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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Who am I - <레미제라블> 민우혁 [No.229]

글 |최영현 사진 |김현성 2023-10-19 2,347

 

 

단 한 번의 기회가 절실했던 2년 차 뮤지컬배우 민우혁에게 <레미제라블>의 앙졸라가 기적처럼 찾아왔다. 비전공자 출신의 신인 배우에게 <레미제라블>은 독이 든 성배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 기회 앞에서 민우혁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인내뿐이었다. 인내는 지독하게 썼지만 그 열매는 달았다. 민우혁은 <레미제라블>을 시작으로 대극장 뮤지컬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뮤지컬배우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런 그가 8년 만에 돌아오는 <레미제라블>에 다시 참여한다. 이번에는 장발장으로 무대에 서는 민우혁은 또 다른 터닝 포인트를 꿈꾼다.

 

 

“<레미제라블>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에요.”

 

드라마 <닥터 차정숙> 이후 굉장히 바빠졌다고 들었어요. 일상생활도 많이 달라졌죠?
드라마의 인기 덕분에 저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부쩍 늘었어요. 전에는 방송을 하면서도 비교적 자유롭게 다녔어요. 친구들도 만나고, 취미 생활도 하고요. 그런데 <닥터 차정숙>이 방송된 후로는 밖에 나가기 어려워졌어요. 지난 어린이날에 아이들 선물을 사주러 마트에 갔다가 너무 많은 분이 알아봐 주시는 바람에 몇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 적이 있어요. 그 후로는 스케줄이 없을 때는 되도록 집에 있으려고 해요. 개인적인 시간이 줄어서 아쉽지만 그만큼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낼 수 있게 되어서 오히려 좋은 점도 있더라고요.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빠 역할에 충실하게 됐죠.

 

가족들도 많이 좋아하죠?
그럼요. 꾸준히 무대에 서면서 틈틈이 방송 활동을 해왔지만 이렇게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은 건 처음이거든요.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세요. 연세가 많으셔서 그런지 가끔 오래 살기 싫다고 말씀하시는데, 요즘은 오래 살고 보니까 손자가 잘되는 모습도 보고 참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제가 인기를 얻고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좋지만, 가족들이 기뻐해 줄 때 제일 뿌듯하고 좋아요. 

 

방송이든 무대든 꾸준히 성실하게 임했기 때문에 <닥터 차정숙>이라는 기회가 찾아온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 면에서 <레미제라블>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지금의 민우혁을 있게 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사실 그즈음 저는 뮤지컬을 접으려던 참이었어요. 그때까지 제 인생은 실패의 연속처럼 보였어요. 어릴 때부터 하던 운동은 부상으로 그만뒀고, 오래 준비했던 가수 활동도 별다른 성과 없이 정리했어요. 두 번의 실패 후에 뮤지컬배우로 데뷔했지만 하면 할수록 내 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이도 서른이 넘은 데다가 가정을 꾸리고 나니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거든요. 뮤지컬을 계속하려면 오디션을 봐야 하는데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수 없었어요. 오디션에 반드시 합격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아르바이트를 포기하고 오디션을 준비하기엔 부담이 컸죠. 오디션이냐 아르바이트냐를 매번 선택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일을 찾는 동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처음으로 대극장 뮤지컬 오디션에 지원했어요. 

 

중소극장 창작뮤지컬을 중심으로 활동 중이었는데 갑자기 대극장 뮤지컬에 지원서를 낸 이유가 뭐예요? 
그때는 뮤지컬배우 경력도 너무 짧았고 무엇보다 제 발성이 대극장에서 원하는 클래식한 발성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서 대극장 뮤지컬은 아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런 제가 대극장 뮤지컬 오디션에 지원한 건 나름의 승부수였어요. 어쩌면 뮤지컬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찾은 합의점일 수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대극장 뮤지컬 오디션에 합격하면 뮤지컬을 좀 더 해보고 떨어지면 미련 없이 그만둘 생각이었거든요. 일부러 ‘앙상블 가능’ 항목에 표시도 안 했는데 이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객기를 좀 부린 거예요. (웃음) 그런데 서류 심사를 통과하더니 최종 오디션까지 보게 됐어요. 첫 대극장 뮤지컬 오디션에서 최종까지 올랐다는 사실에 고무돼서 앞으로 뮤지컬배우를 계속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와 희망을 품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 운은 거기까지였고 최종 오디션에서 탈락했죠. 

