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그 어떤 이들보다 셀 수 없이 많은 무대에 선 노년 배우와의 모든 대화는 작품을 대하는 기본자세로 귀결됐다.
지나치게 기본적인 이야기라 도리어 다수의 인터뷰에서 잊힌 이야기.
오직 연습의 숭고함을 말하는 그의 말에서 연극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다.
“무대는 그 배우의 전인격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곳이에요”
선생님께서 대본을 가장 먼저 외우고 연습에 오셨다죠.
내가 제일 먼저 대본을 외웠다, 그거는 대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배우가 작품에 출연하기로 했으면 언젠가는 어차피 대본을 놓고 연습할진대, 대본을 누가 먼저 놓느냐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다만 나 나름대로는 이런 생각을 해. 연습이 두 달이다 그러면 보통 연습 보름 전에 대본을 받아요. 그럼 그 보름이 대본을 대충대충 훑어보고 오는 기간이냐, 난 아니라고 생각해. 연습 시작하는 날 각자 자기 나름대로 스터디를 해 와야 연습을 시작할 수 있다고. 대본만 외웠다고 그게 완성된 모형이나 색깔이 되는 건 아니잖아. 배우가 자기 것을 만들어 오면 연출이 자르고 붙이고 조합해서 퍼즐을 맞춰가는데, 그 과정도 시간이 걸린단 말이지. 근데 준비를 안 해오면 책(대본) 보고 읽고, 또 읽고, 독회하는 데 연습의 반을 소모한다고. 그럼 실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잖아. 요즘에 무슨 혁신, 무슨 변화, 이런 말이 회자되고 있는데, 연극도 짧은 연습 기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좀 있어야 되지 않겠나, 이게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지.
한두 달의 연습 기간이 짧다고 생각하세요?
아, 길지 않죠, 당연히.
선생님께서는 어떤 기준으로 연극을 선택하시나요?
배우는 스스로 하고 싶다고 해서 작품에 출연할 수가 없다고. 이번처럼 요행히 제의가 왔을 때, 내가 이만큼 노력하면 웬만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면 선택하게 되지. 예를 들어, 이 작품은 전혀 가능성이 없다거나 작품에 접근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안 하죠. 그리고 내가 텔레비전을 활발하게 할 때는 자꾸 꼬리를 물고 섭외가 오니까, (연극 하려고) 선뜻 시간을 낼 수가 없어. 일찌감치 섭외가 온 연극이 하고 싶다 그러면 그 전에 연습 기간을 만들어. 그 연습 시간에 내가 충족될 수 있을 때 출연하는 거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자기 할 일 다 하면서 연극을 하는 천재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좌우지간 연습하는 데 이 빠지듯이 가끔 와서는 안 된다는 거지. 연습에는 아주 충실히 임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야.
후배 연기자들이 준비를 제대로 안 해 올 때면 야단도 치고 그러세요?
아니, 지 밥그릇은 지가 챙기는 건데, 내가 왜 야단을 쳐. 근데 이번 연극에서 그 말은 했지. 너희 대사 수 가지고 (대본 빨리 외우기 힘들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건 자세다. 내가 지금 대본을 놓은 게 대수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할 일이 없고 시간이 남아서 한 건 아니다. 우린 직업인 아니냐. 프로페셔널, 프로. 남한테 보여주자고 이거 하는데, 그런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어떻게 돈 내고 와서 보라 그러냐. 그런 생각이야, 나는.
이번 작품 <황금연못>은 대사량이 무척 많은 것 같긴 해요.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것도 있는데, 이건 대수가 아니죠.
대본에 지문도 굉장히 많던데, 선생님께서는 지문을 충실히 따르는 편이세요?
대개는 지문을 따라 움직이지. 근데 꼭은 아니지. 지문에 나와 있는 동작하고 연출이 원하는 동작하고 똑같지 않을 수가 있어요. 그럼 그땐 지문은 무시되고 다른 표현이 만들어지겠지.
