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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칼럼]비인간 존재들이 보여주는 공생의 윤리

글 |현수정(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겸임교수) 사진 |라이브러리컴퍼니, 서울예술단, CJENM 2025-04-25 481

뮤지컬 <라이카> 공연 장면. 사진=라이브러리컴퍼니

 

불과 열흘 전에 눈이 내렸는데 오늘은 기온이 26도까지 올라갔다. 봄과 가을이 실종되었을 뿐 아니라 계절의 경계 자체가 흐트러진 것 같다. 계절의 흐름이 없어진다면 스토리텔링도 달라지지 않을까. 애초부터 서사는 시간의 흐름을 감각하는 방식과 관련 있었으니. 인류세라고 일컬어지는 지금, 어떤 방식이든 달라진 세상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해 보인다. 최근 창작뮤지컬에서는 이러한 동시대 이슈를 반영하며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다룬 작품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어쩌면 해피엔딩>, <천 개의 파랑>, <라이카>는 인간에게 착취당하고 버려진 동물 혹은 휴머노이드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키며,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난 새로운 감수성을 제시한 작품들이다.

 

세상의 중심인 그 ‘인간’

인간의 이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다. 이는 대표적인 그리스 비극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오이디푸스는 신탁의 예언대로 파국에 이르지만, 그 과정이 운명에 따라서만 전개되지는 않는다. 그의 성격과 자유의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하려고 선택한 모든 것들이 오히려 운명의 늪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보여주지만. 어쨌든 오이디푸스는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진실을 밝히며 숭고미를 느끼게 하는 고전 비극의 주인공이다. 스핑크스의 어려운 질문도 단번에 맞춰버린 빛나는 이성의 소유자. 그의 지혜는 신들을 향한 도전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리스 비극은 종종 인간의 이러한 오만에 대한 경고로 마무리된다. “필멸의 인간은 생이 다하기 전까지 자신하지 말라” 등등. 저명한 소피스트이자 철학자인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문구도 인간으로 향하던 당대의 시선을 알려주는 예이다.

 

그렇지만 인간을 세상의 중심에 위치시킨 지금과 같은 휴머니즘은 르네상스 시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관련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이 상징적인 그림으로 이야기된다. 이는 인간의 이상적인 신체 비율을 참고하여 건물을 설계하고자 했던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저서에 묘사한 것을 그림으로 구현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바로 그 ‘인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적 사유가 요구되고 있다. 백인 이성애자 남성 등의 ‘보편성’을 제시해 왔고, 타자들에 대해서는 제국주의적인 지배와 억압을 정당화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서 타자들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도 포함된다. 기후 위기와 같은 재난도 자연을 훼손하며 인간의 편의와 이윤을 추구한 결과이지 않은가. ‘정말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열쇠일까?’ 포스트휴머니즘의 사유는 기존의 믿음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뮤지컬 <라이카> 공연 장면. 사진=라이브러리컴퍼니

 

‘인간’을 넘어서는 새로운 ‘존재’

현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 중인 ‘한이박 트리오’(한정석 작·작사, 이선영 작곡, 박소영 연출)의 신작 뮤지컬 <라이카>는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사회적 이슈를 흥미진진하게 녹여낸 작품이다. 이는 최초의 우주 탐사견인 ‘라이카’의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되었다. 1957년, 소련은 볼셰비키 혁명 40주년을 기념하며 라이카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를 지구 궤도에 띄운다. 귀환 장치는 마련되지 않았는데, 정치적 선전을 위해 급하게 세워진 계획인 만큼 시간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료에 약물을 넣어 안락사시켰다고 발표되었지만, 훗날의 연구 결과로는 온도조절장치 미비로 인해 과열되어 질식사한 것이었다.

