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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칼럼] <유미의 세포들> 우리는 서로의 우주! 전복적이고 귀염뽀짝한 내면 탐색 서사

글 |현수정(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겸임교수) 사진 |샘컴퍼니 2026-08-21 163

현수정 공연 평론가가 하나의 테마를 정해 뮤지컬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우리 몸에는 키네신이라는 운동단백질이 있다. 세포 안에서 필요한 물질을 운반하는 기능을 한다. 세포 내부의 통로인 미세소관을 따라 마치 두 발로 걷듯 이동하는 모습이 SNS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신기하고 귀엽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 매 순간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많이들 감명받았다고 한다. 생물학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유미의 세포들>1)에도 유미만을 위해 살아가는 세포들이 등장한다.

 

“나는 하나의 우주”

“네가 처음 숨 쉬던 날 우리 함께 눈을 떴어. 아마 너는 몰랐겠지. 우린 항상 여기에서 오로지 한 사람 널 위해 살아가고 있어.” 세포들이 부르는 오프닝 넘버는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관객들의 영혼을 위로해 준다.

 

그런데 이 곡을 여는 가사가 “나는 하나의 우주”라는 점에 주목하면 좋겠다. 이는 유미뿐 아니라 세포들 역시 ‘세포 마을’을 품고 있는 소중한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김가람 작가는 “거대한 것 안에 작은 것이 있고, 그 작은 것 안에 또 거대한 것이 들어 있다”는 ‘범아일여’ 세계관을 담았다고 한다.

 

뮤지컬에만 등장하는 핵심 캐릭터인 ‘견습세포 109’의 행로는 이러한 시각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는 유미가 자기 삶의 주인공임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스스로의 이름을 찾는 여정을 보여준다. 원래는 무의식에 있어야 하는데 어쩌다 돌아다니게 된 예외적인 캐릭터다. 이름이 없기에 여기저기서 배척당하지만, 덕분에 금기를 어기며 새로운 세상을 연다. 이러한 행동은 유미에게 닿아, 그녀 역시 스스로를 옭아맨 기존의 규정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109와 유미의 플롯이 맞물리면서 나아가는 흐름이 흥미진진하다.

 

 

 

유미에게 필요한 장르는

109가 처음 등장하는 타이밍은 예사롭지 않다. 유미가 중요한 선택에 맞닥뜨렸을 때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녀는 평소에 동경하던 홍보팀으로의 부서 이동을 제안받았음에도 겁을 내고 망설인다. 그러자 세포들은 힘을 합쳐 ‘뇌 맷돌’을 돌리며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홍보팀의 쿨한 느낌에 환호하는 감성이와 설레발도 있지만, 회계팀의 안정적인 수입에 만족하려는 이성이와 실수할까 걱정하는 불안이 등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그런데 모두 유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간과하는 모습이다. 이때 ‘펑’ 소리와 함께 느닷없이 등장하는 109는 유미의 조용한 SOS 요청에 대한 응답이라고 볼 수 있다.

 

홍보팀의 일은 유미가 접어 둔 작가의 꿈과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109가 결국 무의식 공간에 들어가서 작가 세포가 갇혀 있는 방의 잠긴 문을 열어젖히는 것은 실은 유미가 오랫동안 바라왔던 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처음에 작가 세포는 다시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는데, 지금 자기가 나가면 유미 서사의 장르가 바뀐다는 이유다. 근래 유미는 남자친구 웅이와의 일에 일희일비해 왔다. 이삼십 대에, 아니 사실 나이와 관계없이 연애할 때면 많이들 그러하듯. 그런 유미에게 필요한 것은 그야말로 장르를 바꾸는 것 아닐까. 로맨틱 코미디보다 유미의 내면 탐색을 중심으로 하는 다른 무엇인가로.

 

 

 

혁신은 변방으로부터

유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웅이와의 관계인 만큼 세포 마을 전체를 리드하는 인물은 프라임 세포인 사랑이다. 그녀의 등장 장면은 <위키드>에서 글린다의 모습 못지않게 화려하고 빛난다. 여기에 세포들의 계급이 메이저와 마이너로 나뉘어 있다는 뮤지컬만의 설정이 세포 마을을 더욱 생동감 있게 그리는 동시에, 인간 사회를 떠올리게도 한다.

 

메이저 세포들은 사랑이를 도와 유미와 남자친구 웅이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유미를 긍정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성과 감성, 패션과 세수, 예의가 그들이다.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생존을 가능케 하는 출출이와 판사, 초감각을 지닌 촉과 텔레파시도 여기에 속한다. 그런가 하면 마이너 세포들은 유미가 외면하고 있거나 감추고 싶은 어두운 감정과 관련 있다. 불안, 응큼, 구질구질, 뒷북, 욕, 두려움, (항상 틀리는) 명탐정, 그리고 오래전 꿈인 작가 세포가 그러하다.

 

중독성 있게 도취시키는 흥겨운 음악과 ‘귀염뽀짝’한 비주얼로 가득한 무대지만, 이 뮤지컬은 전복적인 서사를 담고 있다. 109로 말하자면 이 모두에게 끼어들지 못하는 견습세포다. 그런 그가 유미를 불행에서 구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이는 세포 마을의 재앙을 막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포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트라우마가 있으니, 바로 3년 전의 대홍수다. 유미의 전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웠고, 마을에 이별 시계가 뜬 후 엄청난 비가 내렸었다. 수많은 세포가 물에 떠내려갔고 사랑이 또한 오랜 기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이번에도 웅이와 회사 동료 서새이의 관계로 인해 비슷한 패턴으로 마을이 풍비박산 나기 직전, 109가 이를 막는다.

