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공연 통역사, 라이선스 공연의 기초 공사를 담당자 [No.84]

사진 |박인철 정리 | 김유리 2010-09-29 7,541

공연 통역사,  라이선스 공연의 기초 공사를 담당자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이 정식 라이선스 작품으로 소개되면서부터 뮤지컬 업계에도 전문 통역 인력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라이선스 공연으로 한국을 찾는 해외 스태프는 여전히 많다. 보통 제작발표회나 프레스 콜 등 카메라 앞에서 멋지게 꾸미고 유창하게 통역 하는 것만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이러한 업무는 일부분일 뿐이다. 무대 안팎으로 해외 스태프와 한국 스태프의 귀와 입이 되어 생각과 노하우를 전달하며 공연을 함께 올리는 공연 전문 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는 6년차 연출 통역사, 10년차 기술 통역사를 만나보았다.


공연이 좋아, 자석처럼 끌려 되돌아오다


기자> 처음 공연 통역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김건희 공연 통역 1세대라 할 수 있는 분의 소개로 시작했어요. 통역하는 분들 대부분이 그렇게 아는 분을 통해서 시작할 거에요. 저도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었는데, 살면서 생각해왔던 목표가 있어 그 쪽 분야에서 일을 하다 결국 다시 극장으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참여한 작품이 늘어갔고, 아는 사람들이 늘다보니 그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기술 통역하는 친구’라고 자리를 굳힌 것 같네요.
소은정 대학교 3학년 즈음 교수님 추천으로 중-영-한 통역을 처음으로 해봤어요. 당시엔 승무원이나 전문 비서가 되고 싶어서 준비 중이었어요. 그때, 오빠가 <노트르담 드 파리> 기획사 관계자와의 친분으로 불-영 통역 제의를 받았다가, 저를 소개시켜 주었죠. 뮤지컬이라고는 어렸을 때 가족들과 <레 미제라블>을 본 것이 다였는데, 하다 보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서 2년 정도 비서 통역을 했어요. 그런데 춤과 노래가 너무 그립더라고요. 전 지금도 분야가 무엇이 됐든 “통역”하는 자체가 즐거워요. 그렇지만 공연 통역의 맛을 안 뒤론 편식을 하고 있는 셈이죠. 이제 극장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기자> 공연계로 돌아오게 되는 이유가 뭘까요?
소은정 그냥 뮤지컬이 좋아요.
김건희 공연을 개막하고 끝났을 때 관객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를 들으면, 나도 이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 작은 부분을 도왔다는 데서 짜릿함을 느껴요. 그 느낌은 흔히들 마약 같다는 표현을 쓰죠. 끊기 힘든 것 같아요.
보통 통역하면 프레스 콜 등 미디어 대상으로 진행하는 그런 그림을 생각하게 되는데, 각각 어떤 통역을 담당하시나요.
김건희 일반적으로 공연 통역은 기술 파트 통역과 연출 파트 통역으로 나뉘어요. 제가 맡은 기술 통역은 크게 무대, 조명, 음향, 세 분야로 나눌 수 있어요. 무대 통역은 일반적으로 통역을 시작할 때 주로 하게 되고 저 역시 그랬고요. 주로 ‘이거 저쪽으로 옮겨주세요. 여기 놓아 주세요,’부터 시작해요. 그 후에 조명 통역을 할 수 있었어요. 조명 통역이 기술 통역 중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기술 통역은 전문 용어가 많은데, 기계적인 용어라거나 컴퓨터 전문용어를 모르면 통역하기가 아주 힘들죠. 지금 하고 있는 무대감독 통역은 좀 특수한 경우인데 새로운 파트라 이제까지 해왔던 업무와 조금 차이가 있어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소은정 연출 파트 통역은 연출 통역과 안무 통역, 음악 통역 정도로 나뉘어요. 작품에 따라 다른데, 안무와 노래와 연기와 조명 등 무대 팀 부분까지 하시는 연출이 있는가 하면, 시스템이 분화된 곳들은 연출, 안무가, 음악감독, 필요에 의해서는 안무 중 ‘애크러배틱 통역’ 이런 식으로 더 세분화되기도 해요. 안무나 음악 용어 중 평상시 쓰지 않던 생소한 것이 나와도, 당황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알아 갈 때마다 오히려 재미있죠.       
공연 시기 중 언제부터 일에 참여하게 되는지, 그리고 어떤 일들을 하게 되는지.
김건희 기술 통역은 사전 프로덕션 미팅부터 시작해요. 무대 셋업 하는 날부터 본격적으로 업무에 들어가죠. 매일 9시부터 10시까지 13시간 동안 무대 위에 서서 하루 종일 뛰고 걷고, 서있고, 앉아있을 틈도 없이 정신없게 그렇게 셋업을 진행하고, 며칠 후 셋업이 완료되어 배우, 연출팀이 극장에 오게 되면, 그때부터는 연출팀의 노트에 따라서 일이 진행이 돼요.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긴 때라 할 수 있죠. 프리뷰나 드레스 리허설을 하면, 거기에 맞춰서 저희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공연을 실황으로 보면서 현장에서 바로 통역을 해야 해요. 공연을 올리고 나면, 저희는 해외팀이 돌아가니까 저희의 업무도 끝이 나요.  
소은정 연출 통역은 배우들과 상견례부터 시작해서, 연출이 리허설을 시작하는 첫 신부터 바로 들어가죠. 배우들과 따로 알고 인사할 것도 없이 바로 시작해요. 인사도 없이 바로 지시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통역사는 이름 소개조차 안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걸 아쉬워하거나 서운해 하면 안돼요. 통역사의 존재감은 통역을 잘 함으로서 서서히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좌) 김건희 (우) 소은정

