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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rom Page to Stage] <굿모닝 학교> 프로덕션 노트 [NO.99]

글 |김상인, 김지혁, 정승준 정리 | 배경희 2012-01-02 6,017

청년 디자이너들의 무대 제작기

 

무대 디자인에서 콜라보레이션이 가능할까? 언젠가 콜라보레이션을 해보고 싶다는 여신동 무대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첫 번째로 들었던 생각이다. 하지만 웬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여신동 무대디자이너는 <굿모닝 학교> 무대 디자인을 학생 디자인팀을 꾸려서 해볼 생각이라고 알려왔다. <굿모닝 학교>가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인 만큼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학생들을 소집했다는 것. 여신동 무대 예술감독의 지도하에 아마추어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하나의 무대로 구현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들여다보자.

 

 

 

D-Day 65

9월 8일 디자이너 제의를 받다
지혁_
각자 다른 학교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하던 우리를 한 데 모은 건 여신동 감독님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세 사람은 감독님께 거의 비슷한 말을 들었다. “요즘 공연 연출하시는 분들이 젊은 디자이너를 찾고 있는데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 알고 있니? 그런데 마침 내가 학원물 뮤지컬 디자인을 맡게 돼서 학생 감성이 남아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일을 맡겨볼까 생각 중이다. 너 혼자 디자인을 하기엔 무리가 있을 테니 세 명 정도가 모여 공동 디자인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해볼래?”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친구들과의 공동 디자인이라니. 걱정이 앞섰지만 이런 기회를 물리칠 순 없다. 함께할 두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 채 오케이 사인을 했고, 다음 주에 첫 만남을 약속했다.

 

 

 

9월 11일 상견례
상인_
대학로에 있는 한 카페에 모인 세 명의 예비 디자이너들. 여 감독님은 서먹해 하는 우리를 대신해 서로를 간단히 소개해주었다. 누가 지혁이고, 누가 승준인지 헷갈렸지만 되물어보진 않았다. 그건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경계심을 품은 채 회의가 시작됐고,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에 앞서 각자가 생각하는 교실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두 사람은 ‘교실’ 하면 놀이터와 감옥을 이야기했다. 꽉 막힌 질서 속에서 몸부림치는 학생들을 떠올랐다는 지혁이는 패션쇼 영상을 준비해 왔다. 모델이 가방을 들면 그 가방이 옷으로 변하는 패션쇼였다. 그러면서 책상과 의자를 가방처럼 메고 다니게 만들어서 교실에 얽매여 있는 학생들을 표현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럴 듯한 아이디어다. 나에게 교실이란 차갑고 딱딱한 강압의 공간이었기에 톱니바퀴와 칸막이로 규격화된 공간의 이미지였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탓인지 같은 대본을 읽었음에도 준비해 온 이미지가 다 다르다. 제 각각 흩어져 있는 생각들이 한 무대에서 표현될 수 있을까? 감독님께서 천천히 그 방법을 모색해보자고 하시니 우린 감독님을 믿고 따르는 수밖에 없다.

 

 

 

 

9월 18일 디자인 컨셉 회의  
승준_디자인 컨셉을 정해서 알맞은 이미지를 찾아오기. 이것이 이 주의 과제였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야 하는 만큼 나는 고심 끝에 연꽃을 컨셉으로 잡았다. 진흙 속에서 꽃을 피어내는 연꽃을 통해서 혹독한 현실을 꿋꿋이 버텨내면 곧 만개할 날이 오리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의 날 다소 들떠서 나의 의도를 설명했지만 감독님은 날카로운 조언을 서슴지 않았다. 연꽃은 주제라기보다 학생들의 생명력에 대한 느낌을 연꽃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한 것이라고. 따라서 연꽃이 갖는 의미로 극을 풀어내는 것은 디자인의 다양성을 한정짓는 행위라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씀이다. 또한 감독님은 청소년 이야기에서 빠져서는 안 될 ‘성’에 대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며,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면 디자인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주셨다. 이 시점에서 아직 연애를 못해봤다는 사실이 브레이크를 건다는 게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D-Day 45

9월 28일 극장 답사
상인_
무대 실측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극장에 모였다. 30m 줄자를 가지고 극장을 측량하는데 소요된 시간은 30분. 학전 블루라는 소극장이 이상할 만큼 크게 느껴졌고 가슴은 떨려왔다. 지금까지는 극장 자체를 하나의 교실로 만들자는 큰 줄기만 가지고 있던 터라 극장 실측은 디자인에 영감을 불어 넣는 과정이었다.

