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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칼럼] 브로드웨이에 <해밀턴>이 있다면, 한국엔 <적벽>이 있다

글 |김소정(뮤지컬 평론가) 사진 |국립정동극장 2025-04-15 702

제4회 국립극장 젊은 공연예술 평론가상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김소정 뮤지컬 평론가가 매월 한 편의 뮤지컬을 깊이 있게 분석하는 평론을 연재합니다.


 

 

뮤지컬 <적벽>은 판소리 5바탕가 중 ‘적벽가’를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이다. 중앙대학교 학부 워크숍 무용극 ‘적벽무’에서 시작되어, 2017년 초연을 시작으로, 계속되는 수정 작업을 거쳐 지금의 육연에 이르렀다. 본 작품은 새타령을 삭제하고, 군사점고(軍士點考)와 군사설움을 합치는 등 약간의 변용은 거쳤지만, ‘적벽가’의 원 텍스트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대본을 재구성했다. 원래 각 대목의 판소리 장단을 가져옴과 동시에 전반적으로 내용을 압축하며, 현대 음악 스타일에 맞게 편곡을 진행했다. 뮤지컬 <적벽>과 ‘적벽가’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결말에 있다. 적벽가는 관우가 조조를 놓아주고 돌아오자, 공명이 관공(관우)이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그러나 본 극은 여기서 끝내지 않고, 『삼국지연의』에서 나오는 공명에게 ‘도원결의(桃園結義)’의 맹세를 내세우며 관우를 용서해 주기를 비는 유비와 장비의 모습이 추가된다. 원 텍스트에 없는 부분이므로 이 부분부터는 이전까지와 다르게 판소리의 장단을 유지하기보다 일반적인 뮤지컬에서 들을 수 있는 넘버의 멜로디에 가깝게 작사·작곡됐다.

 

‘적벽가’는 5바탕가 중 유일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지 않으며, 중국 역사 속의 영웅을 등장시킨다. 그러나 단순히『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적벽대전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조선의 사상이었던 유교와 결합하였다. 민중의 예술이었던 만큼, 인물을 영웅화하지 않았으며 이름 없는 군사들에게도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사실 판소리는 서양 예술처럼 주인공을 위한 예술이 아니다. 주인공뿐 아니라 익명의 민중이 항상 포함된다. 판소리는 ‘펼치는 예술’로서 중요한 것뿐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것들까지 모두 설명해 주는, 어찌 보면 따뜻한 ‘정(情)’을 품은 장르이다. 뮤지컬 <적벽> 역시 판소리 자체의 이러한 미감을 유지하고 있으며, ‘해학과 풍자의 미’가 강조되는 판소리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조조를 중심으로 한 골계미를 유지한다. 또한, 소리꾼의 부채를 하나의 양식화된 도구로서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판소리를 기반으로 확장된 극예술인 창극에서 볼 수 있는 도창(導唱) 또한 극에 배치한다.

 

판소리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다른 뮤지컬과의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전에 뮤지컬 <서편제>(2010), <아랑가>(2016) 등에서 판소리, 국악 등과 같은 전통음악을 차용한 적은 있었으나, 온전히 판소리를 주요 음악으로 사용한 적은 없었다. 이에 판소리를 중심 음악으로 사용하는 뮤지컬 <적벽>에는 판소리가 단기간에 수련과 학습이 불가능한 장르인 만큼, 뮤지컬 배우와 다수의 소리꾼이 함께 참여한다. 점차 국악/창극과 뮤지컬의 경계가 흐려지고, 특정 장르를 지칭하는 용어가 정확하게 구분되어 사용하고 있는 지금, 이런 작품은 ‘음악극’, ‘국악 뮤지컬’, ‘판소리 뮤지컬’, ‘조선판 뮤지컬’, ‘소리 드라마’ 등 수많은 단어로 칭해지고 있다. 이때, 뮤지컬 <적벽>은 ‘판소리 뮤지컬’로 규정하는 것이 적당해 보인다. 1960년대 브로드웨이에서 록 음악이 뮤지컬에 유입되었을 당시, 뮤지컬 <헤어 Hair>, <렌트> 등을 ‘록 뮤지컬’이라 정리했고, 뮤지컬 <맘마미아!>(1999), <물랑루즈!>(2018) 등 기존의 대중음악을 사용하는 경우 ‘주크박스 뮤지컬’이라 정의한 맥락에서, 이 작품은 판소리를 뮤지컬에 접목한 사례로 이와 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의 유럽 음악과 미국의 전통음악 이외에 록, 힙합, 랩 등의 새로운 장르가 특정 뮤지컬의 주요 음악으로 사용될 때는 언제나 음악은 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록 음악은 당시 사회 저항의 메시지로서, 힙합과 랩은 최근 인종, 젠더 담론과 연관되어 사용되고 있다. 특히, 뮤지컬 <해밀턴>은 백인 중심의 미국 건국의 역사를 다룬 작품인데, 여기에 힙합과 랩을 사용해 그 역사를 ‘다시 씀’으로써 초연부터 지금까지 폭풍적인 열광을 얻었으며, 백악관에 초대되어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판소리가 17세기에 등장한 한국의 전통음악이자, 민중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뮤지컬 <적벽>은 판소리를 극의 중심으로 사용함으로써 ‘한국인의 정신과 문화’를 말한다는 점에 방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떻게 한국인의 정신과 문화를 보여주는가?

