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연 뮤지컬 평론가가 매월 주목할 만한 뮤지컬계 이슈를 심도 있게 들여다봅니다.

한국의 뮤지컬은 대학로와 대학로 외부의 공연으로 나뉜다. 이는 단순한 지리적 구분이 아니라 공연 개발 방식, 제작 및 투자 규모, 관객층과 공연 소비 방향성 등의 모든 측면에서 구별되는 ‘섹터(sector)’적 개념이다. 주지하다시피 두 섹터는 각각 중소극장 창작뮤지컬과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을 주요 콘텐츠로 채우며 성장해 왔다. 이 양상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정착된 것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로 소극장 뮤지컬의 스펙트럼을 넓혔던 창작자들이 등장하던 시점과 맞물린다. 한국에 뮤지컬 붐이 일었던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뮤지컬은 대형화를 통한 상업화를 지향하고 있었다. 당시 뮤지컬은 ‘대극장에서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며 소극장에서는 배우 출연료를 아끼기 위해 전혀 경험이 없는 신입 단원을 투입하는 등 개념과 실행 면에서 양극화 현상이 뚜렷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회적이고 졸속적인 대극장 공연이 아닌 소극장 규모에 맞춰 ‘한국적 창작뮤지컬’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비평적 시각이 힘을 얻기도 했다.
두 섹터는 뮤지컬이 한국의 공연환경과 상호작용해 온 역사적 경험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존 듀이의 고찰대로, “예술작품은 경험과 ‘더불어’ 그리고 경험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1)이기 때문이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 공연 이후의 경험이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과 중소극장 창작뮤지컬의 이분화된 구도로 집약되었다면, 2025년 <어쩌면 해피엔딩> 토니어워즈 6관왕이라는 ‘사건’은 한국 뮤지컬이 새로운 글로벌 주체로 떠오르는 경험을 만들며 ‘그다음’ 역사를 위해 국내 공연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현장에 심어놓고 있다. 현재 실행적 차원에서 가장 명확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두 섹터의 공고함을 재사유(rethinking)하고 대극장 창작뮤지컬 개발의 노하우를 현장에 축적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중소극장 공연을 스케일업 하려는 시도가 기존 프로덕션에서 관찰되고 더불어 한국의 창작뮤지컬이 도달해 있는 현주소에 대한 반성적 태도가 요청되고 있다.
대극장 창작뮤지컬 개발의 어려움
사실 뮤지컬 공연으로 1,000석 이상 대극장의 객석을 채우고 이익을 발생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뮤지컬은 소비자가 높은 티켓 가격을 지불하며 사후적으로 가치와 만족도를 측정하는 ‘경험재’적 특징을 갖고 있다. 진입 장벽이 높은 대중예술 장르라는 의미다. 따라서 대극장에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 주로 대관되고 모든 홍보의 내용이 그 인지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 ‘신작’ 대극장 창작뮤지컬의 이중고는 여기에 있다. 이를 질문의 형식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는 대형 작품들과 경쟁하며 ‘인지도와 화제성’을 높일 수 있는가? 더 근본적으로 ‘이 이야기’는 대극장에서 할 만한 것인가? 대극장의 세계관과 작곡 스타일, 그리고 쇼의 톤(tone)과 규모는 무엇을 지향하고 어떠한 외형적 조건을 갖춰야 하는가?