 

 

 

 

10월 2일 영감을 찾아서

지혁_매주 감독님의 작업실에서 모여 밥도 먹고, 수다도 떨다보니 우리 세 명은 감독님 없이도 웃으면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사이가 됐다. 대화의 주된 소재는 학창 시절. 학창 시절에 대한 별의별 이야기가 오고 갔다. 학창 시절의 감성을 살려보기 위해 옛날 일기장을 찾아봤다. 천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졸라맨 그림 옆엔 이런 말이 써있었다. ‘나 숙제도 해야 하는데, 모의고사도 봐야 하는데…’ 죽어가면서까지 이런 생각을 해야 하다니. 나 정말 암울한 학생이었구나. 엄청난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고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런데 신촌에서 잘나가는 학생이었다는 승준이는 아무래도 몹시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낸 듯하다. 학창 시절하면 즐겁게 놀고 떠든 일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니 나로서는 신기할 뿐이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사실 하나. 교실은 마냥 어두운 곳도 아니고, 마냥 신나는 곳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디자인의 컨셉이 세 꼭짓점의 중간 지점을 향하기 시작한다. 
 

 

 

 

10월 5일 초안 스케치를 그리다

승준_이번 주 과제는 도면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무대 스케치를 해오는 것이었다. 내가 그려간 스케치와 형들의 스케치와 대조해 보니 일치되는 점들이 많다. 감독님께서는 우리들의 생각이 점점 한 점으로 모이고 있다며 좋은 징조라고 격려해주셨다. 전체적인 분위기나 도구, 색감에 대한 의견도 많이 좁혀졌다. 중요한 요소들이 추려지는 것이 내 눈에도 보였다. 공동 디자인을 한다는 것이 낯설기만 했는데 슬슬 하나의 무대가 보이기 시작하니 벌써 다음 회의가 기다려진다.
 

 


‘돈림피아드’ 장면 스케치
올림피아드라는 치열한 경주에서 이긴 1등만이 대우받는 세상. 마치 컴퓨터 게임 속 경주처럼 학생들은 교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치열하게 동료를 밀어내고 추월하며 승리를 얻어낸다. 이것을 진정한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10월 15일 디자인 구체화
상인_
회의가 잦아지면서 디자인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교실의 방향, 등·퇴장로, 대도구가 정해졌고, 슬슬 스케치의 윤곽이 나오기 시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젠 누구 한 사람의 아이디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을 만큼 책상 하나, 액자 하나에도 세 명의 생각이 담겨 있다. 덕분에 디자인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줄어들고 없어지는 부분이 있더라도 과감해질 수 있었다. 만약 초반에 대도구를 빼야하는 상황이 생겼다면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미안해서 그렇게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D-Day24

10월 19일 전체 스태프 회의
지혁_
내일로 예정돼있던 전체 스태프 회의가 갑작스레 오늘로 당겨졌다. 연출가부터 무대감독까지, 모든 스태프들이 참석해 런 스루를 관람한 뒤 밤 10시부터 회의를 시작했다. 내가 디자인팀의 대표로 나서서 무대 디자인에 대해 설명했다. 안무 선생님이 책상과 의자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고민이 많으셨는지 책상 활용에 궁금점이 많으셨다. 의자를 빼고 공연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것이 안무나 장면 전환에서 속도감이 날 것 같고 책상만 충분히 재미있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모여 극중에 의자는 빼기로 했다. 다른 스태프 분들도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질문을 하셨다. 무대 디자인이 다른 요소들과 전체적으로 연결이 되어 극을 이끌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이번 회의에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데도 연출의 독선적인 판단이 아닌 회의를 통해 모든 스태프들이 생각을 모으는 과정을 경험한 것이었다. 여신동 감독님도 회의를 통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확실히 감을 잡으신 것 같다. 파격적이고 재미있는 무대! 내일 한 차례 더 연습을 관람하고 대대적인 디자인 수정에 들어가기로 했다. 

 

 

 

D-Day 15

10월 27일  디자인 90% 완성
상인_
연습 참관 내용을 바탕으로 대도구를 이용한 장면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제 디자인은 90퍼센트 정도 완료됐다. 완료된 디자인으로 도면을 그리고 구입 물품 목록 작성에 들어갔다. 도면을 제작소에 넘기는 건 처음 해보는 일이라, 초반엔 조금 버벅거렸지만 실전만큼 소중한 수업은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세 사람이 작업을 분배해서 처리하다보니 의사소통에 있어 사소한 실수들이 발생했다. 예를 들어 액자를 제작하려다 다시 주문하기로 변경했는데 액자 도면을 그리는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르고 제작소에 넘겨 제작소에선 액자를 다 만든 후에 구입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비화가 일어났다.

