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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유연성과 친절함은 나의 버팀목"…브로드웨이에서 활약 중인 황주민∙이해찬 인터뷰

글 |최승연(뮤지컬 평론가) 사진 |필자 제공 2024-08-28 1,908
 
최승연 평론가가 지난 8월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을 보이고 있는 한국인 배우 황주민, 이해찬을 미국 현지에서 만났다. 황주민은 현재 뮤지컬 <앤줄리엣(&Juliet)>에서 프랑소와 역으로, 이해찬은 뮤지컬 <하데스타운>에서 일꾼 및 오르페우스 언더스터디로 활약 중이다. 두 사람은 브로드웨이에서 스스로를 증명하며 경험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 분을 같이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갑다. 황주민 배우는 2018년 뮤지컬 <더 프롬(The Prom)>에 유일한 한국인 배우로 출연한 이후 브로드웨이에서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근황이 어떤가. 
황주민 <더 프롬> 이후 많은 게 달라졌다. 지난 2023년 4월부터 뮤지컬 <앤줄리엣(&Juliet)>에서 프랑소와 역으로 출연 중이다. 한국인 배우가 동양인 캐릭터가 아닌 배역으로 무대에 오른 최초의 사례다. 배역을 맡으며 나의 부족함을 느껴 좌절하기도 했지만 역시 배우는 점이 많다. 이제는 앙상블을 넘어 배역을 맡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또, 영화, TV 쪽으로도 영역을 확장하려 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는 유나이티드 탤런트 에이전시(UTA, United Talent Agency)와 함께하고 있다. 
 
UTA에 들어갔다니 정말 축하한다. 계약을 맺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황주민 정말 운이 좋게도, 나와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에이전트가 UTA로 가며 나도 함께하게 됐다. 그 에이전트는 내가 영어를 아예 못 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약 8년 동안 나를 지켜봐 준 분이다. 
 
 
미국에서의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황주민 2013년에 도미한 이후 위스콘신주립대에서 2년 동안 성악을 공부하고, 2015년부터 뉴욕에서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부터 오프-브로드웨이 < KPOP >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2016년부터 마블 TV 시리즈 <아이언 피스트(Iron Fist)> 시즌2를 비롯해 여러 영화,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다니엘 헤니와 함께 오디오북 <코리아부(Koreaboo)>를 만들었다. 사실 이런 활동들은 이전 경력에서 이어진 것이다. 미국에 온 초기에 아티스트 비자를 받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여러 오디션을 봤다. 단편 영화도 찍었고. 그래서 지금 여러 영역으로 활동을 확장하는 데 겁이 없는 것 같다. 여담이지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엘리베이터 안내 멘트 중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바로 나다. (웃음) 
 
이해찬 배우는 영어 이름 Timothy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에서 어떻게 뮤지컬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나. 
이해찬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어머니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하시게 되어 함께 미국에 왔다. 그 후 어머니는 공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웨스트 LA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때 나는 매우 ‘미국적인 한국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 했던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외톨이였다. 그런데 유일하게 따돌림을 당하지 않았던 곳이 극단이었다. 극단에 모인 우리는 모두 환영받지 못하던 존재들이었다. 사실 나는 뮤지컬을 잘하고 좋아해서 시작했다기보다는 극단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껴서 시작한 것이다. 고등학생 때 극단에 들어갔지만 뮤지컬을 실제로 시작한 것은 대학교에서 뮤지컬을 전공하면서부터다. 아버지가 뮤지컬 전공하는 것을 반대하셨지만, 내게 뮤지컬과 극장은 '안전함'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존재였다. 내가 아시아인들의 인권에 민감한 것도 그때의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안전함’이 뮤지컬을 하게 된 원동력이라니. 의외지만 정말 중요한 이슈를 담고 있다. 이후에 어떻게 뉴욕까지 가게 되었나. 
이해찬 처음에는 칼스테이트 플러튼에 입학했다. 이 학교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을 떨어트리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뮤지컬과 1학년 동기가 140명이었는데 3학년에 들어갈 때는 12명뿐이었다. 그때 ‘뮤지컬 시장은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열심히 연습해서 용케 살아남았지만, 당시 아시안으로서 할 수 있는 작품은 <킹 앤 아이> <미스 사이공>이 거의 전부였다. 그래서 교수님들이 지금 당장 주인공이 되기는 어려울 테니, 연습을 열심히 해서 먼저 앙상블 배우로 활동을 시작해 살아남으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대학 졸업 이후, 당시 공연계에는 다양성 이슈가 부각되고 있었다. 꼭 말하고 싶은 건, 내가 생각하기에 미국에서 인종에 대한 다양성은 ‘존중’의 개념보다는 아직 ‘구색 맞추기’의 개념에 가깝다는 것이다. 극히 제한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시안들끼리의 경쟁이 극심했고, 설상가상으로 나는 성대결절까지 와서 너무 힘들었다. 그러던 와중 코로나19가 터졌고, 모든 것이 리셋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춘 2년 동안 보컬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고, NYU 대학원 ‘보컬 퍼포먼스’ 전공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 < KPOP > 오디션을 보고 작품에 합류했다. 동시에 학생들 대상으로 뮤지컬 보컬 수업을 하게 되어 현재 연기와 레슨을 병행하고 있다.
 
