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의 작품을 통해 꾸준히 안방 극장에서 시청자를 만나 온 배우 안은진이 7년 만에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국립극단의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를 통해서다. <사일런트 스카이>는 천재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의 이야기다. 19세기 초 미국, 투표권조차 허용되지 않은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앞길을 개척해 나간 과정을 그려낸다.
헨리에타 레빗은 우리에겐 다소 낯선 천문학자이지만,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허블의 법칙'의 토대가 된 '레빗 법칙'을 발견한 인물이다. 이에 우주 팽창 발견에 초석을 다진 천재 천문학자로서 사후에 업적을 인정받았다. 안은진이 이렇게 끝없이 우주를 탐구한 인물이자 삶과 일에 열정 가득했던 헨리에타 레빗을 연기한다. 안은진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을 계속하면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참에 출연 제안을 해주셨다. 모두 굉장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연습했다. 매일 관객분들을 만난다는 설렘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 "오랜만에 무대에 설 생각을 하니까 정말 많이 떨렸다. '무대에서 소리를 어떻게 냈지?', '몸을 어떻게 썼었지?'라는 고민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첫 번째 리딩을 하기 전부터 배우 친구들과 함께 대본 연습을 했었다. (웃음) 첫 공연하기 전까지도 많이 떨렸지만 무대를 하고 나니 '이게 무대의 맛이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은진은 <사일런트 스카이>를 “한 사람의 일대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성이건 남성이건 한 인간으로서 모두 충분히 공감하고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극장에 와주시는 모든 분들이 위로받고 가실 수 있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헨리에타 레빗의 동생이자 작곡가의 꿈을 꾸는 마거릿 레빗 역은 홍서영이, 하버드대학 천문대의 광도 측정가 윌러미나 플레밍 역은 박지아가, 항성 분류법의 기준을 마련한 애니 캐넌 역은 2024 국립극단 시즌 단원 조승연이, 하버드대학 천문대장의 제자 피터 쇼 역은 정환이 맡는다.
홍서영은 ”배우들은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출연했던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니 결국 내가 출연했던 작품이 내 삶이 주는 메시지를 표현하고, 내 삶의 발자취가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어떤 작품을 선택할 때 ‘이 작품 이후에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한 의미에서 <사일런트 스카이>가 내게 꼭 필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을 하고 난 후의 내가 너무 기대됐다“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이야기했다.
조승연은 "이곳에서 공연을 하는 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나 자신을 대신할 수 없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고,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일런트 스카이>가 어떤 큰 행동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작지만 단단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지아는 "연습 과정에서 작품 공부만 해도 시간이 모자란데 개인적인 일들로도 바빴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윌러미나 역시 없는 시간을 틈틈이 쪼개가면서 많은 업적을 이뤄낸 여성 아닌가. 그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굳건히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윌러미나 여사님이 저를 많이 도와줬다고 생각한다"고 캐릭터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정환이 연기하는 피터 쇼는 실존 인물이 아닌, 대본 속에서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는 “헨리에타가 겪어야 하는 상황들을 보여주는 인물”이라며 “여러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디테일을 어떻게 살려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무대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인물로서 잘 보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연출 겸 윤색을 맡은 김민정 연출가는 “처음 대본을 봤을 때 문장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명확하다고 생각했고, 그 문장을 말로 잘 구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습 과정에서도 언어로 의미를 잘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며 “윤색자로서는 아름다운 문장들을 접할 수 있어 기뻤고, 연출가로서는 인간과 우주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일이 감격스러웠다”고 작품에 임하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 "속도는 더디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이야기들이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여성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지워졌던 인물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도 앞으로 더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역사 속에서 주목받지 못한 인물을 다룬 작품을 선보이는 것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는 오는 12월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