 

 

의(義)로 살아낸 역사, 판소리로 노래하다

뮤지컬 <적벽>은 도원결의로 시작해서 도원결의로 끝난다. 이때 도원결의는 원 텍스트에서처럼 단순히 의형제를 맺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천인합일과 의에 대한 강조를 덧붙인다. “일심협력하야 곤란을 서로 구원하고 나라에 보답허고 백성을 편케 하리라[황천후토는 저들을 살피시사], 의리를 배반허고 은혜를 잊사옵거든 하늘이시여 사람들이여 드는 칼로 용서치 말고 하늘이시여 사람들이여, 우리 삼 인을 함께 죽여주사이다”로 시작한 ‘도원결의’는 “한낱 저버리면 그만일 언약, 내일 없는 전장 … 영원토록 기억되리 뜨거운 맹세, 나라와 정의 위한 형제의 맹세”로 끝난다.

 

 

즉, ‘의’를 중심으로 한 유교 사상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이 된다. 유교에 대한 논의는 대개 리(理)·기(氣)·의·심(心)·정(情)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나, 학자마다 그 견해가 조금씩 다르다. 그중 유학자 권근(權近, 1352-1409)에 따르면 만물의 근원은 태극(太極)이며, 모든 만물은 태극에서 유출되어 자신의 내면에 하나의 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유관장 의형제(유비·관우·장비)는 도원결의에서 ‘의’를 강조하며 세 개의 부채를 한곳에 모아 태극의 모양인 원을 만든다. 이를 통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의를 분유하고 있는 존재로 볼 수 있다. 더불어 기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지지만, 만물의 근원적 동일성은 곧 뮤지컬 <적벽>에서 조조를 제외하고 유관장, 공명 모두 앙상블을 겸하며, 자룡, 정욱, 주유, 서서, 노숙 등의 인물 또한 특정 역할과 앙상블을 오가는 양상과 연결된다. 역사는 난세의 영웅과 익명의 군사를 차등을 두어 다루고 있지만, 판소리의 미감과 유교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이 작품은 그 경계를 없애며 모두를 한낱 인간으로 그린다. 태극은 곧 천(天)으로 상정되며, 이는 인(仁)으로서의 천지지심(天地之心)과 심(心)으로부터 천인합일(天人合一)을 기본 개념으로 상정한다. 본 극은 “하늘이시여, 사람들이여”를 반복해서 강조하며 하늘과 사람을 동일 선상에 놓는다. 한국에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등과 같이 하늘과 관련된 속담이 많은 만큼, 우리는 항상 하늘을 인식해 왔다. 유관장 의형제가 맹세를 한 이유도, 공명이 유비를 따른 것도 모두 한나라를 재건하고 만백성을 구원하겠다는 ‘대의(大義)’에 의한 것이었다.

 

의는 단지 개인 간의 신의나 충성에 머물지 않는다. 하늘과 인간, 자연과 공동체를 관통하는 도덕적 명분이었으며, 우리의 역사에서 이러한 민중은 항상 ‘의’를 실천해 온 주체였다. 수많은 전란과 위기의 연속이었던 한국사에서, 민중은 의병, 항일투쟁, 민주화운동으로 연결되는 ‘투쟁과 항쟁’의 역사 주체로서 의롭게 나라를 지켜왔다. 결국, 뮤지컬 <적벽>에서 적벽대전 속 유관장과 공명이 지키고자 했던 의는 우리의 역사를 지탱해 온 이념이자,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근간이 되는 사람됨의 근본이다. 또한 이들의 약속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팽배하여 인심을 찾아보기 힘든 작금의 시대에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치에 대해 되묻는다.