 

이때 109와 기꺼이 함께하겠다는 인물들은 메이저들에게 무시당해온 명탐정과 불안이다. “하하, 무시해도, 사실 타격 제로! 하하하, 나는 믿어 우리들의 파워!” 노래를 들어보면 생각보다 멘탈이 강한 친구들이기도 하다. 메이저 화성으로 진행되는 씩씩한 노래와 마이너의 화성으로 끝나는 종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이들의 행보와 함께 세포 마을의 혁신은 변방으로부터 이루어지고, 유미는 스스로 소외시킨 부분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극의 말미에 유미는 드디어 109의 이름을 호명해 준다.

 

 

 

우리 모두의 ‘나다운’ 이야기

109와 마이너들이 유미를 구하기 위해 처음 공략한 곳은 무의식 저 밑에 자리한 우울처리장이다. 그곳에는 유미가 억압해 놓은 감정들이 먹구름으로 쌓여 있다. 또한 울부짖는 두려움 때문에 누구도 근처에 다가갈 생각을 못 해왔다. 그런데 109가 막상 만나 보니 그 두려움은 아주 작고 귀여운 존재였다.

 

여기서 문득 미카엘 엔데의 소설 『꼬마친구 짐크노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사막에 홀로 사는 남자가 있는데, 그에게는 원근법이 거꾸로 적용된다. 사람들이 멀리서 겁을 먹고 달아나는 바람에 그는 외롭게 지내 왔다. 그런데 짐크노프가 다가가서 보니 아주 평범한 키의 순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우리 마음속 두려움에게도 이처럼 일종의 ‘역 원근법’이 적용되는 것 아닌가 싶다.

 

109는 너무 오랫동안 외면받아 왔던 좀비 세포들에게도 당신은 괴물이 아니라며 이름을 찾아준다. 좀비들 중에는 유미의 용기도 있었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이 “스미골”하고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아련하게 떠올리듯, 정체를 되찾는 모습이 마음을 울린다.

 

억압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방식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오히려 이를 맞닥뜨리는 것이 욕망의 주체가 되는 과정일 수 있다. 이는 낙관적인 환상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일과도 맞물린다. 여기서 낙관적인 환상은 어두운 균열을 봉합하며 만들어낸 이상화된 이미지에 가깝다.

 

사랑이는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며 스스로와 마을을 안심시키려 든다. 재판을 벌여 109를 감옥에 가두는 등 본인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쓴다. 구질구질을 동원해 웅이를 붙잡으려는 최악의 수를 쓰기도 한다. 그러다가 예상과 다른 결과를 확인했을 때 차라리 사라지는 게 낫다며 절망한다.

 

사랑이를 진정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유미다. 그녀가 꿈을 통해 세포 마을에 등장하는 장면은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너 충분히 했어. 이제 그만해도 돼. 고마워. 그냥 너답게 너대로만 있어 줘.” 유미가 사랑이에게 말하는 대사는 스스로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유미가 객석을 거쳐 무대로 올라가는 연출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알려준다. 그렇게 이 뮤지컬에서는 유미와 세포들, 그리고 관객들 모두가 ‘그냥 그대로 충분한’ 주인공이 된다.

 

“너는 하나의 우주”

이 뮤지컬은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난삽해 보이지 않는다. 인물들 각자의 목적이 뚜렷한데, 유미가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벌이는 갈등과 해결이 분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이 음악과 연출의 콘셉트에도 잘 드러난다.

 

모두가 주인공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인 만큼 김성수 음악감독은 특히 앙상블의 역할을 강조했다. “연습 과정에서 앙상블 배우들의 특성을 관찰하며 장점들을 모아 편곡했다. 어떻게 보면 모두 함께 편곡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세포들의 마을이 일렉트로닉한 레트로 풍의 댄스 음악을 주조로 묘사되는 가운데, 현악기 반주를 활용한 유미와 109의 멜로디가 조금씩 부각된다. 두 인물이 좀 더 동시대성을 담아 부르는 컨템포러리한 넘버들은 인물들의 서사를 객석으로 확장하는 느낌을 준다. 이는 양정웅 연출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판타지와 현실이 어우러지며 생생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무대만의 매력을 살린” 의도를 잘 보여준다.

 

극의 말미에 세포들은 노래한다. “너는 하나의 우주. 너는 우리의 우주”라고. 세포들의 목적은 유미를 보호하는 것이지만, 그 결과는 유미뿐 아니라 세포들 각자와 세포 마을 전체를 지키는 것이 된다. 확장해서 생각하면 유미 역시 세상 속에서 연결성을 지니며 존재의 의미와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 있을 것이다.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를 믿어주며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곧 우주의 움직임에 동참하는 일 아닐까.

 


[1] 김가람 작, 최재광 작곡, 양정웅 연출, 김성수 편곡·음악감독, 이현정 안무. 티파니 영·김예원(유미), 최재림·정택운(109), 김소향·유리아(사랑), 임기홍·육현욱(명탐정), 이경욱(응큼), 박진주(불안), 이은호(웅이), 박시인·유소리(서새이) 등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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