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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서편제> 유봉 [NO.103]

글 |이민선 일러스트레이션 | 권재준 2012-04-24 5,287


 

깊은 외로움의 인생길

 

한평생 고집스럽게 살아온 유봉은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한 후에도 그 눈빛과 목소리에서 힘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외로움도 나아지진 않은 모양이었다.


* 이 글은 유봉을 연기한 배우 서범석과의 대화를 기초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들에 대해 몇 가지 여쭤봐도 될는지요?
왜 송화의 눈을 멀게 했느냐, 그게 궁금할 테지. 득음하라고 눈을 멀게 한 건 아니오. 동호가 떠난 후에 난 첩첩산중을 헤매면서 그 녀석을 찾았소. 온 산을 헤집었지만 결국 못 찾았지. 그 녀석이 정녕 떠나갈 거란 생각은 전혀 안 했습니다. 금방 돌아오겠거니 생각했는데, 완전히 떠나버린 걸 알고선 송화의 눈을 멀게 해버렸지요. 얘들이 남매이긴 했지만 사실 피가 안 섞인 남남이고, 어쩌면 남녀로서 할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소. 그래서 송화마저 동호를 따라갈까봐 너무 두려웠습니다. 내 소리를 받아서 소리 공부를 할 사람도 없거니와 내 옆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는 걸 감당할 수 없었소.

 

외로움이 두려웠습니까?
한평생 너무 외로웠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 외로움을 즐겼는지도 모르겠소. 한을 키우기 위해서. 외로울수록 진한 소리가 나오잖습니까. 사람들이 내게서 떠나가고 딸의 눈을 멀게 한 후, 나도 그 아픔을 함께 감수하면서 소리를 만들었지요.


대체 그 소리란 게 당신에게 무슨 의미였습니까?
전부죠. 내게 소리 말고, 내 인생에서 되돌아볼 게 뭐가 있습니까. 아주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이리저리 떠돌았고, 소리꾼 집안에서 허드렛일을 하다 소리 가르치는 걸 귀동냥으로 들었지요. 난 듣는 귀가 좋고 꽤 재주가 있었습니다. 소리하는 어르신이 ‘어, 이놈 소질 있네’하고 본격적으로 가르쳐주셨지요. 제대로 배운 놈들보다 옆에서 듣기만 한 내가 더 잘했으니, 그들의 질시를 받으면서도 좋았습니다. 잘한단 소리를 들으니 더 신이 나서 했지요.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모르시고요?
아버지는 한량이었던 모양입니다. 뭐, 소리꾼까지는 아니지만 술 한잔 마시면 흥에 겨워 노래 한자리 그럴듯하게 뽑아내는 양반이었나 보오. 주위 어른들 이야기로는 그러다 객사했다고도 하고, 어떤 여자를 만나서 떠나버렸다고도 하고. 어머니는 이미 그런 남편에게 제 자식 맡겨놓고 도망갔다는 것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혼자였군요.
그게 내 한이지 않겠소. 한은 몸소 체험해서 쌓이는 것이라 생각하오. 누구에게서 전해 들어서 표현하는 건 막연합니다. 쓰리고 분통한 기분, 그 느낌을 잘 기억해두라고 애들에게도 늘 말했지요. 그런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서 한이 되고, 한이 소리를 만듭니다. 그 한이 서편제 소리를 만들지요. 서편제는 무척 섬세하고 감성적인 소리인 까닭이오. 흉내 내서 내뱉는 것이 아니라 우리 피부로부터 뿜어 나오는 소리, 감정과 소리의 밀도가 끈끈하려면 가슴속의 한이 있는 그대로 소리가 되어 나와야 하는 법이오.


그래서 길을 떠나 유랑하며 살았던 거고요?
높은 곳에서 부는 바람도 느끼고, 아늑한 곳의 따뜻한 기운도 느끼고. 새소리를 듣고 꽃 색깔들을 봐야 그걸 알지 않겠소. 판소리라는 게 구전심수라고,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받는 것이오. 악보에 적혀 있는 것도 아니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인데, 한곳에 가만히 앉아서 스승만 모시면서 할 게 무어요. 난 나 혼자서도 소리를 익히고 찾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당신이 잘하는 소리를 계속하는 것이 당신의 길이라고 믿었습니까?
내가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그것이 내 길이었을 뿐이오. 자기 운명을 누가 알겠소. 뜻한 대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의도한 게 아니더라도 가고 있다면 그게 내 길이지.


송화 역시 소리를 할 운명이었을까요?
송화는 내 피를 받았소. 그러니 소리를 잘할 수밖에. 한 핏줄이니, 아주 간단하고 당연한 결과지 않소. 내가 세상을 떠나올 때쯤 송화의 소리는 내 귀에 만족스러울 정도는 됐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떠나지도 못했겠지. 그 아이가 눈이 먼 후 혼자서도 잘 지낼 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래도 죄스러운 마음은 있지요.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식들에게 너무 모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을 텐데요.
내가 내 생각대로 한걸, 누가 뭐라든 신경조차 안 썼습니다. 눈이 멀면 뭐가 좋아지겠소? 청각이 발달할 수밖에. 잘 들으면 소리도 잘할 수밖에 없소. 눈을 멀게 한 건, 마음으로 듣고 마음의 소리를 내라는 뜻이었소. 온몸으로 들어야 온몸으로 소리를 낼 수 있지요. 허나 송화의 눈을 멀게 한 것이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기도 하오.

 

그럼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동호 어미를 만나서 잠깐이나마 네 식구가 오붓하게 살았던 일 년. 가족들끼리 함께 노래하고 그럴 때, 좋았지요. 어릴 적부터 내겐, 가족들과 함께한 그런 시절이 없었거든. 그리고 귀동냥으로 익힌 소리가 나아지고 또 나아질 때, 무척 기뻤지. 나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들려줄 만한 걸 가졌다는 게 내겐 힘이 됐지.


끝내 소리를 찾지 못하고 죽었다는 게 여한으로 남진 않습니까?
삶이 그런 거지. 누군들 삶에 대한 여한이 없겠소.


다시 태어나도 소리를 하시겠습니까?
안 혀. 지긋지긋해. 소리라면 이미 전생을 다 쏟아부었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3호 2012년 4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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