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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③] <홍련> 배시현·박신애, 객석에 가닿은 목소리

글 |이솔희 사진 |맹민화 2025-03-06 1,214

2025 여성의 날 특집_<나라는 이야기>

역사 속에서 잊히고 지워졌던 여성들. 그들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다시 펼쳐집니다. 우리가 몰랐던 여성의 삶을 끄집어내고,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뮤지컬 <홍련>은 한국 전통 설화 <장화홍련전>과 <바리데기>의 주인공 홍련, 바리가 사후 재판에서 만나는 이야기다. 홍련과 바리를 가정 폭력의 피해자라는 현대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위로하는 두 사람의 연대를 통해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지난해 7월 초연을 올린 <홍련>은 대부분의 회차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작품성을 인정받아 지난 1월 열린 제9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400석 미만)을 받았다. <홍련>을 탄생시킨 배시현 작가, 박신애 작곡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제9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을 받았어요. 늦었지만 수상소감을 먼저 들어볼까요.

배시현 사실 <홍련>을 쓰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담고 싶은 말에 비해 제 깊이가 너무나 얕은 것 같아서요. ‘왜 우리는 항상 사후약방문식으로 약자의 이야기를 접하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내가 뭐라고 이들의 이야기를 아는 척 입에 담나‘ 싶어서 부끄러울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무색한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공연은 저만의 깊이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배우와 음악, 연출, 안무, 조명을 비롯해 수많은 분이 저마다의 깊이로 홍련의 이야기를 채워주셨고, 관객분들 역시 각자의 깊이로 홍련의 말을 들어주신 덕분에 <홍련>이 세상에 싹을 틔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신애 작품에 대한 감사함은 앞에서 잘 말해 준 것 같아서(웃음) 저는 <홍련>이 상을 받게 된다면 꼭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뮤지컬을 정말 많이 보여주셨거든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학전 소극장도 초등학생 때부터 자주 갔고요. 그런 시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음악, 공연 일을 할 수 있는 문화적 감수성을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 같아서, 부모님께 그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홍련>은 2022년 CJ 스테이지업 창작 지원 사업을 통해 개발된 작품이에요. 그 후로도 몇 차례 리딩 공연을 거치면서 작품을 발전시켰고요. 지난해 초연을 성공적으로 선보인 후 한국뮤지컬어워즈 작품상 수상이라는 뜻깊은 선물과 함께 오랜 시간 공을 들인 <홍련>의 첫 번째 챕터가 마무리 되었는데, <홍련>과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배시현 그저 ’다행이다’라는 생각뿐이에요.(웃음) 공연 올라가고 나서도 처음 1~2주는 계속 불안에 떨었거든요. 소재가 소재이니 만큼, 혹시라도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컸어요. 그런데 다행히도 많은 분이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주셨죠. 특히 저희 작품이 위로를 주었다는 후기를 들을 때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상을 받을 때 제작사 마틴엔터테인먼트 옥한나 대표님이 말씀하셨듯이 이 이야기는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완성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모든 관객분들이 <홍련>을 완성 시켜주신 거나 다름 없어요.

박신애 첫 공연이 딱 끝나자마자 관객분들이 보내주신 박수와 함성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뜨거운 환호성이 얼마나 벅차던지. 누군가는 ‘한일전에서 이겼을 때 같다’고 말할 정도였어요.(웃음) 제가 공연을 올리고 우는 편이 아닌데, <홍련> 첫 공연이 끝났을 때는 저도 모르게 작가님을 붙잡고 울게 되더라고요. 아직도 그때의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저 역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우리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었다는 안도감이 들어서요.

정말로 저희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랑을 관객분들이 주셨어요. 제가 미처 담지 못한 의미를 관객분들이 찾아주시는 걸 보면서 저도 깨닫는 바가 많았고요. 사실 작품 안에 워낙 여러 장르의 음악이 있다 보니,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너무 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어요. 그런데 걱정이 무색하게 음악을 사랑해 주시는 분이 많아서 정말 다행이었죠. 저희가 관객분들에게 드린 것보다, 관객분들에게 받은 게 훨씬 많은 시간이었던 건 확실해요. 감사한 마음이 정말 큽니다.

 

<홍련>이 시작되던 때로 시간을 돌려볼까요? 작가님이 작곡가님께 먼저 협업을 제안했다고 들었어요.