이 모든 질문에 나름의 논리를 갖춰 공연을 완성해도 흥행은 또 다른 문제다. KOPIS에서 발표한 2026년 상반기 뮤지컬 티켓판매액 상위 10편 리스트는 대극장 창작뮤지컬의 근본적인 취약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상반기 전체 티켓 판매액의 42.9%를 점유한 상위 10개 작품의 대부분에 라이선스 뮤지컬이 랭크되어 있고, 7위, 9위, 10위에 <베토벤>, <한복 입은 남자>, 그리고 <스윙 데이즈_암호명 A>가 이름을 올렸다. 스타 캐스팅, 극장 공간, 공연 기간 등 흥행에 필요한 요소들을 차지하고 창작뮤지컬은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다. 세 작품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이라는 공공극장에서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또한 공연의 만듦새와 심미성(審美性) 외에 인물의 영웅성, 역사적 상상력에 집중하며 공연의 ‘가치’를 내세우는 것 또한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올해 신설된 백상예술대상 뮤지컬 부문에서 작품상을 받은 <몽유도원> 이야기다. 올해 초 국립극장과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 <몽유도원>은 2002년 초연을 업그레이드하여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됐다. 그 결과 평단과 관객의 고른 지지를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상반기 뮤지컬 티켓판매액 상위 10위 안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10위 안에 랭크된 다른 창작뮤지컬보다 공연 기간이 짧아 흥행력이 완전히 입증되지 못한 채 공연이 완료되었음을 고려하더라도, 신작 대극장 창작뮤지컬의 화제성은 흥행을 크게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두 극장에서 총 2개월간 공연된 <몽유도원>은 보통 3개월간 한 시즌을 운영하는 한국 프로덕션의 기간보다 짧아 공연의 ‘시간과 밀도’를 충분히 축적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1,000석 이하 티켓판매액 상위 10개 리스트에서는 창작뮤지컬의 우세가 확인된다. 2위 <로미오와 줄리엣>, 7위 <슈가 SUGAR>, 10위 <보니 앤 클라이드>를 제외하고 모두 창작뮤지컬이 랭크되어 있으며 특히 400석 이하 극장에서 공연된 <비스티>, <홍련>, <빨래>, <난쟁이들>이 수위를 차지함으로써 소극장 창작뮤지컬 레퍼토리의 힘을 입증했다. 초연에 이어 재연까지 뮤지컬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홍련>의 관객과의 상호작용 메커니즘과 레퍼토리화 과정은 따로 연구될 가치가 있을 정도로 두드러진 모델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극장 창작뮤지컬을 개발하고 제작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을 얻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일련의 과정으로부터 어떤 경험을 축적할 수 있을 것인가. 질문을 좁혀, <몽유도원>이 만약 신생 제작사의 작품이라면 다음 시즌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을까. 현재 에이콤은 대학로 뮤지컬의 약 8배~10배에 달하는 제작비를 올해 공연에 투입하고 또다시 2027년 말 미국 트라이아웃 공연, 2028년 브로드웨이 공연과 한국 공연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명성황후>와 <영웅>의 제작 경험을 통해 누적된 제작사의 노하우가 ‘한국적 뮤지컬을 향한 의지’라는 상징적 가치로 전환되어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제작사는 대극장 신작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으면 다음 시즌으로 이어갈 동력을 잃는다. 더 근본적으로는 정답이 없는 ‘창작 행위’를 대규모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는 방식에 대한 의심과 부담감 때문에 대극장 뮤지컬 제작의 필요성을 아예 느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욱 강화된 이러한 경향은 최근 대극장 신작 리스트에서 증명된다. 매년 2~3편의 신작이 소수의 제작사에게 집중된 프로듀싱으로 무대에 올라오고 있지만 초연 이후 공연이 아예 불투명하거나 재연 이상으로 이어가기 위해 대대적인 수정 보완 과정을 거치는 작품이 상당수 눈에 띈다.

<표-1. 2023년~2026년 대극장 신작 창작뮤지컬 리스트>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대형 뮤지컬 지원 사업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3월,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의 ‘대형 뮤지컬 지원 공모’ 사업이 런칭됐다. 이 사업은 낭독공연과 시범공연 두 개의 갈래로 구축되어 단계별로 공연의 최종 목적지를 구분하고 그에 맞는 금액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되었다. 낭독공연은 신규 작품을 개발하거나 기존 혹은 신규 ‘중소형 뮤지컬을 대형화’하려는 프로덕션을, 시범공연은 대극장 무대화를 목표로 하는 ‘신규’ 대형 뮤지컬 프로덕션을 대상으로 했다. 5월에 발표된 심의 결과, 낭독공연은 총 30편, 시범공연은 총 8편의 작품이 선정되었으며 이후 준비 과정에서 시범공연 1개 단체가 사업을 포기하여 예비로 선정된 단체가 사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 최근 예경은 더 많은 단체에게 기회를 주고자 8월 18일에 2차 낭독공연 지원 공모를 내고, 기존 30편에 작품을 추가 선정하여 지원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예경의 뮤지컬 전담 TF에서는 내년에도 본 사업을 실시하여 창작뮤지컬 현장의 흐름을 바꿀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선정된 작품의 경향은 낭독공연과 시범공연별로 차이를 보인다. 먼저 낭독공연 선정작의 다수는 역사 소재 뮤지컬로, 신라와 조선의 왕부터 전쟁과 독립운동까지 한국사의 중요한 국면과 인물을 소재로 취했다. 그중 피디스그룹의 <김의 나라>와 네버엔딩플레이의 <범도>는 각각 동명 소설을 뮤지컬화한 역사뮤지컬로 주목된다. <김의 나라>는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의 원작 소설 작가인 이상훈의 동명 소설(2020)을 각색한 작품으로 신라의 마지막 태자 김일의 미스터리한 역사적 행보를 소설적 상상력으로 추적한다. 작가 이상훈·조이킴, 작곡 김백찬, 연출 박소영 라인업으로 원작 소설의 현재와 미래를 오가는 플롯을 과감히 벗어나 마의 태자가 북방에서 삶을 이어가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죽음 이후의 삶을 이어 나가는 ‘사람들’, 그들이 만드는 ‘국가’에 초점을 맞춰 협력과 가족애라는 테마를 부각시킨다는 계획이 돋보인다. 방현석 작가의 동명 소설(2023)을 각색한 뮤지컬 <범도> 역시 영웅 홍범도가 아닌 홍범도를 만든 이름 없는 민초들에 집중한다. 조선 최초의 스나이퍼 부대를 직접 소재로 취해, 배가 고플 때만 사냥하는 그들이 더 차지하려고 발버둥 치는 야생적 인간 사회에 맞서는 이야기를 담았다. 홍범도는 애초에 완성된 영웅이 아니라 무명의 영웅들이 만든 ‘총합’이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작/연출 표상아, 작곡 신혁진의 크레딧으로 개발되고 있다.
