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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오페라의 유령④ - 마침내 얼굴을 마주하기까지 [No.226]

글 |정수연(공연 평론가) 사진 |에스앤코 2023-07-26 1,584

 

 

이토록 특별한, 멜로

 

뮤지컬에서 고전이라는 명예는 오랜 세월 현역의 지위를 잃지 않을 때 주어지는 왕관이다. 어느새 불혹이 다 된 <오페라의 유령>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이 어떤 힘으로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었는지는 이미 다 아는 얘기다. 언제 들어도 탁월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음악이나,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무대 연출이나, 고전이 된 비결을 새삼 늘어놓을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서사만은 아쉽게 여겨졌다. 늙은 라울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극이 시작되지만, 그 회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끝내 알려주지 않은 채 마무리된다든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인물에게 의미심장한 대사와 행동을 부여한다든지(왜 마지막 장면에 맥 지리가 등장하는 걸까?), <오페라의 유령>에는 서사의 흐름이나 인물의 설정에서 충분히 해결하지 못한 빈틈이 곳곳에 적잖다. 그런데도 이 빈틈이 그다지 거슬리지 않는 것은 범죄 추리 소설인 원작이 멜로드라마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멜로는 뮤지컬에 잘 맞는 틀이지만 정작 잘 만든 뮤지컬 멜로는 많지 않다. 비슷한 경우로 <지킬 앤 하이드>를 보시라. 선과 악을 진지하게 묻는 소설의 문제의식은 뮤지컬에서 두 여자와 한 남자의 예측 가능한 순정이 되었다. 멜로는 도식적인 전형이 되거나 인위적인 사랑 얘기에 그치기 쉽다.


논리에 비약이 있어도 그 비약을 설득하는 감정이 있으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감정의 드라마가 바로 멜로다. 논리적인 설명보다 감정적인 설득이 핵심적인 장르인 거다. <오페라의 유령>에는 이 설득의 힘이 있다. 멜로드라마로서 <오페라의 유령>은 최고의 작품이다. 감정을 담아내는 멜로가 멜로답게 완성되었을 때 서사는 그 의미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기에 더욱 그렇다.


멜로의 핵심은 사람 사이의 관계고, 그 관계를 설명하는 말은 모두 감정의 단어다. 사랑, 분노, 두려움, 연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고정되지 않는 법이라 그 방향과 크기는 예측할 수 없게 바뀐다. 관계의 변화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는 감정의 굴곡은 곧바로 서사가 되니, 이 흐름 위에서 사람은 천천히 변화한다. 멜로가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품은 장르로 진화하는 자리가 바로 여기다. 사람은 마음을 가진 존재임을 확인하는 것, 이것이 멜로의 세계관이다.


<오페라의 유령>의 멜로에는 이런 관계와 변화가 있다. 유령과 크리스틴을 보시라. 그들의 마음은 몇 번의 변곡점을 통과하면서 서로를 향해 변화한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끝내 이루어지는 성취가 아니다. 마음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마침내 발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의 멜로는 깊고도 짙다. 뮤지컬에서 이런 사랑이 가능하다니. 유령과 크리스틴의 관계는 사랑이라는 한 마디에 얼마나 깊은 의미가 담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뮤지컬의 훌륭한 예다.

 

 

 

 

천사의 소리 ‘음악의 천사’

 

맨 처음 크리스틴에게 유령은 소리로 다가온 존재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내준다던 바로 그 음악의 천사가 아닐까, 크리스틴은 어린애 같은 믿음으로 유령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인다. 때로는 다정한 친구처럼, 때로는 엄격한 선생처럼 음악의 언어를 가르쳐 주는 이 소리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아름다우면서 신비롭고,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이 존재에게 크리스틴은 이미 사로잡혀 있다. 


유령과 크리스틴의 첫 만남이 소리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시각이 상대를 포착하는 능동적 감각이라면 청각은 타자를 온몸으로 감지하는 수동적인 감각이다. 눈을 감고 모든 감각을 동원해 상대를 경험하고 느끼고 인지하는 온전한 공감각이 청각인 것이다. 누군가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나 자신이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 오로지 상대에게 집중하는 태도다. 이런 태도는 종교에 가깝다. 크리스틴이 소리를 통해 감각한 세계는 단호하고도 아름답다. 그런 세계를 가진 존재라면 그는 분명 음악의 천사일 거다. 