 

이런 우리의 정신과 문화는 이 작품에서 단순히 판소리를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청각으로 그려지는 노래 위에, 안무는 이것을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는 제롬 로빈스와 밥 포시를 중심으로 ‘코레오그래피(choreography, 안무 연출)’가 구축되었으며, 이에 현재까지도 ‘춤’은 브로드웨이에서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연출적인 측면에서 강하게 두드러진다. 뮤지컬 <해밀턴>에서도 재즈, 힙합, 스윙, 지터버그 등과 같은 다양한 춤이 혼합된 형태로 사용되며, 이때 춤은 단순히 무대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닌, 하나의 ‘신체 언어’가 되어 음악의 언어와 결부되어 극의 메시지를 부각한다. 뮤지컬 <적벽>에서는 판소리에서의 발림을 확장한 형태로서의 코레오그래피를 통해 앞선 논의를 더욱 강조한다. 안무는 부채춤, 살풀이, 강강술래, 칼춤, 탈춤, 태평무, 일무, 춘앵무, 신일무와 같은 한국 무용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동시에 크럼프, 왁킹 등과 같은 현대무용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는 ‘하나의 언어’로서 극을 전개하는 핵심 요소이다. 유비는 공명을 설득하는 데 있어 언어가 아닌 신체를 이용하고, 시간의 경과 또는 인물의 성격 등이 안무를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그려진다. 특히, 강강술래를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태극을 상형화하는 원형적 움직임과 마지막 넘버에서 일순간이지만, 불의에 맞서 의를 추구하는 태권도를 연상케 하는 공명의 움직임은 천지합일과 의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판소리는 젠더를 묻지 않는다

조선 후기에 등장한 판소리는 남성 소리꾼 중심으로 발전해 왔고, 20세기 초 여성 소리꾼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내레이터(narrator)로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서사(narrative) 예술’인 만큼, 창자는 자신의 젠더와 상관없이, 가령 이몽룡도 되었다가 춘향도 되었다가, 심지어 ‘수궁가’에서는 토끼와 자라와 같은 동물, 심지어는 초월적인 존재인 용왕까지도 될 수 있을 정도로 존재의 유연성을 갖는다. 또한, ‘(목)소리의 예술’인 판소리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엇중모리와 같은 일곱 개의 장단으로 운용되며, 계면조, 평조, 우조 등 다양한 악조와 시김새를 이용하여 인물의 정서와 상황을 음악적으로 표현한다. 이에 판소리에는 서양 음악에서처럼 음역대와 젠더에 따른 테너, 소프라노와 같은 성부 구분이 없다. 물론 판소리가 남성 중심의 예술로서 발전해 왔으며, 구전·도제식 전승이었기 때문에 여성 창자가 판소리에 참여하기 시작한 시점에는 이미 그 형식이 정립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여성 창자는 남성의 단단하고 힘 있는 소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소리를 자연스럽게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작금의 판소리는 개인의 창작물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구전 전통을 통해 여러 사람의 참여로 발전된 예술인만큼, 이런 특징이 희미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더불어 소리꾼은 성대에 상처를 내서 흉터투성이가 된 목을 가지고 끊임없이 훈련하며, 그들이 목표로 하는 득음은 ‘곰삭은 소리’로 이야기될 만큼의 탁하고 거친 소리이다. 그렇기에 여성 소리꾼과 남성 소리꾼의 소리 경계가 뚜렷하지 않으며, 오히려 여성 소리꾼이 남성 소리꾼보다 힘 있고 단단한 경우도 있다. 즉, 판소리에는 서양 예술에서처럼 젠더의 경계가 없다. 가령 여성 소리꾼이 ‘적벽가’를 부를 때, 그는 여성의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조조, 유비, 관우, 장비 등의 남성 영웅으로 분하며, 이에 관하여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낯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젠더 크로스 캐스팅처럼, 특정 역할로 분하여 무대 위에서 그 역할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성의 신체에서의 남성 언어가 발화되면서 생기는 공백이 없다. 이야기의 전달자로서 창자는 서 있기 때문이다. 즉, 판소리에는 근본적으로 젠더에 따른 음역대의 무(無)경계성,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점에서의 젠더 유동성이 내재해 있다.

