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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뮤지컬에서의 영상디자인 [No.73]

글 |조용신(뮤지컬 평론가) 2009-11-02 7,657

뮤지컬에서의 영상디자인


지난 2월 27일 한국과 미국의 프로듀서들이 공동 제작한 뮤지컬 <드림 걸즈>가 개막 공연을 가졌다. 이날 관객들의 눈을 가장 크게 사로잡은 것은 다름아닌 너비 2m, 높이 6m의 거대한 LED(발광 다이오드:Light Emitting Diode) 패널 다섯 개와 무대 양편의 상하수를 가득 메운 조명판이 오토메이션 장치에 실려 무대 안에서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뮤지컬 <드림걸즈>

 

각각의 장면에 맞는 영상이 LED 패널에 등장할 때마다 빠른 장면 전환이 가능했고, 드라마와 콘서트를 넘나드는 작품의 특성에 필수적인 빠른 템포를 시종일관 유지할 수 있었다. 미리 촬영된 영상을 투시하며 스스로도 움직이는 LED 패널과 배우들의 춤, 노래가 한꺼번에 어우러지며 관객의 시야를 확장한 1막의 ‘Steppin’ To The Bad Side’ 장면은 사실 아직까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무대에서도 본격적으로 선보이지 않은 최신 무대 영상 기술이다. 그런데 베테랑 외국 스태프들이 이미 이러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브로드웨이가 아닌 한국에서 먼저 선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중장년층이 객석을 주로 찾는 서구에 비해, 영상매체에 친숙한 20~30대 젊은 세대가 주 관객층을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가 이러한 신기술의 베타테스터로서 더 적합하다고 보여지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우리 스태프들에게 기술 이전은 되지 않고 우리 관객들이 단순히 마케팅의 측면에서 해외 창작진의 얼리어댑터로만 활용된다면 문제가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뮤지컬 창작 인력들도 영상디자인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는 점에서 <드림 걸즈>는 향후 국내에서 뮤지컬의 영상 활용의 내용과 형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한국의 스태프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뮤지컬과 영상의 함수관계
여러 공연예술 중에서도 뮤지컬은 원초적으로 드라마, 음악, 춤이 결합된 복합 장르이며 멀티미디어 친화적인 데다가 오락성을 추구하는 쇼 비즈니스적 장르다. 그런데 연극, 무용, 오페라 등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영상이 사용되어 왔지만 정작 뮤지컬에서 본격적으로 영상기술을 받아들인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 이유는 관객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 만큼 화려한 기술이 최근에야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영상디자인에서 가장 최첨단의 기술로 꼽히는 것은 <드림 걸즈>에서 쓰인 LED 비디오 기술과 디지털 방식의 조명 기술로 요약된다. 이는 영상과 조명이 기술적으로 통합되면서, 고전적인 전구 발열 방식이 전계발광 방식으로 바뀌고 화면 자체도 고정식 스크린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이동식 오브제가 된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화질과 제어 기능이 향상된 프로젝터의 핵심 기술도 계속 진보하고 있으며, 주변 기기로서의 미디어 서버나 외관 디자인도 이에 보조를 맞춰 발전하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영상디자이너의 숫자도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들의 업무는 크게 영상 제작과 편집, 프로젝션 장비 운용, 무대와 조명디자이너와의 협력 작업 등이 있다. 영상이 고유한 업무 영역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은 영상 자체가 가지는 기술적인 특성에서 비롯된다. 영상은 우선 전통적으로 무대 비주얼을 담당해온 조명과 세트가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강해주는 역할을 한다. 세트는 무대 위에서 질감과 공간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면, 조명은 빛의 삼원색(적,청,녹)을 겹쳐 다채로운 효과를 주고 강한 스포트라이트로 극적인 긴장감을 준다. 반면에 영상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전체적으로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다. 가령 연출가가 무대 위에 달이나 별을 표현하고 싶어하면 세트디자이너는 그 모양의 세트를 제작해서 무대에 직접 등장시키거나, 조명디자이너는 무빙라이트 안에 내장된 고보(Gobo) 중에서 해당 패턴을 찾아내어 이를 세트에 비출 것이다. 하지만 연출가가 달이 차고 기우는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고 싶다거나, 별이 쏟아지는 역동적인 장면을 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영상이다. 세트에 비해 동적인 속도감을 가지며, 조명 고보에 비해 즉흥적인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신속한 변신 능력을 가진 것이 바로 영상 이미지다.

