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동안 지상에서는 또 다른 인물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바로 오페라 하우스의 공동 운영자 앙드레와 피르맹, 그리고 발레 감독 마담 지리다. 이번 시즌 세 역할에는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공연의 역사를 함께한 배우들이 캐스팅되었다. 2001년과 2009년 공연에서 연이어 유령을 연기한 윤영석이 앙드레로 변신하고, 2001년 앙상블 겸 마담 지리 커버를 맡은 김아선, 2009년 앙상블 겸 피르맹 커버를 맡은 이상준이 각각 마담 지리와 피르맹으로 돌아왔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오페라 하우스를 지키는 극 중 인물들처럼 <오페라의 유령>을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하고 있는 세 배우를 만났다.
인생을 바꾼 작품
윤영석 씨는 2001년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공연 초연 당시 마지막 9차 앙상블 오디션에서 극적으로 유령 역에 발탁되었죠. 그때 오디션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해요.
윤영석 : 당시 저는 서울시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소극장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대학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솔직히 뮤지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아내의 강권에 못 이겨 오디션을 봤죠. (웃음) 처음에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아리아를 자유곡으로 준비해 갔는데 반주자가 그 곡을 못 치더라고요. 하는 수 없이 유령의 지정곡 ‘Music of the Night(밤의 노래)’를 연습해서 오디션장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외국인 음악감독이 두 소절도 안 듣고는 자유곡을 준비해서 다시 오라는 거예요! 마음이 상했지만 다음 날 반주가 쉬운 <맥베스>의 아리아를 준비해 갔어요. 이번에는 음악감독이 노래를 끝까지 듣더니, 악보를 주면서 이 곡을 30분간 연습해서 들려달라고 했어요. 바로 전날 끝까지 부르지 못한 ‘Music of the Night’의 악보였죠. 그 뒤로 4시간 가까이 오디션을 보고 유령 역에 캐스팅됐어요. 그때까지 유령 역 배우를 찾지 못했던 제작사는 브로드웨이 배우를 데려와 한국말을 가르칠 생각까지 했다고 해요. (웃음) 그런데 무명의 신인 성악가였던 제가 해외 크리에이티브 팀의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한 거예요. 제작사 입장에서는 저에게 유령 역을 맡기는 게 큰 모험이었을 텐데, 믿고 맡겨주신 덕분에 제 인생이 바뀌었죠.
다른 두 분 역시 성악과 출신인데 어떤 이유로 <오페라의 유령> 오디션에 지원했나요?
김아선 : 저도 영석 오빠처럼 2001년 <오페라의 유령>으로 뮤지컬에 데뷔했어요. 당시 성악과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저는 이 작품이 성악가를 많이 뽑는다는 소식만 듣고 오디션에 지원했어요. 심지어 그때는 <오페라의 유령>이 오페라인 줄 알았다니까요! 그런데 오디션장에 갔더니 무용을 시키길래 어리둥절했죠. (웃음) 그 정도로 작품에 무지한 상태에서 오디션을 봤는데 다행히도 6차 오디션까지 계속 콜을 받고 앙상블로 참여하게 됐어요. 처음 경험하는 뮤지컬 무대는 그야말로 신세계였어요. 월요일에 공연을 쉬는 게 아쉬울 정도로 무대에 서는 게 행복했죠. 그렇게 저의 뮤지컬 인생이 시작됐어요.
이상준 : 저는 대학생 때부터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하다가 졸업 후 뮤지컬 무대에 진출했어요.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배우 활동을 계속하지 못하고 광고 회사에 취직했죠. 그때가 마침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하던 2001년이었어요. 같은 학과 선배인 영석 형이 유령 역을 맡았다는 소식을 들으니 ‘나도 조금만 더 견디고 형과 같이 오디션을 봤다면 저 무대에 설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회사에 다니면서 주머니 사정은 나아졌지만 이렇게 살면 평생 후회하겠다 싶어 2년 만에 다시 무대로 돌아왔어요. 이후 미국에서 연극 공연을 할 기회가 생겨 겸사겸사 <오페라의 유령>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고 왔는데 햐,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부터 한국에서 다시 공연할 날만 기다리다가 2009년 재연 오디션에 지원해서 앙상블로 참여했죠.
