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가 더뮤지컬 칼럼을 통해 공연 속 여성 캐릭터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이름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아이의 안녕을 기원하는 부모의 염원부터, 나를 증명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삶의 여정까지. 그러나 때로 이름은 타인이 규정한 편견과 차별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뮤지컬 <초록>의 ‘토마’는 자신의 독특한 태생을 이름으로 기억한다. 세상은 자신들과 다르게 초록색 눈을 가진 그를 ‘녹색 눈을 한 말’이라 조롱하며 배척한다.
토마가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라면, 유희는 그 이름을 스스로 다시 쓰는 인물이다. “유희는 잠깐 젊음은 짧다 / 미모는 더 짧아 / 그러니 시들기 전에 서둘러 팔아야지”(‘꽃’)라는 가사처럼, 그의 이름은 놀 유(遊)에 놀이 희(戱), ‘즐겁게 노는 존재’로 지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생산적이기보다 소비되고 관상되는 인물. 여성에게 자아실현의 기회가 허락되지 않던 시대, 유희는 굳은 의지와 행동으로 자신의 이름을 재정의한다. 움직일 유(抁) 빛날 희(熙), 움직이며 빛을 발하는 유희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아는 유희는 이를 이루기 위해 직접 움직인다. 그는 자신을 “모두를 이끌 사람”(‘내가 원하는 건’)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유능한 이에게 가업을 물려주겠다는 아버지의 선언은 유희가 아무리 큰 성과를 내도 여성인 그에게 닿지 않는다. 현재의 한계가 분명하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다시 배를 띄운다. 유희에게 배는 단순히 아버지와 사회의 인정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더 넓은 세계를 갈망하는 유희, 그 자체다. 그렇기에 그는 망설이지 않는다.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열망이 앞서기에 어떻게든 길을 낸다. 감정과 욕망을 스스로 언어화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그는 그렇게 ‘꽃’이 아닌 ‘선주’가 된다.
이 과정에서 유희는 자신의 이름 외에도, 선입견에 가려진 단어들의 의미 또한 다시 쓴다. 세상은 꽃처럼 얌전해야 할 존재가 스스로 나서는 것을 ‘수치’라 칭한다. 그러나 유희는 오히려 꽃처럼 박제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수치’라 말한다. 혐오 섞인 시선 때문에 초록을 “재앙의 전조”라 말하는 토마에게 “생명이 움트는 색”이라 고쳐 말하는 이도 유희다.
이처럼 세계를 자신의 언어로 다시 읽어내는 태도는 사랑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뜨겁게 서로만 바라보는 사랑이 아닌,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길을 걷는 파트너로서의 사랑을 원한다. 사랑이 새로운 가능성과 성장을 여는 동력임을 알기 때문이다. 닻이 아닌 스스로가 바람이 되라는 토마의 응원은 유희가 익숙한 세계를 떨쳐내도록 돕고, 토마는 자신을 믿어주는 유희의 시선 속에서 만선을 이루고 마침내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세계를 넓혀간다.

유희의 주체적인 태도가 빛을 발하는 지점은 역설적으로 토마와의 이별이다. 토마의 이부동생 영진의 등장으로 신분을 초월한 사랑에 균열이 생긴다. 동생의 귀환은 반갑지만, 시간이 흐르며 토마는 그에게서 위기감을 느낀다. 여전히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장인은 영진을 환대하고, 유희는 영진과 새로운 물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부쩍 가까워진다. 좁아진 자신의 자리를 확인할수록 그동안 억눌러왔던 열등감과 불안, 질투가 피어오른다. 오래 묵혀둔 감정은 유희와 영진의 관계를 의심하는 망상으로 이어지고, 토마는 보이는 것도 보지 못한 수치스러운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고립을 택한다.
여기서 <초록>은 질투를 통해 인간의 파멸을 그린 <오셀로>의 서사를 변주한다. 데스데모나가 끝내 오해를 풀지 못한 채 남편에게 살해당하는 것과 달리, 유희는 끝까지 진실을 말하며 심연으로 가라앉는 토마를 붙든다. 그러나 토마의 길이 더 이상 자신과 같지 않음을 알게 된 유희는 기꺼이 손을 놓는다. 어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의 마음을 깊게 바라보고, 그의 결정을 존중하며, 안녕을 빈다. 유희는 상실이 아닌 타인의 세계를 존중하는 방식으로서의 이별을 선택하는 셈이다.
유희는 누구보다 깊게 자신을 믿으며 세상이 정해놓은 낡은 단어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쓴다. 어떤 관계나 위치에도 자신을 고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그는 새로운 시대와 희망의 상징이 된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 움직이며 빛을 발하는 존재로서 더 크게, 더 많이, 더 높게, 더 멀리 나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