 

두 나라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시키는 커뮤니케이터


기자> 통역사로서의 고충이 있다면?
김건희 통역이란 직업이 말에서 말을 전달하다 보니까, 정서적으로 문화 차이가 있을 때 그 말을 직역만 하게 되면 한국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면, 우리나라 극장 법상 음식물을 섭취하면 안 되는데, 많은 해외 스태프들에게 이야기하면 알았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들도 있거든요.
소은정  통역 중에 없는 내용을 넣거나 있는 내용을 빼선 안 된다는 게 제 철칙 중 하나에요. 그렇지만 서로의 정서를 이해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제 사견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어요. 단, 무조건 우리 경우가 맞다는 얘기가 아닌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오로지 바른 이해를 돕고 오해를 없애고 싶은 마음인 거죠. 통역도 서비스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건희 그리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참 힘들어요. 작품을 자주 하다보니 각 극장 소속 감독님들과도 친분도 생기게 마련인데, 기술 파트의 경우 주어진 시간 안에 하드웨어를 다 준비하느냐의 싸움이라 데드라인에 민감해지고, 차질이 생겼을 때 말다툼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이런 때 국내 스태프들은 친분 때문에 자기편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해외 스태프는 제가 통역자기 때문에 본인 편을 들어주길 바라요. 이럴 경우엔 더 객관적으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각자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해야 해요. 각자의 감정 표현도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해야 하고요.
소은정  연출, 배우, 제작사와 이야기하다 보면 배우들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해아 하는 경우도 생겨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남한테 싫은 소리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그래서, 실은 통역할 때 눈을 마주치는 것이 참 중요하다 생각하지만, 싫은 소리를 해야할 때는 눈을 못 보고 눈썹이나 미간을 보고 얘기를 하곤 해요. 아무리 가슴 아픈 얘기여도 내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전달할 수는 없죠. 좋은 말, 나쁜 말일수록 내 감정을 넣지 않고 정확히 전달해야 해요. 웃음도 눈물도 많은 저로썬 귀로 들은 내용을 가슴으로 보내기 전에 머리로만 보내고 입 밖으로 사견이나 사심 없이 통역해야 할 때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 같아요. 뮤지컬 통역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기획사와 해외팀이 미팅을 하다가 어른들이 크게 말싸움을 하는데, 저는 무서워서 펑펑 울었던 적이 있어요. 다들 놀라서 미팅은 마무리되고 다들 감정이 누그러졌지만, 저는 너무 자존심이 상했어요. 감정 조절을 제대로 못하고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이 수치스러웠죠. 그 때부터 내 감정은 숨긴 채 내가 담당하는 연출의 희노애락만은 표현할 줄 아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려면, 내가 수행하는 사람에 대한 파악이 빨라야 해요. 그리고 그 사람 성향에 따라 통역을 하려 하죠.


