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무대에 PPL(Product Placement, 간접광고) 광고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다. 급속한 성장에 따른 과열 경쟁이 제작비 상승을 초래하자, 제작사들이 제작비 마련 방안으로 PPL이라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게 된 것이다. 뮤지컬해븐의 마케팅 담당자 이주경은 “제작사는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는데, PPL도 그중 하나의 수단”이라며 “공연에 샴푸 같은 소모품이 사용될 경우 여기에 지출되는 비용이 생각보다 크다. 개당 액수가 크진 않지만, 공연 기간 전체로 비용을 계산해보면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따라서 극에 필요한 물품이 있을 경우엔 해당 제품의 회사에 PPL을 제안한다”며 PPL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같이 광고주의 제품을 공연 소품으로 사용하는 것이 전형적인 PPL 활용법이다. 극 중 주인공들이 먹는 음식은 대표적인 소품 PPL. <김종욱 찾기>와 <극적인 하룻밤>에는 각각 맥스봉과 신라면을 먹는 장면이 등장하고, <막돼먹은 영애씨>에선 영애의 간식 도시락에 맥스봉과 햇반을 넣어서 제품을 노출시켰다. 이처럼 주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대학로의 소극장 공연에서 이런 PPL이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노골적으로 브랜드명을 광고하지 않는 이상 음식 PPL은 과도하지 않은 설정이기에 관객들도 무리 없이 받아들인다. 공연 중 자연스럽게 제품을 노출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공연 의상 협찬을 통한 PPL이다. 캘빈 클라인의 청바지를 착용한 <그리스>(2005)나, 트루젠의 남성복을 입은 <브로드웨이 42번가>(2010) 등이 그러한 예다. 의상 협찬 시, 객석과 거리가 가까운 소극장 공연이라고 해도 브랜드 로고가 노출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제작사들은 이에 대해 보완책으로 PPL 제품을 착용하고 찍은 사진을 홍보물에 사용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주로 소극장 공연에서 PPL이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대극장 공연에서도 PPL이 등장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객석과 거리가 먼 대극장 공연에서 PPL을 진행하는 방식은 무대 세트를 활용해 브랜드 네임을 노출하는 것이다. 2010년, 보기 드물게 다양한 브랜드와 PPL을 진행했던 <미녀는 괴로워>는 거리 장면에서 건물 간판에 여러 브랜드 네임을 노출하는 과감한 PPL을 시도했다. 2010년에 공연된 <브로드웨이 42번가>도 같은 방법으로 트루젠의 PPL을 넣었다. 최근에 진행된 PPL 중에는 지난해 봄에 공연된 <파리의 연인>이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여주인공 강태영의 근무처를 국내 유명 브랜드 영화관으로 설정해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노출시킨 것이다.
스토리 피의 조한성 대표는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공연은 PPL에 저항감이 큰 매체”라고 말한다. 공연 PPL은 바로 눈앞에서 직접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특정 제품을 광고하면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연계에선 아직까지 법으로 정해진 PPL 준수 규정이 없음에도, 제작사가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해서 자체 검열을 통해 과도한 PPL을 지양하고 있다. 기업으로부터 상당 금액의 제작비를 지원받지 않는 이상 상품명을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것을 꺼린다. PPL 제품이 극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PPL을 진행해야 한다는 게 공연 제작사들의 일관된 생각이다. “다섯 개의 대형 LED 패널이 등장하는 <드림걸즈>에 모 전자에서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PPL을 제안했지만 197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 우리나라 전자 회사의 로고가 등장하는 것은 극의 흐름을 깬다는 판단하에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내한 공연을 펼친 <아메리칸 이디엇>의 경우도 20대가 작품의 주인공인 만큼 국내 전자 회사에서 태블릿 PC나 핸드폰 PPL을 하고 싶어 했지만, 이 또한 과감하게 포기했다.” 오디뮤지컬컴퍼니의 관계자는 공연 PPL에서 중요한 것은 ‘제품을 극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가’라고 재차 강조했다.
광고주가 공연 PPL을 진행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작품의 규모와 인지도, 제품 의 노출 빈도다. CJ E&M의 마케팅 담당자는 “유명 스타가 출연하면 광고주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지만, 큰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고 말한다. 공연 PPL은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큰 파급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소비층이 비교적 분명하다는 장점이 있다. 특정 계층을 집중 공략하는 타깃 마케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20~30대 여성 소비자를 주 고객층으로 하는 브랜드가 공연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젊은 여성 관객들이 공연 소비층의 다수를 이루다보니 바이럴 마케팅 효과가 큰 것도 공연 PPL의 장점이다. “<극적인 하룻밤>에서 에페스 맥주 PPL를 진행했는데, 공연 후기에 ‘공연을 보면서 맥주 생각이 났다’는 유의 후기가 굉장히 많았다. 관객들의 긍정적인 반응 덕분에 다음 시즌에서도 같은 맥주 회사와 PPL을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제작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소극장 연극에서 활발히 PPL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에페스 맥주의 수입사인 신한 F&B 관계자는 공연 PPL의 긍정적인 측면으로 문화 마케팅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문화적 기업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공연계 PPL은 제작사와 광고 회사 서로 윈윈 게임이 될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1호 2013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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