하지만 영원한 신비로 남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신뿐이다. 몸을 가진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실체로 드러내고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유령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크리스틴조차 그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그의 정체성은 크리스틴에게 미지의 영역이다. 유령의 음악이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위험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그 음악은 마치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세이렌의 노래와도 같다. 너무나도 아름답기에 죽음의 바다에 뛰어들고 싶게 만드는 끌림을 억제할 판단조차 사라지게 하는 매혹. 이것이 천사의 선물인지 죽음의 유혹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크리스틴이 음악의 천사를 숭배하면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이런 사실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아직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유령은 ‘음악의 천사’인 동시에 ‘오페라의 유령’이다. 어둠의 매혹과 두려운 공포가 공존하는 유령의 세계는 ‘밤의 음악’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신비로운 세계의 주인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극장의 지하 동굴에 펼쳐진 그의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크리스틴은 정신을 잃어버린다. 마치 세이렌의 소리에 매혹된 오디세우스처럼.

 

유령의 가면 ‘오페라의 유령’

 

드디어 크리스틴 앞에 유령은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껏 소리로만 교감했던 유령은 가면을 쓴 신사의 모습이다. 왜 가면을 쓰고 있는 걸까. 가면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 번째는 감추기 위해서다. 유령이 감춰야 할 것은 자기의 얼굴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마저 버릴 만큼 흉측한 얼굴은 신의 저주를 받은 듯한 형상이다. 마주하기 힘들 만큼의 추함은 악마의 얼굴을 연상시킨다. 이런 얼굴은 반드시 감춰야 한다.


그런데 가면을 쓰면서 오히려 드러나는 얼굴이 있다. 이것이 가면의 두 번째 목적인 바, 가면은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괴물 같은 얼굴을 감췄을 때 유령은 음악가이자 작곡가이며 건축가이자 마술사다. 지식과 예술의 창조력이 매끈한 가면 위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가면을 쓰는 순간 그의 재능은 온전히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카리스마가 각인되는 자리는 바로 가면이다.


이 카리스마로 유령은 극장의 공간을 지배한다. 지하에는 자신의 왕국을 구축하고, 지상에서는 자기만의 객석에서 무대를 향해 예술가의 권위를 드러낸다. 가면 속의 유령은 이 극장 안에서 전지전능한 존재다. 만약 이 가면이 진짜 유령의 얼굴로 승인되었더라면 어땠을까? 그의 삶은 어둠 속에 은폐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편지로만 소통할 뿐 어떤 사람과도 마주하지 않는다.


사람을 마주하지 않은 가면은, 재능이든 카리스마든 그 어떤 좋은 것을 드러낸다 해도, 고유한 얼굴이 될 수 없다. 유령에게 가면은 자기의 얼굴을 감추는 도구에 불과하다. 크리스틴에게 ‘밤의 음악’을 들려줄 때도 그녀의 뒤에서 속삭이는 유령의 모습을 보라. 깊은 교감으로 함께했던 크리스틴조차 그는 가면 속의 얼굴로 마주하지 않는다. 추악함을 들킬까 두려움에 그의 얼굴은 가면 뒤에 숨겨진 채 봉인되는 것이다.


이 얼굴을 보는 사람이 바로 크리스틴이다. 음악의 천사, 이 미지의 존재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유일한 사람인 크리스틴은 호기심과 친근함으로 그의 가면을 벗긴다. 가면 뒤의 형상을 본 그녀는 경악한다. 흡사 악마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크리스틴은 금세 공포에 휩싸인다. 갑작스레 크리스틴에게 자신의 추함을 들켜버린 유령은 얼굴 뒤에 가려진 영혼을 보라고 호소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유령의 마음은 원망과 분노로 뒤범벅되고 만다. 이제 크리스틴에게 자신은 거역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무섭고 두렵고 끔찍한 오페라의 유령일 테니 말이다.


유령의 얼굴은 그저 못생긴 게 아니라 악을 연상시킬 만큼 흉측하다. 그 어그러짐에는 어떠한 아름다움도 깃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악의 이미지에 유령도, 크리스틴도 붙잡혀 버린다. 신비로운 천사는 두려운 유령으로, 가면 위에 빛나던 카리스마는 복수와 살인의 공포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건만 모든 것이 달라지는 거다. 유령의 가면도 어느덧 악이 드리워진 얼굴이 돼버린다.


