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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칼럼]2024년 뮤지컬 총결산②

글 |최승연(뮤지컬 평론가) 사진 |. 2024-12-30 3,621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가 매월 주목할 만한 뮤지컬계 이슈를 심도 있게 들여다봅니다.


 

2024년 한국 뮤지컬은 다른 어느 해보다도 좋은 작품을 많이 배출했다. 특히 완성도가 높고 뮤지컬 현장의 이슈를 끌고 갈 수 있는 창작 초연작들이 다수 빛을 보면서 시장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기성 작품들 역시 적극적인 리뉴얼로 완성도가 높아지거나, 코로나 이후 관객과 직접 만나며 초연보다 좋은 흥행 실적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작품성의 측면에서 시장 성숙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반면, 시장 전체의 흐름과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인력 부족 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노출된 한 해이기도 했다. 특히 연출가와 배우 캐스팅 문제는 한국 뮤지컬 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연동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었다.

 

뮤지컬 <일 테노레> 공연 장면. 사진=오디컴퍼니

 

창작 뮤지컬의 약진

2024년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창작 뮤지컬에서 나왔다. 무엇보다 명확한 콘셉트를 선보이며 완성도를 높인 창작 초연작들이 1년 내내 무대를 채웠다. 오디컴퍼니의 <일 테노레>(2023년 12월~2024년 5월), ㈜홍컴퍼니의 <여기, 피화당>(2월~4월), 페이지원의 <파과>(3월~5월), 서울예술단의 <천 개의 파랑>(5월), 마틴엔터테인먼트의 <홍련>(7월~10월), EMK뮤지컬컴퍼니의 <베르사유의 장미>(7월~10월), 알앤디웍스의 <이터니티>(9월~12월), 라이브러리컴퍼니의 <긴긴밤>(10월~2025년 1월)과 <고스트 베이커리>(12월~2025년 2월), ㈜올댓스토리·㈜컴퍼니 연작의 <스윙 데이즈_암호명A>(11월~2025년 2월) 등이 선전했다.

 

올해 창작 초연작들은 여러 측면에서 고무적이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대극장과 중소극장에서 골고루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배출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각 공연에 맞는 기획이 적용되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한국 뮤지컬의 창작 역량이 한층 성장했음을 증명했다. 그동안 중소극장에 비해 대극장 창작은 단발성 시도로 끝나거나 시도 자체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2024년의 대극장 창작 초연작들은 일정 성과를 보이며 레퍼토리화의 가능성을 높였다.

 

먼저, 역사적 인물을 무겁지 않게 재현하여 관객의 호응을 얻은 작품들이 주목된다. <일 테노레>와 <스윙 데이즈_암호명A>는 모두 일제 강점기라는 동일 시대를 배경으로 한국 최초의 오페라 테너 이인선과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을 주요 인물로 다루지만, ‘꿈꾸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의 슬픔’, ‘옳은 것을 향한 정체성의 움직임’을 핵심에 놓으며 실존 인물을 다루는 한국 대극장 뮤지컬의 스타일을 확장했다. 앙상블의 안무가 장면의 흐름을 유연하게 만드는 연출, 대극장을 채우며 장면을 입체화시키는 넘버들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의 대극장 뮤지컬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천 개의 파랑>은 그 가운데에서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동시대적 테마를 탐색하며 동물과 로봇을 퍼펫과 기계로 구현했으며, <파과>는 중대극장 규모에서 여성 액션 느와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또한 <베르사유의 장미>는 인물 중심으로 원작의 긴 서사를 압축하여 모든 장면을 초점화하는 기획력을 보여주었다. 김동연, 김태형, 이지나, 왕용범 연출이 2024년 대극장 창작을 이끌었는데, 이중 김태형은 <천 개의 파랑>, <스윙 데이즈_암호명A>과 더불어 <부치하난>(9월~11월)까지 가장 많은 대극장 창작 초연을 연출했다.

 

 

뮤지컬 <홍련> 공연 장면.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중소극장 창작 초연작들은 ‘관계성 중심의 남성 2-3인극’으로 쏠림 현상을 보이던 대학로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흐름을 보여주었다. 이는 매우 특징적인 현상으로 특히 ‘여성’은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의 화두였다. 2024년 초연작 <여기, 피화당>, <홍련> 그리고 <카르밀라>(6월~9월)를 포함하여 <유진과 유진>(3연), 최초의 중국 라이선스 뮤지컬 <접변>과 <리지>(3연)까지 시스맨스(시스터+로맨스) 범주 안에 포괄될 수 있는 작품들이 무대를 채웠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여성으로 구성된 중소극장 뮤지컬 관객의 예민한 젠더 감수성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오랫동안 비주류로 머물렀던 여성 배우들이 연기하는 ‘여성 서사 뮤지컬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와 같았다.