그 외 서양 역사물도 눈에 띈다. <다이스>(㈜컬처마인)와 <오디세아: 키르케의 섬>(㈜엠비제트컴퍼니)은 트로이전쟁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맥락으로 취해 각각 자유의지, 배신과 용서 그리고 화해라는 테마를 담는다. <다이스>는 뮤지컬 <말리>의 김주영 작가와 박병준 작곡가가, 그리고 <오디세아: 키르케의 섬>은 이다민 작가와 뮤지컬 <이터니티>의 박정아 작곡가, 오루피나 연출, 채현원 안무가가 참여하여 중소극장 뮤지컬의 스케일업을 진행한다는 공통점을 보인다.2) 이모셔널의 <마이 블러디 보드카> 역시 서양의 역사가 배경인 작품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기 금주령이 선포된 러시아에서 노동의 정신과 가족애적 공동체를 경험하며 성장하는 귀족 청년 알렉세이와 탄야의 이야기를 경쾌한 코미디 양식에 담았다. 2025년 LABpertory 선정 작품으로 신예 작가 은비, 뮤지컬 <호프>의 작곡가 김효은, 그리고 박한근 연출이 개발하고 있다. 그 외 오스트리아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동명 장편소설(1939)을 각색한 뮤지컬 <초조한 마음>(나오인컬쳐)도 서양 소재 계열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한·중 공동개발로 시작된 <초조한 마음>은 2024년 12월 상하이대극원 중극장에서 <위험한 연민>이라는 제목으로 총 12회 공연되었으며, 이후 2026년 1월 서울숲 씨어터 2관에서 한국어 버전 리딩 쇼케이스도 선보였다. 현재, 연민이라는 선한 감정이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변하는 여러 양상을 질문하는 작품으로 중량감 있게 발전하고 있다.
웹툰 원작 뮤지컬도 다수 선정되었다. 특히 동명 네이버 웹툰을 뮤지컬화한 주식회사 낭만바리케이트의 <살인자ㅇ난감>과 ㈜라이브러리컴퍼니의 <현혹>은 상업성을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작가 이창희, 작곡/음악감독 루브가 참여한 <살인자ㅇ난감>은 2025 낭만바리케이트 작품 낭독회 작곡열전2에서 선보였으며, 애초에 5인극으로 기획되어 스케일업이 진행 중이다. “과연 선한 악인이 존재하는가”라는 로그라인 아래 동시대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방향으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현혹>은 극작 김솔지, 작곡 이성준, 연출 이기쁨 라인업으로 1940년대 경성에서 펼쳐지는 뱀파이어 소재 뮤지컬이다. 판타지, 가상역사, 스릴러, 미스터리의 요소를 결합하여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다는 계획이 돋보인다. 또한 고태호 작가의 동명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라이브(주)의 <당신의 과녁>도 같은 계열로 묶을 수 있다.
그 외에 중소극장 공연으로 제작되었던 기성 뮤지컬 <그레이하우스>(주식회사 네오)와 <이솝 이야기>(주식회사 컴인컴퍼니), 아동가족극 <고양이 탐정 조르바: 시즌2>(문화공작소 상상마루)와 <하이팝>(브러쉬씨어터 주식회사)도 낭독공연 선정작에 포함되어 스케일업 작업이 진행 중이다.
시범공연 선정작 리스트에서는 원작 IP의 활용이 주된 경향으로 관찰된다.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회고록이 원작으로 적극 활용되었다. 라이브(주)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에이엠컬처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흥행에 성공한 동명 드라마 및 웹툰이 원작이며 ㈜연우무대의 <클래식>은 조승우, 손예진 주연의 영화 <클래식>(2003)을 각색했다. 2024년 인터미션을 포함한 140분 런타임 규모로 한 차례 쇼케이스를 진행했던 뮤지컬 <클래식>은 극작 정민아, 작곡 김드리, 음악감독 박지훈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한편, 이모셔널의 도 주목된다. 넷플릭스의 공동 창업자 마크 랜돌프의 회고록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That Will Never Work)』를 바탕으로 1990년대 실리콘밸리 창업가들의 도전 정신을 쇼뮤지컬로 풀었다. 한정림 음악감독과 박한근 연출, 그리고 홍유선 안무감독이 참여하여 현재 쇼코미디 양식을 심화시키고 있다.
