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뮤지컬넘버 최민철
내가 접한 첫 번째 뮤지컬 넘버
<지킬 앤 하이드> ‘컨프론테이션’
“오페라 가수를 꿈꾸던 성악과 새내기 여름방학 때, ‘컨프론테이션’을 처음 접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우스운데, 그땐 이 곡이 당연히 이중창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 솔로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충격이란.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다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지?’ 그 한 곡이 정말로 매력적이고 강렬하게 다가와서 몇 달 후 오디션을 보고 뮤지컬 배우로 데뷔하게 됐죠.”
데뷔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뮤지컬 넘버
<지하철 1호선> ‘6시 9분 서울역
“2000년 <명성황후>로 데뷔했지만, 제게 가장 큰 의미가 있는 초창기 작품은 <지하철 1호선>이에요. <지하철 1호선>을 공연하는 일 년 내내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1년 365일 동안 단 하루도 마음 편히 공연했던 적이 없었죠. <지하철 1호선>의 첫 번째 노래 ‘6시 9분 서울역’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손에 땀이 난답니다.”
잊지 못할 실수담이 있는 뮤지컬 넘버
<어쌔신> ‘내셔널 앤섬’
“2005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손드하임의 <어쌔신>을 공연한 적이 있어요. 손드하임의 노래는 생각 이상으로 어려워서, 전체 배우가 두 달 동안 음정과 박자를 연습했었죠. 그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웠던 곡은 ‘내셔널 앤섬’이었어요. ‘내셔널 앤섬’은 8중창인데, 여덟 캐릭터의 멜로디와 가사가 다 다르거든요. 어쨌든 제가 공연 중 저지른 실수는 ‘절대’와 ‘결코’를 헷갈린 나머지 ‘절코’라고 말했던 거예요. 그것도 아주 중후한 바리톤 음색으로 말이죠. 그 덕분에 그날 ‘내셔널 앤섬’을 완전히 망쳐버렸죠. (웃음)”
슬럼프에 빠졌을 때 힘이 되어줬던 뮤지컬 넘버
<맨 오브 라만차> ‘임파서블 드림’
“뮤지컬 배우에겐 매 작품이 새로운 시작이에요. 그날의 공연은 관객의 기억 속에서 존재할 뿐 어떤 기록도 남지 않으니까요.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만, 간혹 지칠 때도 있죠. 그래도 10년 넘게 무대에 서다보니, 그저 묵묵히 내 갈 길을 가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임파서블 드림’의 가사처럼 우리의 노래로 점점 더 세상이 밝게 빛나길 바라면서요.”
나만의 목풀기용 뮤지컬 넘버
<엘리자벳> ‘키치’
“파워풀한 고음을 내질러야 하는 ‘키치’ 이 한 곡이면 한 방에 목이고 입이고 다 풀립니다.”
파격 변신을 위해 불러보고 싶은 뮤지컬 넘버
“파격 변신은 그동안 많이 해봐서…. (웃음) 좀 다른 의미의 변신이라면, 저를 필두로 김대종, 양준모, 조순창 넷이서 만든 ‘섹시 동안 클럽’ 멤버들과 겨울에 어울리는 로맨틱 콘서트를 해보고 싶어요. 우리 멤버들이 은근히 발라드에 강한데, 작품에선 그런 부드러운 노래를 부를 일이 없네요.”
언젠가 꼭 불러보고 싶은 뮤지컬 넘버
<의형제>
“2000년대 초반 학전에서 공연한 <의형제>는 당시 학업을 중단하고 무대에 서게 했을 만큼 강한 충격을 줬던 작품이에요. 저작권 문제로 2001년 이후 무대에서 볼 수 없었는데, 재작년 학전 20주년을 맞아 학전 출신 배우들이 <의형제>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공연한 적이 있어요. 그 열흘 동안 매일 이 작품을 보면서 울었어요. 참고로 전 정말 눈물이 없는 편입니다. 언젠가 꼭 이 작품이 다시 올려지길 바라고, 그 멤버 중에 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2호 2013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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