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연출노트] <비밀의 화원> 향기로운 화원으로의 초대

글 |이기쁨(연출가) 사진 |국립정동극장 2024-08-12 959

 

뮤지컬 <비밀의 화원>은 1950년대 영국의 보육원을 배경으로, 퇴소를 앞둔 4명의 아이들이 소설 『비밀의 화원』 연극 놀이를 펼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4명의 인물이 ‘극중극’을 통해 책 속의 캐릭터를 만나는 액자식 구성으로, 차마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속마음을 연극 놀이를 통해 표현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네 인물의 모습을 그린다.

 

<비밀의 화원>의 가장 큰 매력은 ‘4D 뮤지컬’이라는 점이다. 꽃향기와 흙, 이끼 등을 떠올리게 하는 <비밀의 화원>만의 향이 공연 중 퍼져 관객들이 작품을 오감으로 기억할 수 있게 돕는다. 이번 시즌 <비밀의 화원>을 이끄는 이기쁨 연출가의 연출 노트를 함께 펼쳐 보자.

 

 

 

“자라라 잘 자라라

마음을 담아 노래 부르면

잠에서 깨어

화원 가득 꽃이 필 거야”

(‘미니어넷’ 中)

 

아낌없는 사랑이 이뤄내는 기적 같은 생

 우리 어머니께서는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것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좁디좁은 집에 크고 작은 화분이 60개가 넘었죠. 제 눈에는 그저 똑같은 풀과 꽃처럼 보였지만 그마다 각자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키우는 방법도 달랐죠. 어떤 것은 물을 많이 주면 안 되고 어떤 것은 직사광선을 쬐면 안 되고 또 어떤 것은 추운 곳에 있어도 잘 자라지만 어떤 것은 금세 잎사귀들의 색이 바래 죽어버리고.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기억하시나 싶었지만 어머니께서는 단 한 그루, 한 송이도 놓치지 않고 무럭무럭 잘도 키워냈습니다.

 

그러다 작은 마당이 딸린 집에서 살게 되었을 때는 어머니의 정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마당에 심은 해바라기는 제 키의 두 배가 되도록 자라났고 현관문을 열어 들어가려면 주렁주렁 내려온 덩굴을 헤쳐야만 했습니다. 이게 사람 사는 집인지 식물원인지도 모를 만큼이었죠. 시간이 지나 우리 가족은 이사를 하게 되었고, 함께 옮기지 못하는 작은 마당이 아쉬우셨던 어머니는 그 집을 떠나며 많이도 뒤를 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르고 그 마당이 있던 집 앞을 우연히 지나게 되었습니다. 장미가 한창일 때라 마당 울타리 너머로 붉은 꽃잎들이 보이길 내심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마주한 건 말라비틀어진 덩굴들과 제멋대로 자라나 볼품없어진 나무들이었습니다. 그때 느꼈죠. 누군가의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죽음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는 것. 계속 살아지게 하기 위해선 아낌없는 사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비밀의 화원>에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낌없는 사랑이 이뤄내는 기적 같은 생. 누군가를 살게 하는 힘은 우리 모두의 관심과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것. 이것이 <비밀의 화원> 대본을 읽고 처음 했던 생각입니다.

 

 

“나를 지킬 우리 모험 다시 필요해진다면

책을 펼쳐 어렵지 않아

우리 그 안에서 다시 만나자”

(‘책을 펼쳐 Rep.’ 中)

 

어린 시절의 그 소꿉놀이

<비밀의 화원>은 소설 원작을 토대로 각색된 작품입니다. 19세기 영국의 보육원에서 지내는 4명의 아이들이 소설 『비밀의 화원』을 가지고 자기들만의 비밀 연극을 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죠. 액자식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실의 아이들(에이미, 찰리, 데보라, 비글)과 소설 속 아이들(메리, 콜린, 마사, 디콘)은 인물 간의 관계성부터 개별의 성격까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만드는 비밀 연극’이라는 설정을 보다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떠오른 생각이 ‘소꿉놀이’였습니다. 어린 시절에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소꿉놀이를 하곤 했는데, 주된 테마는 요리였습니다. 음식들의 주재료는 흙이었고요. 나무 잎사귀를 뜯어 돌로 곱게 짓이긴 후에 흙과 함께 버무려 한 손 크기만큼 꼭 쥐어 내면 주먹밥이 되었죠. 그 주먹밥을 넓적한 돌 위에 올려 놀러 온 친구에게 식사 대접을 하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그 소꿉놀이처럼 무대 위의 놀이방에 늘어져 있는 많은 물건들은 무엇이든 언제든 비밀 연극의 재료가 됩니다. 짧은 나무토막은 울새가 되고 긴 나무토막은 피리가 되죠. 의자는 한 칸의 방, 책상을 붙이면 침대가 되고요. 나무를 그리면 그곳이 바로 나무가 자라는 정원이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밀 연극은 현실과 소설을 넘나드는, 그리고 관객분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되었습니다.

 

 

 

항기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환상

현실과 소설을 연결하는 고리를 만들었으니 이제는 가장 강력한 환상이 필요해졌습니다. 현실감이 넘치는 놀이방이 가장 완벽한 화원으로 탈바꿈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비밀의 화원에 찾아간 순간, 무대 끝까지 세워져 있던 답답한 벽을 하늘 높이 날려버리기로 합니다. 눈앞에 시원하게 보여지는 꽃과 나무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정말로 생명력이 느껴지는 진짜 꽃과 나무, 그리고 그것들이 자랄 수 있는 흙과 물이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강력한 환상은 가장 또렷한 진실일 때가 있으니까요. 인간의 머리로 상상하는 것을 넘어 진실 그 자체가 주는 감동이 있으니까.

 

그래서 떠오른 것이 ‘향’이었습니다. 선명히 보이는 꽃과 나무, 귀에 들려오는 새 소리와 음악, 그리고 코를 자극하는 흙냄새와 꽃향기. 이것으로 가장 강력한 환상을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향이 필요할까? 그저 달달하기만한 꽃 내음은 아니었으면 했습니다. 화려한 향기보다는 물기가 어린 흙과 잎사귀를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비릿함까지 품고 있는 향이길 원했습니다. 너무 많은 향을 맡아 분간을 못 할 정도까지 시향을 하여 골라낸 <비밀의 화원>만의 향기가 극장을 채울 때, 비로소 제 눈앞에 가장 강력한 환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남은 건 이 향기가 관객분들의 마음에도 닿는 것뿐. 그날을 기다리며 이만 총총.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