 

 

2020년 사연 조조 역에 소리꾼 박인혜가 캐스팅된 것을 시작으로, 2022년 오연에서는 장비 역에 소리꾼 정지혜가, 이번 육연에서는 조조 역에 소리꾼 이승희, 유비 역에 정지혜가 남성 소리꾼과 더블 캐스팅되었다. 물론, 초연 때부터 소리꾼 임지수는 제갈공명을 맡아왔으며, 소리꾼 김하연 또한 2019년부터 계속 조자룡을 연기하고 있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을 유비, 조조라고 보았을 때, 박인혜의 조조 캐스팅은 당시 페미니즘 리부트의 흐름 속에서 크로스젠더(cross-gender)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공연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판소리 뮤지컬인 <적벽>에서는 앞서 살펴본 판소리의 근본적인 특성상 불가능한 일도, 특기할 만한 일도 아니다. 이번 시즌 유비 역에 정지혜, 조조 역에 이승희는 관우, 장비, 정욱 등 남자 배우 캐스팅 사이에서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이 작품에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고, 의도적 성별 전복을 강조하는 크로스젠더의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유비, 조조의 모습은 그 자신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도창이나 제3자의 창자에 의해 묘사되어 구현되고 있으며, 그들이 느끼는 심정 또한 외부의 시선에서 그려지기 때문이다. 본 작품의 음악을 구성하고 있는 판소리는 단순히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그려지는 소리’인 것이다.

 

 

 

화이트 큐브에서 판을 다시 짜다

주지하다시피 뮤지컬 <적벽>은 판소리의 어법과 미감을 토대로 한다. 판소리의 3요소는 창(唱), 아니리, 발림이고, 연행의 3요소로는 ‘창자, 고수, 청중이 있다. 이전에는 ‘일고수(一鼓手) 이명창(二名唱)’이라 했지만, 현재는 ‘일청중(一聽衆), 이고수(二鼓手), 삼명창(三名唱)’이라 하여, 청중(귀명창)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청중의 개입은 추임새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에 본 작품은 청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함께 판을 만들어 나가는 판소리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화이트 큐브(white cube)를 차용한 무대 세트를 통해 드러낸다. 온통 하얀 무대는 비사실적이며, ‘오림’, ‘적벽’ 등과 같이 각 장이 전환될 때마다 설명해 주는 간단한 글씨와 조명에 의지해 무대는 그 어떠한 전환 없이 공간을 순식간에 전환한다. 더불어 무대 위에 오케스트라 피트가 배치되며 고수에서 확장된 악사와, 창자에서 확장된 배우의 관계는 기존의 뮤지컬 무대에서 그 층위를 대개 다르게 배치하는 것과 달리 전통 판소리에서 창자와 고수가 같은 위치에 있었던 것을 그대로 유지한다. 군사점고에서는 소리북을 치는 악사가 죽은 안유명을 연기하고, 군사설움 대목에서는 악사 중 한 명이 아쟁을 들고나와, 배우들과 한 장면을 완성한다.

 

검은색의 벽체로 둘러싸인 프로시니엄 극장은 관객의 집중력을 무대로 집중시킴과 동시에 관객의 능동성과 주체성을 잠시 박탈한다. 그러나 화이트 큐브로 구성된 미술관에서 관객의 이동과 주의력, 시간은 자유롭게 흘러간다. 이렇게 분리되어 있던 두 개념은 현대에 오면서 무용이 전시 안에 삽입되는 ‘전시 퍼포먼스’가 생겨나면서 블랙박스와 화이트 큐브 각각의 규범에 교란이 일어나면서 그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블랙박스로 된 전통적인 극장에서 화이트 큐브를 연상시키는 무대는 관객이 보다 쉽게 극에 개입할 수 있도록 심리적인 경계를 낮춘다. 관객과 소통하는 음악이라는 판소리의 특징을 기저로 하는 본 작품은 관객에게 마치 전시장에서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며, 관객은 이전에 수동적인 위치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게 하던 제4의 벽을 깨고 무대로 들어간다. 이에 창자의 창과 관객의 추임새가 얽혀 작품이 완성된다. 이때 추임새는 단순히 ‘얼쑤’, ‘좋다’, ‘잘한다’ 이외에도 소리꾼 이자람이 최근 자신의 신작 <눈, 눈, 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품을 감상하며 무릎장단을 치거나, 자신도 모르는 새 나오는 고갯짓과 같은 무의식적이고 자연스러운 관객의 모든 반응을 포함한다.