공연 통역사의 자질


김건희 맞아요. 그것이 통역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자질인 것 같아요. 담당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빠르게 분석을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빨리 파악을 해줘야, 통역을 할 때 이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지가 전달이 되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알지 못하면, 단순한 직역의 경우에도 오해의 소지가 커요.
소은정  꼭 공연이 아니라 통역 전체에 있어서 중요해요. 어떤 이유에서건 핵심을 파악 못하는 사람이 꼭 있어요. 그럴 때 어림짐작으로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에 강세를 넣었다가는 정말 너무너무 위험해요. 차라리 밋밋하게 직역만 하거나, 다시 물어보는 게 나아요.확실하지 않으면 다시 한 번 물어 본 후에 정확하게 전달해야 해요. 혹시 실수를 했다면 정정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 돼요. 안 그러면 나의 실수로 많은 사람들이 우왕좌왕할 수도, 완전히 다른 공연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요즘 영어 잘 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역이 있는 것은 더욱 명확한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에요. 그렇기 때문에 가령 ‘STOP’처럼 다 알아듣는 것이라 해도, 혹은 배우들이 이미 알아들은 눈치를 해도, 그리고 계속 반복되는 노트라고 해도 그건 통역사가 판단해선 안 되는 문제에요. 그저 연출이 말 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면 되는 거죠. 그리고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물어보면 되고, 한 번 잘 몰랐던 단어의 뜻을 알게 되면 머릿 속에 바로 접수해 둬야 해요. 사람이 다 그렇듯, 연출마다 사용하는 어록이 있고 쓰기 좋아하는 단어가 있어요. 나중에 계속 나오는 데 그때마다 물어보느라 나로 인해 리허설이 지연이 되면 안 되니까요. 반대로 한국어를 영작할 때도 “땐땐하다”처럼 배우들이 잘 쓰는 공연  용어가 있잖아요. 그런 걸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기억력이 좋으면 큰 도움이 되죠. 
김건희  또 하나 중요한 게 커뮤니케이션 루트를 잘 파악해서 전달해야 해요. 기술 파트가 세분화 되다 보니 일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대화가 진행되는 루트를 잘 파악해야 하죠. 해외 무대감독이 통역을 해달라고 얘기하는 것들이 누구를 통해서 전달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해요. 무대에서 각 파트의 실무 스태프에게 직접 요청을 하는 건 루트를 무시하는 일이에요. 해외 무대감독이 한국 조명팀에 요청할 일이 있다면, 해외측 조명디자이너에게 의사를 전달하면 그가 한국 조명팀장한테 전달을 하고 그 후에 팀원에게 전달이 되어야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돼요.
소은정  아주 중요한 얘기에요. 누가 저에게 어떤 얘기를 해도 저한테 권한이 없어 전달이 불가능한 부분이 있어요. 그럴 땐 얼른 해결할 수 있는 루트를 찾아 전달해야 하죠. 이런 것까지는 처음 얘기하는 건데, 전 마이크를 손에 쥐는 높이를 삼단계로 조절해요. 마이크를 아예 떼고 말해야 할 것, 조금 멀리 들어 골라들을 수 있게 말해야 할 것, 그리고 입에 바짝 대고 전체에게 말해야 할 것들을 구분 짓는 거죠. 가장 큰 이유는 루트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해외 연출이 잠깐 쉬어가자고 해요. 쉬는 시간의 공식적인 공지는 국내 무대감독님이 하셔야 하는데, 연출이 쉬자고 하는 것을 내가 전체 통역했다가 배우들이 리허설 도중 나가버리면, 무대팀에서는 매우 어이없는 일이죠. 그럴 때는 인터컴을 통해 무대감독님이 듣고 공지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루트는 일처리를 빨리 하는 데에 있어서도 중요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서로의 직책을 존중해주는 것이고 그래야 내 직책도 존중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해요.
김건희  무대 철칙을 알고, 지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죠. 요즘 같은 여름엔 워낙 날씨가 덥기 때문에 남자들의 경우는 반바지를 입을 수 있는데, 여자들의 경우는 가능하면 입지 않게 얘기하곤 해요. 상처가 나면 흉이 지는데, 무대에서 난 상처는 이상하게 잘 아물지도 않아요. 하이힐의 경우에도 트랙 같은 데 굽이 잘 끼기 때문에 힐보다는 운동화를 권장하는 것이고요. 무대 보호 차원이라는 기본적인 이유도 있지만, 사실 개인의 안전상의 이유가 더 커요. 또, 캡 있는 모자를 쓰면 위를 못 봐서 안 돼요. 셋업할 때는 무대 천장에서 바턴이라고 조명기를 다는 바를 내려놓고 왔다갔다 전환을 하는데, 한창 내려오고 있는데 모자를 쓰고 있다 머리를 찧어 뇌진탕으로 쓰러지는 친구도 있었어요. 사실 시어머니처럼 복장에 대해 하나하나 시시콜콜 참견하면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 그걸 따르지 않아서 다쳤던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룰이 생기는 것이죠.
소은정 내가 담당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간다는 것과도 연결되는 지점인데, 트레이닝복 입고 배우들하고 함께 구르고 뛰는 연출을 통역할 때는 저는 그 작품 내내 트레이닝복만 입고 다니며 같이 몸 풀고, 같이 뛰어다녀요. 내가 안 움직인다 해도 옆에 있는 사람은 트레이닝복 입고 있는데, 나 혼자 차려입고 있는 게 이상하고 싫더라고요. 그렇지 않은 연출은 또 그의 스타일에 맞춰주죠. 자기가 통역하는 자리의 분위기에 어울릴 줄 아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무대에서의 철칙들도 지키며, 무대 사람이 될 줄 아는 것도 중요해요.