크리스틴은 유령의 세계로부터 도망친다. 그녀를 붙잡을 방법도, 함께할 수 있는 공간도, 현실에는 이제 없다. 유령은 또 한 번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가면을 써야만 존재할 수 있는 세계를 이제는 극장의 위, 무대에 만들어내는 거다. 유령이 만든 연극의 세계 안에 크리스틴은 도망갈 수 없는 주인공으로 붙들리고, 유령은 무대 위에서 크리스틴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거칠게 고백한다. 라울이 노래했던 사랑의 선율을 자기의 노래로 반복하면서.


크리스틴이 유령의 가면을 또 한 번 벗기는 순간은 바로 이때다. 이번엔 모두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그의 가면이 벗겨진다. 살인과 범죄가 얼굴에서 내뿜는 악에서 자라난 당연한 열매로 보일 만큼 흉측한 그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폭로돼 버린다. 하지만 그가 악당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가면을 벗길 필요가 있을까? 그는 이미 살인자요 범죄자이고 그의 가면은 더 이상 유령의 권위를 잃었는데 말이다. 크리스틴이 유령의 가면을 벗긴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의 얼굴 ‘바람은 그것뿐’

 

이름이 그렇듯 얼굴은 타인을 통해 만들어진다. 나의 얼굴을 보는 사람은 언제나 타인이기에 그렇다. 나를 보며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통해 나는 예쁜 얼굴을 가졌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한 사람의 얼굴은 다른 사람을 통해 되비쳐질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프랑스어에서 얼굴(Visage)은 ‘지향하다(Vise)’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는데, 지향한다는 것은 대상을 집중해 바라본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봐 줄 때 사람은 비로소 자기의 얼굴을 갖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령은 얼굴이 없는 사람이다. 그에게 이름이 없는 것(이 작품에서 그는 그저 ‘유령’일 뿐이다!)은 그에게 얼굴이 없기 때문이다. 태어난 순간에도 부모조차 그의 얼굴에 눈을 맞추지 않았다. 이런 유령의 얼굴을 처음으로 본 사람은 크리스틴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이제 유령의 얼굴은 크리스틴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 크리스틴은 그에게 얼굴의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소리로 만났을 때 그는 음악의 천사였고, 가면을 쓴 그는 오페라의 유령이었으며, 가면을 벗겼을 때 그는 추악한 괴물이다. 어떤 것이 진짜 유령의 얼굴일까. 크리스틴이 다시금 그의 가면을 벗긴 것은 그의 진짜 얼굴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가면을 되돌려 줬지만 이제는 그의 맨얼굴을, 라울을 죽이려는 악마의 모습일지라도, 그녀는 정면으로 응시한다.


유령의 얼굴을 감싸 안고 거듭 입을 맞추는 크리스틴의 키스는 그래서 중요하다. 아무리 추악한 모습일지라도 그 뒤에 숨겨진 외로움과 고귀함을 보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자기 앞에 있는 얼굴을 향해 건네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틴은 눈에 보이는 유령의 얼굴이 아닌 음악으로 교감했던 유령을 떠올린다. 소리도 가면도 아닌 얼굴을 마주할 때 유령은 외롭고 슬픈 영혼을 가진, 혼자가 아님을 위로해야 할 한 사람일 뿐임을 보게 되는 거다. 그녀는 유령에게 키스함으로써 그의 외로움과 슬픔에 응답한다.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이 응답으로 확증하는 것이다.


이때 유령을 돌이켜 세우는 크리스틴의 선율이 ‘음악의 천사’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어둠 속에만 있던 가련한 영혼을 향해 당신은 어떤 존재인지를 일깨우는 진심은 이렇게 전해진다. 얼굴을 보기 전에 함께 경험하고 교감했던 기억으로 그의 존재를 무에서 유로 끌어올리는 것, 이것이 크리스틴의 사랑이다. 크리스틴은 유령의 얼굴을 찾아주는 사람인 거다. 그 사랑 앞에서 비로소 유령은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로 말을 건넨다. 조용하고 진심 어린 사랑의 마음을. 이제 그는 크리스틴을 그녀의 세계로 돌려보낼 수 있다.


유령이 사라진 자리에는 가면이 남겨져 있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그는 정말 가면을 벗은 것일까. 가면 없이 그는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될까. 결말이 던지는 질문의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유령과 크리스틴의 멜로에는 사랑의 달콤한 표면을 걷어낸 또 다른 깊이의 사랑이 숨겨져 있다. 사랑은 우리가 얼굴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이 사랑의 여운이 남아 있는 동안 이 작품은 계속 현재형일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6호 2023년 7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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