단 라슨(Jonathan Larson)의 <렌트>, 제닌 테소리(Jeanine Tesori)와 브라이언 크롤리(Brian Crawley)의 <바이올렛> 등이 선정된 바 있다.
뉴욕에서의 리딩 직후 현재의 리드 프로듀서인 제프리 리처즈(Jeffrey Richards)의 연락을 받았고, 2017년에 연출가인 마이클 아덴(Michael Arden)이 합류했다. 그리고 2020년 애틀란타 얼라이언스 극장에서의 트라이아웃 공연 등을 통해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을 차근차근 제작하게 되었다. 리처즈는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제작했으며, 토니상을 여덟 차례나 수상한 베테랑이다. 그리고 아덴은 브로드웨이에서는 비교적 젊은 연출가로, 2023년에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작곡·작사한 뮤지컬 <퍼레이드>로 토니상 연출상을 받았다. 이들의 협업은 감각적이면서도 완성도 있는 프로덕션을 이끌어내기에 참으로 적합해 보인다.
그렇게 프리뷰를 거쳐 지난해 11월 벨라스코 극장에서 개막한 <메이비 해피엔딩>은 한국 공연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이는 중이다. 전사(前事)와 상황 설정이 정밀하게 보강된 반면, 플롯은 한층 간결해졌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은 기억해도 돼’ 등 정서를 직접 드러내는 넘버 대신 섬세하게 편곡된 스트링 중심의 연주곡들로 복잡한 심경을 표현하고, 재즈풍과 발라드로 이별에 대해 담담하고 위트 있게 노래한다. 가사는 “사랑이란 그리움과 같은 것”처럼 시적이기보다 “사랑에 빠지면 세상에서 가장 외로워져” 같이 구체적이다. 영어의 문화적 특징을 살리면서 다양한 브로드웨이 관객들의 이해와 접근성을 높인 모습이다. 특히 무대 연출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이 눈에 띈다. 연출가 아덴과 함께 지난 시즌 <스프링 어웨이크닝>, <퍼레이드> 등에서 호흡을 맞춘 데인 래프리(Dane Laffrey)가 무대디자이너로 참여했고, 조지 리브(George Reeve)와 함께 조명디자인도 일부분 맡았다. 미니멀한 무대에는 반투명 스크린을 통해 홀로그램처럼 구현된 영상 등이 더욱 풍성하게 편곡된 음악의 흐름이나 배우들의 동작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근미래라는 시간적 배경을 살렸다. 영상 프레임의 줌인과 줌아웃을 통해 마치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듯한 효과를 자아내기도 한다. 여기에 어쿠스틱한 스탠다드 재즈 스타일과 인디 팝, 모던 클래식 등의 요소가 따뜻하게 어우러지며, 미지의 미래와 향수 어린 과거가 오묘하게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인간의 이야기여도, 비인간의 이야기여도 좋다
시간에 대한 빈티지한 감수성은 <어쩌면 해피엔딩> 특유의 아련한 여운을 만들어낸다. 올리버와 클레어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으로, 쓰임새가 다 되어 버려졌다. 이들은 그러한 로봇들을 위한 낡은 아파트에서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올리버는 배터리가 다 되어 멈춘 클레어를 살리고, 클레어는 올리버와 함께 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인간 주인 제임스를 찾으러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 둘은 마치 히키코모리처럼 고여 있었던 시간에서 벗어나 모험을 떠나고 마음을 교류한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제임스가 돌아오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된 올리버는 드디어 ‘제페토를 그리워하는 피노키오 테마’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클레어 역시 인간 주인들 때문에 형성된 사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깨고 마음을 연다. 그런데 이들은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때 불리는 ‘반딧불에게(Never Fly Away)’는 서로를 향한 마음과 불안감을 애잔하게 담은 넘버다. 이 곡은 부점이 많은 느린 왈츠로서 머뭇거리듯 진행된다. F장조임에도 참으로 슬프게 들린다. 쇼팽이 왈츠 등에서 종종 사용한 방법처럼 단조의 코드로 시작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장조와 단조의 톤 사이를 부유한다. 곡이 3화음의 중간음(3도)에서 불안정하게 시작하는 점도 한몫을 한다. 또한 잔잔하게 상승했다가 하강하기를 반복하는 멜로디 진행도 우수 어린 정서를 형성한다.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다가 체념으로 내려앉기를 반복하는 듯하다. 한편으로 이러한 하강 진행은 날아가지 말라는 가사의 내용과 부합하는데, 이는 상대에 대한 애착이 커질수록 두려움과 불안감도 짙어지는 마음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종지에서 F장조로 착지할 즈음, 둘은 집으로의 귀환을 이야기한다. 충전도 하고 화분도 돌봐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브로드웨이 공연의 경우 이 부분에서 반주가 불협화음을 이루며 속마음의 산란함을 표현한다.
집에 돌아온 클레어와 올리버는 일견 변한 것이 없는 듯하다. 이 뮤지컬은 대단한 변혁이나 영웅적인 사건을 전개하지 않는다. “듀크 엘링턴은 같은 멜로디가 반복되어도 반주는 끊임없이 변주된다”라는 가사처럼, 서로에게 공명하며 조금씩 변화해 가는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할 뿐. 중요한 것은 두 로봇이 이제 누군가를 돕거나 쓰이지 않아도 관계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존재로 거듭났다는 점이다. 비록 몸은 망가져 가고 영원한 것은 없지만, 삶이란 원래 행복의 언저리에 불안정하게 위치하는 것 아니겠는가.
