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리뷰] <반야 아재> 임강희는 왜 심은경을 배신했을까?

글 |나혜인(여성신문 기자) 사진 |국립극단 2026-06-01 1,071

 

세계 음악사의 영원한 전설 마이클 잭슨(1958~2009)의 전기 영화 <마이클>(감독 안톤 후쿠아)이 극장가를 강타하였다.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난 지 약 20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에 살아 숨 쉰다는 증거다. 그를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천재성’이 빠지지 않는다. 음악과 춤, 기존에 없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한 이를 향한 아낌없는 찬사다.

 

마이클 잭슨이 태어나기 20년 전, 일제강점기 조선에도 천재성으로 박수 받던 음악가가 있었다. 조선 최초의 재즈 작곡가이자 트로트의 시초인 ‘만요’(漫謠)의 개척자 김해송(1911~19??)이다. 1930년대 혜성처럼 등장한 김해송은 미국의 재즈 문화를 조선에 이식하며 대중가요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지금의 K팝 발판을 만든 선구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해송은 ‘연락선은 떠난다’, ‘잘 있거라 단발령’ 등 당대 젊은이들이 깊이 공감할 만한 애환을 노래로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대표 만요인 박향림의 ‘오빠는 풍각쟁이야’ 역시 김해송이 작곡한 곡이다.

 

지난 5월 22일부터 5월 31일까지 공연된 국립극단 연극 <반야 아재>에는 ‘나무아미타불’, ‘청춘계급’ 등 김해송의 명곡들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음악으로 흐른다. 그중에서도 ‘나무아미타불’의 경쾌한 재즈 선율과 해학적인 가사는 작품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안톤 체호프의 고전 <바냐 아저씨>를 재해석한 <반야 아재>는 몰락을 앞둔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의 배경을 1930년대 일제강점기 충북 영동의 정미소로 옮겨온 번안극이다. 원작의 바냐는 반야사에서 수행을 하다 온 ‘반야 아재’ 이보로 새롭게 탄생한다. 김해송의 ‘나무아미타불’ 속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관용의 노랫말에서는 원하는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한 채 시골 정미소에서 무기력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는 이보의 허망한 삶이 겹쳐지고, “네까짓 게 버팅기면 나는 너를 옳다 할까 / 그런대로 나만 따르면 족두리나 씌워주지”라는 유혹의 노랫말에서는 죽은 누나의 늙은 남편인 병후와 재혼한 젊고 매혹적인 여인 영란을 향한 이보의 연모가 엿보인다.

 

 

이난영과 오영란, 모던걸사(史)로 읽는 <반야 아재>

김해송의 삶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그의 아내이자 불멸의 가수라 불리는 이난영이다. 이난영 또한 일제강점기 조선 음악사를 개척한 인물로, 지조와 절개를 강요 받던 전통적인 여성상을 깨고 근대 여성의 주체성을 노래하였다. 조선 최초의 여성 보컬 그룹 ‘저고리 시스터즈’를 이끌며 신세대 여성의 롤모델로 자리매김한 것은 물론, 여자는 결혼 후 일을 그만두고 내조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하지 않으며 김해송과 대등한 파트너로서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이난영을 보고 자란 딸들은 훗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한 대한민국 최초의 글로벌 걸그룹 ‘김시스터즈’가 되었다.

 

