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키부츠>는 폐업을 눈앞에 둔 수제화 공장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찰리가 아름답고 유쾌한 드랙퀸 롤라를 만나 성장하는 이야기다. 2014년 초연되어 올해로 10주년을 맞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 속에 공연 중이다. 10년 동안 여섯 시즌 공연되며 수많은 배우가 거쳐 간 이 작품에서 변함없이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고창석, 심재현이다. 두 사람은 불같은 성격을 지녔지만 롤라를 만난 뒤 변화하는 구두 공장 직원 돈 역을 맡아 무대에 서고 있다.(같은 역할에 배우 전재현도 함께한다.) 다소 낯설게 느껴졌던 작품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랑받는 인기작이 되기까지, <킹키부츠>의 성장 여정을 함께 밟아온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킹키부츠>가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10년간 <킹키부츠>와 함께한 소감이 어떤가요.
심재현 솔직히 이번 시즌 연습을 할 때까지만 해도 ‘10주년이라고 뭐 특별한 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첫 공연이 올라가고, 관객분의 함성을 듣는 순간 알게 됐죠. 정말 특별하다는걸요. 관객분들이 <킹키부츠>라는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고창석 저는 먼저 잘 버텨온 저 스스로에게 대견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사실 세 번째 시즌을 하기 전부터 ‘내가 돈 역할을 계속하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을 가졌거든요. 세 번째 시즌부터 오디션 제안이 와도 안 한다고 몇 번을 거절했는데, 주변에서 계속 설득해 주시고, 저 스스로도 이 작품이 너무 좋아서 그 설득에 넘어갔었어요. 이번 시즌은 정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출연하고 있어요. (웃음) <킹키부츠>는 공연을 하는 사람에게도, 공연을 보시는 분들에게도 많은 힘이 되는 공연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이번 시즌에는 관객분들의 함성을 듣다 보니 코로나 시기를 잘 견딘 저희들에게 관객분들이 선물을 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매일 감격스러워요.
심재현 창석 형님이 <킹키부츠> 팀의 기둥이에요. 동료로서, 선배로서, 인간으로서 너무나 든든한 버팀목이라 그 버팀목이 사라진다면 저희 팀이 흔들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희가 형님을 매 시즌 꼬셨죠. 딱 이번 시즌만 같이 하자고. (웃음)
2014년 초연 당시 <킹키부츠>를 처음 만났을 때, 대본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두 분에게 작품의 첫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고창석 전체적인 내용도 좋았지만 특히 롤라와 아버지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부모님과 자식 간의 관계가 사실 다들 그렇잖아요. 애증이 있죠. 소재나 형식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이지만, 그런 정서는 우리나라 관객과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담이지만, <킹키부츠>는 기존에 참여했던 배우들도 매 시즌 오디션을 보거든요? 그런데 저희 둘이 초, 재연에서 돈을 연기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세 번째 시즌 오디션부터는 전국의 '털 많고 덩치 있는' 배우들은 전부 오더라고요. (웃음)
심재현 지금이야 익숙하지만, 그때만 해도 드랙퀸이라는 설정이 낯설었거든요. 배우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죠. 10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킹키부츠>라는 작품도 더 많이 알려졌고, 사회의 인식도 많이 변화했으니까요. 그런 흐름이 <킹키부츠>의 결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롤라를 낯설어하던 찰리와 공장 직원들이, 그를 이해하게 되고, 함께하게 되는 과정이 현실에서도 진행된 거죠. 그렇게 관객과 함께 성장한 작품이라서 이번 시즌에 더 잘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킹키부츠>와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고창석 워낙 행복한 기억이 많아서 이번 시즌을 떠올려 보자면, 롤라 역의 박은태 배우가 2020년 네 번째 시즌에 출연했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박수만 칠 수 있었던 시기라, 은태는 관객의 함성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킹키부츠> 공연을 끝냈었죠. 그런데 이번 시즌에 롤라 역으로 다시 돌아왔잖아요. 그 베테랑 배우가 첫 공연 날 그렇게 떨더라고요. 저는 그날 객석에서 보고 있었는데, 롤라가 등장하는 순간 들리는 엄청난 환호성 때문에 제가 다 울컥하는 거예요. 나중에 들어보니 은태도 울컥했다고 하더라고요. 공연 끝나고 제가 딱 한 마디 했어요. "은태야, 이게 <킹키부츠>야."(웃음)
심재현 저도 그날 남다른 에너지를 느꼈어요. 코로나 시기에 <킹키부츠>를 했던 친구들이 이번 시즌 환호성을 듣고 너무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덩달아 기뻐지더라고요. 그 친구들의 행복한 마음이 전해져서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었어요.