 

 

 

 

하지만 뮤지컬을 그만두는 대신 곧바로 <레미제라블> 오디션에 지원했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오디션에 열심히 임했던 보람이 있었어요. 심사 위원 중 한 분이 <레미제라블> 오디션 소식을 알려주셔서 앙졸라 역할에 지원했어요. 이번이 진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요. (웃음) 그런데 오디션 지정곡이 너무 어려운 거예요. 발성은 둘째 치고 박자도 제대로 맞출 수 없더라고요. 그때 저는 음악을 배워본 적이 없어서 악보 보는 게 익숙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정곡을 받으면 연주자를 섭외해서 겨우겨우 노래를 익혀서 오디션을 봤어요. 주로 전에 작품을 함께했던 음악 감독님께 부탁드렸는데 <레미제라블>은 <총각네 야채가게> 음악 감독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도 노래가 쉽게 해결되지 않더라고요. 자신감이 점점 사라져서 오디션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무슨 핑계를 대고 오디션을 그만둔다고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죠. 그래도 내가 해보겠다고 나선 일이니 끝까지 제대로 해보자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좋은 결과를 얻었잖아요. <레미제라블>은 오디션 기간이 길기로 유명한데 오디션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일화가 있나요?
몇 번을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여러 번 오디션을 봤어요. 혼자 오디션을 보다가 나중에는 마리우스 역의 배우들과 함께 오디션을 봤어요. 4명의 배우가 마리우스 최종 오디션을 볼 때마다 갔어요. 마리우스와 앙졸라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보려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옆에 서있어 보기도 하고, 노래도 같이 불렀어요. 꽤 특이한 오디션 방식이라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합격 통지를 받던 날은 잊을 수 없죠. 진짜 힘들게 오디션을 봤는데 오디션이 끝나고 몇 달 동안 연락이 없더라고요. 당연히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특기를 살려서 체육 선생님이 되려고 준비 중이었어요. 살짝 비가 내리던 날 양재 사거리를 지나다가 전화를 받았어요. 같이 한번 해보자는 거예요. 믿어지지 않았죠. 꿈을 꾸는 건가 싶기도 했고. 그즈음 첫째 아이가 태어났는데 꼭 아이가 아빠한테 배우를 포기하지 말라고 준 선물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합격의 기쁨과 감동은 거기서 끝이었고, 연습을 시작하자마자 말 그대로 ‘멘붕’의 연속이었죠. 

 

신인인 데다가 대극장 뮤지컬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겠죠? 게다가 무려 <레미제라블>이잖아요. 
어마어마한 배우들 사이에서 저만 실수를 연발했어요. 실수가 반복되니까 괜히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서 많이 위축됐죠.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 없잖아요. 오늘 연습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선배님들이 그렇게 연습하다가 본 공연 때 큰일 난다고 걱정하셨어요. 나중에는 선배님 말씀을 잘 들을걸 하고 조금 후회했지만, 그때 저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어렵게 잡은 기회인 만큼 잘 해내고 싶었고 그러려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대구 공연을 개막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성대 결절이 왔어요. 앞으로 공연이 100회나 남았는데! 매일 약을 먹으면서 무대에 올랐어요. 약으로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 날은 주사를 맞았고요. 남은 공연을 무사히 마치려면 안전하게 목을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아서 난생처음 레슨도 받았어요. 그렇게 원 캐스트로 장기 공연을 이어갔죠. 

 

연습도 공연도 쉽지 않았지만, 뮤지컬배우로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굉장히 많이 배우고 성장했죠. 예를 하나 들자면 악보를 전혀 못 보던 제가 악보를 읽을 수 있게 되었어요. 주변에 있는 배우들이 다 선생님이었어요. 선배님들이 연습은 어떻게 하고, 공연 전엔 어떻게 몸을 푸는지를 유심히 보고 똑같이 따라 했어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요. 뮤지컬배우로서 성장을 바라고 그런 건 아니었어요. 당장 <레미제라블>이라는 작품을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도무지 답이 안 나오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배님들 흉내를 낸 거예요. 선배님들처럼 하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그게 결과적으로는 뮤지컬배우로서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우혁 씨는 평소에도 자주 <레미제라블>을 터닝 포인트로 꼽았어요. 그 이유가 배우로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게 되었기 때문이라면서요? 
<레미제라블>은 여러 면에서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만해요. 이 작품 덕분에 뮤지컬배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고, 뮤지컬배우로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을 통해 배우란 무엇인지 재정립하고, 진짜 배우가 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터닝 포인트였다고 생각해요. <레미제라블>이 개막하고 관객분들이 저에게 감사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덕분에 위로받았고, 다시 살아갈 희망을 얻었다고요. 한두 분이 그런 거였다면 감사하다 생각하고 넘겼을 텐데 많은 분이 다양한 경로로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주셨어요. 그전에도 공연을 마친 후 관객분들에게 피드백을 받았지만 <레미제라블>과 같은 반응은 처음이었어요. 자연스럽게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 저는 경제적인 이유로 배우를 시작했고, 인기나 관심을 얻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관객 반응을 보니 그저 그런 마음으로 무대에 서면 안 되겠더라고요. 내가 뱉은 말 한 마디, 내가 부르는 노래 한 소절에 위로와 희망을 얻는다는데, 어떻게 허투루 할 수 있겠어요. 어떤 역할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명감과 책임감 을 갖고 무대에서 서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저의 배우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죠.