 

                 뮤지컬<우먼 인 화이트>                                            뮤지컬<선데이 인 더 파크 위드 조지>

 

해외에서의 영상디자인의 위상
브로드웨이에서 영상디자인의 영역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독립적인 전문 장르로 인정받은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1964년 <골든보이>에서 리차드 필브로우의 영상이 선보였고, 1970년 <컴퍼니>에서는 보리스 아론슨의 영상이 선보인 바 있지만 두 작품 모두 영상의 사용 범위는 제한적이었고, 그것도 세트디자이너가 자신의 디자인의 일부로서 작업했다. 드라마와 영상이 상호간에 소통하며 함께 결말을 향해 갈 정도로 조화롭게 사용된 작품으로는 로빈 와그너의 토니상 수상작 <시티 오브 엔젤스>(1989)가 있었지만 평단의 찬사와 다르게 흥행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1993년 <토미>에서는 무대 전면의 사각 프로시니엄 아치에 TV 모니터를 쌓고 주연 배우의 움직임을 핸드 핼드 카메라로 찍어 피드백 매커니즘으로 실시간으로 상영하면서 한 단계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1987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에서 기차들의 중계 장면을 숨겨진 카메라로 찍어 보여준 방식에서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이다. 2005년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신작으로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신작 <우먼 인 화이트>는 프로젝션으로 브로드웨이 무대 세트를 대체하겠다는 과감한 시도를 하지만 실물 소품이나 세트의 화려함을 채우지 못하고 단조로운 배경막으로 전락해 아직은 시기상조임을 증명했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능동적으로 무대디자인을 아우르며 영상이 연출의 영역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은 2007년에 공연된 <선데이 인 더 파크 위드 조지>이다.
극장에 종사하는 스태프라면 모두가 쇼의 성공을 위해 애쓰지만 주로 조명을 받는 것은 작가, 작곡가, 연출가, 프로듀서들로, 상대적으로 디자이너 스태프들은 업계 외부로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이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토니상이나 드라마데스크와 같은 각종 시상식의 수상자로 호명받을 때다. 최근 수년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하는 상당수의 뮤지컬들이 영상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디자인은 시상식에서 해당사항이 없었던 분야였다. 그러던 것이 2007년에 이르러 달라졌다. 그해 5월에는 영상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최신 영상 기술을 교육하는 제 1회 ‘브로드웨이 프로젝션 디자인 마스터 클래스’가 뉴욕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어 현재 연례행사로 자리잡았고, 2008년 2월에 미국 무대미술가 조합(United Scenic Artists) 안에 드디어 ‘프로젝션 디자이너 분과’가 생겼다. 2008년 드라마데스크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영상디자인 부문(Outstanding Projection and Video Design)이 신설되어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 <선데이 인 더 파크 위드 조지>의 영상을 담당했던 티모시 버드가 처음 수상했다. 또한 영상디자인은 그동안 명확한 교과과정 없이 비공식적으로 전수되어 오다가 최근에 예일대학의 드라마스쿨을 비롯한 주요 대학교 내에서 정식 교과목으로 개설되었고 졸업생들이 현장에 속속 배치되고 있다. <스패멀랏>의 일레인 매카시나 <저지 보이즈>의 마이클 클락도 그중 하나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의 의미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영상디자이너들의 활동 영역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다른 분야(무대, 조명, 의상, 음향)와 동등하게 공연 디자인의 한 축이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2008년 토니상에서 신설된 음향디자인 분야에 <39계단>이 수상한 것처럼 조만간 영상디자인 분야가 신설될 것이라는 전망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                                                  뮤지컬<사춘기>

 

 