배시현 저희는 한예종 뮤지컬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났어요. 사실 같은 팀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어느 날 우연히 언니가 참여한 공연을 봤는데 음악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꼭 언니와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시간이 흐른 뒤에 제가 <홍련>의 이야기를 떠올렸고, 음악에 대해 고민하던 중 장난 삼아 공연을 소개하는 PPT를 만들어서 언니한테 가져갔어요. 저랑 공연 한번 같이 만들어 보자고요. 그랬더니 언니가 바로 ‘오케이‘ 하더라고요. 정말 행복했어요. 여담이지만, 언니가 만드는 모든 음악이, 그냥 언니 자체가 제 취향이거든요. (웃음)

박신애 이래 놓고 막상 작업할 때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더라고요. (웃음)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흥미롭다‘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어떻게 바리데기 이야기와 홍련의 이야기를 엮었을까?‘ 신기했어요. 초기 단계에는 작품을 콘서트 형식으로 구상했던 터라 색다른 시도가 되겠다 싶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시현 작가님 사람 자체가 되게 재미있어요. 위트 있으면서 진지함이 있고, 동시대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죠. 그래서 저 역시 시현 작가님과 함께 작업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홍련>의 이야기는 어떻게 떠올렸나요?

배시현 경상남도 밀양에 <아랑전설>이라는 설화가 있어요. 그 설화도 한 여자가 억울하게 죽은 뒤 한을 풀어달라고 사또를 찾아가는 내용이에요. 그걸 보고 나서 ‘우리나라 귀신 이야기는 왜 유독 죽은 뒤 사또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많을까?’하는 궁금증이 피어올랐어요. 그런 궁금증이 사회적 참사와 겹쳐 보이면서 ‘왜 우리 세상은 누군가가 죽은 뒤에야 문제가 인식되는 경우가 많을까’, ‘왜 약자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무력할까’, ‘왜 우리는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할까’, ‘이 목소리들은 어디로 가닿았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망자의 한을 풀어주는 신인 바리데기가 생각났어요. 그 후 <장화홍련>과 <바리데기> 이야기를 묶으면서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어요. 특히 맹목적인 효를 강조하는 <바리데기>가 현대에 어떤 의의를 가질 수 있나 싶어서요. 하지만 바리가 자기 자신을 넘어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고, 홍련이 바리의 이야기를 ‘사랑’의 이야기로 재해석할 때 비로소 바리의 목소리가 홍련에게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홍련>은 90분 동안 그 누구도 무대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듣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숭고한 건지 확실하게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럼 <바리데기>가 품고 있는 사랑의 의미 역시 관객분들에게 잘 ‘들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가정 학대, 아동학대 피해자라는 공통점이 있는 두 인물을 두고 ‘이들이 가장 무력한 순간 이들의 목소리는 어디로 가닿았을까?’ 고민하며 쓰다 보니 지금의 <홍련>이 탄생했습니다.

 

그럼 이 이야기를 통해 관객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나요?

배시현 극 중 바리의 씻김 넘버 중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세상은 저만큼 흘러갔는데 우리의 얘기만 왜 여기 멈춰 스스로를 증오하게 하나.‘ <장화홍련>과 <바리데기>에서 강조하던 ‘맹목적 효’의 가치가 이제 흘러간 이야기가 되었듯이, 어떠한 상처도 재해석 될 수 있다는 말을 가장 먼저 하고 싶었어요. 또, 누구나 크고 작게 자기 자신을 탓해본 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에게 그 무력함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당신이 나약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사람은 그럴 수 있고, 당신의 곁에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 울어줄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홍련>은 록과 국악을 오가는 음악적 매력이 강렬한 작품이에요. 작품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사용되었는데, <홍련>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내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박신애 대본을 처음 읽고, 이 아이의 가슴에 맺힌 한을 어떻게 풀 것인가 고민했어요. 한을 쏟아내고, 해소하는 모습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록 음악이 머릿속에 떠오르더라고요. 또, 고전 소설과 설화를 소재로 하지만 여전히, 아직까지도 우리의 곁에 존재하는 상처이기에 요즘의 관객들에게도 잘 이해될 수 있도록 현대적인 음악적 언어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져서, 멜로디를 쓰거나 편곡을 할 때 조금 더 ‘힙‘한 기법을 입혀보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국악적인 선율은 기본적으로 담아냈고요.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작업하는 게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행히 제 장점이자 단점이 모든 장르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거예요. 어린 시절부터 ’하나만 해‘라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죠. (웃음) 클래식 작곡을 전공하긴 했지만 저는 케이팝은 물론 전 세계 모든 장르의 음악을 사랑했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접목하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관객분들에게 너무 복잡하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사랑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작가님이 앞에서 던진 질문을 다시 던져 볼게요. 우리는 왜 항상 피해자가 생긴 뒤에야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걸까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해야 하는 걸까요?

