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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VL> 말맛으로 꽉 채운, 10대 소년의 거침없는 티키타카

글 |이솔희 사진 |글림아티스트 2026-10-22 146

 

연극 < VL >은 학년 말까지 반드시 ‘VL’ 꼬리표를 떼야 한다는 압박 속에 놓인 두 소년 맥스, 스티비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전개되는 2인극이다. VL은 ‘Virgin Lips’의 약자로, 아직 키스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연극은 ‘VL’이라는, 10대 시절의 수치스러운 꼬리표에서 벗어나고자 고군분투하는 두 소년의 모습을 날 것의 언어로 꾸밈없이 그려내고, 두 인물이 뒤집어쓴 남성성의 허물을 한꺼풀 벗겨내어 무대에 올린다.

 

< VL >은 스코틀랜드의 해머스턴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극 중 두 소년의 나이는 한국 나이로 중학교 3학년으로 설정됐다. ‘첫 키스 하기’를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10대 소년과 올바른 언어 습관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이를 반영하듯 실제 공연에서도 평소 무대 위에서 흔히 들을 수 없었던 다소 거친 언어가 오간다. 거침없이 솔직한 두 소년의 ‘VL 탈출기’가 한국 관객의 귀에 낯설지 않게 들릴 수 있도록 탈바꿈한 한국어 대본에 창작진의 수많은 땀방울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연출 및 번역을 맡은 김달중 연출가에게 작품의 번역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달중 연출가는 “연출로서 조심스럽고 중요하게 다가갔던 부분은, 이 작품이 우리 사회의 꽤 날 서 있고 불편한 진실들을 불쑥 던진다는 점이다. 날것 그대로의 혐오스러운 표현들을 아무런 여과 없이 무대 위에 툭 던져 놓으면, 관객분들은 작품이 진짜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여다보기도 전에 그 단어 자체가 주는 불쾌감 때문에 먼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본을 다듬고 연출하는 이 모든 과정은, 그저 책으로 읽기 완벽한 텍스트를 완성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귀한 시간을 내어 극장을 찾아주신 관객 여러분과 더 진실하고 생생하게 맞닿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었다. 자극적인 말들을 단순히 '착한 말'로 덮어버리고 순화하기보다는, 무대 위의 조명과 공간의 여백, 그리고 무엇보다 무대 위를 꽉 채우는 배우들의 에너지를 통해 작품이 진짜 하고 싶은 속이야기들이 관객분들의 마음에 훨씬 더 묵직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긴 여운으로 가닿기를 진심으로 바랐다”고 작품을 관객 앞에 선보일 때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맥스 아니, 스티비. 안 망했어. 그냥 한 시간 늦는 거지. 괜찮아. 지금 내가 집에 가잖아? 그럼 난 진짜 끝장이야, 남은 평생 개처맞고 굴욕당할 거라고.

스티비 뭐, 집에 안 가도 남은 평생 개처맞고 굴욕당할 수 있지, 집에 가면 적어도 '킹스맨'(원문: '의적 로빈 후드')은 볼 수 있다고.

맥스 아니, 난 꼭 해내야 돼. 가야 한다고. 내가 말했잖아. 난 꼭 할 거라고. 오늘 밤이 끝이야. 우린 거기 갈 거고, 뭔 일이 생기든, 우리가 집에 갈 때쯤엔 아무도 날 VL이라고 못 부를 걸.

 

Max No, Stevie. We’ve no missed it. We’ll be an hour late. It’s fine. If I go home now, then that’s me done, I’ll be getting battered and humiliated for the rest ay ma days.

Stevie Well, chances are you’re getting battered and humiliated for the rest ay yer days anyway, but this way we get to watch Robin Hood Prince of Thieves.

Max No, this has to happen. I need to go. I’ve told you. I need to do this. It ends tonight. We’re going there and whatever happens, when we leave, no one will be able to call me a VL.

 

원문의 <의적 로빈 후드>( Robin Hood Prince of Thieves )는 한국 무대에서 왜 <킹스맨>으로 바뀌었을까? 영화 <의적 로빈 후드>(1991)는 주인공 로빈 후드가 악당에 맞서고,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는 영웅담이다. <킹스맨> 역시 평범한 청년이 영웅이 되는 이야기다. <의적 로빈 후드>는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지만 현재의 한국 관객에게는 다소 낯선 작품이기에, 극 중에서 <의적 로빈 후드>가 주는 의미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작품인 <킹스맨>으로 변화를 주었다.