2001년, 2009년 공연 당시 맡았던 역할과 그에 따른 고충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윤영석 : 초연 때는 부담감 때문에 소화가 안 되어서 두 달 가까이 죽만 먹으면서 공연했어요. 날고 기는 뮤지컬배우, 성악가, 가수가 모두 유령 역을 노렸는데 무명인 제가 그 역할을 맡았잖아요. 모두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 하는 마음으로 지켜봤을 텐데 초짜인 제가 미숙함을 감추긴 힘들었죠. 게다가 그때는 유령 분장을 하고 지우는 것도 지금보다 오래 걸렸어요. 제일 먼저 극장에 출근해서 아무도 없을 때 퇴근하니 무척 외롭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는 오기가 생겼어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내가 가진 걸 다 보여주자!’ 마음먹고 악으로 깡으로 버텼어요. 그렇게 7개월의 공연을 마치고 나니 몸무게가 13kg이나 줄었더라고요. 공연하면서 바지를 네 번이나 줄여 입었어요. 첫 수업을 혹독하게 받았지만 그럼에도 정말 즐거웠어요. 앞서 출연한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도 성악가와 연극 배우가 함께 출연하고 레치타티보를 우리말 대사로 바꾼 실험적인 작품이었는데, 뮤지컬은 연기적인 요소가 더 많고 발성도 자유로워서 재미있었어요.
김아선 : 저는 앙상블이 소화해야 하는 안무가 어려웠어요. 무대에서는 손 하나를 뻗어도 손끝까지 에너지가 실려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죠. 마담 지리 커버를 맡아서 실제로 몇 번 마담 지리로 무대에 서기도 했어요. 그때는 최선을 다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어린 나이에 마담 지리의 카리스마를 표현하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이건 여담인데, 한국어 공연 협력 연출가인 라이너 프리드가 제가 마담 지리에 대해 다 아는 줄 알고 자꾸 설명을 빠트려서 곤란했어요. 제가 마담 지리 커버를 맡은 건 무려 20여 년 전이고, 전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요! (웃음)
이상준 : 저는 2009년에 피르맹 커버 겸 앙상블로 여러 역할을 연기했어요. 제가 맡은 역할 중에는 조셉 부케와 돈 아띨리오(극 중 오페라 <일 무토>에 등장하는 백작)도 있었는데, 두 역할 모두 분장에 손이 많이 가지만 퀵체인지에 주어진 시간은 짧았어요. 그래서 조셉 부케 연기를 마치고 퇴장하면 곧바로 여섯 명의 스태프가 저에게 달려들었죠. 옷을 갈아입으면서 분장을 지우고, 다시 분장을 하고, 가발을 쓰고 돈 아띨리오가 되어 무대에 등장했어요.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익숙해지니까 나중에는 오히려 시간이 남더라고요.
지난 공연을 떠올릴 때 가장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윤영석 : <오페라의 유령> 팬 사이트에 올라온 사연이 기억나요. 어떤 관객분이 극장에서 우연히 여고 동창을 만났는데,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귀가 안 들리는 상태였대요. 귀가 안 들리는데 뮤지컬을 보러 온 걸 의아하게 여기니까 친구가 이렇게 대답하더래요. “극장에 앉아 있으면 배우의 움직임과 표정 변화, 공기의 떨림 하나하나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난 귀가 들릴 때보다 더 많은 걸 느껴.” 그 사연을 읽고 충격을 받았어요. 성악을 공부하면서 스스로를 소리의 전달자라고 생각해 왔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내가 뭘 표현하는지 느끼는 관객이 있다니! 그때부터 무대에서 잔꾀를 부릴 수 없게 됐어요. 제가 진심으로 무대에 임하지 않으면 관객도 어떤 식으로든 그걸 느낄 테니까요.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글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아요.
김아선 : 저는 월드컵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공연 기간이 2002년 월드컵 시기와 맞물려서 공연 시간에 축구 경기가 치러지곤 했거든요. 마지막 16강 예선전이 치러진 날도 그랬어요. 배우들은 백스테이지에서 경기 결과를 전해 듣고, 관객들은 아직 결과를 모르는 상태에서 커튼콜이 시작되었죠. 그때 영석 오빠가 히딩크 감독 같은 포즈로 무대에 등장해서 이렇게 외쳤어요. “관객 여러분,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했습니다!” 그 순간 객석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고 모두가 “대~한민국”을 연호했죠. 그날의 열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이상준 : 청춘 남녀가 모여 1년 가까이 장기 공연을 하다 보면 정분이 나기 마련이죠. 2009년에는 크리스틴 역의 김소현과 라울 역의 손준호 배우가 만나서 부부가 되었잖아요. 그때 그 커플이 몰래 만나는 현장을 제가 직접 목격했습니다. (웃음) 지금도 무대나 방송에서 두 배우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시절이 떠올라요. 아마 지금도 암암리에 사랑을 꽃피우는 청춘이 있을 걸요?
▲ ⓒ에스엔코
추억을 소환하는 무대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공연이 돌아온 건 무려 13년 만이에요. 이번 시즌 오디션에는 어떤 생각을 갖고 지원하였나요?
