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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⑥]HJ컬쳐 한승원 대표, 함께 꾸는 꿈

글 |이솔희 사진 |HJ컬쳐 2024-06-28 1,291

8년간의 개발 과정을 거쳐 브로드웨이 초연을 앞둔 <어쩌면 해피엔딩>과 웨스트엔드 관객을 만나고 있는 <마리 퀴리>, 해외 시장에서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는 <유앤잇>, 그리고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아시아권 국가 곳곳에서 공연 중인 각종 창작 뮤지컬까지! K-뮤지컬은 탄탄한 대본과 뛰어난 만듦새를 인정 받아 빠른 속도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더뮤지컬이 6, 7월 두 달에 걸쳐 한국 뮤지컬의 해외 시장 진출 현황과 글로벌 뮤지컬 시장의 흐름을 들여다봅니다. 먼저 한국 창작 뮤지컬을 해외 시장에 선보인 제작자, 창작자의 이야기를 들어본 뒤, 최승연 평론가가 세계 시장 속 한국 뮤지컬의 활약을 다시 한번 짚어봅니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부터 <어린왕자> <라흐마니노프>까지, 보편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는 창작 뮤지컬을 통해 꾸준히 아시아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HJ컬쳐. 각자의 이익만 따지기보다는 서로의 성장을 도모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더욱 유의미한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HJ컬쳐 한승원 대표는 ‘원 아시아 마켓’의 구축을 통해 한층 폭넓은 가능성의 발견을 꿈꾼다.

 

HJ컬쳐는 한국 창작 뮤지컬의 해외 진출에 있어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처음 해외 진출을 결심한 순간은 언제인지 궁금하다.

시장의 규모가 작다는 것이 한국 뮤지컬 업계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한국 뮤지컬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해외 진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HJ컬쳐 역시 설립 당시부터 해외 진출을 목표로 했다. HJ컬쳐가 <빈센트 반 고흐> <살리에르>처럼 잘 알려진 예술가의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을 개발한 것 역시 해외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해외 시장에 어떻게 첫발을 내디딜 것인지 고민해 본 결과, 아시아 시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문화적으로도 이질감이 적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워서 관계성을 쌓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HJ컬쳐의 해외 교류는 일본에서 시작해 중국으로 이어졌고, 최근에는 대만 시장에도 진출했다.

 

 

2016년 일본과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공연을 선보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일본 공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당시 일본 제작사 관계자가 한국에 공연을 보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서툰 일본어로 급하게 공연 소개 자료를 번역해서 전달했다. 전문 번역가에게 번역을 맡길 시간도 없어서, 직원과 함께 번역기를 돌려가며 만든 자료였다. 그러니 번역이 얼마나 엉터리였겠나. (웃음) 그런데도 그 관계자가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한 청년이 자기 작품을 열성적으로 홍보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았다더라. 자신이 이 친구의 꿈을 이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그 덕에 <빈센트 반 고흐>를 일본에서 공연할 수 있었다.

 

처음 일본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공연됐을 때는 꿈을 꾸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도 못 했으니까. 해외 시장과 교류하는 것이 낯선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파트너를 만난 덕분에 무사히 공연을 올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다. 그 당시 도움을 준 일본 측 관계자와는 여전히 교류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창작 초연작의 첫 공연을 마친 후 저만의 의식이 있다. 목욕재계를 하는 거다. (웃음) 공연을 올리기까지 쌓인 스트레스를 씻어내린다는 의미와 앞으로의 공연이 무사히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당시 일본 프로덕션에 이 이야기를 하면서 샤워용품 세트를 선물했다. 선물 받는 사람의 이름까지 각인해서 말이다. (웃음) 그런데 얼마 전 해당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우연히 그가 그 바디 용품의 공병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소한 에피소드일 수 있지만 내게는 큰 감동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 일본 공연 이후, 다음 목적지는 중국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뿐만 아니라 <라흐마니노프> <더 픽션> <리틀잭> 등의 작품을 중국에서 선보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라흐마니노프> <어린왕자>를 수출하며 대만 시장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라흐마니노프> 대만 공연은 작년 10월,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오리지널 프로덕션으로 진행됐고, 1,500석 규모의 타이페이 공연예술센터 그랜드 시어터에서 10일 동안 공연을 올렸다. 사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대만은 장기 공연을 하는 문화도 아닌 데다가, 대만 관객들에게 낯선 한국 뮤지컬, 한국 배우들로 대극장 객석을 가득 채울 수 있을까 걱정됐다. 특히 <라흐마니노프>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하고, 두 인물이 주고받는 대화의 뉘앙스에서 느낄 수 있는 웃음 코드가 담긴 작품이기 때문에 번역이 잘되지 않으면 대만 관객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다행히 대만 제작사인 C뮤지컬 측에서 번역을 훌륭하게 해줬고, 작품이 지닌 음악의 힘과 배우들의 호연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대만 뮤지컬계에서는 특히 한국 스태프들의 능력을 높게 샀다. 음향, 무대 세트 등 기술적인 측면의 완성도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 후로도 대만 시장과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꾸준히 교류하고 있다. 두 작품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었고, 그 과정에서 신뢰를 쌓았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빈센트 반 고흐>나 <살리에르>도 대만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 결국 공연업은 사람이 재산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작업을 하며 쌓은 신뢰감이 추후 작업에 높은 확률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라흐마니노프>에 앞서 <어린왕자>가 2022년 대만에서 공연됐다. 그간 다수의 작품을 해외에서 공연했지만, 100% 레플리카 방식으로 공연된 것은 <어린왕자>가 처음이었다. 한국 버전을 그대로 해외 관객에게 선보이며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