당시 조선 여성의 삶이 모두 이난영처럼 주체적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극중 배우 임강희가 분한 영란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영란은 ‘사의 찬미’를 부른 조선 최초 여류 성악가 윤심덕과 함께 도쿄음악학교에서 유학한 모던걸임에도 불구하고, 결혼 후 시골 영동에 갇혀 노래 한 곡조조차 자유롭게 부르지 못하는 억압적 환경에 놓여 있다. 존경과 사랑으로 맺은 결혼은 주변으로부터 돈과 명예를 노린 처사라고 의심받고, 통풍에 걸려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남편의 병수발을 하느라 잠도 편히 자지 못한다. 여기에 이보가 시도 때도 없이 구애를 퍼부으니 골치가 아프다. 영란에게는 이 뒤숭숭한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가 절실하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쓸쓸한 가을이 찾아올 무렵, 영란은 양딸 은희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젊은 의사 해일에게 조금씩 마음이 흔들린다. 자신은 쇠약한 남편이 있는 몸인 데다, 친딸처럼 지내는 은희를 배신할 수 없어 이성을 붙잡으려 하지만, 그 순간 해일도 자신을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930년대 조선은 새로운 연애관이 급부상하고 있었다.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은 서구의 자유주의에 매료되어 가문과 가문의 결합인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자유연애’를 부르짖었다. 성(性)에 대한 담론도 활발했다. 특히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던 ‘정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신여성을 대표하는 예술가 나혜석은 ‘신정조론’을 설파하며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라고 선언했고, 여성운동가 허정숙은 “정신적인 사랑 없이도 오직 성적 만족만을 위한 육체적 결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케케묵은 유교 윤리가 지배하던 조선 사회는 정조 관념을 거부하는 모던걸들을 손가락질하며 ‘못된 걸’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제 막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의 분리를 머리로 이해하기 시작한 신여성 영란에게 생명력을 뿜어내는 해일이라는 존재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영란은 파국을 막기 위해 영동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때마침 이보가 벌인 소동은 떠나기 위한 완벽한 명분이 된다. 병후와 함께 영동을 떠나 인천항으로 향하는 날, 영란은 정미소에서 마주친 해일과 격정적인 작별 키스를 나눈다.

 

전통적 서사에 익숙한 관객들은 순진한 은희의 마음을 짓밟은 영란이 “은희를 배신했다”며 도덕적인 비난을 퍼부을지 모르지만, 정작 영란의 얼굴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다. 영란에게 해일은 영동이라는 폐쇄된 공간을 벗어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찰나의 ‘육체적 유희’이자 억압된 삶에 던진 단 한 번의 ‘주체적 이탈’이다.

 

반면 배우 손숙이 연기한 집안의 큰 어른 말례와 배우 심은경이 연기한 은희는 거세게 변화하는 시대로부터 격리된 외로운 여성들이다. 말례는 잡지 『모단여성』을 읽으며 나름의 철학을 논할 만큼 지식에 대한 강한 갈망을 지니고 있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난 탓에 배움에 대한 선망만 남아 있다. 은희는 영란보다 젊지만, 아버지의 생활비를 대기 위해 영동에 남아 삼촌과 함께 정미소를 꾸려가는 고단한 지역 여성 노동자 처지다. 두 여성 모두 영동에 얽매인 존재다. 영란이 해일과의 유희를 홀가분하게 털어내고 떠나버린 무대 위에는 『모단여성』 책장을 넘기는 노파 말례와 묵묵히 정미소 장부를 정리하는 처녀 은희의 씁쓸한 정적만이 머문다. 변화하는 찬란한 시대를 좇지 못하고 변두리에 정체된 인간의 비애다.

 

 

세상의 모든 인간이 영란이나 해일, 혹은 병후처럼 자신의 욕망에 솔직할 자유나 선택의 권리를 누릴 수는 없다. 누군가는 말례고, 누군가는 은희며, 또 누군가는 반야 아재다. <반야 아재>의 진정한 클라이맥스는 영란과 해일이 퇴장한 이후 발생하는 은희의 행위에서 터져 나온다. 남겨진 은희는 이상은 한없이 높지만 현실은 한없이 비루한 세상 속에서 해야 할 일을 찾는다. 오열하며 좌절하는 삼촌 이보를 가만히 품에 안은 채, 우리 계속 살아나가자고, 언젠가 우리에게도 서서히 안식과 구원이 찾아올 것이라고 나지막이 읊조린다. 이는 19세기 러시아에서 20세기 조선의 땅으로 온 안톤 체호프의 소냐가 21세기 한국 관객들에게 건네는 현실적인 위로다. 그리고 은희의 위로는 연기자로서 22년이라는 세월을 뚝심 있게 걸어온 30대 여배우 심은경의 목소리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조광화 연출의 <반야 아재>는 1890년대의 서구 고전을 1930년대 조선의 역사적 맥락 속에 재위치시키면서도, 결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대를 건너는 번안으로 한 발짝 전진하고, 텍스트를 확장하는 연출을 통해 분진하며, 존재 자체로 상징성을 만들어 내는 배우와 함께 2026년의 관객 곁에 선다. <바냐 아저씨>는 박제된 ‘권위’가 아닌, 살아 숨 쉬는 ‘무대’로서 동시대와 조응한다. “우리는 왜 고전을 무대 위로 소환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모범적인 답안이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