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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③] <슬립노모어 상하이> 셰익스피어와 중국 문화의 만남

글 |곽다원(연출가) 사진 |Mathieu Rabary 2025-08-29 154

사진=곽다원

 

※ 본 글은 다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국 혹은 뉴욕의 <슬립노모어>를 관람하신 분들이 이해하기 쉬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드디어 한국에서도 <슬립노모어(Sleep No More)>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하이 버전처럼 한국만의 특별한 구성이 있을까? 하고 어찌나 설레었는지! 저는 영국 극단 펀치드렁크 (Punchdrunk)의 팬으로, 제 작업 방식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 버전 공연을 보기 전에, 제가 처음 펀치드렁크의 세계를 마주한 상하이 버전의 <슬립노모어, 不眠之夜>의 기억을 다시 불러내려 합니다.

 

저는 2018년, 한 논문을 통해 이머시브 연극(Immersive Theatre)과 펀치드렁크의 <슬립노 모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논문을 읽는 것만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을 경험하기 위해 상하이로 떠났습니다. 제가 관람했을 때 상하이 버전은 입장 시간에 따라 가격이 달랐습니다. 조금이라도 예산을 아끼기 위해 뒤늦게 입장을 했고, 처음에 헤매느라 반복되는 이야기를 두 번밖에 경험하지 못한 게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2016년 12월에 시작된 상하이 공연은 어느새 9주년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펀치드렁크와 SMG LIVE의 합작으로 상하이 특유의 장면, 공간, 이야기, 등장인물 등을 만들어냈습니다. 맨덜리 바에서 재즈 음악을 즐기던 관객들은 입장 순서가 되면 가면을 쓰고 엘리베이터에 오릅니다. 혼자만 4층에 내린 순간, 공간이 주는 압도감에 매료되었습니다. 거대하고 디테일한 소품들로 가득한 드라마 세트장, 혹은 시대물의 세계관에 툭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많은 등장인물과 그들을 따라다니는 관객을 보면서 대서사시 일부가 된 것 같아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스터 에그를 발견하는 것처럼 현지화를 위해 어떤 시도를 했을지 눈여겨보았습니다. 가장 눈에 띄었던 건 공간 구성과 중국 고전의 도입이었습니다.

 

사진=Mathieu Rabary

 

1930년대 상하이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매키넌 호텔(The Mckinnon Hotel)

서울 <슬립노모어>의 공간이 ‘매키탄 호텔(Mckithan Hotel)’이라면, 상하이 <슬립노모어>는 ‘매키넌 호텔(Mckitahn Hotel)’이라고 부릅니다. 전반적으로 매키넌 호텔의 소품과 가구에서 동양과 서양 문화의 융화를 볼 수 있습니다. 1930년대 상하이를 연상시키는 공간을 만든 건데요. 그때 그 시절의 광고가 붙어있는 복도의 벽, 伊樂園 (이락원; 환락의 공간, 유흥지를 의미함)이라고 적힌 간판, 수묵화가 그려진 병풍이 놓인 맥베스 부부의 침실, 동양의 약재들이 가득한 약초방, 울창한 대나무 숲 등이 대표적인 상하이 버전의 공연 공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펀치드렁크 디자인 팀은 1930년대 상하이 호텔의 외관과 분위기를 정확하게 포착하기 위해서 다양한 자료들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타일, 페인트 칠, 가구 제작 벽지, 커튼 등을 통해 관객이 1930년대 국제적 도시였던 상하이의 공기를 전합니다(Zhuang & Cui, 48-49), 덕분에 관객은 서양 고전과 중국 고전이 교차하는 상하이 버전 <슬립노모어>에 더 진정성 있게 몰입할 수 있습니다.

 

사진=Mathieu Rabary

 

백사전(白蛇傳)의 이야기 융합

<슬립노모어>는 기본적으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Macbeth)』를 기반으로 전개되며, 여기에 히치콕 감독의 영화와 1967년 스코틀랜드에서 벌어진 '페이즐리 마녀 재판'을 오마주한 장면들이 더해집니다. 개인적으로 뷔히너의 희곡 『보이첵(Woyzeck)』 을 연상시키는 순간도 발견했습니다. 상하이 버전에서는 이러한 구성에 중국의 4대 민간 전설 중 하나인 『백사전(白蛇傳)』의 이야기를 추가하여, 동서양의 고전이 교차하는 변주를 선보입니다.

 

당나라 시대에 처음 등장한 『백사전』, 즉, 하얀 뱀 전설은 여러 판본이 존재하며 다양한 매체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세부 내용은 판본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백사 백소정(白蛇)과 시녀 청사(青蛇)가 오랜 수련 끝에 인간으로 변신합니다. 그들은 ‘허선(許仙)’이라는 약사 청년과 만나고, 백소정과 허선은 서로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 합니다. 하지만 백소정이 하얀 뱀이라는 걸 눈치챈 승려가 둘 사이를 반대하고, 허선이 아내의 정체를 알 수 있게 특별한 술을 준비합니다. 술을 마신 백소정의 정체가 드러나고, 놀란 허선은 그만 죽고맙니다. 백소정은 허선을 살려내지만, 승려에 의해서 탑에 갇히게 된다는 내용입니다(김혜수, 5-20; 국립아시아문화전당; Zhuang & Cui, 47-48). <슬립노모어>에서는 뱀 신부와 신랑의 결혼식, 피로연, 그리고 마녀의 수장인 헤카테에 의해 술을 마시게 된 신부, 이에 따라 벌어지는 비극이 진행됩니다. 주로 대나무 숲, 정신병동, 약초방, 이락원 공간에서 『백사전』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관람에 실패했지만, 오직 소수만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도 놓치지 마세요.