사실 <킹키부츠>는 제게 선물 같은 작품이에요. 처음 말하는 거지만, 사실 2013년 <벽을 뚫는 남자> 이후로 배우 활동을 그만두려고 했었거든요. '이렇게 계속하는 게 맞나' 싶어서요. 그런데 그 후 <킹키부츠>를 만났고, 여기까지 왔어요. 사실 그때는 <킹키부츠>가 선물인지도 모르고 받았죠. 그런데 돌아보니 엄청난 선물이었더라고요.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을 다시 알게 해준, 정말 소중한 작품이에요.
이제는 자면서도 대사를 읊을 수 있을 정도로 ’돈‘이라는 캐릭터가 익숙할 텐데, 그럼에도 이번 시즌 돈을 잘 표현하기 위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고창석 군더더기를 찾아내서 줄이기 위해 노력했어요. 10년 동안 좋은 부분이 많이 쌓인 만큼, 그 주변으로 불필요한 호흡이나 애드리브도 쌓였을 테니까요. <킹키부츠>에서 돈은 롤라와 호흡을 주고받는 게 중요하니까, 최대한 대본에 집중해서 그런 부분을 잘 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심재현 이전에는 당연히 롤라, 찰리에게 포커스가 갔다면, 여러 시즌을 거치고 공연을 여러 번 봐주시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로렌, 돈, 엔젤, 공장 사람들 등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에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더라고요. 돈이 눈에 띄는 인물은 아니지만 브리지 역할을 잘 해줘야 해서 생각보다 연기하기에 까다로운 캐릭터예요.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역할이죠. 그래서 돈은 다른 캐릭터의 액션을 보고, 리액션을 해주는 게 중요해요. 10년째 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배우들의 호흡은 매일 다르기 때문에 늘 새롭게 다가가야 하죠.
10년 동안 같은 역할을 맡아왔지만, 사실 공연 기간에는 만날 기회가 드물다는 것이 더블 캐스팅의 숙명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심재현 건강 잘 챙기셔서, 저랑 계속 <킹키부츠> 해요 형님. (웃음) 사실 워낙 막역한 사이라,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아요. 늘 건강하시라고, 그래서 저랑 같이 술 마셔달라고. 그런 말만 하죠. (웃음) 아마 저는 형님이랑 공연을 가장 많이 함께한 사이일 거예요. <킹키부츠> 이전에 <벽을 뚫는 남자>가 있었고, 그 이후에는 <드림하이>와 <컴 프롬 어웨이>를 함께했죠. 오랜 시간 형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아요.
고창석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서, 재현이는 인간으로서 같이 고민을 나누고, 응원도 나누는 동생이에요. 재현이가 저보고 <킹키부츠> 계속하자고 늘 말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제는 제가 없어도 재현이가 <킹키부츠> 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거라서 걱정이 없어요. 제가 많이도 말고 딱 20주년까지만 하라고 했어요. <킹키부츠> 한국 공연 역사에서 ‘최장기 돈’이 되라고요. 제가 ‘최고령 돈’일 테니까. (웃음)
마지막으로, 지난 10년간 <킹키부츠>와 두 사람의 돈을 사랑해 준 관객에게 한 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어요?
심재현 관객분들은 늘 선물 같은 존재이지만, 올해는 유독 더 그래요. 관객분들이 주시는 에너지를 잘 받아서 저도 선물 같은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킹키부츠>가 전달한 긍정적인 기운을 또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창석 고맙고, 사랑합니다. (웃음) 관객분들 덕분에 <킹키부츠>가 열 살이 되었으니, 저희는 스무 살, 서른 살까지 부모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공연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잘 키워주세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