 

“외국 희곡을 우리말로 옮길 때 연출로서 가장 깊이 고민하는 지점은, 대본을 '어떻게 하면 문학적으로 매끄럽게 읽히게 할까'보다는 '이 말들이 어떻게 무대 위에서 진짜 살아 숨 쉬게 할까'에 있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두 남학생이 어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쏟아내는 거칠고, 때론 유치하며 잔인하기까지 한 대사들은 그 나이대 아이들의 불안과 방어기제가 뒤섞인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영미권 문화의 단어 뜻 그대로만 번역해버리면, 관객분들께는 그저 어색하게 겉도는 외국 영화 더빙처럼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김달중 연출가)

 


 

 

 

스티비 이런 걸 끄집어내는 게 저라고 즐겁겠어요. 그치만 맥스는 이걸 기억해야 하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니까요. 이제 맥스가 대답을 하면, 릴 코자가 웃을 건데, 교실 전체가. 교실 전체가 따라 웃을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같이 웃어주세요. 그래요, 마음이 안 좋겠죠, 그치만 여러분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똑같이 했을 거예요, 그게 규칙이니까.

 

Stevie Now, I don’t take any pleasure in this. But he needs to remember. And he needs your help. So see when he says what he says, Wee Cozza is gonna laugh, and the whole class. The WHOLE class is going to join in. So I need you to join. Doesn’t matter how bad you feel, if you were there you’d have done just the same thing, cos that’s the rules. Rewind. Let’s go.

 

< VL >의 여러 매력 중 하나는 바로 관객을 끊임없이 공연 속으로 끌어당긴다는 점이다. 맥스와 스티비는 공연 시작 전부터 객석을 돌아다니거나, 공연 중간중간 관객에게 말을 거는 등의 행동을 통해 객석에 앉아 있는 우리가 단순히 한 명의 관객이 아니라, 두 사람의 여정을 함께하는 동료라는 인상을 안겨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관객 참여 유도는 관객에게 ‘공연을 보고 있다’는 감각을 일깨워주는 장치로 작용하기도 한다.

 

“관객분들이 마음의 문을 닫지 않도록 저희가 선택한 방법은, 관객분들께 '이곳은 극장이고, 지금 보시는 것은 하나의 공연이다'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인지시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연극이 가진 이 고유한 형식이 아주 훌륭하고 따뜻한 심리적 '안전장치'가 되어주는 셈이죠. 관객분들이 '나는 지금 안전한 객석에 앉아 허구의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편안하게 인지하실 때, 비로소 표면적으로 자극적인 대사들에 휘둘리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그 거친 말들 이면에 숨어 떨고 있는 두 인물의 지독한 외로움, 또 그들을 그렇게 만든 '헤머스톤'이라는 공간의 폭력성을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똑바로 응시하실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김달중 연출가)

 


 

 

맥스                         

닥쳐! 앉아!

이 가짜 광대 같은 놈아

니가 그 쌉소리랑 허세 말고 뭐라도 있냐?

없지. 그리고 말이지, 너 아무 의미 없지.

릴 코자, 릴 코자, 웃기긴 하지

밤마다 이불 밑에서 무서워 떨고 있겠지

데릭! 친구야, 이해해, 나도 알아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있지, 나도 마찬가지

숨이라도 좀 쉬게 해 줘 이런 헛짓거리 완전 진절머리

그러니까 뭐? 나 그냥 말할게, 그래, 좆까라 차라리—

덤벼 멍청아, 그래, 씨발 난 VL!

 

Max

Aw fuck up! Sit down!
Ya spurious clown
Is there more to you than the noise and the patter?
Fuck no. There isnae. And ken whit? You don’t fuckin’ matter
Wee Cozza, Wee Cozza, such a funny guy
Guaranteed he goes to bed each night terrified
Derek! Mate. I get it, I do
It doesnae have to be like this for you
And you know what? Me neither
I’m sick eh this pish, Ah need a fuckin’ breather
So ken whit? I’ll say it. Fuck it. Might as well –
Come at me dipstick. I’m a fucking VL!

 

창작진의 번역 센스가 돋보이는 장면. 원문의 각운을 한국어 가사에서 살리기 위해 ‘down’, ‘clown’을 ‘앉아’, ‘놈아’로, ‘neither’, ‘breather’를 ‘마찬가지’, ‘진절머리’로 바꾸어 모음 라임을 맞췄다. ‘patter’와 ‘matter’ 부분은 ‘있냐?’, ‘없지’로 번역해 의미적 대구 구조를 형성한 점이 시선을 끈다. 여기서 잠깐, 분명 연극인데 맥스는 갑자기 왜 랩을 하는 걸까? 예측 불가능한 매력, 그게 바로 < VL >을 봐야 하는 이유다.

 

“단순히 종이 위의 활자에 얽매이기보다는,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우리 정서에 가장 잘 들어맞는 '말맛'과 '호흡'을 찾는 데 정말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한국의 10대 남학생들이 서로 묘한 기싸움을 벌일 때 툭툭 말을 끊어먹는 타이밍, 상대를 비웃을 때 무심하게 내뱉는 헛숨, 혹은 위협을 느낄 때 본능적으로 미세하게 좁혀지는 거리감 같은 것들 말이죠. 이런 디테일한 연극적, 신체적 언어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원작과의 문화적 간극을 자연스럽게 채워 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김달중 연출가)

 

연극 < VL >은 오는 12월 6일까지 링크더스페이스 2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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