 

 

 

 

“이 자리에 오기까지 노력했던 시간과 차곡차곡 쌓아온 실력이 장발장을 통해 증명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5년에 앙졸라 외에 맡고 싶은 역할로 장발장과 자베르를 꼽았던 거 기억해요?
장발장과 자베르를 보면서 감동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둘 다 관객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앙졸라 역할로 관객에게 이만큼의 위로를 전할 수 있는데 만약 장발장과 자베르를 맡는다면 얼마나 큰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신인 배우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포부였던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솔직히 장발장이나 자베르를 맡는다는 건 평생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장발장과 자베르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잖아요. 웬만한 역량으로는 소화할 수 없는 역할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막연한 꿈이라고 여겼죠. 

 

그 막연했던 꿈을 8년 만에 이뤘잖아요. 오디션에 합격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레미제라블>은 제가 너무 사랑하는 작품이라 꼭 다시 하고 싶었어요. 앙졸라로 무대에 서는 동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만큼 저에게 큰 기쁨을 선물해 준 작품이거든요. 이번 오디션에 지원할 때도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무슨 역할이든 좋으니 그냥 이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2015년에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땐 실패만 거듭하던 내게도 기적 같은 일이 생길 수 있구나 싶어서 엄청나게 많이 울었어요. 이번에는 합격했다는 말이 도통 믿기지 않아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내가 장발장이라고?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요. 그러다 얼마 안 가 앙졸라 때 고생하던 기억이 떠올라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했지만요. (웃음)

 

솔직히 우혁 씨가 장발장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의외였어요. 워낙 단정한 이미지라 자베르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말 많이 듣지 않나요?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제가 생각해도 겉모습은 자베르의 이미지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장발장으로 지원했지만 자베르 역할을 주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일어나자마자 양치만 하고 냅다 오디션장으로 갔죠. 심사 위원 중에 2015년 공연을 함께했던 크리스토퍼 키 연출가가 있었는데, 저를 보자마자 “너한테 이런 면이 있었어?”라고 하더라고요. 민우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깬 것 같아서 좀 뿌듯했어요. 

 

장발장에 지원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저 역시 장발장을 보면서 많은 위로와 희망을 얻었던 터라 배우로서 장발장이라는 역할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그리고 평소 저는 인물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편이라 자베르보다는 장발장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장발장은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지만 자베르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거든요. 이런 이유로 오디션은 장발장 역할로 지원했죠. 

 

