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뮤지컬이>이 뽑은 네 작품의 연출가들이 말하는 내가 사랑하는 장면
<모차르트!> >> 유희성 연출
모차르트의 ‘천재적 특별함’이 부각되는 작품들은 많았지만, 뮤지컬 <모차르트!>는 오히려 인간적인 아픔과 사랑, 자유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후대에도 모차르트의 음악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을 매 장면 장면에 담고 싶었다. 멋지고 사랑스러운 장면들이 아주 많지만 내가 꼽는 명장면은 볼프강이 ‘내 운명 피하고 싶어’를 부르며 절규 어린 샤우팅으로 1막을 마무리하는 장면이다. 천재지만 음악 그자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권력에 의해 속박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천재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차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받기 보다는 그들이 모차르트에게 바라고 기대하는 많은 것들에 의해 구속당한다. 이런 음악적, 인간적 고뇌 중에도 스스로 원하는 음악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자유롭고 인간적인 삶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추는 이 장면은 모차르트 뒤에 세워진 흑경(黑鏡)의 세트와 무대 위로 올라온 모든 캐스트의 장엄한 앙상블이 어우러져 깊은 울림을 전한다.
<스프링 어웨이크닝> >> 김민정 연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은 ‘Totally Fucked’의 92마디에서 넘버가 끝나는 순간까지이다. 모든 소년, 소녀들이 두 손을 불끈 쥐고 모든 힘을?다해 `블라블라블라블라`를 외치며?자신들을 가두고 있는 제도, 규범, 위선적인 사회를 향해 폭발한다. 무너지고, 부서지고, 날뛰고, 뒤섞여 생기는 이 장면의?‘자유로움’을 사랑한다. ‘Totally Fucked’에서 분출되는 이 에너지는?친구인 모리츠 슈티펠의 장례식장에서 부르는?연가?‘Left Behind’에서부터?쌓여간다. 슬픔과 고통이?분노를 거쳐?자유로움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 자유로움을?얻기 위해 배우들이 써야하는?에너지는 극한점을 향해간다.?각 배우마다 안무가 다르고, 이 안무와 넘버를 소화하기 위해서는?모든 배우가 자신의 존재감을 전부 걸어야 하는 ‘Totally Fucked’는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배우 모두가 주인공인 이유를 가장 잘 말해주는 장면이다.?미칠 듯이 자유롭다. 멋지다!
<투란도> >> 김효경 연출
일반적으로 감동을 주고 연민을 자아내는 것이 주인공인데 오페라 <투란도트>에서는 주인공 투란도트보다 시녀인 류가 그것을 독차지 한다. 원한을 간직한 채 기이한 공포를 자아내는 얼음공주 투란도트보다는 칼라프 왕자에 대한 사랑으로 목숨을 내놓은 류에 더 마음이 기우는 건 어쩔 수 없지 않는가. 그래서 뮤지컬 <투란도>를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어떻게 하면 주인공인 투란도가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였다. 내가 선택한 2막 6장은 바로 이 고민의 결과물이다. 자신을 이용한 타타칸의 음모를 뒤늦게 알게 된 투란도가 스스로 쌓은 세상의 벽에 갇혀 살아온 지난 세월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고, 이때 그녀의 부모와 죽어간 청혼자들의 영혼이 그녀를 찾아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위로하며 그녀를 구원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통해 관객이 투란도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으면 했다. 고통과 분노, 애원하는 부분은 레치타티보로, 부모님과 조우하면서는 맑고 행복한 느낌의 합창으로 전혀 다른 분위기의 두 가지 음악을 대비시켜 사용하여 투란도란 인물에 좀 더 집중하고 이입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도록 했다.
<환상의 커플> >> 이유정 연출
기억이 돌아온 안나 조가 장철수와의 추억을 잊지 못하다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날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둘이 만나 뮤지컬 넘버 ‘왜 날’을 부르는 장면이다. 드라마에서는 정류장 반대편에서 서로를 바라보지만 뮤지컬에선 안나가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손을 내미나 철수는 안나의 손을 외면하고 지나쳐버린다. “지금 네 손 잡으면 절대 못 놓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제발 그냥 가라.” 장철수의 이 혼잣말에서 사랑하지만 너무 달라져 버린 상황을 받아들이고 헤어져야 하는 아픈 마음이 전해지길 바랐다.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서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노래하는 “모른 척…/ 그대도 분명 좋아했잖아요…/ 그댈 불편하게 하는지…/ 이런 날 원치 않을텐데…”의 가사를 통해 사랑하지만 현실에 부딪힌 둘의 감정을 슬프지만 아름답게 전달되었으면 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3호 2011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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