기자> 통역하면서 정말 뿌듯했던 적은 언젠가요?
김건희  당연히 공연을 올리고 났을 때가 제일 뿌듯하겠지만, 통역으로서의 뿌듯한 점이라 하면, 당사자간 오해가 있는 걸 풀어줬을 때에요. 한국 스태프와 해외 스태프 둘이 사소한 생각의 차이인데 격해질 때가 있거든요. 원래 통역으로서는 자기 생각을 덧대면 안 되지만, ‘You Come here.’를 ‘OO씨, 이리로 와주시겠어요’라고 이름을 붙여주는 경우처럼 내가 단어 하나를 더함으로써, 상황이 순화되고,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 된다고 하면, 그 때가 제일 뿌듯한 것 같아요.


기자>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힘든 것은 어떤 점인가요? 
김건희/소은정  많죠.
김건희 아무래도 중간에 있는 입장이다 보니까. 담당하는 스태프가 일이 진행이 안 되서,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짜증이 났다면, 사실 그 대상이 저희가 될 때가 많아요. 우린 항상 붙어있으니까. 그 사람도 우리에게 그렇게 화풀이를 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옆에 있기 때문에 그의 화를 들음으로써 같이 스트레스 받을 때도 있거든요. 다행히 그 사람이 개념이 있는 사람이어서 그냥 짜증내는 걸로 끝나면 다행인데, 그걸 굉장히 시니컬하게 한국팀을 빗대서 이야기한다거나 하면 굉장히 기분이 나빠져요.
소은정 간혹 절 통역사가 아닌 본인의 개인 비서 내지는 어시스턴트로 착각하는 것 같은 때가 있어요.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닌데 싶을 때죠. 처음엔 그럴 때가 제일 힘들었는데, 이젠 융통성 있게 대처하면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내가 일하는 데 있어서 지장이 있다 싶을 정도면 얘기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다고 할까요? 반대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싶으면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해요. 수행통역을 해와서 저는 늘 제가 수행하는 이를 편하게 해줘야 결국 제 마음도 편해지는 것 같아요.
김건희  은정씨는 지혜롭게 대처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은 것 같아요. 저는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성격이라, 통역 일이 아닌데 통역이 해야 할 것처럼 지시를 하면, ‘미안한데, 내가 하는 일은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라고 들었어. 그래서 그 부분은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의 한국 고용인과 이야기를 해서 요청을 해볼래.’ 라고 루트를 정리해서 돌려 말해요. 
소은정 그것도 참 좋은 방법이에요. 저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처음엔 거절하는 것이 좀 힘들었는데, 결론은 내 본업을 잘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 본분에 방해가 될 정도면 잘 얘기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거절을 해도 이해되는 것은 본분을 다했을 때니까요.

 

