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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BEYOND LYRICS] 거짓된 세계에 맞선 용기의 목소리, 엘파바의 ‘디파잉 그래비티’ [No.123]

글 |송준호 사진제공 |설앤컴퍼니 2014-01-06 5,969

   2003년 초연된 이후 10년째 브로드웨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위키드>는 오리지널 공연 버전뿐만 아니라 드라마(<글리>, <어글리 베티>), 애니메이션(<심슨가족>, <사우스 파크>) 등 다양한 매체에서 넘버가 불리며 대중적인 인기를 모아왔다. 그래서 지난해 소문으로만 접했던 이 작품이 국내에서 공연됐을 때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라이선스화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는 배역별 가상 캐스팅이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하기도 했다. 이런 열띤 반응은 1년이 넘도록 사그라지지 않았다. 연초부터 인지도와 호감도 부문 1위를 휩쓴 데 이어 ‘가장 기대되는 신작’ 부문에서도 1위(본지 1월 호 기획 기사 참조)를 차지하며 한국어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독일어, 일본어, 네덜란드어 등에 이어 일곱 번째 외국어 프로덕션인 이번 공연에서는 캐스팅 못지않게 오리지널 버전의 가사가 우리말로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모아졌다. 지난해 투어 공연에서 이미 재치있는 우리말 자막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배우의 입으로 불리는 가사는 다를 수밖에 없다. 당시 자막을 책임졌던 이지혜 작곡가는 이번 번안 작업에서 다시 한번 가사를 다듬어 효과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또 전문 작사가와 에디터 등 전문가의 참여와 모니터링도 함께 진행되는 등 번역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들이 개막 전까지 거듭됐다.

 

 

                               

 


오리지널 버전의 팬들에게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1막의 ‘Popular’나 ‘A Sentimental Man’, 2막의 ‘Wonderful’ 등 <위키드>의 대표곡이라고 할 만한 곡들의 타이틀 가사를 어떤 어휘로 바꿀 것인가에 있을 것이다. 이지혜 작곡가는 원어 가사의 어감과 문맥을 살려 이를 ‘파퓰러’나 ‘센티멘탈 맨’, ‘원더풀’ 등 그대로 발음을 살리는 쪽으로 결정했다. ‘Wizard and I’의 ‘Unlimted’ 부분 역시 영어 발음 그대로 옮겨졌다. 내한 공연 때 자막으로 ‘밥맛!’으로 번역돼 폭소를 자아냈던 1막의 ‘What is this feeling?’의 ‘Loathing!’ 부분은 이번 공연에서도 ‘밥맛’이 됐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가장 많은 기대를 받는 곡은 역시 1막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일 것이다. 외롭고 힘들더라도 자신이 답이라고 믿는 길을 가겠다는 엘파바의 결심이 담긴 노래이자 <위키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을 배제하면 이 장면에서는 배우의 가창력이 가장 돋보이겠지만, 그 안에 담긴 엘파바의 용기와 의지가 관객을 더 뭉클하게 하는 곡이다.

 

뭔가가 달라졌어 내 안의 무언가   
      Something has changed within me, something is not the same
이젠 의미 없어 남들이 정한 규칙들   
       I’m through with playing by the rules of someone else’s game.

난 깨어나 버렸어 돌아가긴 늦었어   
       Too late for second guessing, too late to go back to sleep

내 직감을 따를래, 눈을 꼭 감고   
       It’s time to trust my instincts, close my eyes and leap


마법사의 허상을 알게 된 엘파바는 도와달라는 그의 요청을 거절하고 진실된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결심의 대가는 크다. 엘파바는 사람들에게 ‘나쁜 마녀’로 몰려 모든 것을 잃고 추락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맞서 싸우겠다는 상승의 기운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날아올라 중력을 벗어나    It’s time to try defying gravity
하늘 높이 날개를 펼 거야    I think I’ll try defying gravity
날 막을 순 없어    And you can’t pull me down.

 

이 노래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 중의 하나는 ‘Gravity’를 어떻게 번역하는가였다. 원 작곡·작사가인 스티븐 슈월츠는 <위키드>의 많은 곡들에서 같은 단어를 여러 차례 반복하고 있는데, 이 곡에서도 ‘Gravity’는 여덟 차례나 등장한다. 이지혜 작곡가는 이 단어를 모두 ‘중력’으로 바꿀 수는 없어 문맥에 따라 ‘날개를 펼 거야’나 ‘세상을 본다고’ 등으로 적절하게 바꿔 옮겼다. 


한계는 무너졌어 내 길을 갈 거야   
      I’m through accepting limits ’cause someone says they’re so.
시도하기 전엔 그 누구도 알 수 없어   
       Some things I can not change, but ’till I try, I’ll never know

너무나 오랫동안 두려워한 것 같아  
       Too long I’ve been afraid of losing love I guess I’ve lost

받아본 적도 없는 사랑 잃을까봐   
       Well, if that’s love, it comes at much too high a cost

 

원래 ‘Through’는 어떤 행동을 끝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체의 의지가 담긴 단어다. 여기서는 한계를 주어로 삼아 ‘무너졌다’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는 엘파바의 자기 최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음 절에서는 ‘이미 잃어버린 사랑을 잃을까봐 너무 오래 두려워했다’는 내용을 기본으로 ‘그게 사랑이라면 대가가 너무 크다’는 말을 효과적으로 함축시켰다. 한계를 떨치고 결심하는 엘파바는 이윽고 눈부시게 날아오른다. 오즈의 군중들이 그녀를 끌어내리려고 하지만 중력을 이겨낸 엘파바는 글린다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곡의 마지막에서 ‘어느 누구도(Nobody), 어떤 마법사도(No Wizard)’라고 한 마디씩 끊어 읽는 부분은 그녀의 강력한 의지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전해줘, 나 모든 걸 떨쳐내고     Tell them how I am defying gravity
저 끝없는 세상을 본다고   I’m flying high defying gravity,
나는 꼭 돌아온다고    And soon I’ll match them in renown
이 오즈의 그 누구도    And nobody in all of OZ
어떤 마법사도 나를    No Wizard that there is or was
끌어내릴 순 없어    Is ever gonna bring me down

 

이 곡은 고음 하나만으로도 어렵다고 느껴지는 노래지만, 크리에이티브 팀의 입장에서는 한층 더 어려움이 많았다. 원어의 뜻이 고루 담기면서도 음절 수에 맞춰야 하는 번안의 작업은 차치하고, 노래 자체가 워낙 리듬이 복잡하고 라임도 살리기 힘든 곡이기 때문이다. 또 이번 공연은 이미 존재하는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원형에 맞춰야 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이지혜 작곡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숨 쉬는 것도 허락받아야’ 할 정도의 압박감 속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그런 노고의 결과는 고스란히 이 곡에 스며들어 또 한번의 감동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3호 2013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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