 

이러한 무대의 특징은 앞서 언급한 이 작품의 전체 메시지와도 연결되는데, 의상, 무대 장치, 맨발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배우들은 ─ 이번 시즌 바뀐 ─ 바둑판을 연상케 하는 의상을 입고 자리한다. 이는 유비, 관우, 장비, 조조 등 범접하기 힘든 영웅적 인물로만 보이던 이들이 다른 익명의 군사들과 마찬가지로 바둑돌이 되어 움직이는 것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혼자서만 아무런 색깔이 칠해지지 않은 백지상태의 바둑판 의상을 입고 객석에서 등장하는 공명은 마치 신적인 존재처럼 모든 사건을 예견하며 바둑돌로 분한 인물을 움직인다. ‘판을 짜는 자’인 공명이 객석에서 등장하는 것은 이미 이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을 알고 있는 신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는 관객의 성격을 분유 받아 무대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천인합일의 맥락 속 ‘의’를 강조하는 <적벽>은 백지의 공간 속에 파이프 오르간과 레이저 조명을 더하고, 배우들을 맨발로 무대 위에 서게 한다.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일으키기 위해 제를 올리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구조물은 파이프 오르간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신의 음성을 상징하는 악기이자, 바람이 더해질 때 소리가 발생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신의 뜻은 시각적으로도 나타나는데 바로 레이저 조명을 통해서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빛줄기처럼 전통적으로 신성한 존재는 빛으로 나타났는데, 이 빛이 응집되어 강렬하게 나타나는 것을 레이저 조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레이저 조명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용맹하게 달려가 유비의 아들을 구해 온 조자룡의 전투 장면에서 가장 강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렇게 인사(人事)에 하늘이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그런데 인간은 하늘이 아닌 대지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하늘과 인간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 속, 인물은 ‘맨발’로 서 있다. 배우의 맨발은 대지 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맨발이 대지(무대)와 마찰하여 생겨나는 소리는 그들이 부르짖는 의를 향한 열망, 악사들의 음악, 정의를 구현하는 칼의 소리 같은 부채 소리, 관객의 추임새와 함께 합쳐져 복합적인 층위로서 자리하게 된다. 이러한 세부적인 요소들이 직조되어 무대는 천지인(天地人)을 하나로 연결하는 공간으로서 그 의미를 확보하게 된다.

 

 

뮤지컬 <적벽>은 단지 적벽대전을 무대에 옮긴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전통 서사와 현대 공연 언어가 만나는 지점에서, 하나의 ‘판’을 다시 짜는 예술적 시도다. 이 작품은 판소리라는 민중예술의 음악과 미학을 현대 뮤지컬이라는 장르 안으로 옮겨옴으로써, 기존의 판소리 어법은 유지하되, 그것을 한국인의 정신과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한다. 뮤지컬 <해밀턴>이 미국 건국의 신화를 미국 전통 음악과 흑인의 언어인 힙합으로 다시 썼다면, 뮤지컬 <적벽>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오는 한국의 정신을 전통 음악인 판소리로 다시 부른다. 그리고 그 부름은 과거의 전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잊고 있는 ‘사람됨’에 대한 자성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누구와 함께, 어떤 의를 품고 살아가는가. 뮤지컬 <적벽>은 이 질문을 음악·신체적 언어와 공간으로 우리에게 던진다.

 

‘판소리 뮤지컬’은 영미 뮤지컬과 차별화되는 한국 뮤지컬의 차이점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뮤지컬 형식일 것이다. 그러나, 판소리를 차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5바탕가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판소리는 여전히 낯선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우리가 쉽게 흥얼거리는 ‘아리랑’, 많은 응원가로 사용되고 있는 ‘뱃놀이’, 이날치로 인해 모두가 알게 된 수궁가의 ‘범 내려온다’, 춘향가의 ‘쑥대머리’, ‘사랑가’ 등을 생각해 보면 사실 판소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생각보다 우리의 삶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한국 창작뮤지컬 라이선스의 수출을 위해 외국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국에서 뮤지컬이 하나의 대중 장르로서 자리 잡고 점점 더 규모를 키워나가는 요즘, 이제는 영미 뮤지컬과 한국 뮤지컬의 차이는 어떻게 규정할 것이며, 그 미학과 어법은 어떻게 구축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뮤지컬 <적벽>은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 뮤지컬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실제로 이미 공연장에서 심심치 않게 외국인 관객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극장에서 만난 한 외국인 관객은 “영어로 된 자막이 제공될 뿐 아니라, 내용이 복잡하지 않은 만큼 전체 극의 흐름을 따라가는데 어렵지 않았고, 한국만의 고유한 음악과 색깔을 즐길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뮤지컬 <해밀턴>이 미국의 건국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보기 어렵다는 장벽이 있었음에도,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방식으로 하면 흥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은 어쩌면 지레 겁먹은 착각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데, 반드시 서양 친화적인 소재를 통해 돌아서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뮤지컬을 통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고심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우리의 무엇을 넣을 것인지 또한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이다.

 

 


참고자료

박봉술제 <적벽가> 사설

한자경, 『한국철학의 맥』,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8.

한국철학회, 『문화철학』, 철학과현실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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