지금 한창 연습 중일 텐데 연습 첫날 어땠어요? 물론 앙졸라 때처럼 멘붕은 없었겠죠?
하하하. 그럼요. 주요 뮤지컬 넘버는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다 익혀놨고요. 합격 통지를 받은 직후부터 선생님 두 분께 음악 레슨을 받으면서 꾸준히 준비해 왔어요. 벌써 1년 정도 됐네요. 이 작품이 얼마나 무서운 작품인지 한 번 경험해 보니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도 연습 첫날에는 긴장을 떨칠 수 없었어요. 괜히 도망가고 싶기도 하고. 다행히 김문정 음악 감독님께서 잘 준비해 왔다고 칭찬해 주셔서 살짝 마음이 놓였어요. 그리고 전에 <레미제라블>을 할 때 도움만 받았던 제가 이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물론 이제는 어딜 가나 선배지만 <레미제라블>이라서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나이나 경험의 정도에 따라 같은 작품이라도 다르게 보일 때가 있잖아요. 게다가 우혁 씨는 다른 배역으로 <레미제라블>을 만나는 거라 감흥이 남다르죠? 
2015년에 제가 맡았던 앙졸라는 혁명군의 리더였기 때문에 ‘희생’이라는 단어에 꽂혀있었어요. 타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나의 희생은 값지다는데 포커스를 맞추고 연기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를 먹고 장발장 역할을 맡으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면 신의 얼굴을 보리”라는 마지막 대사가 너무 와닿더라고요. 사랑은 굉장히 복합적이잖아요. <레미제라블> 속 다양한 인물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관통하는 단어가 ‘사랑’이더라고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구나, 결국 우리는 사랑해야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장발장은 여러 사건 속에서 감정의 변화는 물론, 중장년에서 노년을 아우르는 세월의 변화까지 보여줘야 하는 인물이에요. 평소 연기 욕심을 자주 드러냈던 만큼 이 작품에서는 원 없이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요?
<레미제라블>은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진 성스루 뮤지컬이잖아요. 모든 것을 노래로 표현하니까 오히려 연기가 제한적이더라고요. 제 욕심대로 연기에만 집중하면 가사가 뭉개지거나 박자를 놓쳐요. 그렇다고 무작정 감정을 걷어내면 음악을 놓치기 쉽죠. 노래와 연기의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장발장은 특히 더 그래요. 예를 들어 앙졸라는 연기든 노래든 열정과 패기로 밀고 나가면 어느 정도 해결됐어요. 하지만 장발장은 섬세하게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더 신경 써야 하죠. 평소 제 스타일보다는 좀 더 차분하게 연기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연습하면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힌 적은 없나요?
그냥 모든 게 다 난관이에요. 하하하.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지만 연습을 시작해 보니 상상 초월인 거예요. 이게 되면 저게 안 되고, 저게 되면 이게 안 되는 상황의 반복이에요. 연기나 노래와 같은 기술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한 장면에 쏟아부어야 하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거든요. 어찌어찌 한 장면을 마무리한대도 그다음 장면도 마찬가지의 에너지가 필요하죠. 1막 마지막 노래인 ‘내일로One Day More’를 부를 때 장발장이 “이 길은 끝이 없는 가시밭”이라고 노래하는데 지금 제 상황이 딱 그래요. (웃음) 그중 가장 어려운 건 습관을 버리는 거예요. 이 작품에서는 지금까지 제가 했던 대로 노래하고 연기하면 안 돼요. 작품에 맞춰서 새로운 민우혁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요? 제가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서 연습해야 해결될 것 같아요. 솔직히 지금은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 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반이에요. 그래도 이 어려움을 이겨내면 배우로서 지금보다 몇 단계 더 성장할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그 확신을 믿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어요. 

 

뮤지컬배우 민우혁이 가진 모든 것을 이번 <레미제라블>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까요?
보여드리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도 이 자리에 오기까지 노력했던 시간과 차곡차곡 쌓아온 실력이 장발장을 통해 증명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니다. 증명해야죠! (웃음) 저도 이번 <레미제라블>을 잘 마무리한 후의 제 모습이 궁금해요. 이것만 잘 해내면 세상에서 무서울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아요. 소화하지 못할 배역이 없을 것 같고요. 이번에도 <레미제라블>이 제 인생에 또 다른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벌써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어요. 10년마다 어떤 큰 변화가 있었는데 앞으로 10년은 어떨 것 같아요?
야구 선수도, 가수도 각각 10년 정도 했으니 10년마다 큰 변화가 있었네요. (웃음) 뮤지컬배우를 가장 오래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10년마다 변하지 않고 쭉 뮤지컬배우로 남길 바라요. 뮤지컬배우는 이름 외에 나를 정의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에요. 야구 선수나 가수를 할 때는 왠지 부끄러워서 “저는 야구 선수입니다, 가수입니다.”라고 말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뮤지컬배우입니다.”라고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그 시작에는 <레미제라블>이 있었어요. ‘뮤지컬배우’ 민우혁을 많은 관객에게 각인시켜 준 작품이니까요.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다시 돌아올 <레미제라블>에도 계속 출연하는 거예요. 어떤 역할이든 상관없어요. <레미제라블> 초연 당시 오리지널 장발장 역을 맡았던 콤 윌킨슨이 나중에 영화에서 미리엘 주교로 등장했잖아요. 저도 그렇게 되면 좋을 것 같아요. <레미제라블>과 같이 늙어가는 거죠. (웃음) 

 

마지막 질문이에요. 민우혁에게 <레미제라블>이란?
8년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뮤지컬배우로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나침반.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8호 2023년 10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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