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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진실이 반짝이는 무대 - <후크> 김주연 [No.228]

글 |이솔희 사진 |조현설 2023-10-16 1,871

 


<후크>는 환상의 세계 네버랜드에 사는 피터, 현실에서 벗어나 네버랜드로 가는 후크 그리고 네버랜드를 만들어낸 웬디의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김주연은 네버랜드의 스토리텔러이자 거짓말쟁이 웬디로 변신한다.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반짝이는 진실을 찾기 위해 무대에 오르는 김주연은 <후크>를 통해 또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

 

 

 

 

새로운 옷을 입고


<후크> 개막 이틀 전 <라흐 헤스트>의 두 번째 시즌이 막을 내리잖아요. 주연 씨가 출연했던 작품에 다시 출연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은데, <라흐 헤스트>는 그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예요. <라흐 헤스트> 공연을 마무리하는 소감이 어때요? 
<라흐 헤스트>는 제가 진심으로 아끼는 작품 중 하나이자 저를 늘 고민에 빠지게 만든 작품이에요. 초연 때는 아무래도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 시간을 많이 들이다 보니 캐릭터를 쌓아 올리는 데는 상대적으로 시간을 쏟지 못해 아쉬움이 조금 남았어요. 그래서 초연의 아쉬움을 달래고 관객분들께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재연에도 참여했죠. 이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연습할 때 뿐만 아니라 공연 기간 내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어요. ‘이 장면을 어떻게 연기해야 설득력이 생길까’, ‘이 대사는 어떤 감정으로 주고 받는 게 좋을까’ 생각했죠. 아마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도 계속 고민할 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 시즌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더 이상 여한이 없어요. 동림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어요.

 

동림과 헤어진 후 바로 <후크>의 웬디를 만나게 됐네요. 배우의 삶은 항상 이렇게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죠. 
정 든 인물과 헤어지는 건 아쉽지만, 새로운 인물을 만나는 건 늘 흥미로워요. 특히 <후크>처럼 창작 초연작에서 만나는 인물은 더 그렇죠. 이번처럼 두 인물을 연이어 연기하는 경우에는 이 둘을 제 머릿속에서 정확히 구분한 다음, 각각의 인물의 특징을 잘 살려서 표현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숙제예요. 벌써 8년째 무대에 서고 있지만 한 인물을 파고드는 과정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더라고요.

 

창작 초연작에 출연하는 건 배우에게 큰 도전이라고 많은 이들이 말하더라고요. 주연 씨는 그 도전을 즐기는 편인가요?
창작 초연작은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이 정말 힘들어요. 공연을 선보이기 전에는 작품에 대해 관객분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예측할 수 없으니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큰 작업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어려움이 큰 만큼 공연이 성공적으로 올라갔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제 의견을 제시하고, 그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작품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도 커요. 특히 제가 원 캐스트로 출연할 때는 더더욱 그래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 오롯이 제 것이 되는 거니까요. 창작진이 만들어 준 틀 안에서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죠. 물론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언제나 완벽한 건 아니에요. 실수할 때도 있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아쉬운 점이 보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점도 초연작에 출연하는 것의 매력이에요.

 

<후크>는 소설 『피터팬』을 모티프로 하지만,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작가인 제임스 매튜 배리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이 눈길을 끌더라고요. 주연 씨에게는 <후크>의 어떤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나요?
누구나 삶에 회의를 느끼거나 절망에 빠질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질문하는 작품이라서 마음이 갔어요. 작품 속에서 웬디가 만들어 낸 네버랜드는 도피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삶의 회의를 느꼈을 때 외면하고 도피하는 게 맞는 걸까? 우리는 이 회의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 좋았어요.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음악이 정말 좋아요. 뮤지컬 넘버가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록적인 요소가 강해요. 제가 한 번도 뮤지컬에서 록 음악을 제대로 불러본 적이 없는데, 이 작품을 통해 음악적으로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

 

원작 속 웬디는 그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귀여운 소녀 같은 이미지인데, <후크> 속 웬디는 ‘수많은 거짓말로 인해 자신의 진짜 이름도 잊어버린’ 인물로 설명되더라고요. 주연 씨는 웬디라는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였어요?  
극 중 웬디는 실재하는 인물이지만, 저는 웬디가 누구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유혹, 욕망 같은 감정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완성하고, 자신만의 세계인 네버랜드를 지키겠다는 욕심에 피터와 후크를 거짓 세계로 끌어들이는 존재니까요. 사실 웬디는 다가가기 쉽지 않은 인물이에요. 그래서 이 인물에 대해서 성급하게 판단하기보다는 우선 웬디와 피터, 후크 세 사람의 관계를 잘 살펴보려고 노력했어요.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방이 존재해야 하니까, 세 사람의 관계를 파악하면 웬디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지금 당장은 이 이야기 안에서 웬디로서 재미있게 놀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웬디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피터, 후크와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거든요. <후크>는 배우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너무 무거워질 수도, 반대로 너무 가벼워질 수도 있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배우들이 모여 이 대본 안에서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유지해야 작품의 매력을 살리는 동시에 관객분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를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연기 톤을 맞췄어요.

