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aul Kolnik
뉴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 ‘뉴욕 뉴욕’은 도시 홍보를 위해 작곡한 노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977년에 개봉한 뮤지컬 영화 <뉴욕 뉴욕>의 삽입곡이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뉴욕을 배경으로 성공을 갈망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가 메가폰을 잡고, <카바레> <시카고>를 탄생시킨 존 칸더와 프레드 엡이 음악을 맡았다. 화려한 제작진이 참여했음에도 영화는 흥행에 참패하며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혔지만, 영화 음악은 영화 개봉 46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서 부활했다.
꿈을 찾아 뉴욕에 모인 예술가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젊은이들이 저마다의 꿈을 이루려 뉴욕으로 모여든다. 전쟁 중 여러 군부대를 돌아다니며 노래하던 프랜신도 가수로서 성공을 꿈꾸며 이제 막 뉴욕에 도착했다. 뉴욕 토박이 음악가 지미는 함께 공연하던 형이 전쟁터에서 사망한 후 술로 세월을 보내는 중이다.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친 프랜신에게 첫눈에 반한 지미는 갈 곳 없는 프랜신을 바이올린 교사 마담 벨트리의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프랜신이 노래하는 것을 보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되찾은 지미는 그녀에게 함께 공연하자고 제안한다. 지미는 공연 무대를 잡기 위해 노력하지만, 술에 취해 사고를 친 전적 때문에 문전 박대를 당하기 일쑤다. 포기할 수 없던 지미는 공연 의뢰서를 훔쳐서라도 무대에 서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게다가 지미는 레스토랑에서 노래하는 프랜신에게 추근거리는 손님을 향해 그대로 주먹을 날리는 바람에, 또다시 평판이 떨어진다. 프랜신은 자신을 위해 애쓰는 지미를 보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얼마 후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다. 때마침 음악 프로듀서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프랜신은 이내 미국 전역에 송출되는 라디오 방송에 진출하며 가수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프랜신이 가수로서 점점 바쁜 나날을 보내자, 지미는 그녀의 성공을 기뻐하면서도 자격지심을 느낀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진다. 예술가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한 지미는 친구가 운영한 레스토랑을 재즈 클럽으로 변신시키고,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 사이 프랜신은 유명한 가수가 되었지만 여전히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뉴욕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뉴욕을 떠나기 전 친구의 부탁으로 지미의 클럽을 찾게 된 프랜신은 지미의 공연에 합류해 ‘뉴욕 뉴욕’을 함께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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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더와 엡 콤비의 열다섯 번째 뮤지컬
지난 4월 정식 개막한 <뉴욕 뉴욕>은 칸더와 엡 콤비의 열다섯 번째 뮤지컬이다. 브로드웨이의 대표적인 작곡가, 작사가 콤비로 손꼽히는 존 칸더와 프레드 엡의 첫 만남은 1962년에 성사됐다. 두 사람은 ‘My Coloring Book’의 성공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콤비 활동을 시작한다. 친한 배우 겸 가수 케이 발라드를 위해 쓴 ‘My Coloring Book’은 1963년 그래미 어워즈 ‘올해의 노래’ 후보로 지목되는 한편, 대중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으며 콤비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이후 칸더와 엡은 대중가요나 영화, TV 음악 작업에도 참여했지만, 주 활동 무대는 뮤지컬이었다. 1965년 두 사람의 첫 뮤지컬 <플로라, 붉은 위협Flora the Red Menace>이 막을 올린다. 비록 작품은 흥행에 실패했지만, 함께 작업했던 연출가 해롤드 프린스가 그들에게 <카바레>음악 작업을 맡기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칸더와 엡의 출세작으로 꼽히는 <카바레>를 시작으로 <시카고> <올해의 여성> <거미여인의 키스> 등을 성공시키며,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어쩌면 칸더와 엡 콤비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뉴욕 뉴욕>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뮤지컬은 영화에서 이야기의 기본 틀과 인물 설정 일부만 가져와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다. 대신 영화 음악은 대부분 뮤지컬 넘버로 사용되었다. 또 뮤지컬에는 칸더와 엡의 다른 작품 속 뮤지컬 넘버를 편곡해 사용하고 새로운 뮤지컬 넘버도 추가했다. 이를 위해 올해 아흔여섯 살의 존 칸더가 직접 음악 작업에 참여했고, 2004년 세상을 떠난 프레드 엡의 빈자리는 린 마누엘 미란다가 채웠다. 린 마누엘 미란다는 존 칸더와 함께 ‘New York New York(뉴욕 뉴욕)’의 가사 일부를 수정하고, ‘Cheering for Me Now(날 응원해 줘)’ ‘Can You Hear Me?(내 말이 들리나요?)’ 등 신곡을 썼다.
