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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리뷰] 붙들린 전미도·발붙인 이은...몸으로 생동하는 <갈매기>

글 |나혜인(여성신문 기자) 사진 |극단 맨씨어터 2026-08-28 225

 

지금껏 만난 연극 기반 여성 배우 대부분은 니나였거나, 니나가 되고 싶거나, 니나가 되고 싶었던 배우들이었다. 뜨레쁠레프가 되고 싶다고 콕 집어서 말하는 남성 배우는 마주한 적 없었다. 그러나 니나는 연극 무대에 오르는 여성이라면 한 번쯤 열렬히 탐하고 싶은 인물이었다. 한때는 <갈매기>라는 작품이 배우에게 거는 마법은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하였다. 머리로는 이런 이유를 짐작했고, 실제로는 저런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유와 저런 이유는 부차적인 수사였다. 그 기저에는 학생 때부터 중요하게 배우는 고전 희곡 중 여성 배우가 극의 중심이 돼 개인의 욕망을 처절하게 표출하는 작품이 몇 없다는 현실이 깔려 있었다. 이 때문에 “나는 갈매기예요. 아니, 나는 배우예요”라는 대사가 극 바깥의 의미로 읽힐 때도 있었다.

 

연극인들의 <갈매기> 사랑은 엄청나다. 올해는 극단 맨씨어터를 비롯해 국립극단, 극단 공놀이클럽, 안똔체홉극장 등이 연극을 올렸거나 올릴 예정이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등록된 <갈매기>만 27일 기준 2026년 15개, 2025년 11개, 2024년 10개, 2023년 12개다. 이런 식의 재현이 반복되면 작품이 ‘연극을 하는 사람’에게 더 의미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게 당연하다. 관객으로서는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는 점이 장점이요, 이야기가 쳇바퀴처럼 돈다는 감상은 단점이다. 그렇기에 <갈매기>를 무대에 올리는 행위는 더 이상 순수할 수 없다. 더욱 다양하고, 더더욱 앞서가는 작품이 쏟아지는 시대에 ‘왜’라는 질문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가끔은 이 정답 없는 싸움이 셰익스피어의 희곡보다 더 지난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맨씨어터의 <갈매기>도 그렇다. 2011년 오경택 연출과 함께 <갈매기>를 올린 바 있는 맨씨어터는 15년 전 마무리된 사건을 ‘왜’ 돌아보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물론 극단 창립 20주년을 앞둔 맨씨어터로서는 대표작을 그 시절 배우들과 다시 올린다는 확실한 명분이 있다.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 문득, 젊은 날의 열정과 동지의 끈끈함이 여전히 손안에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을 테다. 반면 새롭게 연출을 맡은 연출가 김정의 입장은 다르다. 15년 전 공연을 관람한 기억이 있다 한들, 당시 그의 위치는 외부인이었을 뿐이다. 그날의 끈적한 땀을 공유하는 자리에 툭 떨어진 외부인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재현을 재현할 것인가, 재현을 재창조할 것인가. 재현을 재현한다면, 회상하는 이들에게는 효과적이다. 하지만 새로움을 기대한 이들은 아쉬움이 남는다. 반대로 재현을 재창조한다면, 무언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추억하는 이들의 반발을 사기 쉽다. 어떤 선택을 하든 기대를 배반할 수밖에 없다.

 

지난 9일 개막한 <갈매기>는 전미도의 연극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동시에 한국 연극계를 이끌어 가는 새 얼굴 김정이 연출을 맡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탁월한 해석력과 감각적인 연출로 때로는 실험적이고, 때로는 대중적인 무대를 완성하며 장르를 횡단한 연출가 오경택의 뒤를 이어받는 자리다. 오경택은 최근만 하더라도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 부조리극의 상징을 재해석한 데이브 핸슨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등을 선보이며 고전의 생명력을 입증하였다. 경북 칠곡 할머니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로는 제10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연출상 등 3관왕을 차지하였고, 공연예술의 본고장 영국 진출 가능성까지 확장하였다. 김정 역시 무대 예술에서 출발해 다양한 장르로 뻗어가는 중이다. 얼마 전 배삼식 극본, 한승석 작창의 국립창극단 <보허자(步虛子): 허공을 걷는 자>를 연출하여 호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안았다.

