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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타인의 삶> 장승조, 시간표에 맞춰 걷는 법

글 |이솔희 사진 |표기식 2026-07-22 130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연극 <타인의 삶>은 베를린 장벽 붕괴 전의 동독을 배경으로, 비밀경찰 비즐러가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 인기 배우 크리스타 커플을 감시하게 되면서 겪는 심리 변화를 다룬다. 장승조는 복합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 드라이만을 만나 7년 만에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다시 무대 위에 선 그는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표에 맞춰,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갈 뿐이다.

 

뮤지컬 <킹아더>(2019) 이후 7년 만에 다시 무대로 돌아왔습니다. 무대에 다시 서 보니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떨리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7년 만에 돌아오니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역시 무대는 귀한 곳이구나.' 무엇보다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요. 무대 위에 있는 제가 익숙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최근 잠깐의 공백기가 있었다 보니 <타인의 삶> 개막 직후에는 무대 위의 제가 조금 낯설더라고요. 그런데 꽉 찬 객석을 보면서, 그리고 관객들의 존재감을 마주하면서, 그 낯섦이 금방 익숙함으로 바뀌었어요.

 

안 그래도 <타인의 삶>은 배우들이 무대에 등장한 상태에서 공연이 시작되잖아요.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그 짧은 시간 동안 객석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더라고요.

가장 먼저, 그 공간을 느껴요. 관객분들의 에너지에 따라 공연장의 공기도 그날그날 달라지니까요. 그리고 관객분들을 마주하면서 무대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져요. 그 시간이 참 좋아요. 장승조에서 드라이만으로 로딩되는 시간이라고 느껴져서 재밌기도 하고요.

 

무대 복귀작으로 연극을, 그것도 <타인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늘 연극이 하고 싶었어요. 매체 연기를 할 때 배운 것들을 무대에서 잘 적용해 보고 싶다는 마음과, 무대에서 조금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했고요. 왜 <타인의 삶>이냐고 물으신다면, 작품이 가진 메시지와 그걸 표현하는 양식, 그리고 함께하는 동료들까지. 저한테는 안 할 이유가 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이에요. 무엇보다... 윤나무 배우의 추천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웃음) 윤나무 배우는 초연부터 함께한 만큼 이 작품을 누구보다 잘 아는 '도사님'이시기 때문에(웃음) 처음 연습할 때부터 제가 많이 의지했어요. 윤나무 배우와 오랜만에 무대에서 같이 연기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배우 손상규가 이번 작품의 각색과 연출을 맡았습니다. 손상규 연출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연출님이 '이 작품은 배우들의 앙상블을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배우마다 캐릭터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표현 방식이 다르기 마련인데, 연출님은 배우들이 앙상블을 잘 이룰 수 있도록, 어떠한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각자의 방향성에 맞게 길을 잘 잡아주셨고, 개개인의 표현 방식을 최대한 존중해 주셨어요. 여담이지만, 손상규 연출님의 천재성이 더 많은 이에게 소문났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웃음)

 

 

게오르그 드라이만이라는 인물을 무대에서 풍성하게 그려내기 위해 가장 크게 고민한 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드라이만이 가장 인간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권력이나 체제 앞에서 타협하는 모습, 다른 동료들에 대한 부채감,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 보여주는 모습, 신념의 변화 등 다양한 면모가 드러나는데, 이게 우리 모두의 모습과 가장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예를 들어 햄프 장관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금세 수그러들어서 동료인 예르스카가 다시 일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간청하고, 예르스카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함께 그려지죠. 극 중 대부분의 캐릭터가 극적으로 표현되는데, 드라이만은 그중 가장 '우리스러운' 인물이랄까요. 그 인간적이고 복합적인 모습을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또, 극 중 비즐러가 점점 변화하는 것처럼 드라이만도 변화하는데, 인물이 변화하는 모습에만 집중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요. 인물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그 인물을 표면적으로 표현하는 데만 신경 쓰게 될 것 같더라고요. 그보다는 관객분들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드라이만이 이런 인물로 바뀌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시기 바랐죠. <타인의 삶>은 제가 굳이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하지 않아도, 이미 텍스트 안에 다 들어있어요. 저희는 그냥 무대 위에 인물로서 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인물의 변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어쩌면 배우 입장에서는 쉬운 선택이었을 텐데, 승조 씨는 어려운 선택을 한 셈이네요.

