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카이가 한국 뮤지컬의 저력을 세계에 알린다. 월드투어 콘서트 < KAI INTO THE WORLD >를 통해서다. 카이는 오는 28일 일본 도쿄의 톳판홀을 시작으로 5월 6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 5월 11일 LA 브로드 스테이지, 5월 22일 중국 충칭대외경무대학 콘서트홀, 6월 29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한국 뮤지컬 배우 최초 월드투어’라는 타이틀이 주는 성취감에 취하기 보다는 그저 묵묵하게 자신만의 길을 걷기를 택한 카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국 뮤지컬 배우가 월드투어 콘서트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소감이 어떤가요.
16년 전 뮤지컬 배우 활동을 시작하면서 전 세계를 누비는 뮤지컬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어요. 이번 콘서트가 그 꿈을 이루는 시작점이 된 것 같아 기쁘고 설렙니다. 카이라는 사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행위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 이름을 걸고 리사이틀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지금은 두려움 반, 기대 반의 마음이에요. 피아노 한 대를 놓고 펼치는 공연에 월드투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조금은 거창하게 느껴지긴 하지만(웃음) 지금까지 배우로서 활동하며 느낀 제 생각을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풀어내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카네기홀은 많은 음악가의 꿈의 무대로 꼽히는 곳이잖아요. 그런 무대에 서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음악을 오랫동안 해온 입장에서, 수많은 유명 음악가가 섰던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이 감격스러워요. 카네기홀 공연이 성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진짜 가는 거야?’ 반신반의할 정도로요. (웃음) 하지만 카네기홀에서 공연하면 대단한 거고, 소극장에서 공연하면 대단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음악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어느 무대이든 똑같아요.
앞서 말했듯, 피아노 한 대와 목소리만으로 이번 공연을 이끌어간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피아노와 호흡을 맞추는 공연의 형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 제가 성악을 전공해서 그런지 MR에 맞춰서 노래하는 것보다는 라이브 반주에 맞춰서 노래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거든요. 저는 보통 뮤지컬을 뷔페에 비유해요. 뮤지컬 무대에서는 연기, 노래 뿐만 아니라 조명, 무대, 의상 등 다양한 요소를 즐길 수 있으니까요. 이번 공연은 오래된 식당에서 파는 국밥 한 그릇에 비유하고 싶어요. 굉장히 오랜 시간 끓인, 깊은 맛이 있는 공연이죠. 뮤지컬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예술성을 독창회라는 심플한 구성 안에서 표현하는 것이 이번 콘서트의 근본적인 가치예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뮤지컬 음악을 꺼내놓는 자리죠.
각 나라의 특성에 맞춰 세트 리스트를 다르게 꾸렸다고요. 어떤 무대를 기대해 보면 좋을까요?
우선, 공통적으로는 세계적인 뮤지컬 프로듀서인 카메론 매킨토시의 작품 속 넘버를 선보일 계획이에요. 2000년 초반에 공연된 <불의 검>부터 <프랑켄슈타인>, <벤허> 등 한국 창작 뮤지컬의 넘버로만 꾸린 무대도 있고요. 저의 아이덴티티가 뮤지컬에 있음을 알리는 의미죠. 일본에서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에서 공연된 적 있는 뮤지컬의 넘버를 일본어로 부를 계획이고요, 미국에서는 뮤지컬 역사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의 넘버를 부를 계획이에요. 참고로, 일본 공연과 카네기홀 공연에서는 마이크도 설치하지 않을 예정이에요. 스피커를 거치지 않은 자연의 소리로 공연을 이끌어갈 계획입니다.
이번 콘서트를 통해 꼭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요.
사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훌륭한 음악가란 무엇인가’ 헷갈리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노래를 잘하면 훌륭한 음악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음정, 박자가 조금 흔들려도 자신만의 매력이 특출 나면 훌륭한 음악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 ‘내가 이것만큼은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다만 바람이 있다면, 이번 콘서트를 통해 카이라는 사람이 대한민국 뮤지컬 배우 중 자신만의 독보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 그 지점을 잘 보여드리고 싶어요.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인 가봐요. 특히 요즘의 머릿속을 가장 많이 채우고 있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정말 솔직하게 말씀 드리자면…. 삶과 죽음이요. 사는 건 무엇이고, 죽는 건 무엇인가. (웃음) 머릿속에서 이렇게 답 없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요. 또, ‘예술가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 나의 색깔은 뭐지?’ 이런 질문을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멋들어진 대답이 아닐 수 있겠지만, 저는 시간이 갈수록 흔들리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확실한 게 없다고 느껴요. 이번 콘서트 역시 원대한 목적성을 가지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이 과정에서 더 많은 걸 배워서,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기대할 뿐이죠. 다만 저의 첫 번째 걸음이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제 뒤를 잇는 누군가가 뮤지컬계의 BTS가 되길 바라면서요. (웃음)
카이 씨는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한 후 팝페라 가수로 활동하다가 뮤지컬 무대에 섰잖아요. 성악을 하다가 다른 분야로 도전을 결심했을 때 이런저런 장벽을 마주했을 텐데, 이제는 반대로 뮤지컬을 클래식화 한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의 의미가 깊네요. 카이 씨에게 음악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얼마 전에 우연히 김나영 씨의 브이로그 영상을 봤어요. 두 아들과 함께 여행을 갔는데, 하루는 지인이 아이들을 돌봐주겠다고 해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 장면이 나왔어요. 그런데 김나영 씨가 오랜만의 자유 시간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고 코 끝이 찡해지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저런 게 사랑 아닐까 싶더라고요. 분명한 해방인데 분명한 상실인, 웃음이 나면서도 눈물이 나는. 뭐라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요. 제가 음악, 특히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도 그와 같아요. 환희와 성취에 젖어서 웃음이 나지만, 뒤돌아서면 이내 눈물이 흐를 것 같은, 그런 복잡 미묘한 마음이죠. 한 마디로, 저에게 음악이란 성취의 슬픔과 상실의 기쁨이 공존하는 대상이에요.
이번 콘서트를 시작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뮤지컬 배우 카이의 모습을 기대해 봐도 좋을까요?
이번 콘서트 제목이 < KAI INTO THE WORLD >인데요, 더 넓은 세상으로 달려 나가길 여전히 꿈꾸는, 뮤지컬 배우 카이의 끝나지 않는 도전과 노력을 담아내기 위해 이런 제목을 붙였어요. 전 여태까지 제 마음을 흔드는 쪽을 선택해 왔어요. 그것이 뭐든 간에요. 이번 공연도 그 연장선에 있는 선택이에요. 앞으로도 제 마음을 흔드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이든 도전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