윤영석 : 뮤지컬 무대에서 경험을 쌓아나가면서 ‘지금 다시 유령 역을 맡는다면 훨씬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래서 2009년 두 번째 한국어 공연 오디션 공고가 떴을 때 다시 한번 유령 역에 지원했죠. 그때는 오디션을 보다가 눈물까지 흘릴 만큼 간절하게 다시 유령이 되고 싶었어요. 결과적으로 저의 숙원을 이뤘고요. 이번에 세 번째로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홍승희 국내 협력 연출가가 제게 묻더라고요. “또 유령이 하고 싶으세요?” 그래서 대답했죠. “아뇨, 저는 유령으로서 하고 싶은 건 다했습니다. 이제는 나이에 맞는 다른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 최종적으로 앙드레로 참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진심으로 기뻤어요.
김아선 : 해외 크리에이티브 팀이 보기에는 제가 딱 마담 지리처럼 생겼나 봐요. 2001년에도 그 어린 나이의 저에게 마담 지리 커버를 맡기더니, 20여 년이 지난 지금 또 마담 지리를 맡기더라고요. 다시 한 번 깨달았죠. 아, 나는 크리스틴이 될 수 없구나! (웃음) 물론 농담이고, 저는 마담 지리로 돌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배우가 자신의 고유한 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할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니까요.
이상준 : 2009년 공연이 제 마음속에 너무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지나간 그 시간을 되찾고 싶다는 마음에서 오디션에 지원했어요. 이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같은 공연에 참여함으로써 젊은 시절의 열정과 추억을 되살리고 싶었죠. 실제로 무대에 서면 그때와 똑같은 음악과 무대, 의상이 저를 과거로 데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프롤로그 장면에서 샹들리에를 덮고 있던 천이 걷히면 오페라 하우스의 전성기가 소환되는 것처럼요.
앙드레와 피르맹은 오페라 하우스의 공동 운영자이지만 성격은 판이해요. 두 인물의 어떤 특징을 살려 연기하고 있나요?
윤영석 : 앙드레가 예술을 사랑하는 감성적인 인물이라면, 피르맹은 계산에 밝은 이성적인 인물이에요. 두 인물은 <한니발> 리허설 현장에 처음 등장할 때부터 상반된 모습을 보여줘요. 앙드레가 무대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오, 프리마돈나! 화려한 무대 장치!” 하고 감탄할 때…
이상준 : 피르맹은 객석 수를 세고 있죠. (웃음) 피르맹한테 중요한 건 ‘돈이 되느냐’거든요. 이 객석을 꽉 채우면 얼마를 벌 수 있을지 계산하느라 다른 걸 쳐다볼 겨를이 없어요. 애드리브로 오페라 하우스 전 운영자에게 “여기 보조석까지 깔면 몇 석이죠?” 물어보기도 하고요.
윤영석 : 프리마돈나 칼롯타가 극장을 떠나고 대역 크리스틴까지 사라졌을 때에도 두 인물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요. 앙드레는 이제 누가 무대에 서냐며 걱정하는 반면 피르맹은 스캔들 덕분에 표가 잘 팔린다며 좋아하죠. 그런데 재미있게도 나중에는 둘의 역학 관계가 뒤집혀요. 2막에서 유령 체포 계획을 세우는 장면을 주의 깊게 보시면, 앙드레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피르맹은 불안해하는 모습이 눈에 띌 거예요.
마담 지리는 누구보다 유령의 비밀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에요. 그는 왜 유령을 감춰주고, 유령과 크리스틴의 관계를 묵인하는 걸까요?
김아선 : 마담 지리는 유령의 과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그게 유령을 돕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는 마담 지리는 누구보다도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이 오페라 하우스에 영혼을 울리는 진정한 음악이 울려 퍼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유령이 하는 일을 묵인하고 크리스틴이 노래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거죠. 하지만 동시에 유령이 위험한 인물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기에 라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중간중간 계속 경고를 해요. 그러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자 결국 크리스틴을 구하기 위한 선택을 하고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극의 흐름에서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에요.
▲ ⓒ에스엔코
그렇다면 앙드레와 피르맹, 그리고 마담 지리는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윤영석 : 마담 지리는 오페라 하우스의 살아 있는 역사이고, 앙드레와 피르맹은 이제 막 새로 부임한 운영자라서 서로 부딪힐 때가 많아요. 그래도 앙드레는 마담 지리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에요. 마담 지리가 칼롯타의 대역으로 크리스틴을 추천할 때 피르맹은 “코러스 걸이잖아?” 하고 못마땅해하지만, 앙드레는 “마담 지리가 잘 배웠다고 하잖아” 라며 순순히 받아들이죠. (웃음)
김아선 : <한니발> 리허설 때 앙드레와 피르맹을 지켜보며 마담 지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해요. ‘음악이 언제 끝나는지도 모르고 손뼉 치는 것 좀 봐. 어휴, 뭣도 모르는 사람들과 또 얼마나 험난한 여정을 헤쳐나가야 할까.’