오리지널 뮤지컬로는 ㈜오차드씨앤씨의 <오페라>가 주목된다. <오페라>는 추정화, 허수현 콤비와 김병진 안무감독이 개발하여 2026년 10월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 시범공연을 앞두고 있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인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 당대의 궁정 음악가 륄리 그리고 근대 희극의 탄생을 알린 몰리에르가 주요 인물인 <오페라>는 이들이 각각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오페라’를 통해 충돌시키며 인간의 욕망과 신념, 권력의 본질을 드러낸다. 추정화 연출은 이들을 단지 과거의 인물로 거리두기 하지 않고 현재에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 만든다는 비전을 갖고 공연을 발전시키고 있다.

창작자 육성, 제작 시스템의 변화, 예술적 비전의 추구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할 차례다. 예경의 대형 뮤지컬 지원 사업이 현재 한국 뮤지컬의 흐름과 토대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답은 정해져 있다. 그렇지 않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대극장 창작뮤지컬을 단계적 개발의 대상으로 공론화하고 창작진들이 대극장 뮤지컬을 상상하고 꿈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데에 있다. 낭독공연과 시범공연을 구분한 사업 설계는 모든 작품이 같은 속도와 같은 방식으로 대극장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어떤 작품은 서사와 음악의 가능성을 검증하는 초기 개발이 우선일 것이고, 어떤 작품은 이미 축적된 중소극장 버전을 토대로 무대 언어와 음악적 스케일을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또 어떤 작품은 대극장 공연 이전에 관객 반응, 창작진 간 협업 구조, 제작비 규모와 회수 가능성에 관한 장기적 검토를 필요로 할 수 있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그동안 중소극장의 규모와 조건에 맞춰 작품의 세계관과 언어, 음악 스케일과 구조를 맞춰왔던 창작진의 예술적 상상력을 확장하는 일이다. 대극장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인물 수와 장면 규모를 늘리는 장소가 아니라, 서사의 구조, 음악의 호흡, 군무와 앙상블의 기능, 장면전환의 리듬, 무대미술의 원근과 기술적 수준, 그리고 관객의 감정적 몰입 방식 전체를 다시 설계하도록 요구하는 매체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크기’에 대한 강박보다 왜 이 이야기가 다수의 관객과 만나야 하는가, 무엇이 대극장 무대에서만 가능한 집단적 감정과 장관을 만들어 내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창작자 개인의 역량 개발은 물론이고 제작 시스템의 변화가 요구된다. 초연의 완성도만으로 작품의 생존을 판단하기보다, 초연 이후 수정과 재개발, 재연을 통해 작품의 밀도를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흥행 실패를 미화하자는 말이 아니라, 대극장 창작뮤지컬의 제작 노하우가 개별 프로젝트의 소진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대극장 창작뮤지컬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큰 위험을 견딜 수 있는 창작 생태계를 만드는 일에 가깝다. 창작자는 대극장만의 서사적·음악적·시각적 언어를 탐색하고, 제작사는 초연 이후에도 작품을 발전시킬 시간을 감당하며, 공공 지원은 시장 논리만으로는 보존되기 어려운 개발의 단계를 뒷받침해야 한다. 극장 역시 단순한 대관 공간을 넘어 작품의 성장 과정에 참여하는 공동 제작자 혹은 파트너로 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한국 뮤지컬의 다음 과제는 대학로와 대학로 외부라는 두 섹터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하는 데 있지 않다. 중소극장이 새로운 창작 언어와 관객과의 내밀한 관계를 실험하는 토대라면, 대극장은 그 성취를 더 넓은 차원에서 확장하는 장이 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양극화된 위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자신의 규모와 생애주기에 맞는 경로를 선택하고 이동할 수 있는 다층적 생태계다. 대극장에서 창작뮤지컬을 공연한다는 것은 바로 그 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예술적 야심과 산업적 인내의 크기를 시험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1] 존 듀이, 『경험으로서 예술 ①』, 박철홍 옮김, 나남, 2021, 20쪽.
[2] <오디세아: 키르케의 섬>은 낭독공연 선정작 중 가장 처음으로 유료 리딩공연을 완료했다. 2026년 8월 24일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배우 김보현, 박상준, 조민호, 류동휘, 권강민, 윤상인의 참여로 무대화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