 

『맥베스』가 유혹과 욕망에 굴복한 비극적 결말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펀치드렁크가 왜 『백사전』을 상하이 버전 공연에 더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저는 세 마녀, 레이디 맥베스, 백소정의 서사가 같은 결을 가지고 있어 교차하는 장면을 기대했습니다. 마녀의 예언/주술과 독, 변신과 약방이라는 동서양의 초자연적인 힘과 분위기가 맞물립니다. 마녀, 레이디 맥베스, 백소정 모두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표상되고, 결국 제재나 처벌을 받는 서사라는 공통점도 발견할 수 있고요. 마녀와 맥베스의 레이브(Rave) 장면과 백소정과 신랑의 피로연 장면에서 광기의 이미지가, 레이디 맥베스와 백소정의 서사에서 피의 이미지가 중첩되었습니다. 다른 등장인물(주로 헤카테, 간호사, 박제사, 풀튼 등)이 『백사전』 세계관과 『맥베스』 세계관의 경계를 넘나들며 만드는 장면들은 상하이 버전의 특별한 관극 포인트입니다.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구성하기

마지막으로 제가 관람한 방식을 공유드리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맥베스』 줄거리를 알고 있다면, 공략 방법을 찾아보지 않고 관람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세계관에 몰입하고, 우연히 만나는 이야기의 파편들을 가지고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슬립노모어>에는 배우와 관객 간 1:1 상호작용, 1:소수 상호작용이란 특별한 장치가 있습니다. 이 중 숨겨진 공간으로 갈 수 있는 상호작용도 있답니다. 제가 경험한 1:1 상호작용은 한 인물과 함께 전화 부스에 숨겨진 공간으로 들어가 어떤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어요. <슬립노모어>는 주로 움직임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1:1 장면에서는 아주 짧지만 배우의 대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 취향이지만 어떤 등장인물인지 파악이 쉽지 않은 인물을 따라다니는 것이 더 흥미로웠어요. 주요 인물의 메인 서사보다 희곡에 드러나지 않았던 삶의 한 순간을 발견할 때마다 너무 짜릿했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이 머리를 정리하는 모습과 계속 가방을 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장면, 포터가 로비에서 일을 하는 와중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하는 모습을 보는 것들이요. 매키넌 호텔 세계관에서 살아가고 있는 NPC의 삶의 파편을 목격한 기분도 들고, 이러한 일상적 행동이 전체 서사에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유추해 보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사진=Mathieu Rabary

 

관객도 등장인물이 되다

시간이 흐를수록 메인 줄거리에서 이탈자들이 발생합니다. 극이 진행되지 않는 공간에서 지친 다리를 풀어주는 관객, 서랍 안 쪽, 액자 뒷면, 책, 편지 등 궁금했던 공간의 소품을 보는 관객, 공간 자체가 신기해서 어떤 공간들이 있는지 돌아다니는 관객, 맨덜리 바로 돌아와 음료를 마시는 관객, 공간 곳곳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관객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모두가 동일한 가면을 쓰고 있는 탓일까요? 관객이 공간에서 수행하는 행위를 밖에서 보고 있으면 제가 숨겨진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엿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잘 놀라시는 분들은 이 점을 유의하시면 좋습니다. 어둡고 안개가 깔린 공간에서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긴장하며 걷게 되는데,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관객을 보고 소리 지를 뻔한 적도 몇 번 있었답니다.

 

2025년 4월부터 상하이 버전 공연은 특별판으로 운영되는데요. 등장인물 세부 묘사와 뒷이야기가 추가되고, 3회차의 루프를 2회차로 줄이며 이야기 전개 방식과 동선 등이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티켓은 프리쇼(Preshow)가 포함된 티켓과 일반 티켓으로 구분됩니다. 프리쇼 티켓(Adventure Spirit)을 선택하시면, 입장 시 받은 카드에 따라 프리쇼 장면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특별판에서는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역대 <슬립노모어> 공연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하는 한국 버전의 공연에서는 상하이 버전의 공연과 어떤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 대한극장의 흔적이 <슬립노모어>의 세계관에 어떻게 녹아들었을지 너무나도 기대됩니다.

 


참고문헌

김혜수. 현대 음악극에서의 ‘백사전’의 수용 양상. 2024.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내 석사학위논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백사전”. 아시아문화박물관 아카이브, n.d.,

archive.acc.go.kr/infoResManage/infoResManageView.do?ifmrsId=917658. accessed 20 Aug. 2025.

Zhuang, Li & Cui, Xiangfen. “Macbeth and The Legend of White Snake: Transcultural, Immersive Shakespeare in Sleep No More Shanghai”. Frontiers in Asia-Pacific Language and Culture Studies, vol.3, no.1, 2024, 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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