통역에게 리허설은 없다


기자> 공연 통역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김건희 점점 많아지고 있죠. 요즘에는 어린 친구들도 워낙 실력이 좋기도 하고요.
소은정 공연을 정말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분들이 통역을 했으면 좋겠어요. 배우들 중에도 영어를 잘하는 분들이 다소 있고, 라이선스 작품을 많이 하다보니 해외 연출의 말을 통역 없이도 잘 알아들으시는 편이에요. 하다못해 <빌리 엘리어트>의 아역배우 스물 두 명도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다 보니 웬만한 의사소통은 당황하지 않고 가능하죠. 그렇지만 아예 영어를 몰라 온전히 통역사들에게 의존하는 분들보다 99%를 알아들어도 단 한 단어를 몰라 추측해서 노트를 받는 것이 위험할 수 있어요. 같은 뜻이라도 연출이 무엇을 고집하는지 이해하는 사람이면 통역사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죠. 반대로 배우가 질문을 할 때도 배우 입장에서는 저런 게 궁금하겠구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요. 내 통역을 필요로 하는 두 나라 사람들이 나로 인해 정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했으면 좋겠어요. 여기에 공연 자체에 흥미가 많은 사람이면 자기 자신도 일하기가 편하고 즐겁죠.
김건희 ‘자원봉사는 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경험상 자원 봉사로 시작하는 친구들 중에 통역일을 쉽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이런 경우 끝까지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 사람 하나 때문에 한국팀과 해외팀 간에 싸움이 나기도 해요. 그리고 무보수로 일을 하기 때문에, 통역사란 직책의 전문성을 떨어뜨리는 데 영향을 끼치게 돼요. 저희는 ‘연출’이 하는 중요한 말들이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에 중요해요. 통역 하는 사람이 어디선가 무보수로 일하거나 보수를 낮게 책정하면 저희같이 전문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보상을 받을 길이 없어요. 저희에게 너무 적은 금액을 제시하시면, 그 공연을 너무 하고 싶어도 못하거든요. 
소은정  통역을 처음 시작하고, 중간에 통역대학원을 들어갈까 말까 고민을 했던 때가 있었어요. 통대를 나온 사람들은 가격 책정의 Rate가 있어요. 나 혼자 좋다고 ‘무보수로 일할 수 있어요’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제가 처음 공연계 통역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공연계에 통대 출신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분들은 결국 공연계를 떠나시더라고요. 공연을 아무리 좋아해도 그분들은 두 가지 이유로 오래 못 남아요. 다른 데서 일하면 같은 시간 동안 일하면서 버는 수입이 다르고, 내가 좋아서 적은 보수에 한다고 해도 그건 전문 통역업계의 룰을 깨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전 제작사와 계약할 때 이야기해요. 이미 난 업계 룰을 어기고 있는 것이니, 최소를 지켜주던지 아니면 내가 받는 액수를 절대 이야기 하지 말아 달라. 그리고 프로페셔널하게 일할 테니 역시 프로페셔널하게 대해 달라고 꼭 얘길 하곤 해요. 하지만 그걸 알아주는 제작사는 많지는 않죠.
