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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avorite] 크리스마스의 추억 [No.87]

정리| 편집팀 2010-12-07 5,025

 

루돌프 사슴코가 반짝이는 크리스마스의 시즌이 찾아왔다. <러브스토리>처럼 하얀 눈밭을 굴러도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있다면, <크리스마스의 악몽>처럼 깨어나지 않을 듯한 최악의 그 날도 있는 법.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만나보자.

 

 

 

 

 

 

 

 

 

 


음,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의 기억이 있죠. 제가 2006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예수 역을 할 때인데, 크리스마스이브에 심야 특별 공연이 있었어요. 심야 예배처럼 늦게 시작해서 자정이 될 즈음, 십자가에 매달려 “다 이루었도다”를 외치고 눈을 감고 숨을 거두는 장면이 이어졌어요. 아기 예수가 탄생하는 시점에, 한 사람은 무대에서 죽어가는 예수를 연기하고 있었던 거죠. 참 뭉클한 순간이었어요. 비록 무대에서지만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여 매달림으로써 우리들의 죄에 대해 용서를 빌며 그분의 탄생을 반기고 싶었어요. 숨을 거둔 장면에서는 저도 거의 숨을 쉬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순간, 관객들도 다 함께 숙연했던 기억이 나네요. 공연이 끝나고 감정이 북받쳐 올라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서 혼자 기도를 했던 것 같아요. 너무 홀리한 크리스마스의 기억인가요? 후후.

 

 

 

 

 

 

 

 

 


6살 때 학원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어요. 그 때 정말 좋았는데… 여자애들은 부채춤을 추고, 제 동생은 검정고무신에 교복 입고 막춤을 췄어요. 저는 군인 옷 입고 ‘사나이로 태어나서’로 시작하는 노래에 맞춰 총 쏘고 구르는 공연을 했어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계셨는데 파티 마지막에 선물을 줬어요. 사슴벌레랑 장수풍뎅이 장난감. 지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는데 바퀴가 달려있어서 서로 마주보며 벌레끼리 싸움을 할 수 있는 그런 장난감이었어요. 파티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기분이 되게 좋았던 기억이 나요. 신기하게도 그때만 기억에 남고, 7살부터 9살까지 다른 크리스마스 때 기억은 잘 안나요. 그래도 매년 집에다 트리 세워 놓고 엄마랑 같이 예쁘게 꾸며서 밤에 불 켜놓고 자고 그래요. 작년에는 빌리 스쿨에서 연습하면서 보냈는데 빌리들 모두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벽에 붙였어요. 저는 산타클로스가 우리 마을과 세계에 좋은 선물을 줬으면 하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루돌프 사슴코가 끄는 썰매에 탄 산타클로스가 땅에 선물을 떨어뜨리는 그림. 이번 크리스마스는 제가 공연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형들이랑 보내는 마지막 크리스마스라서 되게 슬플 것 같기도 하고, 뜻 깊은 추억이 될 것 같아요.

 

 

 

 

 

 

 

 

 

 

 

 

 

 

 

 

 

 

내 생애 최악의 크리스마스, 하루 종일 공연을 하며 보냈던 2007년 크리스마스. 심지어 그냥 공연도 아니고 하루에 4회 공연을 혼자 했다는 거다. 아마 아시는 분도 계실 텐데 우리 삼형제가 다 공연 쪽 일을 하고 있다. 큰형이 기획, 둘째 형이 작가 겸 연출 겸 배우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 공연인데 그 공연에 출연했던 거지. 특별한 날에는 관객이 많이 몰리니까 100석의 소규모 극장에 회당 180명 씩 와서 무대 위에도 관객이 앉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웃음) 게다가 크리스마스 하루 특별 이벤트로 끝난 게 아니라 25일부터 31일까지 7일 동안 매일 4회 공연을 했다. 아침 11시부터 쉬는 시간 없이 공연을 달리다 밤 11시쯤 끝이 나면 아무것도 못하고 그대로 뻗어 집에 가서 자고. 형이 출연해줘서 고맙다고 했냐고? 원래 형제끼린 그런 거 없지 않나.(웃음) 아무튼 일주일간 28회 공연을 한 배우는 나밖에 없을 거다. 하하.

