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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의외의 캐스팅? 적절한 캐스팅! [No.79]

글 | 정세원 2010-05-04 5,707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제각기 다른 색깔의 연기를 펼쳐 보이는 무대 위 배우들. 그들 중 누구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를 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양한 매력을 선보이기 위해 카멜레온처럼 끊임없이 변신을 꾀하는 배우들의 노력은 언제나 아름답다. 외형적인 모습, 혹은 그동안 맡았던 배역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미지 변신을 꾀했던 배우들을 살펴보았다.  


<둘리>의 고길동, 서영주 

 

2001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 에이콤의 가족뮤지컬 <둘리>에 출연한 배우들 중에 사사건건 둘리 일행을 괴롭히는 주인 아저씨 고길동을 연기한 서영주의 변신은 단연 눈에 띄었다. <지상에서 부르는 마지막 노래>에서 맑은 영혼으로 죽음을 기다리던 순수 청년 민동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한 베르테르 등을 연기하며 풍부한 감성 연기를 펼쳐왔던 그가, 마치 원작 만화에서 튀어 나온 듯, 조금은 폭력적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서민 가장의 캐릭터를 맛깔스럽게 묘사해냈기 때문이다. ‘최고의 고길동’을 선보인 그는 이후 2004년 공연까지 길동 역으로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 김문정 (<둘리> 음악감독) “서영주 씨의 고길동은 정말 완벽한 캐스팅이었어요. 평소 성격과 비슷한 인물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잘 어울릴 줄은 정말 몰랐죠. 둘리한테 화낼 때 가느다랗게 찢어지는 눈, 라텍스로 만든 가발까지도 잘 어울려서 모두들 ‘서길동’, ‘고영주’라고 부르곤 했어요. 극 중에 길동이 반바지를 입고 지붕 위에 앉아서 낚시하는 장면이 있는데, 원작 만화 속 길동의 가는 다리까지도 닮았더라고요. 지휘를 하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답니다.” 

 

<넌센스 잼보리>의 버질 신부, 류정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토니, <오페라의 유령>의 라울 등을 통해 차분하고 부드러운 음색과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주목받던 류정한은 2003년 <넌센스 잼보리>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코믹 연기에 도전했다. 라디오 디제이 출신으로 넘치는 끼와 유머로 무장한 멋쟁이 신부 버질 트로트 역으로 무대에 오른 그는 전수경, 김선경, 박해미, 김미혜와 호흡을 맞춰 춤을 췄고 통기타 연주까지 들려주었다. 


▶ 전수경 (<넌센스 잼보리> 엠네지아 역) “연기 공부에 도움 될 것 같아서 정한이를 작품에 추천했어요. 그도 작품을 만들어가는 재미를 배워보겠다고 시작했는데, 아마 춤을 추는 뮤지컬은 처음이었을 거예요. 덕분에 안무 하나를 익히는 데에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죠.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안무를 하면 가사를 잊어버리고, 노래를 하면 안무를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연습하는 내내 ‘닭’, ‘붕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스>의 유진, 김장섭 

 

지금은 서울종합예술학교 뮤지컬예술학부의 교수로, <실연남녀>, <진짜진짜 좋아해>, <클레오파트라> 등의 연출자로 더욱 친숙한 배우 김장섭.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역에 캐스팅되기 전까지 그는 <그리스>의 유진, <쇼 코메디>의 배실장, <남센스>의 엠네지아 수녀 등 코믹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는 배우로 유명했다. 그중에서도 1997년 유준상, 손지원, 최정원 등과 출연했던 <그리스>에서 그는 라이델 고등학교의 왕따 학생회장 유진을 사랑스럽게 그려냈고,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최고의 유진’으로 기억되고 있다. 

 

▶ 박준혁 (<그리스> 빈스폰테인 역) “장섭 형이 연기한 유진은 다른 어떤 배역보다 그에게 잘 어울리는 캐릭터였어요. 눈썹을 덮을 정도의 바가지 머리에 커다란 안경까지, 정말 바보 같은 모습이었는데도 참 예뻤어요. 형이 키도 크고 참 잘생긴 배우였잖아요. 저한테 한참 선배님이셨지만 캐릭터상 저희들한테 구박받는 인물이라 재밌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참, 장섭 형이 1993년 <캣츠>에서 머케비티로 출연했던 것은 아시나요?” 