<뉴욕 뉴욕>의 프리뷰 공연 첫날인 3월 24일,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은 이날을 ‘존 칸더의 날’로 지정하고, 뮤지컬이 공연 중인 세인트 제임스 시어터가 위치한 시어터 디스트릭트 44번가를 ‘칸더 앤 엡 웨이Kander & Ebb Way’로 명명했다. 이는 두 사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함이지만, 뉴욕을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한 ‘뉴욕 뉴욕’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나 뮤지컬에서 가장 인상적인 노래는 누가 뭐래도 ‘뉴욕 뉴욕’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노래가 단 45분 만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지미 역할을 맡았던 로버트 드 니로가 칸더와 엡이 처음 쓴 노래를 듣고 ‘약하다’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바람에, 부랴부랴 새로 쓴 노래가 바로 ‘뉴욕 뉴욕’이다. 영화의 흥행 실패로 하마터면 그대로 잊힐 뻔한 이 노래는 1980년 프랭크 시나트라가 발표한 「트릴로지: 과거 현재 미래Trilogy: Past Present Future」 앨범에 수록되면서 유명세를 탄다. 우리에게 익숙한 브라스 밴드 음악에 맞춘 ‘뉴욕 뉴욕’이 바로 이 앨범의 음원이다. 뮤지컬에서도 ‘뉴욕 뉴욕’은 중요한 테마로 사용된다. 오버추어로 1막의 시작을 알리고, 작품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흐른다. 그리고 영화와 마찬가지로 작품의 대미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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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충실히 재현한 연출과 무대
<뉴욕 뉴욕>의 1막을 여는 것은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뉴욕 시민들이다. 사람들이 지하철 안에서 서로 부대끼는 모습, 대로 한복판에서 쥐를 발견하고 황급히 피하는 행인들, 길을 건너기 위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는 사람들, 리드미컬한 걸음으로 도시를 누비는 뉴요커들의 세련된 움직임은 작품의 안무와 연출을 맡은 수잔 스토로만이 완성했다. 수잔 스토로만의 안무와 연출이 돋보이는 장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뉴욕의 마천루를 만들어낸 건설 노동자들이 건물 꼭대기에서 탭 댄스를 추는 장면에서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공중 곡예사처럼 아슬아슬하게 움직이는 배우들의 몸짓에 탭 슈즈가 만들어내는 경쾌한 소리가 흥겨움을 더한다.
<뉴욕 뉴욕>의 무대 좌우에는 뉴욕 빌딩 외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상계단을 설치하고, 전면에 커다란 화면을 배치했다. 여기에 이동식 창문, 출입문, 신호등, 가구들이 무대를 오가며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뉴욕의 비상계단은 소방 안전 법규 때문에 오래된 건물에 어쩔 수 없이 설치한 것인데, 지금은 뉴욕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되었다. <뉴욕 뉴욕>의 무대에서도 비상계단은 중요한 이미지로 활용된다. 2막 마지막에는 비상계단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지미와 프랜신이 실랑이를 벌일 때 온 동네 사람들이 비상계단으로 나오는데, 이때 무대에 3층짜리 비상계단 여섯 개가 등장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무대 디자이너 베어울프 보릿은 원근법을 활용해 비스듬하게 비상계단을 재현해 효과적으로 거리감과 깊이감을 표현했다. 베어울프 보릿은 크리스토퍼 애쉬와 함께 프로젝션 디자인도 맡았는데, 두 사람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브루클린 브리지의 전경 등 뉴욕의 유명한 장소들을 생생한 영상으로 펼쳐 낸다.
‘뉴욕 뉴욕’이 울려 퍼지는 마지막 장면은 작품의 피날레에 걸맞은 멋진 장면으로 연출됐다. 공연 내내 무대 아래에 있던 오케스트라 피트가 리프트를 타고 마법처럼 무대에 나타난다. 그리고 중절모와 베레모를 쓴 연주자들이 극 중 지미의 밴드 멤버가 되어 힘차게 ‘뉴욕 뉴욕’을 연주한다. <뉴욕 뉴욕>의 작품 리뷰 중 상당수가 피날레를 위해 약 3시간 동안 앉아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을 정도로 극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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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이 남는 이야기와 인물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뉴욕 뉴욕>은 원작 영화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영화는 지미와 프랜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결국 두 사람이 헤어지며 끝난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어두운 편이다. 데이비드 톰슨과 쉐런 워싱턴이 새롭게 쓴 <뉴욕 뉴욕>은 영화보다는 밝은 분위기 속에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 지미와 프랜신 외에도 색소포니스트가 되고 싶은 제시,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는 이민자 알렉스, 배달 일을 그만두고 드러머가 되려는 마테오, 전쟁터에서 아들이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마담 벨트리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뮤지컬은 극 초반에 뮤지컬 넘버 ‘Cheering for Me Now’를 통해 전쟁이 끝나고 뉴욕에서 예술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인물들을 소개하며, 앞으로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을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극은 예상과 달리 지미와 프랜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나머지 인물은 조연이라 하기엔 부족한 분량과 관계성을 보여준다. 전쟁에 참여했던 흑인 제시, 쿠바계 마테오, 유대인 전쟁 난민 알렉스는 나름대로 또렷한 서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서로 잘 엮이지 않는 데다가, 극 전체로 보았을 때도 각각의 사연이 겉돈다.
주인공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우선 프랜신은 자신에게 닥친 역경을 너무 쉽게 극복한다. 흑인 여성 아티스트로서 프랜신이 겪는 어려움은 몇 마디 대사로 언급될 뿐이고, 그 어려움도 별다른 노력 없이 금세 극복된다. 뉴욕에 오자마자 일자리를 얻는가 하면, 곧바로 프로듀서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프랜신이 가수로서 성공하는 과정이 일사천리로 그려지는 바람에 관객들이 프랜신에게 감정을 이입하거나 공감할 틈이 없다. 또 다른 주인공 지미는 영화에서는 색소포니스트지만, 뮤지컬에서는 다양한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제시, 알렉스, 마테오와 음악적으로 교류한다. 분명 지미는 등장 인물들을 이어줄 연결 고리이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지미는 단순히 설정과 대사로만 설명되는 단편적인 인물로 남아버렸다.
<뉴욕 뉴욕>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혼재되어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평이다. 그렇지만 칸더와 앱 콤비, 린 마누엘 미란다가 참여한 음악, 수잔 스토로만이 선보이는 세련된 안무와 연출, 너무도 유명한 노래 ‘뉴욕 뉴욕’을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관객에게 충분히 관심을 끌만하다. 하지만 <뉴욕 뉴욕>이 <오페라의 유령>이 떠난 브로드웨이로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이끌 작품이 될 수 있을지 묻는다면? 답은 미지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6호 2023년 7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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