 

 

공교롭게도 오경택이 <갈매기>를 선보였을 때의 나이는 현재 김정의 나이와 비슷하다. 40대 연출가 김정은 50대 연출가 오경택의 뒤를 이어받아 한국 공연예술의 새 심장이 될 수 있을까? <갈매기>는 이 세대교체를 궁금케 하였다. 물론, 2026년 버전의 <갈매기>를 관람하는 관객 중 15년 전 무대를 기억하는 관객은 몇 없을 것이다. 배우들의 위치가 달라지면서 관객 지형 자체가 바뀌었다. 대중 매체 배우로 자리 잡은 배우들과 함께하는 김정에게는 연극이 생소한 이들까지 아울러야 한다는 중대한 미션이 있다. 이에 김정은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자신만의 색을 여름날 땀 빼듯 쏙 빼었다. 여기에 배우 고유의 매력이 묻어날 수 있는 캔버스를 깔았다. 대신 김정의 작품이라면 빠질 수 없는 신체 표현을 더하는 것으로 균형을 맞추었다. 2011년 공연 당시 오경택이 집중한 부분도 신체였다. 그런데 이유는 조금 달랐다. 오경택의 신체는 희곡이 가진 정적 요소를 생동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김정과 오경택 모두 동적인 존재에 초점을 뒀지만, 오경택의 신체는 행위이고, 김정의 신체는 언어라는 차이가 있다. 오경택이 정적인 텍스트를 ‘일상에 밀착된 행동’으로 번역하였다면, 김정은 ‘억압된 내면과 욕망을 표현하는 기호’로서 몸을 활용하였다.

 

김정의 <갈매기>에서 신체 표현이 두드러지는 인물은 니나와 마샤 두 여성이다. 이 움직임은 여성의 언어(욕망)를 대신한다. 니나는 자기만의 언어를 가진 인물이다. 날개는 꺾여도, 욕망은 꺾이지 않는다. 니나의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물웅덩이 위에서도 타오른다. 이러한 언어 위에 쌓이는 몸은 직관적이다. 얼핏 과장되고 거추장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마샤에게는 자기만의 언어가 없다. 언어가 없다는 것은 욕망을 표현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마샤에게 욕망은 죄악이다. 삶을 너무나 쟁취하고 싶지만, 일찍이 자신의 한계를 마주한다. 욕망을 발화해 보기도 전에 거세당한 그는 인생의 상복을 입고,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죄를 씻는다. 입으로 뱉지 못한 말들은 몸짓으로 나타난다. 마샤의 몸은 타인에게 쉽게 닿지 못한다. 도망치듯 멀어지고, 튕겨 나가듯 거리를 벌린다. 모든 불꽃을 꺼트린 뒤에야 비로소 몸과 몸이 맞닿지만, 아무런 전율 없는 스침으로 다가온다.

 

김정은 이번 작품을 윤색하고 연출하며 새로운 시도 대신 작품 안의 욕망을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가 어떠한 이야기를 풀어낼 때 욕망 끝에 추락하는 여성을 ‘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공감하든 힐난하든 명확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욕망을 삼키고 ‘침묵’하는 여성 앞에서 취해야 하는 태도는 아직까지 그 정답을 알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침묵한 여성의 수가 훨씬 많을 텐데, 그들 앞에서 쉽사리 입을 열 수 없다. 이는 작중 두 인물의 언어와 몸이 유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은 언어와 몸의 분절을 통해 <갈매기>가 반드시 답해야 하는 ‘왜’에 대한 두 가지 답변을 얻는다. <갈매기>는 ‘왜’ 수십 년 동안 무대에 올랐는가. <갈매기>를 ‘왜’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무대에 올려야 하는가. 전자에 대한 대답은 15년 사이 더욱 성장한 전미도가 연기한 니나, 후자에 대한 대답은 15년 전 이름조차 없던 하녀 역을 맡았던 이은이 표현한 마샤에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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