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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그날들> 최재웅·지창욱 [No.133]

글 |송준호 사진 |김도원 영상|안시은 2014-11-04 8,780
되돌아온 그날들 

<그날들>은 ‘신념’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무영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고,  정학은 그런 무영을 추억하며 현재를 산다. 
<그날들>은 또 ‘오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래전 사건을 둘러싼 오해가 풀리면서 극은 대단원을 맞는다. 
‘그날들’은 이런 신념과 기억, 오해라는 키워드가 함축된 제목이다. 
무영에서 정학으로, 무영에서 다시 무영으로 무대에 서는  최재웅과 지창욱의 경우는 어떨까. 
지금의 그들을 구성하고 있는 ‘그날들’ 속으로. 

 


스타일링|김세미나    헤어·메이크업|김민경  (최재웅)    

 

스타일링|지상은    헤어|정미영    메이크업|심수영  (지창욱) 


다가올 그날들이  중요하다

 


“그냥 뭐, 음, 뭐 그런 거죠, 흐흐, 쩝.” 최재웅과 대화할 때 유독 많이 나온 말들이다. 그를 오랜 시간 봐온 팬들은 이런 그에게 ‘시크하다’라는 애정 어린 표현을 쓴다. 이런 시큰둥과 시크 사이의 태도에선 좀처럼 속내를 읽을 수 없다. 어색해서일까. 혼자 객석을 향해 두 시간 넘게 떠들고 노래해야 하는 <헤드윅>은 오죽할까. 그런데 오히려 ‘웅드윅’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윤곽이 잡힌다. 사실상 헤드윅을 위한 이 원맨쇼에서 그가 무대에 오르는 날은 유독 이츠학이 눈에 더 들어온다. 그가 혼자 돋보이려 애쓰기보다 함께하는 배우들에 맞춰 페이스를 조율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신을 작품의 일부로 쓰며 큰 그림을 완성하는 게 최재웅이 무대를 즐기는 방식이다. 

그런 그가 드물게 ‘나와 잘 맞는다’며 욕심을 보였던 게 <그날들>의 무영이었다. 그의 실제 성격을 잘 담아낼 수 있었던 그릇이 무영이었기 때문이다. “전 굉장히 사소한 문제, 가령 ‘양말 뭐 신을까, 버스 탈까 지하철 탈까’ 같은 건 좀 고민해요. 반대로 엄청나게 중요하거나 인생이 달린 문제는 의외로 쉽게 결정하거든요. 그런 점이 무영과 비슷하죠.”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의 가사에는 그런 그의 생각을 그대로 옮긴 듯한 내용이 담겨 있기도 하고, 또 연습 때부터 그의 스타일대로 무영을 만든 부분이 많아 애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날들>의 재연 소식과 함께 발표된 건 뜻밖에도 최재웅의 정학이었다. 초연 때부터 이미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거론되던 정학 역을,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제작사에서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예정된 수순일 수 있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이를 수락한 것은 최재웅 본인이다. “작품을 경험해 보니까 캐릭터 하나보다 작품 전체의 깊이나 상황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건 결국 정학이더라고요.” 그의 말대로 과거의 인물인 무영은 그런 점에서 표현의 한계가 있다. 반면 정학은 극 중에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이다. “모든 상황에서 정학의 감정 증폭이 예민하게 드러나고 있어서 주제의 표현에는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쨌든 그는 이제 정학이 됐다. 불의에 맞서 사랑과 신념을 선택한 무영의 모습은 멋진 반면 상당 부분 비현실적인 데가 있다. 반면 정학의 삶은 얼핏 평범한 보통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재웅이 보면 정학도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정학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한편으론 시대나 상황에 휘둘리는 사람이에요. 또 그런 과정에서 강한 척해야 하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연습하다 보면 그는 꿋꿋하게 버티고 살아왔다는 느낌을 받아요. 마치 우리 주변의 아버지나 어르신들처럼요.” 

지난해 말 득녀를 하면서 최재웅도 이제 아버지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됐지만, 그는 여전히 재미있는 삶을 꿈꾼다. 더 유명해지거나 인기를 얻고 싶은 욕심은 없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재미’다. “무조건, 뭐가 어떻게 됐든 재미있게 사는 게 제일 중요해요. 물론 나이가 들면서 알아가는 부분도 있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복잡한 문제들도 있어요. 하지만 전 기본적으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때 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 같아요. 분위기가 딱딱해지는 걸 천성적으로 못 견디거든요.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란 노래도 있듯이요.”