 

스탈린 체제하의 소련은 인간의 자율성을 억압했던 전체주의 사회였다. 그렇지만 이 뮤지컬은 라이카가 처했던 잔혹한 상황을 특정 이념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는다. 그보다 인간 중심주의와 과학기술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구조적인 폭력을 비판한다. 그렇게 사용되고 학대받은 동물은 라이카뿐이 아니었다. 소련과 경쟁적으로 로켓을 쏘아 올린 미국에서도 원숭이를 비롯한 수많은 동물로 실험을 감행했으니. 극의 말미에 B612 행성이 우주로 보내진 동물들로 붐빈다는 설정 또한 날카로운 풍자이다.

 

이 뮤지컬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도입하여 판타지 세계를 펼쳐 보인다. 여기서 어린 왕자, 아니 어른 왕자는 다층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시종일관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데, 생텍쥐페리가 전쟁 중 희생당하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끊임없이 죽고 죽이는 인류의 역사에 신물이 난 것이다. 별자리를 기록하는 등 우주를 돌보는 그는 소행성의 궤도를 돌려서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계획을 세우는데, 이는 인류에 대한 환경의 역습을 연상하게 한다. 같은 맥락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자기 조절적인 움직임, 혹은 그리스 비극에서 우주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출동한 복수의 여신들도 떠올릴 수 있다.

 

한편, 왕자는 인간을 비춰 보이는 거울 같기도 하다. 반휴머니스트의 면모를 보이면서도 사사건건 “인간 같은” 생각과 선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가 사르트르의 말들을 인용하며 강조하는 ‘존재’ 역시 양면성을 담고 있다. 어떨 때는 그 자체로 충만한 사물적인 존재를, 또 어떨 때는 인식하고 창조해가는 인간적인 존재를 추구하는 듯 보인다. 장미가 ‘팩트 폭격’하는 것처럼, 인간을 향한 애증의 감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새로운 존재로 나아가는 것은 다름 아닌 라이카이다. 그는 인간들에게서 버려진 것을 깨닫고 배신감으로 인해 갈등하지만, 왕자의 지구 멸망 프로젝트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지구에 사는 수많은 동식물을 비롯한 타자들에게 감응하며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데 필요한 것은 인간 혐오가 아니라, 모든 종을 가로지르는 “횡단적 힘”1)이라는 포스트휴먼의 윤리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2막의 후반부는 라이카가 고민하고 변화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는 만큼 차분한 템포로 진행된다.

 

주요 배경인 B612 행성은 비인간들의 공간이다. 그중 왕자가 로켓을 재활용하여 만든 로케보트도 있다. 훈련소에서 자신을 돌봐줬던 캐롤라인을 그리워하는 라이카를 (길들이기) 위해 캐롤라인의 형상을 본뜬 것이다. 하지만 왕자의 의도와 다르게 라이카는 그녀를 대체물로 생각하지 않는다. 로케보트 또한 라이카와의 유대관계 속에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곳에는 또한 원작에서처럼 장미와 바오밥나무들도 옹기종기 거주하고 있다. 섬세하고 우아한 장미는 왕자에게 버려졌던 경험 때문에 라이카를 잘 이해하고 돌봐준다. 그리고 바오밥나무들로 말할 것 같으면 자연과 인간, 외계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느낌의 신비로운 인물들이다.

 

이러한 B612 행성을 표현한 무대는 다소 빈티지한 총천연색 별들의 향연이다. (캐롤라인의 꿈으로 두기에는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그리고 원형의 콘셉트는 자연의 순환을 연상케 하는데, 이는 인류의 역사가 직선적으로 ‘진보’해 나간다는 믿음에 대한 반론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소품인 자전거도 상징적이다.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간다는 점에서 얽힘과 공생을 떠오르게 하고, 이 작품이 또 한편으로 건드리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이슈도 연관시킬 수 있다.

