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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보니 앤 클라이드> 에녹 [NO.127]

글 |이민선 사진 |김수홍 2014-04-23 6,004

그의 변신은 계속된다

배우에게 외모는 중요하다. ‘조각 미남’과 ‘꽃미녀’만이 배우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외모가 주는 인상이 배우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에서. 하지만 자신의 타고난 외모와 그간 구축된 이미지를 라이벌 삼아 그 대결에서 이겨낸, 즉 변신에 성공한 배우들을 볼 때도 있다. 이 남자도 최근, 첫인상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이미지로 무대에 서고 있다. 누가 봐도 선한 인상으로 과거 소심하거나 부드러운 역할을 주로 맡았으나, 지난 한 해의 활약으로 뮤지컬계 대표 ‘나쁜 남자’가 된 배우, 바로 에녹이다. 인터뷰 자리에선 이렇게나 온화하고 차분하고 공손한 그가 이번에 맡은 역할은 <보니 앤 클라이드>의 클라이드다. 청춘의 치기와 패기가 돋보이는, 실제로 유명세를 떨친 강도 역할이라니, 그에게 외모는 더 이상 자신의 경쟁 상대가 못 되는 듯하다.





주인공 클라이드로 변신 중
에녹이 <보니 앤 클라이드>의 클라이드 역을 맡았다는 데서 우선 주목할 점은, 그가 처음으로 대형 작품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선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간 소극장 뮤지컬의 주연 또는 대극장 뮤지컬의 조연으로 이어졌던 그의 행보를 생각할 때, 이번 작품은 배우로서 새로운 자리를 경험하는 기회가 될 듯하다. “대극장 첫 주인공 자리가 굉장히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기뻐요. 그리고 주인공으로 서는 작품이 <보니 앤 클라이드>라는 게 좋아요. 초연으로 이미 검증된 작품이고, 스태프들의 빵빵한 노하우와 선배 배우들의 노련함에 마음껏 기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외양을 화려하게 치장한 작품이 아니라 드라마로 꽉꽉 채워진 작품이고요. 클라이드의 비중이 큰 작품이라서 재미있을 것 같아요.” 에녹은 시종 객관적인 시선으로 차분하게 자신을 드러냈지만, 좋은 기회에 대한 기쁨과 자신감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반대편에서 부담감과 우려도 분명히 있다. 에녹과 함께 클라이드 역에 캐스팅된 배우는 엄기준과 박형식, Key. TV 드라마와 음반 활동으로 이미 대중적 스타의 위치에 있으며, 더욱이 지난해 초연 때 클라이드를 연기했던 이들이다. 배역에 대한 경험치와 인지도에서 그들에 못 미치는 에녹을 더욱 긴장하게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주연에 대한 욕심도 있고, 제 안에 ‘잘할 수 있다’는 마음은 있어요. 하지만 첫 번째 실질적인 두려움은 ‘관객들이 날 알고 보러 올까?’ 하는 거죠. 또 하나, 관객은 조연이 아닌 주연의 시선으로 스토리를 따라가기 때문에, 긴 호흡으로 관객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야하니 정말 잘해야겠다는 부담이 있어요.” 그래서 에녹은 다른 클라이드들보다 먼저 연습에 투입돼 부지런히 ‘선배 클라이드’들을 따라잡는 중이다. 그와 더불어 <보니 앤 클라이드>에 처음 참여한 두 명의 보니, 가희·오소연과 호흡을 맞춰보는 기회도 독점했다. 우선적으로 그에게 집중된 연습 시간을 통해 에녹은 점점 클라이드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간단하게 묘사하자면, 클라이드는 거침없는 청춘이다. 내일 따윈 생각지 않고 강도가 되어 세상을 누비는 이다. 에녹이 클라이드에게 받은 첫인상은 철부지 20대, “총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불꽃처럼 살다간 인물이란 느낌”이 강했다. 일견 거칠고 남성성 강한 캐릭터로 인식되기 쉽지만, 에녹은 클라이드에게 다가갈수록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클라이드는 세상을 다 잡아먹을 듯이 분노할 때도 있지만, 나약해질 땐 한없이 나약해져요. 가족과 보니에 대한 애정과 소유욕이 강해 그들이 자신과 같이 행동하지 않을 땐 굉장히 크게 화를 내는데, 이건 사실 마음이 여려서죠. 그런 모습들이 굉장히 인간적으로 다가왔어요.” 초연 때는 남성성 강한 클라이드의 캐릭터가 두드러졌다면, 재공연에서 클라이드는 좀 더 다양하고 입체적인 느낌을 줄 듯하다. 클라이드의 굴곡진 변화가 드라마를 좀 더 흥미롭게 만들리라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준비된 도약