김건희 공연 통역은 단순히 말만 옮기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과 의도를 전달해주는 것인데, 단순한 전달을 ‘통역’이라 생각하는 몇몇 기획사가 있어요.
소은정  연출이 말하는 어투며, 핵심을 전할 수 있어야지, 대충 요약을 해서 전하는 건 옳지 못해요. 사실 제작사 측에서 좀 알아줬으면 좋겠고, 고용을 잘 했으면 좋겠어요. 제일 무서운 것은 영어를 모국어처럼 말하는 사람이 공연 통역을 잘못하면, 배우들은 답답한데 해외팀 스태프들은 ‘영어 너무 잘하는 데, 뭐가 문제야?’ 라며 배우들에게 뭐가 전달이 안 된 건지 모르고 우리나라 배우들이 말귀를 못 알아듣거나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할 때예요. 이럴 땐 정말 속상해요. 제작사에서 어느 정도 통역사의 자질을 알고 고용을 해야 해요. 그래서 통역도 면접으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건희 동감해요. 우리가 전문가라 생각하면 그만큼의 전문성을 위해서 어느 정도 철칙처럼 노하우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관심 있는 친구들도 처음에 어떤 루트가 없으면 자원봉사로 시작할 수도 있어요. 당연히 처음 하는 일이라도 스스로 ‘나는 공연 통역사야’라고 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면, 자기만의 노하우를 남들보다 더 빨리 만들지 않을까요.
소은정 배우들의 뒤에 있다고 해서 자신이 보이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업무에 자부심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공연 올리기 전까지의 리허설이 통역사에게는 ‘생방송 쇼타임’이에요. 배우들이 연습하고 배우는 시간이라고 해서 절대 그 시간을 ‘나에게도 리허설’이라고 생각해선 안돼요. 라이선스 공연을 올리는 데 있어서 통역은 기초공사에요. 이 공사가 나로 인해서 신속하고 원활하고 탄탄한 공사가 될지 부실 공사가 될지를 의식하면서 해야 해요. 제가 통역을 정확히 했는지는 사실 두 언어를 모두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잘 몰라요. 하지만 책임감을 갖고 정확하게 통역을 해야 한다는 자신만의 철칙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건희 기술 통역 10년 차(영어)
Univ. of Washington, Communications
무대 통역 ㅣ <오페라의 유령>(2001)
조명 통역 ㅣ <캣츠>(2003/2008), <포에버 탱고>(2003),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2007), (2007), <맘마미아>(2010)
무대감독 통역 ㅣ <빌리 엘리어트>(2010)

 

소은정 연출 통역 6년 차(영어)
경희대 중어중문학과/영어영문학과 졸업
연출 통역 ㅣ <노트르담 드 파리> (2005~2009), <돈 주앙>(2006/2009), <컨택트>(2010), <올 슉 업>(2010), <토마스와 친구들>(2010), <빌리 엘리어트>(2010)
음악감독 통역 ㅣ <캣츠> (2008)
아티스트 수행 및 기자회견 통역 |<더 그레이트 2008 서태지 심포니 위드 톨가 카쉬프 앤 로열 필하모닉>(2008) 톨가 카쉬프 수행통역, 기자회견 통역(2008)
기타 |EBS 라디오 ‘Morning Special` 작가(2009)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4호 2010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