 

 

<라이카>의 음악은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통해 캐릭터와 주제를 정교하게 드러낸다. 자연의 일부인 바오밥나무들과 장미는 타악으로 원시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로케보트 부분은 섬세하게 반복되는 멜로디와 신디사이저의 음색을 강조했다. 사실 신디사이저는 라이카가 우주로 진입하면서부터 곳곳에서 활용되며 SF의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왕자의 노래는 상황과 감정에 따라 다채롭게 표현되는데, B612의 오프닝 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매일 난 우주를’은 일종의 ‘낯선 세계로의 초대’ 느낌의 흥미진진함을, ‘아이원트송’인 ‘그들이 사라지면’은 간절함과 서정성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인간들에 대한 울분을 토하는 ‘그 하찮은’은 록으로 표현된다.

 

한편, 전체 오프닝곡인 ‘오, 라이카’는 스푸트니크 2호가 발사될 때 사람들이 라이카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매우 성스럽고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이는 마치 <캬바레>의 나치 찬가처럼 아름다운 멜로디로 마음을 선동하는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같은 창작진의 작품인 <쇼맨-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 배우>에서도 쓰였었다. 이때 어두운 조명과 앙상블들의 일그러뜨린 걸음걸이가 음악과 기괴하게 대조되도록 하는 안무도 다시금 활용되었다.

 

그런가 하면, 라이카의 넘버들은 종종 서정적이면서도 향수어린 스타일로 그녀의 정서를 담는다. 특히 ‘캐롤라인’의 종지에서 그녀를 호명한 후 이어지는 클라리넷의 음색은 짙은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기다려’, ‘인간처럼’ 같은 짤막한 모티프들이 마음의 변화에 따라 변주되는 것도 인상적이다. 특히 로켓 안에서 부르는 라이카의 첫 곡에서는 경쾌하게 상행되는 “기다려”의 마지막 음이 심장이 멈출 때의 ‘삐’ 소리와 연결되며 관객의 호흡도 잠시 멎게 한다. 역시나 상승하는 온음으로 설렘을 담던 ‘인간처럼’ 모티프는,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의 넘버에서 절망적인 단조로 하강하며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지구 멸망 프로젝트를 감행하려는 순간 B612 행성의 모두가 함께 부르는 ‘기다려2’는 극적인 전개에서 중요한 프로덕션 넘버이다. 이때 앞선 넘버들의 주요 멜로디가 복잡하게 뒤섞이고 교차한다. 이는 위기와 혼란을 연상시키는 면도 있지만, 수많은 타자들의 관계 속에서 차이에 기반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움직임을 연상케 하며 작품의 주제를 강조하기도 한다.

 

초연임에도 <라이카>는 깊이 있는 주제의식, 참신한 음악과 무대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에서 상당한 완성도를 보였다. 박진주, 김환희, 나하나, 조형균, 윤나무, 김성식, 서동진, 진태화, 한보라, 백은혜 등 실력 있는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가 돋보였다. 꾸준한 창작을 이어가며 성장하고 있는 한이박 트리오의 또 하나의 레퍼토리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뮤지컬 <천 개의 파랑> 공연 장면. 사진=서울예술단

 

‘인간다움’은 과정과 실천

근미래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천 개의 파랑>(김한솔 작, 박천휘 작곡, Greg Jarrett 편곡, 김태형 연출)과 <어쩌면 해피엔딩>(박천휴 작·작사, 윌 애런슨 작·작곡·편곡, 김동연 연출)에도 타자들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새로운 주체성을 찾아가는 로봇들이 등장한다.

 

