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 해 동안 한국 뮤지컬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이슈들은 단지 올 한해만의 일이라기보다는, 연속성을 가지고 계속되어 온 현상들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 중에 햇수가 바뀌는 것을 기준으로 칼로 자르듯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우리가 그 흐름의 어느 위치에 와 있는지 이해하는 데는 이러한 분석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2010년 한국 뮤지컬계에서 두드러진 다섯 가지 현상과 시장 분석, 그리고 올 한 해 무대 위에 올려진 작품 리스트를 정리했습니다.
(앞에 이어 계속)
넷. 진화하는 관제 뮤지컬
올해 2월 장성군이 제작한 <홍길동>을 시작으로, 광주시가 참여한 <화려한 휴가>와 ‘서울시 대표 창작뮤지컬’이라는 부제를 달았던 <피맛골 연가> 등 관(官)이 주도한 작품들이 다수 무대에 올랐다.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방부가 제작한 <생명의 항해>는 서울을 포함하여, 대구와 대전, 전주, 춘천 등지에서 공연되어 많은 관객들을 만났다. 이전에도 특정 시·군이 제작을 지원한 작품들이 왕왕 있었으나, 올해에는 그 수가 많았다는 점 외에도, 전문 뮤지컬 크리에이티브 팀이 제작에 참여하고 연예인을 캐스팅하여 관객 유치에 힘쓰는 등 여타 공연 제작사와 같은 제작 방식을 취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관제 뮤지컬은 지방 자치 단체에서 제작비를 지원하는 덕에 비교적 안정적인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지만 소재에 한계가 있다. 해당 시·군을 홍보할 목적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그 지역의 유명 인물(<홍길동>의 홍길동, <비애비>의 정순왕후(종로구 제작))이나 역사적인 사건(<생명의 항해>의 한국전쟁, <화려한 휴가>의 광주 항쟁)을 소재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이러한 소재에 극적인 재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인물의 업적을 알리고 지역의 특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치중하여 스토리로는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기가 쉽지 않다. 제작을 주도한 지방 자치 단체가 뮤지컬 전문 집단이 아니어서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과, 뮤지컬을 하나의 예술 작품이 아닌 행사 사업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작품의 미약한 부분은 여타 공연들처럼 스타 캐스팅이라는 전략으로 채우기도 했다.
대부분의 관제 뮤지컬이 앞서 말한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긴 하나, 최근의 것들은 이전에 비해 그 출신 배경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잔치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조금 고무적이다. <남한산성>은 김훈이라는 묵직한 브랜드 밸류를 지닌 작가가 써낸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격조 있는 대사를 선보였고, <화려한 휴가>는 700만 이상이 보고 호평했던 동명의 영화에서 이야기를 가져왔다. 두 공연에서 성남과 광주는 공간적 배경으로 작용했을 뿐, 혼란스러운 역사적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데 주력했다. <피맛골 연가>는 특정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새로이 만들어 내고 그에 어울리는 음악과 안무, 무대, 캐스팅 등에서 기대감을 심어주어 많은 관객들을 만났다.
<남한산성>은 지난해 초연에 이어, 극본과 음악의 상당부분을 수정하여 올해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피맛골 연가>는 공연 후 관객 600명에게 받은 설문 답변과 전문가 집단의 리뷰를 통해 작품의 성과와 문제점을 논의했다. 긍정적인 부분은 발전시키고 문제점은 보완하여 재연의 초석을 다지기 위함이다. 올해 광주와 서울에서 초연을 가진 <화려한 휴가> 역시 일회성 공연이 아닌 상설 공연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관제 뮤지컬이 발전하는 창작뮤지컬로 자리매김할지 지켜볼 일이다.
다섯.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마케팅 적극 도입
2010년의 마케팅 키워드 중 하나는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하라’였다. 이전에도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 등 웹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서비스가 있었지만, 2009년 말 스마트폰이 상용화되면서 모바일 웹 기반 네트워킹 서비스의 보급이 가속화되었다. ‘손 안의 인터넷 세계’라는 말에 걸맞게 휴대폰의 ‘이동성’을 기반으로 정보 검색, 지도, 쇼핑 등 인터넷이 제공하는 실시간 서비스와 내장형 카메라, 전화, 텍스트 전송 기능을 유기적으로 융합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디지털 매체의 확산은 입소문의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새로운 흐름에 발맞춰 2010년 공연 마케팅에는 미투데이,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마이크로 블로그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QR코드(Quick Reponse Code) 등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 가 2010년 공연 마케팅에 적극 도입되었다. 사실상 올 초부터 시작된 뉴미디어 마케팅 경쟁은 상반기엔 미투데이와 모바일 어플을 중심으로, 하반기에는 트위터와 QR코드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미투데이’는 편리한 가입 절차와 스타 중심의 홍보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웠다. 아이돌 스타 온유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던 <형제는 용감했다>는 스타의 연습 장면, 식사하는 모습, 휴식 시간, 팬들이 보낸 선물 인증 사진 등을 끊임없이 노출하면서 관객에게 친밀감을 주며 이 매체의 장점을 잘 활용하였다. 또한, 4~5월 한 달 사이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미스 사이공> 등 7개의 뮤지컬 어플리케이션이 쏟아져 나왔다. 앱스토어에서 무료 또는 일정 금액을 결제하고 다운받아 공연의 정보를 손쉽게 받아볼 수 있었지만 홈페이지와 거의 다를 바 없는 구성과 정보의 일방성으로 큰 호응을 얻진 못했다. 기획사 입장에서도 어플리케이션 제작에 드는 높은 제작비와 업데이트 비용을 줄이면서 관객과 쌍방향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했는데 어느 정도 그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QR코드였다. 유통업계가 앞서 사용하고 있던 이 코드는 <키스 미 케이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작품이나 성남아트센터 등의 공연장을 중심으로 공연계에도 도입되었다. 한편,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특히 트위터의 사용이 손쉬워짐에 따라 하반기에는 트위터에서 실시간으로, 그리고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입소문 전략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중가요 분야에서 시도하는 일종의 ‘번개’ 형식의 ‘트위터 콘서트’나 클래식 분야에서 시도한 것으로 트위터 사용자가 직접 오페라의 대본 작업에 참여하는 ‘트위터 오페라’ 같은 적극적인 방법에 비해 아직 정보와 공연 후기를 공유하며 입소문을 나누는 일반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지만, 이 자체로도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트위터를 사용한 마케팅은 ‘소셜 커머스’라는 방식으로 또 한번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일종의 공동 구매로, 이전에는 ‘아는 동호회원끼리’ 이루어졌던 공동 구매가 해당 홈페이지를 통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일정 구매자 수 이상만 도달하면 40~60%까지 저렴한 가격에 공연을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최근 한창 주목받고 있다.
사회의 변화에 따른 소비자의 심리에 민감해야 하는 것이 마케팅이고, 공연 마케팅은 이 중에서도 새로운 시도에 대한 검증이 속전속결로 이루어져 1년의 변화가 더더욱 드라마틱했다. 관객의 소통 트렌드를 충실히 좇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분석하여 발 빠르게 움직인 결과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7호 2010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