배시현 제가 최근에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라는 작품의 리딩 쇼케이스를 준비하면서 ‘이 세상은… 뭘까?‘(웃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리가 정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게 맞나?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고, 부조리한 일이 이렇게 많이 벌어지는데?‘ 그런 고민을 하다가 내린 결론이 ’세상이 뭐 별 건가. 사람의 집합이 세상이지.‘라는 거였어요. 어떤 집단을 움직이는 건 어렵지만 개인이 스스로 변하는 건 비교적 가능성이 높잖아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으면서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딱 떨어지게 살지 않으려고 해요. 나 한 사람만이라도 유하게, 다른 사람들을 품어주며 살다 보면,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 세상도 좋아지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제 일은 글을 쓰는 거니까, 앞으로도 열심히 누군가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면서 살아가려고요.

박신애 저도 모든 걸 너무 크게 생각하면 오히려 쉽게 무기력해진다고 생각해요. 내가 아무것도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불쑥 찾아오기도 쉽고요. 그래서 저도 그저 매일을 올바른 가치와 행복을 좇아 살아가려고 노력해요. 사실 공연 작업을 하다 보면 분위기가 늘 좋을 수는 없어요. 의견을 나누면서 싸우기도, 서로 미워하기도 하죠. 하지만 모두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잖아요. 좋은 공연을 선보이는 거요. 그 생각을 하고 나서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까지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언제나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는 게 올해의 목표입니다.

 

 

‘예술은 하고 싶은 말로 가득 찬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홍련>을 보면서 그 말이 확실하게 와닿더라고요. 두 분은 예술을 통해 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요?

배시현 저는 세상에 관심이 굉장히 많아요. 어떤 방식이든, 어떤 소재이든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저는 특히 글을 쓰던 그 당시의 내가 사유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는데요, 요즘은 ’폭력‘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폭력은 왜 존재할까?’, ‘왜 사람에게 폭력이 편리한 수단이 됐을까?’, ‘폭력이 없다면 사람들은 무엇으로 서로를 통제하게 될까?’ 같은.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작품에도 자연스럽게 담기게 되는 것 같아요.

박신애 저는 시현 작가와 반대로 세상에 관심이 별로 없어요. (웃음)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사는 게 급급해서 그렇다는 말로 변명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뮤지컬 작업이 참 좋아요. 대본에 음악을 붙이는 과정 속에서 작품에 담긴 작가님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흡수하고, 동의하고, 공명하면서 저도 잊고 있었던 가치들을 깨닫게 되거든요. 저는 언젠가는 <이프덴> 같은 작품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해 나가는 이야기가 참 멋지더라고요. 공연을 본 후 제 삶과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뀔 정도로 감명 깊었어요. 다만, 제가 이런 글을 쓸 능력은 없으니, 시현 작가님이 대본을 맡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웃음)

배시현 신애 작곡가님이 같이하자고 하면 무조건 합니다. 저는. (웃음)

 