관객은 이들이 사랑을 느끼고 죽음도 준비하는 모습에서 익숙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앞서 나간 점은 의인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을 성장시킨다거나 인간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보여주며 인간 중심주의로 환원시키는 서사도 아니다. 박천휴 작가는 브루클린의 카페에서 데이먼 알반의 노래 ‘에브리데이 로봇(Everyday Robots)’을 듣고 창작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휴대폰에 의지한 채 사이보그처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은,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 필멸성을 공유한 비인간의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이 뮤지컬은 미래 사회의 판타지나 디스토피아적인 절망을 그리지 않는다. 그저 시간의 교차점을 살아가고 죽어가는 존재들의 잔잔하고 소박한 모습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소외된 타자들이 어떻게 서로를 살피고 사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게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인간이 아닌 로봇을 통해 전개한다는 점이 독창적이다. 관객들이 결국 그 속에서 인간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고 해도, 비인간으로 돌봄과 관계의 윤리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포스트휴머니즘의 감수성을 담은 작품이다. 인류세 시대에 기계나 자연 등의 비인간은 단지 ‘사용하고 버리는’ 대상이 아니라 상호관계를 맺으며 함께 해야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렇다.
독창적인 작품을 숙성시킬 수 있는 환경
뮤지컬 창작자들이 꾸준히 팀을 이뤄서 작업을 이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브로드웨이의 경우 황금기를 이끌며 <오클라호마>, <남태평양>,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을 창작한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dgers)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Oscar Hammerstein II), <시카고>, <캬바레>, <거미 여인의 키스>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존 칸더(John Kander)와 프레드 엡(Fred Ebb)을 떠올릴 수 있다. 산업화가 이루어진 지 채 30년이 안 된 한국 뮤지컬 업계에서 윌휴와 같은 창작자 콤비는 보석 같은 존재다. 박천휴와 윌 애런슨은 뉴욕대학교(NYU) 대학원의 뮤지컬 창작과에서 알게 되었고, 2010년 <번지점프를 하다>의 대구뮤지컬페스티벌 트라이아웃 공연을 시작으로 <어쩌면 해피엔딩>, <일 테노레>, <고스트 베이커리> 등을 내놓았다. 이 중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은 특히 2016년의 상업 프로덕션 초연 이후 다섯 차례 재공연되며 꾸준한 호응을 이끌었다. 또한 2017년 제6회 예그린 뮤지컬 어워즈 4관왕과 2018년 제2회 한국뮤지컬어워즈 6관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2021년 제8회 이데일리 문화대상의 대상을 수상하며 시간이 갈수록 더욱 작품성을 인정받는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트라이아웃 공연 이후 대명문화공장을 거쳐 CJENM을 통해 상업 프로덕션으로 발전했다. 현재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는 NHN링크와 함께 우란문화재단이 코어 프로듀서에 크레딧을 올렸다.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에 창작하는 윌휴의 방식이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한국 뮤지컬 시장을 텃밭으로 활동해 왔다는 점에서 이들의 성과는 우리 뮤지컬의 국제적인 성장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창작자들이 꾸준한 파트너십을 발휘하며 작업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시스템도 필요하다. 한국은 오프-브로드웨이처럼 리스크를 감수하며 작품을 개발할 수 있는 완충지대가 없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상업성에 의존하지 않는 비영리 단체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어쩌면 해피엔딩> 개발을 이끌었던 김유철 라이브러리컴퍼니 본부장(당시 우란문화재단 피디)은 “시장의 다양성을 위해 창작자들이 긴 호흡으로 작품을 잘 묵혀서 정성껏 숙성시킬 수 있도록 기다려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이를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잖지만, 이제 출발선에는 설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어 본다.
한편,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 진출을 겨냥하여 전략적으로 개발된 것은 아니다. 창작자 콤비가 개발 프로듀서와 함께 독창적인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뉴욕에서 공연을 올리겠다는 소망을 진정성 있게 실현한 경우다. 윌휴가 현지에 맞는 감각을 십분 발휘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극이 20세기 중반 스탠다드 재즈 패스티시인 ‘우린 왜 사랑했을까(Why Love)’로 시작하고, 올리버의 아이엠송인 ‘나의 방안에(World Within My Room)’에서 빌 에반스, 존 콜트레인, 듀크 엘링턴 등이 언급되는 것처럼, 재즈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장르다.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브라스 편성을 확대하고 재즈 싱어의 캐릭터를 분리하는 등 관객들에게 익숙한 재즈의 색채를 한층 더 강화했다. 아울러 ‘로봇들의 사랑이야기’라는 독특한 소재에 사랑과 죽음, 상실과 기억이라는 보편적인 테마로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 만화처럼 영사되는 한국의 공간적 배경과 글자들은 신선한 호기심을 불어넣는다.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에 왜곡의 가능성에서도 자유로워 보인다. K-뮤지컬의 해외 진출을 위한 다양한 전략이 논의되는 지금, 이처럼 창작자들이 재능과 작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연한 시장을 형성하는 일 또한 중요해 보인다. 그럴 때 한국 뮤지컬의 또 다른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