 

중소극장 초연작의 또 다른 특징은 연극성이 강화된 작품들의 완성도가 높았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홍련>과 <긴긴밤>은 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무대 바닥 LED 조명으로 극적 공간을 표현하고 배우의 움직임으로 극의 흐름을 만드는 스타일을 섬세하게 구축했다. 또한 두 작품은 약자와 동물, 연대와 사랑이라는 테마를 펼치며 작품의 다양화에 기여했다. 서사에 맞게 각각 록과 서정적인 넘버를 사용한 것도 주목되었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 <섬: 1933~2019>(재연)도 포함될 수 있다. 뮤지컬의 상업성과 ‘쇼(show)’적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음악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섬: 1933~2019>의 성공은 ‘가치지향적 관극’을 선호하는 중소극장 뮤지컬 관객에게 크게 어필했다. 이러한 현상은 뮤지컬을 연극의 한 범주로 생각하는 박소영 연출의 스타일, 그리고 주로 연극을 연출하다 뮤지컬 무대로 넘어온 이준우, 황희원 연출의 비전에 힘입은 것이었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공연 장면. 사진=오디컴퍼니

 

스테디셀러 지향성과 새로운 양식의 대중화

2024년 라이선스 뮤지컬의 뚜렷한 특징은 먼저 스테디셀러 라인업에서 관찰되었다. 오디컴퍼니의 <드라큘라>(10주년)와 <지킬 앤 하이드>(20주년), 쇼노트의 <헤드윅>(14연), 신시컴퍼니의 <시카고>(12연)와 <틱틱붐>(7연), CJ ENM의 <킹키부츠>(6연), ㈜블루스테이지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6연)는 한국 시장에서 여전히 높은 흥행력을 유지했다. 이 작품들은 스테디셀러로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리뉴얼되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극장의 규모를 확장하고 세련된 무대를 선보인 <헤드윅>과 <틱틱붐>, 영상을 결합하여 무대의 심도를 높인 <지킬 앤 하이드>, 주요 인물의 서사를 보강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두드러졌다. 같은 맥락에서 음악 편곡을 풍성하게 확장한 EMK뮤지컬컴퍼니의 <프랑켄슈타인>(5연), 무대 디자인과 안무의 틀을 대폭 바꿔 관객의 정서적인 몰입을 강화한 CJ ENM의 <광화문 연가>(4연)와 같은 스테디셀러 창작 뮤지컬도 흥미로웠다. 또한 <영웅> 2024년 15주년과 <명성황후> 2025년 30주년 공연을 기념하기 위해 캐스팅과 비주얼 이미지 홍보에 큰 공을 들인 에이콤의 기획력도 훌륭했다. 하지만 대표작의 생명력을 높이기 위한 이러한 시도가 항상 성공적일 수는 없었는데, 가령 <틱틱붐>은 일부 넘버를 제외하고 앙상블 5인의 쓰임새가 크게 부각되지 않으며 여전히 1990년대적 정서와 풍경에 머물러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한편 <그레이트 코멧>, <하데스타운>의 흥행은 새로운 뮤지컬 양식 개발에 대한 비전을 품게 했다. 코로나 시기에 초연되어 고전했던 두 작품은 모두 2024년 재연에서 성공하여 각각 KOPIS 기준 상반기 뮤지컬 티켓판매액 상위 9위, 3분기 티켓판매액 상위 5위를 기록했다. 배우와 객석 사이의 거리를 좁혀 경직성을 털어내고 공연의 미학적 재미를 높인 이머시브 형식의 <그레이트 코멧>은 프로시니엄 무대를 탈피하여 다양하게 뻗어나갈 뮤지컬의 미래를 예측하게 했다. 연남장에서 공연되었던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룰렛>(재연)과 같은 이머시브 창작의 선전은 이러한 예측에 더욱 힘을 실었다. 또한 뮤지컬의 본질인 음악과 시를 공연의 핵심적인 요소로 극대화한 <하데스타운>의 폭넓은 흥행은 뮤지컬의 서사성에 대한 다층적 고려가 필요함을 환기했다. 한편 2024년 초연된 <디어 에반 핸슨>과 <알라딘>은 서사와 음악, 그리고 무대 전체를 아우르는 명확한 공연 콘셉트의 중요성을 또다시 상기시켰다.

 

참신함으로 나아가야 할 2025년

현재 한국 뮤지컬 시장은 세계 4위의 매출액을 보이고 있으며 전반적인 작품 제작, 배우의 역량 역시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되고 있다. 대극장과 중소극장에서 성실하게 경력을 쌓고 있는 배우들은 한국 뮤지컬을 발전시키는 핵심 요소로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올 한 해 김수하, 김준수, 전동석, 최정원, 홍광호의 활약이 돋보였으며 고은성, 김성철, 김환희, 박지연, 서경수, 이아름솔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중소극장에서는 여성 배우들의 전반적인 실력 향상이 고르게 관찰되었으며, 대표적으로 유주혜, 이봄소리, 최지혜, 한재아, 홍나현이 눈에 띄었다. 뮤지컬 인접 분야에서 기존 팬덤을 끌어와 뮤지컬 무대에 섰던 김민석, 김희재, 진호도 좋은 선례를 남겼다.

 

그러나 한국 뮤지컬의 미래가 그저 희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12월 말 <시라노>와 <광화문 연가>의 공연 중단 사태는 현재 한국 뮤지컬의 현장이 과거와 완전히 다른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증명했다. 과거에는 무대 세트 문제와 개런티 미지급이 공연 중단의 원인이었다면, 현재는 배우의 건강 이상이 원인이 되고 있다. 이는 겹치기 이상의 출연이 당연시되는 현재 풍토를 반영하는 것으로, 그동안 쌓인 구조적인 모순을 노출한 사건이었다. 만약 극장 규모를 막론하고 현재 상황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관객이 무대를 불신하는 날이 앞당겨질 수 있다. <광화문 연가>가 기세중, 김서연, 박새힘, 조환지를 캐스팅함으로써 프로덕션과 공연에 신선함을 가져온 것처럼, 계속 새로운 인력을 발굴함으로써 관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비단 배우뿐만이 아니라, 연출가도 마찬가지다. 뮤지컬은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신뢰를 기반으로 쌓아 올리는 무형의 가치를 토대에 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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