 
 
 
두 사람은 어떻게 연을 맺었나.
황주민 2022년 < KPOP > 브로드웨이 공연 때 만났다.
이해찬 공연을 함께한 건 그때가 맞는데, 그 전에 내가 형한테 인스타그램 DM을 보내 처음 만났었다. 코로나 때 형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한인 배우를 대상으로, 자신에게 궁금한 게 있다면 연락하라는 게시물을 올린 적이 있다. 나는 그때 뉴욕에 살지도 않았는데 DM으로 날 소개한 뒤 형을 만나서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형이 어떻게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처음 만났고 < KPOP >을 통해 많이 친해졌다. < KPOP >에는 한국인 배우들이 많았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한인 배우는 얼마나 되나.
황주민 현재 미국 내 한국인 배우의 수는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 KPOP > 공연을 함께했던 한국인 배우들도 찾아볼 수 없다. 
이해찬 작년에 <하데스타운> 투어 공연을 하고 오니 남아 있는 한국인 배우가 형밖에 없더라.
황주민 대부분 공연을 이어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전부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거다. 아마 오디션에 합격하면 많은 배우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버티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황주민 한 작품에 참여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건 더 어렵다. 사실 작품에 들어간다 해도 공연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해찬 배우가 정말 잘 해주고 있다.
이해찬 한인 배우들은 서로 의지하며 버티고 있다. 뮤지컬은 배우의 헌신과 직업 윤리가 꼭 필요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뮤지컬 배우는 혼자 주 8회 공연을 해야 하지 않나. 정말 무대에 헌신해야 하는 직업이다. 겸손함 역시 필수다. 브로드웨이에서는 ‘넌 언제나 대체될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을 자주 한다. 브로드웨이 공연을 해도 그 타이틀을 얻었을 뿐이지, 그 다음은 또 다른 문제다. 
황주민 스스로 버틸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나는 강인함보다는 유연성이 나를 버티게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말을 들을 줄 알고, 귀가 열려 있어야 버틸 수 있다. 사실 사람들이 처음 나를 볼 때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여러 가지 신기한 활동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점을 보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해찬 현재 주민이형 평판이 브로드웨이에서 정말 좋다. 형이 처음 활동하던 때는 상황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그래서 형에게 정말 감사하다. 나는 친절함과 인내를 버팀목으로 삼고 있다. 매일 함께 공연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현재 브로드웨이는 다양성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인 배우로서 이 상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황주민 미국에 오기 전에는 동성애자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데, 브로드웨이의 남자 배우 중에는 동성애자가 많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함께 생활하다 보니 이젠 어색함이 없어지고 다들 편해졌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살 수 있게,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젠더 문제는 인종 문제와 같다고 생각한다. 리허설룸에 들어가면 너무나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을 만난다. 다양한 젠더의 사람들은 그들만의 문화가 있고, 각국의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문화를 가지고 모인다. 나는 이렇게 문화적으로 열려 있는 상태를 옹호한다. 이것이 미래의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해찬 나는 인종과 젠더 문제를 엮는 것이 조금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젠더 다양성을 존중하지만, 젠더에는 새로운 정체성이 생기는데 인종은 그렇지 않지 않나. 그래서 무엇보다 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포기할 때 문제가 생긴다. 가치관이 다를지라도 다양성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젠더, 인종 관련된 이슈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질투하고 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균형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여담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형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계속 한인 배우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다. 한정된 자리를 놓고 경쟁하다 보니 서로 오디션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주민 형은 완전히 반대다. 많은 정보를 모두에게 공유한다. 모두가 이렇게 선한 영향력을 어떻게 미칠 수 있는지에 집중해서 서로 조화를 이루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해찬 배우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고 들었다. 근황을 알려달라.
이해찬 이번에 ‘안정적인’ 오픈런 공연에 처음 들어갔다. 아시안 최초로 투어 공연이 아닌 브로드웨이 <하데스타운> 공연에서 오르페우스의 언더스터디가 되었다. < KPOP > 공연도 짧게 끝났고, 지난해 <하데스타운> 전미 투어팀 스윙과 오르페우스 언더스터디도, 막 끝낸 레이첼 차브킨의 <개츠비> 스윙도 끝이 정해져 있는 공연에 들어간 거였다. 이번 캐스팅 관련해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사실 <하데스타운> 브로드웨이 팀은 근 3년 동안 오디션을 진행하지 않았다. 보통 투어팀에서 배우를 캐스팅해 가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나는 전미 투어 공연이 끝난 후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웃음) 그런데 갑자기 <하데스타운> 브로드웨이 팀에서 오디션을 본다고 공고가 뜬 거다.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 소속사에서 오디션을 보라고 설득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디션 파이널 콜백 기간에 브로드웨이 팀에서 오디션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 <개츠비> 공연을 하던 보스턴에서 뉴욕까지 새벽 비행기를 타고 가서 오디션을 봤다. 그 파이널 오디션 자리에는 브로드웨이에서 이미 공연했던 배우, 투어팀에서 공연했던 배우 등 20명이 와 있었다. 오디션 후 일꾼 역할 겸 오르페우스 퍼스트 언더스터디에 합격했고, 공연이 지속되는 한 계속 참여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완료했다. <하데스타운>은 월터 커 극장(Walter Kerr Theatre)에서 5년간 공연되고 있다. 8월 27일부터 무대에 선다. 
 
인터뷰가 끝난 후 각자 <앤줄리엣>과 <하데스타운> 팀으로 복귀하는 뒷모습을 보며 그들의 꿈과 비전을 응원했다. 이 외에도 황주민 배우는 최근 뮤지컬 <테이크 더 리드(Take The Lead)> 워크숍을 마쳤으며 이해찬 배우는 뉴욕대 출신 문수진 연출가의 뮤지컬 <네버랜드 네버 엔즈(Neverland Never Ends)>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올해 11월 뉴욕 씨어터 페스티벌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앞으로 오랫동안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배우들로 계속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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