 

섬세하면서 단단한 <라흐 헤스트>의 동림에서 순수함과 섬뜩함을 동시에 지닌 <후크>의 웬디로 변신한 것처럼, 주연 씨는 매번 이전에 연기했던 인물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인물을 연기하는 게 인상적이에요. 보통 어떤 인물에게 매력을 느껴요?
개성이 뚜렷하고, 명확한 이야기를 지녀서 제게 새로운 것을 알려주는 인물이요. 예를 들면 연극 <템플>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천재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 같은 인물이죠. 인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정말 많이 공부했어요. 그 과정에서 배우로서 굉장히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어요. 김주연으로서는 해본 적 없는 생각과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알게 됐거든요. 그렇게 제 시야를 트이게 해주는 인물을 만나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려요. 

 

 

 

 

거짓 세계 속 진실된 삶


<후크> 속 네버랜드는 웬디가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잖아요. 어떻게 보면 배우들도 언제나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후크> 속 이야기가 조금 더 마음에 와닿았을 것 같아요.
웬디에게는 ‘네버랜드의 스토리텔러이자 거짓말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요. 웬디의 입장에서, 저는 그 수식어를 인정할 수 없었어요. 거짓말쟁이는 자신이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마찬가지로, 배우들도 만들어진 세계 속에서 살아가긴 하지만 우리가 보여주는 이 세계가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만큼 무대 위 세상을 진심으로 믿는다는 뜻이에요. 요즘 배우로서 김주연의 고민도 그 부분과 맞닿아 있어요.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진실한 마음으로 무대에 서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죠. 

 

주연 씨의 출연작을 보면 뮤지컬과 연극이 번갈아 있는 게 눈에 띄는데, 두 장르를 꾸준히 오가는 것도 배우로서 진실한 마음으로 무대에 서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가요?
장르 별로 요구하는 능력이 다르잖아요. 뮤지컬에서는 대본과 노래, 춤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연기하는 게 중요하다면, 연극에서는 제 연기와 행동으로 설득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죠. 요구하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제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고민해야 하는 부분도 다르기 마련인데, 저는 여러 고민을 해결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그렇게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언제나 진실한 마음으로 무대에 설 수 있다고 믿어요.

 

성장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에너지가 밑받침 되어줘야 하죠. 하지만 배우는 필연적으로 내면의 에너지를 꺼내서 분출해야 하는 직업이에요. 에너지가 고갈되었다고 느낄 때 충전하는 주연 씨만의 방법이 있나요? 
안그래도 요즘 제 자신이 고갈되지 않도록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잘 채워가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최근에는 취미로 퍼즐을 맞추고 있어요. 1000피스짜리로. (웃음)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추다 보면 아무 생각을 안 하게 되거든요? 그렇게 머릿속을 비우면 자연스럽게 에너지가 충전돼요. 근데 신기한 게, 아무 생각을 안 하는 상태가 이어지다가도 이내 퍼즐을 맞추기 전보다 생각이 더 많아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당장 내 눈 앞에 놓인 걱정이 아니라 마음 안쪽에 있는, 진짜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 하나 둘씩 떠오르는 거죠. 그렇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고민들을 해결하면 그 고민이 떠나간 자리에도 새로운 에너지가 차올라요. 또, 저는 이리저리 엉킨 목걸이 줄을 원래대로 푸는 걸 좋아해요. (웃음) 쉽게 말해서, 무언가에 몰입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연기가 저한테 잘 맞나 봐요. 무대에서는 언제나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니까요.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뭐예요?
저 자신이요. 정확히 말하면 나를 잃지 않는 것. 좋은 나, 이상한 나, 별로인 나… 저에게는 전부 소중해요. 특히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도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요?
사실… 저는 이미 충분히 단단한 사람이에요. (웃음) 안 좋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금세 잊고 내일을 살아가는 편이죠. ‘어쩔 수 없지. 다음에는 좋은 일이 생기겠지.’ 위안하면서요. 그래서 쉽게 흔들리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 있어요. 그럴 때는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요. 어떨 때는 가족처럼 무조건 내 편인 사람들을 만나서 위안을 얻기도 하고요. 저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그때 그때 다른 것 같아요. 최근에 찾아낸 방법은 제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지는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은 하고,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예전에는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때도 있었거든요. 

 

마지막으로, 요즘의 김주연은 무엇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나요?  
지금보다 더 어릴 때, 배우 김주연이 곧 인간 김주연이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학생 때부터 연기를 해왔고, 20대 초반에 대학로에 입성해 쉼 없이 무대에 섰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그럼 배우가 아닌 나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꽤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공연을 하면서 해결됐어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우가 아닌 김주연도 존재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죠. 이제 배우 김주연의 목표는 욕심 없이, 그저 오래오래 무대에 서는 거예요. 하나 더 덧붙이자면 무대 위에서 늘 진심인 배우가 되는 거고요. 관객분들에게 ‘김주연은 정말 진심으로 연기한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더 노력할 거예요. 인간 김주연의 목표는 어떤 모습으로든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내가 정한 행복의 범위 안에서 만족하면서 나의 삶을 온전히 영위하는 것. 그게 제 목표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8호 2023년 9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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