에녹에게, 그리고 에녹을 지켜본 관객들에게 2013년은 잊지 못할 해였을 것이다. 그는 새해의 시작과 함께 능글맞고 음흉한 잭 파벨 역으로 <레베카>에 등장해 강한 인상을 남기더니, 이어 <스칼렛 핌퍼넬>의 쇼블랑과 <카르멘>의 가르시아로 매력적인 악역의 계보를 이어갔다. 그해에 오른 뮤지컬 속 나쁜 남자를 이야기할 때 에녹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에녹의 행보는 인상적이었다. 더욱 재밌는 것은, 에녹은 데뷔 초 줄곧 나쁜 남자와는 정반대 편에 선 순진하고 소심한 캐릭터를 주로 맡았다는 점이다. <자나, 돈트>의 순진한 쿼터백 스티브, <사춘기>의 나약한 선규, <달콤한 나의 도시>의 연하남 태오 등이 그의 몫이었던 것. 그도 그럴 것이, 분장과 무대 의상을 벗은 평소의 그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의 선한 인상에서 단번에 착한 남자라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겐 가르시아 같은 면도 있고, 클라이드나 쇼블랑 같은 면도 있어서 악역을 연기하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 안의 모습을 밖으로 끄집어내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 뿐.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연이어 세 번의 악역을 연기하며, “어딘가 갖고 있었지만 꺼내기 어려웠던 모습을 다 꺼낼 수 있게 돼 배우로서 많은 걸 배운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매력적인 역할과 연기로 사랑받은 데 대해선 우선 겸손으로 대했다. “헤어스타일이나 메이크업, 의상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비주얼을 통해 마음가짐과 말투도 달라지거든요. 그 외모에 어울리는 인물을 상상하기도 좋고요. 실제로 가면을 쓰면 자신과는 다른 캐릭터가 되곤 하잖아요.” 하지만 그만의 노력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 맡은 캐릭터의 근본적인 성격을 파악하고, 그런 그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중점을 두어 연기하려 했다. 잠깐 등장하는 조연이더라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기에, 그는 무대 위에서 짧지만 굵은 존재감을 빛낼 수 있었다. 그래서 2013년은 관객에게 그를 각인시키는 동시에, 늘 의심해왔던 자신에게 자신감을 부여해준 때이기도 하다. “과거엔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내가 하는 게 맞는지, 많이 불안했어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해볼 만하겠다’라는 마음이 작년 한 해에 생긴 것 같아요.”

에녹은 2007년 <알타보이즈>로 데뷔한 후 꾸준히 무대에 서긴 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우연히 뮤지컬에 데뷔해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데뷔작 후, 스태프 및 단역의 기회도 마다 않고 공연에 대해서라면 뭐든 배우려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매의 눈’을 갖고 ‘배고픈 늑대’처럼 뭐든 얻겠다는 일념 하나로. 뒤돌아봤을 때 천천히 계단 한 칸 한 칸을 밟고 올라섰던 시간들이 소중한 것은 당연하다. “좋은 분들과 좋은 작품들을 만나 하나하나 배웠기 때문에, 지금 대극장 주연을 맡았을 때 겁도 나지만 ‘해볼 만하지! 해보자!’ 하는 마음이 든다”는 그의 말은 겸손도 허세도 아닌 솔직한 심정임을 느낄 수 있었다. 올해도 대극장 조연과 소극장 주연을 막론하고, 다양한 규모의 무대에서 다양한 색깔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그를 볼 수 있을 듯하다. 바야흐로 그의 첫 번째 전성기가 왔다. 두고두고 그의 제 2의, 제 3의 전성기를 보고 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7호 2014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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