대본은 어떻게 외우시는지, 또 어떻게 인물에 접근하시는지, 선생님께서 작품을 준비하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나 나름대로 시간을 투자하는 거지. 대본을 미리 습득했다는 것은 그만큼 노력이 따랐다는 거야. 어떤 방법으로든지. 노력 없이 되나. 더구나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이 나이에. 인물 접근 방식은, 글쎄 뭐 그건 다른 사람들하고 대동소이할 것 같아. 배우가 인물에 접근하는 데 대개 여러 가지를 참작하잖아. 그 사람의 국적이든지, 나이든지, 학력이든지, 대인 관계든지, 뭐 이런 것들을 나름대로 종합해서 작품에 나타나 있는 인물을 만드는 거지. 그러니까 결국 배우가 표현하는 인물은 그의 전인격인 거야. 자신이라는 토대 위에 스스로 설정한 인물을 접합시키는 거니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생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노만이라는 인물은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노만은 사람은 죽는다, 이 생각을 평생 곁에 두고 살아온 사람이야. 그런데 요즘은 오 분이 멀다 하고 죽음은 어떻게 오는 건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 거기 아주 몰입돼 있는 것 같아. 모든 상황을 죽음과 연관해 생각하고 얘기하고 행동하지.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아. 그렇다고 이 인물이 삶에 부정적이진 않아.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살고 싶어 하는 절박함이랄까, 노만한테는 그런 게 느껴져요. 그러니까 만날 무슨 일이라도 하나 하려고 신문 구인란을 보는 거지. 인컴(수입)으로 생활에 도움이 되겠다, 이게 아니라, 뭔가 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생존감을 느끼고 싶은 거야. 사회가 돌아가는 톱니바퀴에 끼어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자기 확인을 갈구하는 것 같아.
노만이 선생님 삶에 맞닿아 있는 캐릭터여서 이 작품에 더 참여하고 싶으셨다고요.
그럼요. 노만의 상황은 지금 내 삶의 위치와 비슷하잖아. 죽음에 대한 생각이 수시로 오는 걸 느끼지, 나도. 나 같은 경우는 이 나이까지 버티고 견뎌서 아직까지 건강하게 작업에 임할 수 있어서 행복하지만. 젊은이들하고 같이 작업할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야. 무슨 이유에서건, 사회에서 소외돼 있으면 자괴감을 느낄 수 있어. 그런데 이제 내 나이는 통상 생을 정리하고 마감해야 할 때 아니야. 어떻게 마무리 짓느냐, 요새 말하는 웰다잉(Well-Dying)하고 연관되는 건지도 모르지만, 욕심 사납지 않고 곱게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연극은 내 생을 지탱해주는 축이야”
이번 역은 이순재 선생님과 같이 맡으셨죠. 더블 캐스트로 연극에 참여하시는 건 이번이 처음이시라고 들었어요.
더블 캐스트는 평생 안 했어요. 이번이 처음이야. 그런데 더블도 그냥 더블이 아니야. 우리도 더블, 상대역도 더블인데, 이게 두 팀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교차 출연을 해야 한단 말이야.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고민스러운데, 이미 공연 날짜는 공고가 됐고, 인터넷 매표까지 진행되고 있으니, 뭐 도리가 없어.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더블 아니야? 매일 나만 연습할 순 없잖아. 하루 나, 하루 이순재 씨, 이렇게 해야지. 또 나문희 씨가 상대역을 할 때도 있고, 성병숙 씨가 상대역 할 때도 있고, 머리가 복잡하다고. 이제 공연까지 한 달쯤 남았는데 연습 스케줄을 보면 아직 연습 시간이 널널한 것 같아. 근데 가만 들여다보면 연습 날짜가 별로 없더라고. 오전 오후로 연습 스케줄을 조금 조정했는데, 그래도 절대량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지. 모르겠어요, 밖에서 보기엔 더블 캐스트 공연이 다양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나하고 나문희 씨, 나하고 성병숙 씨, 이순재 씨하고 나문희 씨, 이순재 씨하고 성병숙 씨, 그러니까 네 가지 색깔이 나올 수 있다는 거지. 그런데 실제로 공연이 어떻게 알차게 만들어질 수 있느냐 하는 건 역시 연습에 달린 거라고.