 

 

 

11월 2일 제작 도면을 그리다

승준_연출님과의 회의 시간. 연출님과 각 장면에서 필요한 대도구가 무엇이고, 그 대도구가 어디에 위치해야 하며, 무대를 어떻게 전환시킬 것인지 등을 정리했다. 이번 회의에서 디자인적인 부분은 거의 다 결정이 됐다. 이제 실질적인 제작 도면을 만들어서 제작소로 보내야 한다.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업은 계속됐다.

 

 

D-Day 7

11월 4일 무대 제작소 방문 
상인_
오늘은 중간 점검을 위해 일산에 있는 무대 제작소를 방문하는 날! 컴퓨터상으로 디자인했던 무대 세트가 제대로 제작되고 있는지 꼼꼼히 체크하고, 세트를 채색할 색상도 직접 확인했다. 제작소 방문으로 얻은 예상치 못한 수확은 다른 공연들의 도면을 보게 된 것이다. 역시 학생이 그린 것과는 다른 노련함이 느껴지는 도면들이다. 학교에서는 도면을 볼 기회가 많지 않은데 우연치 않게 좋은 경험이었다.  

 

 

 

 

11월 7일 극장 셋업
지혁_
공연 개막 4일 전, 드디어 셋업이 시작됐다. 제작 팀에게 세트가 어디에 세워질지 위치를 정해주고, 작화 팀에게는 벽면의 낙서가 어떻게 돼야 하는지 설명했다. 낙서는 이번 디자인에서 핵심 요소다. 처음에는 벽면에 그림 그리기가 낯설어서 소심하게 그림을 그리다 점차 손이 풀리고 마음이 풀리자 낙서에 시동이 걸리고 어느 순간 작화 팀뿐 아니라 배우들까지 가세해 낙서를 하기 시작해 객석까지 낙서로 뒤덮어버렸다. 그렇게 세 달 동안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디자인한 무대가 완성되어 간다.

 

 

 

MINI INTERVIEW

 

어떤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됐는지 설명해 달라.
김상인:
처음 한 달간은 각자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개별 진행을 했다. 여신동 감독님이 매주 과제를 내주셨고, 준비해 온 걸 회의에 발표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한 달이 지난 시점부터는 아이디어를 합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들어갈 것과 빠질 것들이 결정됐다.
김지혁: 사실 시작부터 서로 잘 맞았던 건 아니다. 각자 전공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장점을 알게 됐고, 거기에 맞게 역할이 나뉘면서 작업이 수월해졌다.

 

각자가 잡은 첫 번째 컨셉은 뭐였나?
김지혁:
첫 번째로 떠올랐던 이미지는 창문이었다. 부산 출신이라 학교 앞에 바다가 있었다. 교실과 창문 너머로 반짝이는 바다와 대비가 되는 거다. 위험하다고 창살을 대놨는데 그게 꼭 감옥처럼 느껴졌다. 중반까지는 무대에 창문이 많았는데 지금은 창문 하나로 표현했다. 가짜 하늘이 보이는 액자 형식의 조그만 창문.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이 나에게는 가짜라는 의도다.
김상인: 내가 떠올렸던 건 복층 구조의 무대다. 층을 나눠 선생님과 학생의 상하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예산상의 문제로 의자로 이용해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대체됐다. 
정승준: 난 책상이나 의자를 이용해 교실을 놀이터로 꾸미고 싶었다. 책상을 다닥다닥 붙여서 교단을 만든다거나 의자를 마구잡이로 쌓아 놓고 공간을 만든다든지. 안정상의 문제도 있고, 공간을 비우고 가자고 결정이 돼서 내 아이디어는 빠졌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느낀 바가 있을 것 같다.
정승준:
스태프 회의에 가면 이상하게 머릿속의 생각들이 입을 통해 나오질 않는다. 그런데 다른 디자이너 분들은 김민기 선생님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저런 게 프로의 모습이라는 걸 느꼈다. 내 의견이 맞든 틀리든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김지혁: 처음으로 학교를 떠나 외부 공연을 하면서 배우게 된 점이 많다. 제작 도면에 템플릿을 어떻게 넣는가 하는 사소한 것부터 다른 스태프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방법, 예산에 맞추어 일을 진행하는 노하우 등 학교에서는 배우기 힘든 것들을 많이 배웠다.

 

 

김상인 중앙대 연극영화학부 공연영상미술학과 3학년

김지혁 한예종 연극학과 무대미술과 4학년

정승준 용인대 연극학과 무대미술전공 4학년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9호 2011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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