국내에서의 영상 사용
국내에서도 최근 수년 동안 뮤지컬의 양적인 팽창과 함께 영상을 다룰 수 있는 영화계 혹은 미술계의 인력들이 점차 무대에 관심을 갖고 편입해오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 영상 편집과 장비 운용이 가능한 무대 스태프들과 영상의 난이도가 높은 전문 영상디자이너들도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다.
창작과 라이선스를 막론하고 최근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거의 대부분의 뮤지컬들이 영상을 활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상의 붐이 거세다. 특히 순수하게 국내 영상디자이너들만의 작업으로 인상적인 결과를 보여준 작품들도 많다. <뮤직 인 마이 하트>, <아이 러브 유>, <미녀는 괴로워>, <주유소 습격사건> 등에서는 영상이 독립된  모니터 혹은 스크린을 통해 국지적으로 보여지는가 하면, <화장을 고치고>, <위대한 캣츠비>, <첫사랑>, <사춘기>, <기발한 자살여행>처럼 크기나 빈도에서 영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들도 있다. 이중 <화장을 고치고>는 ‘웹 2.0세대’의 일상인 사이버 공간을 컴퓨터 화면과 애니메이션 등의 재치 있는 영상으로 표현했다. 비록 기술 면에서 뛰어나지는 않지만, 엘리베이터를 여닫으며 공간을 이동시키는 아이디어는 무대전환이 불가능한 소극장의 한계를 디지털로 극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소극장에서 영상을 사용했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발전이 보여준 작품들도 있다. <폴라로이드>는 한 프로젝터 제작사가 PPL 방식으로 참여해 소극장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방불케하는 선명한 화질과 매끈한 기술 운용을 보여주었다. 올해 새롭게 선보인 <김종욱 찾기-시즌4>의 경우에도 초연 당시의 미니멀한 아날로그 세트를 카툰 콘셉트의 부분접이식 패널로 교체하고 그 조합과 각도에 맞게 프로젝션을 세련된 방식으로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파격을 선보이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영상이 세트와 조명을 측면에서 충실하게 지원하는 역할로만 설정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소리도둑>으로 여기서 쓰여진 영상은 극 중에서의 자연스러운 시간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세트의 색감을 변화시키는 데 주력해 관객들도 영상의 사용 여부를 거의 눈치를 못할 정도였다. 물론 이 기능을 조명이 담당할 수도 있지만, 영상은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의 기기만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 오히려 빠른 장면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
한편, 매년 150편이 넘는 신작 뮤지컬들이 쏟아지고 있고 그중에서 영상을 도입하는 작품도 늘고 있지만, 대다수의 작품들이 무대 포켓과 리어 스테이지가 없는 소극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명성황후>, <황진이>, <바람의 나라>, <대장금>, <해어화> 등의 에픽(epic) 스타일의 대극장 창작뮤지컬에서는 공간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에 무대 기본 세트 혹은 전·후면의 스크린에 영상을 투사하면 되지만, 소극장에서는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가 불가능하다.
점차 줄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대학로 소극장에서는 세트나 조명디자이너가 영상디자인을 겸하며 개인용 PC와 프로젝션으로 조악한 영상을 만드는 사례도 종종 발견된다. 특히 사무실에서 프리젠테이션용으로만 사용되어야 할 열악한 장비가 소극장에 설치되는 경우, 영상 원본의 화질이 낮아 픽셀이 그대로 보이기도 하고 공연에 맞는 셔터를 별도 제작해서 장착하지 않아 프로젝터가 자체적으로 발산하는 빛이 좁은 극장 안에서 새어나오기도 한다. 렌즈의 열을 식히기 위해 작동하는 팬이 발생하는 소음이 관극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소극장에서 프로젝터를 사용할 때 흔히 발생하는 화질 저하와 소음 문제는 장비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예산 문제로 부득이한 경우에는 세트의 질감이나 음향의 적절한 활용으로 이를 커버할 수 있는 연출적인 아이디어가 요구된다. 또한 무대와 객석간의 아날로그적인 교감을 무기로 하는 소극장에서 디지털 장비가 주는 비인간적인 느낌이 필연적으로 관객들에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영상 사용보다는 작품에 맞게 얼마나 적절하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중국 뮤지컬 <디에 - 버터플라이즈>                                        뮤지컬 <주유소 습격 사건>

 

영상의 미래는 장밋빛?
국내외를 막론하고 앞으로 뮤지컬계에서 영상의 사용 빈도는 높아질 것이다. 영상 전문 인력과 영상을 필요로 하는 업계의 수요가 모두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향후 유망한 비즈니스가 될 전망이다. 영상디자인은 가까운 미래에 무대디자인이 해온 방식을 바꾸게 될 것이며, 이미 상상력이 풍부한 디자이너들의 작업에 영향을 주어 아날로그 방식의 무대디자인에서는 쉽게 표현하지 못한 방식을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하게 경비를 절감하려는 안이한 노력에서부터 예술적인 차원에서 공연 무대와 영상을 결합시키려는 실험적인 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다른 무대 장르와 달리 뮤지컬에서 거북이 걸음으로 영상기술을 받아들인 이유는 명확하다. 그동안 비싼 티켓 가격에 상응하는 고급스러움을 담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진보된 기술력을 담보한 영상은 충분히 고급스러운 세트의 대체재로서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기술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다시 창작자와 무대 스태프에게 넘어온 셈이다. 어려서부터 영상매체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기술의 발전을 넘어서는 아이디어만이 그들의 발길을 꾸준히 극장에 붙들어 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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