2022년 대만에서 레플리카 초연을 마친 후, <어린왕자> 대만 프로덕션 배우들이 작년 3월에 한국에서 특별 공연을 한 적이 있다. 대만에서 레플리카 방식으로 공연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한국 버전과 연출, 동선 등이 일치하긴 했지만, 그래도 공연장 등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공연이 잘 진행될 수 있을까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걱정이 무색하게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잘 진행이 되었고, 오히려 한국 공연과는 또 다른 감동을 전달해 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같은 장면, 같은 대사를 소화하는 데도 한국 프로덕션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이 발견되더라. 작품이 이렇게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도 풍성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다른 나라의 언어로 공연이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감동을 오롯이 느끼는 관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언어로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의 몸짓과 표정, 조명과 무대 세트 등 비언어적인 요소로도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공연의 매력임을 다시금 깨우쳤다. 진정성만 있다면, 언어가 달라도 충분히 교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지 않나. 시장별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선 중국은 무서울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주 관람층은 10대~20대 초반이고, 한 건물에 소규모 공연장을 수십 개씩 짓는, 우리나라와는 독특한 형태로 성장 중이다. 시장 규모가 크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아직 발전 중인 시장이기에 숙련된 인재를 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 발전할지 기대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만큼 마니아층이 탄탄하다. 동시에 한국 문화에 대한 수요가 큰 시장이다. 그동안 한국 뮤지컬이 일본 시장에서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들 역시 한국 뮤지컬의 우수성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과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맺으려는 추세다. 앞으로 한국 시장과의 교류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대만은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한 시장이다. 아직 공연을 자체적으로 제작할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레플리카 공연에 긍정적이고, 한국 뮤지컬에도 우호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만은 싱가포르나 호주 등 또 다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지가 되어줄 것이라고 본다. 확장성 측면에서 유의미한 시장이다.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교류해 왔으니, 자연스럽게 영미권 시장 진출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다. 어떤 계획이 있나.

공연업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무조건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웃음) 이제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났다. 국내 시장과 아시아 시장을 기반으로 콘텐츠 제작사로서 HJ컬쳐의 기초 체력을 조금 더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사실 국내에도 서울 외의 지역은 공연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곳이 더 많지 않나. 국내 시장을 활성화하고, 아시아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공연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K-컬처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뮤지컬의 성공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고 있나.

우선, 해외 시장과 소통하면서 한국 뮤지컬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커졌다는 사실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다만 성공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해외 시장에 진출해 봐야 안다. 안 해보면 모른다. 도전해서 성공적인 결과물을 얻으면 좋겠지만, 만약 실패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나의 실패를 발판 삼아 내 동료, 후배들이 내가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다면, 그게 곧 시장의 발전에 도움을 준다. 시장이 성장하면 그게 또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결국 어떤 도전을 해서 실패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마이너스일지언정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플러스가 되는 거다.

 

사실 뮤지컬은 가능성을 보고 뛰는 것이 아닌 꿈을 보고 뛰는 작업이다. 꿈은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함께 뛰어주고,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더욱 멀리 달려갈 수 있다. 뮤지컬 업계를 미리 다져놓은 선배들, 지금 함께 일하는 동료들, 뮤지컬을 꿈꾸는 후배들 모두가 서로의 곁을 지키며 같은 꿈을 향해 달린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나도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해서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

 

해외 시장과의 교류를 통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문화 교류’다. 단순히 공연만 주고받는 것보다는 공연과 관련된 강연, 전시 등을 연계 기획함으로써 각 나라가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한국 뮤지컬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 자체의 힘을 기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외교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원 아시아 마켓’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약 10년 정도 해외 시장과 교류하면서, 각자의 이익만 계산하기보다는 서로서로 도우며 함께 성장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의 필요성을 느꼈다. 여러 국가가 협업하여 하나의 뮤지컬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아시아 뮤지컬 시장의 힘을 길러야 한다. 그렇게 아시아 시장의 가능성을 끌어올리고, 업계 시스템을 잘 구축해 놓으면 영미권 시장에서 먼저 우리의 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여서, 아시아 뮤지컬 시장에서 각 국가와 가장 활발히 교류하는 것은 우리나라다. 일본, 중국, 대만 시장을 연결하는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원 아시아 마켓의 키맨이 된다면, 영미권 시장과의 협상력도 가져갈 수 있다고 본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목표는 아니다. 오랜 시간 교류하고, 각 시장이 성장해야 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 방향성을 가지고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원 아시아 마켓이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과정에 HJ컬쳐가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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