 

 

 

 

 

 

 

 

 


보통 크리스마스 때 공연을 해요. 재작년에는 <샤우트>를 했고, 작년에는 <헤드윅> 심야공연이 있어서 끝나고 나왔더니 길거리에 아무도 없었죠. 그렇게 매해 공연을 하다가 2007년에 공연을 잠깐 쉴 때, 처음으로 교회 친구들하고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이 있었어요. 애기들처럼 교회에서 장기자랑도 하고 게임도 하고 밤을 새우면서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요.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어린이반 장기자랑 행사를 도와줬는데 애기들은 포크댄스를, 저는 원더걸스 춤을 췄어요. 또 5천 원짜리 선물 교환식을 했는데, 제가 받은 건 다이어리수첩, 준 건 바디로션이었죠. 그때는 정말 어렸을 때보다 더 어린애처럼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있네요. 올해도 심야 공연이 있는데 더블캐스트인 이혜경 언니가 가족들이랑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가 공연을 한다고 했어요. 언니가 정말 친언니처럼 잘해 주시거든요.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마음이 뿌듯할 것 같아요.

 

 

 

 

 

 

 

 

 

 

 

 

 

 

 

 

 

 

2002년 <렌트> 초연 때도 크리스마스에 공연을 하고 있었고, 2007년 <렌트> 때는 연습 기간이 크리스마스 시즌이었어요. 제가 우스갯소리로, 2002년 <렌트>는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 엉겁결에 엔젤 역으로 데뷔를 한 거고, 2004년 공연은 초연 때 부족했던 것들이 아쉬워서 다시 했고, 2007년 세 번째 <렌트>는 (조)승우 형이랑 같이 공연을 하고 싶어서 하게 됐다고 그러거든요.(웃음) 2006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같이 연습을 하면서도 정말 뭔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 현실이 된 것 같아서… 아, 말로 설명이 안될만큼 좋았어요. 그런데 형이 나중에 ‘너는 내 동생’이라고 이야기해줬을 때 정말 감동받았어요. 연습을 하는 동안 한번은 형한테 뭔가 힘든 일이 있는 것 같아서 마음 풀어주려고 농담도 건네고 그랬는데, 나중에 그런 면들에 대해서 ‘넌 진짜 엔젤 같다’고 이야기 해줘서 거꾸로 제가 고마웠어요. 딱 크리스마스 때는 아니지만, 그 얼마 후에 진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기억도 나네요. 제가 겨울에 머플러를 잘하고 다니는데 형이 ‘난 그런 거 없는데 좋아 보인다’고 하길래 기억해뒀다가 선물을 했거든요. 그런데 연말에 형이 영화 시상식에 갔다가 연습실에 왔는데 그때 제가 정말 갖고 싶어 하던 코트를 입고 온 거예요. 너무 예뻐서 형한테 한번 입어봐도 되냐고 부탁해서 입어보고 되게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얼마 후에 형이 똑같은 코트를 저한테 선물로 줬어요. 진짜 놀라고 정말로 감동받고 행복했는데, 그 사연을 아는 저랑 제일 친한 친구들은, 제가 그 코트를 입고 나가면 ‘너 가보 입고 왔구나’라고 놀려요.(웃음) 2006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렌트> 공연을 준비했던 시간은 저한테 절대 못 잊을 기억이에요.

 

 

 

 

 

 

 

 

 


크리스마스에도 주로 공연을 했던지라 특별히 기억나는 일은 없었는데, 일기장을 들춰봤더니 지난해 크리스마스가 조금 암담했더군요. 제가 서울에서 홀로 자취를 하고 있는데,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살던 집에서 방을 뺄 때가 된 거예요. 이사할 집을 구해야 하는데, 제게 맞는 집이 얼른 구해지질 않았어요. 추운 날씨에 집만 보러 다니느라 크리스마스 기분은 전혀 나질 않았죠. 당장 제 집이 없어 걱정인데 크리스마스가 대순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크리스마스이브에 적당한 집을 찾아서 계약했어요! 그리고 그날 뮤지컬 콘서트에 참여했는데, 작은 카페에서 옹기종기 모여 와인도 마시고 공연도 보는 아늑한 분위기의 콘서트였어요. 제가 공연하기도 하고, 대학 동기들의 공연을 보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그렇게 편히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그날 집을 계약한 덕이었어요. 집을 못 구했다면 크리스마스 따위 안중에도 없었을 거예요. 하하. 제 일기장의 2009년 12월 24일 칸에는 ‘집 계약’이라고 쓰여 있네요. 지금도 그 집에서 잘 살고 있고요.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에는 공연을 하고 있겠지만, 집 걱정 없이 공연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 <엣지스> 많이들 보러 오세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7호 2010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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