충분한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올라야 하는 건 배우의 기본자세겠죠. 그런데 선생님처럼 오십 년 넘게 무대에 서신 분께서 연습량을 걱정하신다는 이야기는 믿기 어려운 미담처럼 들려요.
연극은 연습 없이는 백 년 한 사람도, 이백 년 한 사람도 안 되지. 그게 무슨 수로 돼?
개인적으로는 전작인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 선생님께서 표현하신 죽음을 목전에 둔 인물을 잊을 수 없어요. 기력이 느껴지지 않던 몸, 표정의 미세한 구겨짐, 파르르 떨리던 손, 그런 작은 움직임도 반복된 연습을 통해 철저하게 계산된 동작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 그럼요, 당연히. 무대에서 어떤 동작을 임기응변으로 해낸다? 그게 한 회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30~40일 공연하는데 어떻게 매번 임기응변으로 해낼 수 있어. 그건 프란(플랜)이 있어야지. 연극에서는 제일 중요해요, 연습이.
연극에선 배우 간의 호흡이 중요한데…
그 호흡이 중요하다는 게 바로 연습이 중요하다는 얘기예요. 연습을 해야 호흡을 맞추지. 말을 주고받는 호흡이 묘하게 반 박자만 늦어도 관객은 바로 그걸 느껴요. 상대 대사가 나와야 하는데 왜 안 나오지 하고 바로 알지.
미숙한 배우들과 작업하게 되실 때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세요?
나는 이번 배우들하고 다 초면이야. 연극에서는 처음 만난다고. 우리 젊은 친구들, 젊다고 해도 다들 마흔이 넘었으니까 나름대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지만, 어쨌든 연극은 처음 같이해보는 거니까, 처음엔 낯설고 합이 안 맞고 그러지. 그러니까 연습을 통해서 상대의 호흡과 행동을 익히면서 서로 맞춰가는 거 아니겠어.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지, 작품이.
선생님은 왜 이런 큰 수고를 들여서 무대에 서세요? 재미있으셔서요?
글쎄, 이걸 재미로 하는 건 아니야. 다른 더 재미있는 게 있는데, 왜 여기 와서 재미를 찾아. (웃음) 이게 내 살아가는 축이니까 하는 거지. 뭔고 하니, 내가 스물 중반에 드라마센터 동랑 선생님한테 연극을 배우면서 그걸로 쭉 살아왔는데, 마흔 살쯤 되니까 먹고 살 수가 없어. 아마 지금도 그럴 거야. 예전보다는 좀 나아졌을지는 몰라도 연극만 해서는 처자식하고 같이 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그러니까 돈 받을 수 있는 텔레비전, 영화, 라디오에서 섭외가 오면 하는 거지. 그것들이 생활이라는 것과 연결되니까 손을 놓지 못해요. 어디서든 돈이 들어와야 먹고 살 거 아니야. 거기 매달려서 살다보니 오래 연극을 못한 기간이 있지.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은 연극을 하자고 해서 했어. 근데 요즘은 (다른 매체에서) 쓰임새도 덜하고 시간이 있으니까 나를 필요로 하는 연극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하자, 그런 거지. 시간이 남아서, 즐기려고 하는 건 아니야. 그렇다고 여기서 떼돈을 버나? 아니지. 그런데 이것 때문에 견뎌온 내 생이 있잖아. 나를 여태까지 지탱해준 축이란 게 여기 있다고. 그러니까 놓지 못하는 거지. 그게 아니면 왜 고생스럽게 이걸 하고 있어. 넌 뭐 혼자만 그렇게 심각하고 고상하게 생각하면서 사느냐,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 근데 나는 어떤 나름대로의 사명감 같은 의식이 각자에게 있음으로 해서 연극이 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2호 2014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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