<캣츠>의 럼텀터거, 황정민

충무로의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는 황정민이 1995년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했다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비록 해적판 공연이긴 하지만 그가 <캣츠>에, 그것도 가장 섹시한 고양이 럼텀터거로 출연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직접 보지 않고는 상상하기 쉽지 않지만, 황정민의 럼텀터거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유연한 허리춤으로 관객들을 유혹했다. 


 ▶ 고영빈 (<캣츠> 콱소우 역) “연습실에서 정민 형을 처음 봤는데, 불그스름한 얼굴에 무릎 나온 트레이닝 바지, 수더분한 모습 어딜 봐도 기름기 흐르는 바람둥이 같지 않았어요. 그냥 동네 형 같은 느낌이었지 섹시한 럼텀터거를 상상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죠. 근데 분장을 하고 타이즈를 입으니 정말 잘 어울리는 거예요. 형이 눈이 깊어서 마치 외국 배우를 보는 것 같았죠. 공연 시작하고 제일 인기가 많았어요. 춤이 조금 부족한 부분은 연기로 승화시켰고 관객들은 그 모습에 열광을 했죠. 정말 대단했어요. 무대에서 내려오면 다시 수더분한 황정민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게 배우구나’ 싶었어요. 그때 많은 배우들이 함께 했는데 (양)꽃님이는 제니애니닷츠로 출연해 탭댄스를 췄었어요.”

 


<프로듀서스>의 로저, 이희정 

 

2005년 국내 초연한 뮤지컬 <프로듀서스>에서 쫄딱 망하기 위해 작품을 올리는 레오와 맥스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게이 연출가 로저. 하얗고 곱상한 얼굴에 호리호리한 비서 곁에서 남성미를 드러내면서도 게이의 특성을 모두 표현해야 하는 로저 역을 탁월한 연기력으로 선보인 배우가 바로 이희정이다. <명성황후>의 대원군으로 위엄 있는 모습을 주로 보여주던 그는 의외로 잘 어울리는 여장과 몸에 익어버린 듯한 고운 몸짓과 손동작으로 관객들을 유혹했다.

 

▶ 김문정 (<프로듀서스> 음악감독) “엠파이어 빌딩 문양의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던 적이 있어요. 나름 S라인이 있더라고요. 탄력 있는 엉덩이에, 공연 도중 치마 사이로 잠깐씩 보이는 우람한 다리 근육… (김)다현이 곁에서 느끼한 연기를 할 때 너무 웃겨서 지휘를 하면서도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 앞머리 넘기고 새끼손가락을 곧게 세우는 등 나름 캐릭터 연구도 많이 하셨고 춤도 잘 추셨던 것 같아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베르나르도, 고영빈 

 

약한 자는 왕이 될 수 없다던 무휼의 강한 인상 때문일까. <바람의 나라>에서 무대 위를 걷는 것만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고영빈은 이후 출연작 <조지 엠 코헨 투나잇>, <컴퍼니>, <대장금> 등에서 줄곧 무게감 있는 배역을 맡으며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디에서든 점잖음을 잃지 않는 그가 2002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샤크파 두목 베르나르도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서울시립가무단원으로 출연한 마지막 작품에서 아니타 역의 이정화와 호흡을 맞춘 그는 곧게 뻗은 긴 팔과 다리로 무대 위에서 멋진 춤사위를 선보였다. 

 

▶ 이정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아니타 역) “그 당시 영빈이는 베르나르도의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기에는 많이 어렸고 기름기가 너무 없었어요. 가무단 선배였던 (김)법래와 더블 캐스트였는데 서로 느낌이 많이 달라서 영빈이가 마음고생을 좀 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도 법래와 달리 몸이 마른 편이어서 춤출 때는 보기 좋았죠. 객석 반응도 조금은 달랐을걸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9호 2010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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