사실 <타인의 삶>은 이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어려운 작품이에요. (웃음) 최소한의 장치 안에서 배우들의 호흡으로만 끌고 가는 작품이잖아요. 모든 신이 밀도가 높고요. 허투루 지나가는 장면이 없어요. 한 신이 한 신을 밀어주고, 또 그 신이 그다음 신을 밀어주죠. 그래서 매 장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어요. 매 공연 똑같은 연기를 해도, 배우들이 매일 새롭게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그래서 에너지가 새롭게 발생할 수 있도록, 작품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연습 과정에서 열심히 노력했어요. 그 덕에 공연을 하는 지금도 계속해서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고요. 그래서 요즘 ‘<타인의 삶> 하길 진짜 잘했다' 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웃음)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관객 앞에 서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데, 그 안에서 배우면서 성장하고, 때로는 부족함을 깨닫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소중해요.

 

드라이만을 통해서 '내가 이런 부분을 해낼 수 있구나' 혹은 '이런 부분은 여전히 내게 숙제로 남아 있구나' 싶은 부분을 여러 차례 발견했어요. 딱 꼬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 안에서 이 감정이, 이렇게 작동해서, 이렇게 말이 나오는구나' 라는 깨달음을 발견하는 경험이 저에게는 되게 새롭고 귀했어요. 특히 공연은 같은 대본을, 같은 상황 속에서, 같은 배우들과 계속해서 작용하면서 이어 나가는 작업이잖아요. 이 작업이 주는 생생함을 계속해서 느낄 수 있다는 게 즐거워요.

 

 

<타인의 삶>에는 '희망'이라는 키워드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드라이만에게 '희망'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드라이만에게 희망은 곧 살아갈 이유였을 거예요. 이 세상이라는 공간에서 내가 나로서 바로 설 수 있는 힘이었을 거고요. 극 중 드라이만이 발표한 '장벽 건너편 여러분께 고하는 글' 역시 드라이만에게는 희망을 품게 하는 수단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또, 희망은 드라이만이 변화하는 축이 되어준다고도 생각해요. 예르스카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던 그가 예르스카의 죽음 이후 또 다른 희망을 바라보며 나아가고자 하는 변화의 동력이 되어준다고 해야 할까요.

 

배우는 필연적으로 타인의 삶을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그 삶을 대신 살아내야 하는 존재입니다. 타인의 삶을 살아내는 작업을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데, 나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서 무대 위에, 카메라 앞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게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이 또한 ‘희망’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서 바르게 서 있으려고 노력하고, 이를 통해 좋은 영향력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제게 희망을 품게 해요. 

 

사실, 한 캐릭터를 소화할 때 다른 사람으로서 살아간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고 생각해요. 내 안에 있는 어느 한 부분이 툭 튀어나오면, 그걸 이용해서 내게 주어진 인물을 표현하게 되는 거죠. 즉 누군가를 연기한다는 건,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에요. 그래서 배우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노력해요. 그게 배우의 덕목이라고 생각하고요.

 

 

<타인의 삶>은 인간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최근 본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도 이번 작품을 통해 ‘타인의 삶’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제가 이 작품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면서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하게 된 것처럼, 이 작품이 관객분들께도 이런 질문을 안겨주었으면 좋겠어요.

 

공연의 마지막, 드라이만은 모든 진실을 마주한 후에도 덤덤히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승조 씨는 <타인의 삶> 이후 배우이자 인간으로서 또 어떤 길을 걸어갈 예정인가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 역시 속도에 집착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내 시간표에 맞춰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집중하고자 해요. 저는 우리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표에 맞춰서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거라는 생각이 늘 있어요. 욕심내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제 시간표대로 잘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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