천선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천 개의 파랑>은 지난해 5월 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고, 올해 초 국립극장에서 재연했다. 이 작품의 주요 공간적 배경은 경마장이다. 이윤을 채우기 위해 광기 어린 속도를 추구하는 그곳은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알레고리이다. 그런데 이곳의 기수 로봇인 콜리는 자신이 타고 있는 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낙마를 감행한다. 그는 인간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진동’을 통해 느낄 줄 알며, 상대방이 행복하면 자신도 그렇다는 이타적인 면모도 지녔다. 인간성이란 어때야 하는지, 진정으로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지 성찰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콜리는 잘못 끼워진 학습 칩 때문에 천 개의 단어를 알고 있다. 이진법 콘셉트로 작곡된 ‘천 개의 단어’는 그가 처음 입 밖으로 꺼낸 단어인 “찬란하다”로 시작된다. 화물차로 운반되는 과정에서 하늘을 바라본 콜리의 심경을 담고 있는 곡이다. 벌스 부분은 상승하는 2도의 온음으로 (0과 1이 반복되는 느낌으로) 맑게 진행되는 가운데,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소리가 흘러가는 구름처럼 끼어든다. 그리고 코러스 부분과 브릿지에서 역동적으로 확장되는 멜로디는 더 많은 단어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느끼게 한다. 이진법 모티프는 콜리가 2막 후반부에 부르는 ‘알 수 있을까’에서 다시 나타난다. 여기서는 자신을 고쳐준 연재를 비롯한 인간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는 그의 내면이 전자 악기가 아닌 어쿠스틱 악기의 음색으로 강조된다. 아울러, 무대에서 아날로그적인 퍼펫으로 표현된 콜리와 경주마 투데이는 따뜻한 감성을 배가시켰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장면. 사진=CJ ENM

 

<어쩌면 해피엔딩>은 인간에게 사용되다가 버려진 ‘헬퍼봇’들의 이야기이다. 구기종인 클레어와 신기종인 올리버는 같은 아파트에 살며 서로 의지하게 된다. 올리버는 충전기 고장으로 멈춰버린 클레어를 도와주고, 클레어는 올리버를 설득하여 그가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인간 주인 제임스를 찾으러 함께 제주도로 떠난다. 그렇게 제주도 여행을 통해 찾게 된 것은 제임스가 아닌 서로에 대한 사랑. 그러나 제목이 알려주듯 페이소스 짙은 열린 결말로 향해간다.

 

이 작품이 아련한 여운을 남기는 이유 중 하나는 기억과 상실에 대해 다루기 때문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윤동주의 시구처럼, 인간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유한한 존재들과의 사랑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중요한 것은 기억이 사라져도 소중하게 남아 있는, 함께 했던 감각들일 것이다.

 

배경은 근미래지만 20세기 중반 스타일의 서정적인 재즈와 따뜻한 질감의 무대가 어우러지며 아날로그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여기서 재즈는 인물들의 삶과 관계를 상징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고맙다, 올리버’의 “듀크 엘링턴은 같은 멜로디가 반복되도 반주는 끊임없이 변주된다”라는 가사는 수미쌍관의 순환구조뿐 아니라 매일의 일상과 공명한다.

 

이 뮤지컬은 2014년에 우란문화재단에서 개발된 후 지금까지 수없이 리바이벌된 대표적인 창작뮤지컬 레퍼토리로, 지금은 브로드웨이에 진출하여 토니상 후보로 예측되는 중이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독창적인 소재와 완성도 있는 스토리, 그리고 세련된 음악이 마이클 아든(Michael Arden) 연출과 데인 래프리(Dane Laffrey) 무대디자이너, 조지 리브(George Reeve) 영상디자이너 등에 의해 감각적으로 다듬어진 상태다.

 

‘인간답다’는 말을 사용하는 순간, 자칫 고전적인 휴머니즘으로 회귀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동물인데 우리처럼 인간적이니까 돌봐줘야 한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포스트휴먼의 관점에서 인간답다는 것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차이에 기반한 관계 속에서 정동을 형성해 나아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감수성이 우리를 소위 인류세라는 ‘뱀구멍’(<라이카>)에서 헤어나올 수 있게 도와주지 않을까. 따라서 인간만이 인간답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오히려 <라이카>, <천 개의 파랑>, <어쩌면 해피엔딩> 속 비인간 인물들의 모습이 더욱 인간다움에 가까워 보이지 않는가.

 


1)로지 브라이도티, 『포스트휴먼』, 이경란 옮김, 아카넷, 2023,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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