아이처럼 철없이 사는 성격 덕분에 그가 작품을 고르는 안목은 다른 배우들과는 좀 다르다. 한예종 연극원 시절, 음악원, 무용원, 미술원 등 다른 장르 전공생들과 즐겁게 협업했던 기억을 잊지 못하는 그는 이번 공연에 앞서 학창 시절에 했던 것과 비슷한 공연인 <천 강에 비친 달>에 가수 강산에, 무용가 김설진과 함께 참여한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 

벌써 데뷔 12년 차.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긴 세월 동안 그에게 의미 있는 여러 ‘그날들’이 있을 것이다. 그가 기억하는 그날들을 물었다. 하지만 최재웅은 예의 그 시크 또는 시큰둥한 말투로 툭 던지듯 답한다. “글쎄요, 전 지나간 건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편이라서. 다가올 날들이 기대되지, 지나간 건 뭐~ 흐흐.” 


천천히 걷는 인생

 


“안녕하세요!” 활기찬 인사와 함께 등장한 지창욱은 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촬영이 시작되자 그는 예열 과정도 없이 순식간에 몰입하여 멋진 포즈를 잇따라 보여줬다. 덕분에 촬영은 일사천리. 노련함과 자신감으로 충만한 그 포즈의 핵심은 눈빛이다. 거기엔 소년의 해맑음과 성인의 여유로움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그런 묘한 눈빛은 그가 지나온 여정에 뿌리를 대고 있다. TV 드라마에서 먼저 얼굴을 알린 그는 또래 배우들이 선호하는 미니시리즈 대신 베테랑 선배들이 많은 일일연속극에서 주로 활동했다. 촬영 현장에서 연기 초보인 그가 할 일이란 혼나는 것, 그리고 또 혼나는 것이었다. “철도 없고 연기도 못하니까 매일 혼났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아요.” 혼나면서도 굴하지 않고 연기의 정수를 흡수한 그는 단기간에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이때 <쓰릴 미>를 통해 뮤지컬과 본격적인 인연도 맺었다. “그때 너무 힘들었어요. 여의도에서 <웃어라 동해야> 촬영하다가 <쓰릴 미> 공연하러 신촌으로 15~20분 만에 달려가곤 했어요. 공연 끝나면 곧바로 또 여의도로 되돌아갔죠.” 

주목받는 드라마 스타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무대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였다. 무영과의 인연은 이때 시작됐다. 오랜만의 뮤지컬 출연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듯, 지창욱은 <그날들>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서의 재능을 스스로 입증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그에게 중요하다. 초연 때는 자신의 것을 캐릭터에 녹여내면 됐지만 이번에는 더 향상된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별로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연기의 업그레이드는 변화보다 깊이에 있다는 것을 그동안 체득한 경험을 통해 알기 때문이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상대방과의 호흡이다. “작년처럼 연습실에서 연출님을 비롯해 다른 배우들과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고 연습하면서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겠죠.” 

머리보다는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는 가치관은 철저한 행동주의자인 무영과도 자연스레 겹친다. 초연 당시 그가 캐릭터와의 부합도가 가장 높은 캐스트로 꼽혔던 비결은 이런 데 있다. 하지만 그는 무영처럼 대책없는 낭만주의자는 아니다. “솔직히 사랑을 위해 죽는다는 건 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아요. 제가 문제를 바로잡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웬만하면 그냥 융통성 있게 넘어가지 않을까요? (웃음)” 

곧 스물아홉 살이 되는 그는 서른 살을 앞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장래에 대한 생각이 많다. 좋은 배우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있지만 명확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스스로 정했다. 가령 배우라고 해서 일반 사람들을 불편해하거나 스스로 벽을 만들어 숨는 행동들이다.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 때 촬영 끝내고 해장국 집에서 (손)현주 형이 갑자기 사라진 거예요. 어디 있나 봤더니 뒤쪽 테이블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얘기하고 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깨달은 게 많아요.” 배우는 사람살이를 연기하는 직업인데, 사람들의 삶과 떨어진 인생을 사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처음 발견한 순간이었다. “저도 배우이기 전에 사람이잖아요. 어떻게 살아야 즐겁고 행복한 걸까 고민했어요. 결론은 스스로 갇히면 불행해진다는 거였어요. 그때부터 매니저 없이 혼자 여기저기 털래털래 다녀요. (웃음)”

누군가에게 그는 벼락 스타처럼 보일지 모른다. 지름길을 걸어 ‘한 방에 뜬’ 배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결코 ‘핫’했던 적도 없고 하이틴 스타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 말대로 그는 현장에서 욕을 먹어가며 한 계단씩 올라온 아날로그 배우에 가깝다. 그런 고생 끝에 그가 갖게 된 무기는 ‘눈’이다. “눈빛만으로 극의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선배들을 보면 그분들이 살아온 세월이나 경험이 느껴져요. 저도 열심히 살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느끼고 경험하면 그런 ‘눈이 좋은 배우’가 되지 않을까요?” 배우의 길을 천천히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는 벌써 20대답지 않은 깊이가 보이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3호 2014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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