이상준 : 저기요, 우리 극장이거든요? 크리스틴이며, 라울이며, 도대체 이 오페라 하우스에는 운영자 말을 듣는 사람이 없다니까요. 1막과 2막에 운영자 사무실에 모인 여러 인물이 제각각 다른 가사로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는 그 장면이 가장 재미있으면서 가장 힘들어요. 각자의 입장이 어떻게 부딪히는지 들여다보면 왜 이런 복잡한 노래가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실 거예요.
각자의 역할에 숨은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윤영석 : 가장무도회에서 앙드레가 해골 옷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을 많이들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옷이 몸에 달라붙는 재질이라 땀이 나면 잘 안 벗겨져요. 퇴장한 뒤 슈트로 퀵체인지를 할 때마다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이상준 : 가장무도회에서 두르는 망토가 보기보다 무거워서 그 장면만 끝나면 지쳐요. <오페라의 유령>은 의상이 전반적으로 무거운 편이에요. 배우가 편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의상이 아니라 그 무게감을 느끼면서 연기하도록 만드는 의상이죠.
김아선 : 무거운 걸로 치면 마담 지리가 드는 지팡이도 만만치 않아요. 손바닥에 굳은살까지 생겼다니까요. 마담 지리는 발레 감독이기 때문에 항상 몸을 꼿꼿이 세우고 손끝 하나, 고갯짓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해요. 목소리도 평소 제 목소리와 달리 엄숙하게 내야 하고요. 그 상태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려면 무대에서 한시도 방심해선 안 돼요. 그런데 가끔 두 분이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기가 힘들어요!
이 작품의 역사와 제작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오페라의 유령>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김아선 : 저는 그 비결이 디테일에 있다고 생각해요. 가까이서 보면 무대와 의상 하나하나가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답고 정교하거든요. 게다가 관객 눈에 띄지 않는 부분까지도 철저하게 배우의 안전을 고려해 만들어져 있어요. 마담 지리는 무대 뒤에서 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까지 오르내려야 하는데, 사다리의 마지막 단만 다른 곳보다 단차가 낮아서 굳이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아도 여기가 도착 지점이란 걸 알 수 있어요. 그런 사소한 부분에서 섬세한 배려를 느껴요.
이상준 : 이 작품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려 일하는 스태프들이에요. <오페라의 유령>은 대부분의 세트를 수동으로 전환해요. 전자동 시스템에 비해 정교하게 템포를 조절하고 안전 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손이 많이 가죠. 그래서 여느 작품보다 많은 무대 스태프가 고생하고 있어요. 잠깐의 암전 동안 무거운 대도구와 소품을 들고 옮기는 건 물론이고, 프롤로그 장면에서 프로시니엄을 덮고 있는 천을 걷는 것도 스태프가 직접 해요.
윤영석 : 앞서 상준이가 말한 것처럼, 관객에게도 이 작품은 그리운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처럼 느껴질 거라 생각해요. <오페라의 유령>은 한국 뮤지컬의 성장과 발전에 기폭제가 된 작품이잖아요. 저처럼 이 작품을 ‘첫사랑’으로 기억하는 오랜 뮤지컬 마니아들이 있을 거예요. 초연을 재미있게 본 관객이 이제는 부모가 되어 아이 손을 잡고 극장을 찾는 거죠.
부산 공연을 마무리하는 지금, 특별히 감사를 표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이상준 : 커튼콜 때 객석을 바라보면 종종 유령 마스크를 쓰거나 크리스틴과 똑같은 의상을 입은 관객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때마다 이 작품을 향한 관객의 사랑이 느껴져서 기쁘고 감사해요.
김아선 : 저는 두 선배님이 계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앙상블부터 주조연까지 이 작품으로 뮤지컬에 데뷔하는 배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공연이 안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건 내공 있는 두 선배님이 딱 중심을 잡고 매일 무대를 지키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상준 :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 왜 혼자 쏙 빠지려고 해?
윤영석 : 저희가 이렇게 사이가 좋습니다. (웃음) <오페라의 유령>은 물론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지만, 이번 공연이 특별히 사랑받는 비결은 바로 배우들의 팀워크에 있지 않나 싶어요. 이렇게 모두가 한마음으로 열심히 하는 팀을 만나는 건 쉽지 않거든요. 아무튼 아선아, 오늘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6호 2023년 7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