<홍련>뿐만 아니라, 여성의 삶을 조명하는 작품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의 우리가 여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배시현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성의 이야기가 불편한 화두가 되지 않기 위해서요. 이 질문을 받고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멋진 답을 내놓고 싶었는데 그럴듯한 문장들만 떠오르고 정말 내 생각이다 싶은 말은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사실 <홍련>을 비롯해서 제가 여태까지 쓴 글들은 대부분 여성의 이야기였거든요. 그런데 ‘왜 이렇게 답을 못 떠올리는 걸까?‘ 고민해 보니, 제가 글을 쓰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여성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여성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그저 세상이 잘 보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는 약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약자의 이야기 중에서도 사람들이 마음을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불편하게 느끼는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예전에는 마냥 안타까워하며 들었던 이야기가 시대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불편한 이야기로 변모하는 경우도 있고요. 어쩌면 여성의 이야기가 이 사회에서 이러한 카테고리에 속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의 이야기가 한두 번 정도 들릴 때는 안타깝게 여겼지만, 그 수가 많아지니 누군가는 불편해하는. 하지만 계속 말하고, 계속 부딪히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단순히 여성의, 약자의 이야기가 아닌, 그냥 사람의 이야기로 바뀌는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그럼 더 이상 여성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불편한 화두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박신애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고정 관념 등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요. <홍련>이 관객분들에게 가닿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뮤지컬이 가진 강점이 관객분들에게 감정을 전달하고, 그들의 공감을 끌어 낼 수 있다는 거잖아요. 평등하고 고정 관념이 없는 날이 오기까지 여성의 이야기가 모든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뮤지컬이 그런 장을 만들어줄 수 있도록 우리가 늘 여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의 이야기가 더 널리 퍼지기 위해서, 공연계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창작진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배시현 누구보다 예민하고 섬세해지는 일이요. 그러한 시각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에서 말했다시피 세상은 결국 사람의 집합이고, 우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작품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무지로 인해 시대에 역행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그리고 그 선택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늘 지니고 있길 바라요.

박신애 사람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일이니까요. 저는 음악이 언어와 국경을 넘나들면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믿어요. 전 세계 사람을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는 공통적인 언어라고 생각하고요. 그러니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이든 나의 작품이 전하는 감정과 이야기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러모로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여성의 이야기가 더 늘어나길 바라나요?

배시현 성별이 여성일 뿐인 그냥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요. 뭐든 좋아요. 성격도, 욕망도, 한계도, 모든 게 다 다양한, 그냥 사람의 이야기가 보고 싶어요. 여성 캐릭터가 아닌, 그냥 사람이요.

박신애 끊임없이 여러 제약에 맞서 싸우고, 삶을 쟁취해 내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보고 싶어요. 우리 세대의, 다음 세대의 여성들이 자신을 둘러싼 한계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이요.

 

그럼 당신의 삶을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든다면, 어떤 이야기가 쓰여질까요.

배시현 되게 재미없는 공연이 만들어질 것 같아요. 태생이 게을러서(웃음) 종일 빈둥거리기만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근데 이렇게 풀어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저를 가운데에 세워놓고 관객분들에게 ’배시현, 이대로 살아도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죠. 관객분들 사이에서 토론의 장이 열리면 저는 의견 수용, 반성, 항의의 넘버를 부르고… 내 마음도 몰라준다며 투정 부리고….(웃음)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처럼 매일 다른 공연이 되는 거예요.

박신애  저는 <홍련>을 만들기까지의 제 일대기를 담아보고 싶어요. 제가 되게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지금까지 왔거든요.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시작했고, 대학생 때는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어요. 그러다가 액터뮤지션으로 무대 데뷔도 해보고, 1년 동안 록밴드 연습생 생활을 한 적도 있어요. 판소리를 배운 적도 있고요. 이렇게 많은 도전을 했다는 건 곧 실패하는 순간도 많았다는 의미잖아요? 그런데 이런 시간들이 하나로 연결돼서 결국 <홍련>이라는 성공을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홍련>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한 편의 뮤지컬이 된다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자 예술가로서 요즘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배시현 멋없는 대답이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고민이죠. 이 사회에서 말하는 ‘30대 중반 여성‘의 틀에서 좀 벗어나 있는 상태니까요. ‘나는 언제쯤 안정적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늘 존재하는 것 같아요. 좀 치사한 얘기긴 해도 저는 제 주변에 저랑 상황이 비슷한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싶어서 슬쩍 안도할 것 같거든요? 근데 아직까지는 제 현실이 제일 심란한 것 같아요. (웃음) 그래도 잘 버텨서 ‘쟤도 저렇게 사는데‘의 ’쟤’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신애  균형을 맞추는 거요. <홍련>을 처음 작업하던 시기에 아이가 생겨서, <홍련>과 딸이 함께 컸어요. 육아를 하면서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 건 사실이지만, 그 사이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잘 분배하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나중에는 균형이 맞춰지겠지‘ 생각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뮤지컬 작업을 하면서 성장하는 제 모습이 스스로 뿌듯하거든요. 언젠가는 제 딸도 이런 제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용기 있는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날이 오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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