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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어쌔신>의 사뮤엘 비크 [No.74]

글 |박민정 일러스트레이션 | 권재준 2010-01-05 6,330

“아무도, 아무 것도…”
        

“삶이 장밋빛이라 우겨대는, 저 음악 좀 꺼줄 수 없어? 땡전 한 푼 없이도 아름다웠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어.”
무엇인가에 몰입해 있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사뮤엘 비크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움직였고 흰자위는 번득이고 있었다. 나는 그의 광기 어린 눈빛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난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했어. 사람들은 날 경박한 어릿광대나 미친놈쯤으로 여기지만 사실 역사를 빛낼 일을 할 수도 있는 인물이었지.”
맥주캔을 감싼 그의 앙상한 손가락이 부르르 떨렸다.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더라면…! 내 말이 옳다고, 나를 이해한다고 말해주었다면, 자폭 테러가 아니라 다른 일을 꿈꿨을 거야. 하지만 녹음기에다 대고 큰 소리로 떠들고 반복해봤자 아무도 대꾸해 주지 않는걸.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 하지 않았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한 남자의 분노와 외로움, 허망한 웃음은 낯설지도 기괴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을 원했던 것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왜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이해와 관심을 받기 원하는 것일까. 사람에 지치면서도 또 결국 사람을 필요로 하는 우리들은 자유로우면서도 외롭지 않은 삶은 없느냐며 투덜대곤 한다. 하지만 완벽하게 외롭지 않으면서 무한히 자유로운 삶이 과연 있기나 한걸까.
“이제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도 없어. 기름진 햄버거로도 채워지지 않는 이 허기와  결핍을 이해하겠어?”
비크는 잠시 격양되었다가, 또 혼잣말을 하면서 자신을 다독인다.
“기억 때문이지. 실패했던 기억과 수치스러웠던 기억, 그리고 후회스러웠던 나날들에 대한 미련 때문에 이렇게 혼자 남아 중얼거리는 거야. 사업에 실패했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자폭 테러마저 해프닝으로 마무리한 내가 우스꽝스럽지 않아?”
그는 내 반응에 개의치 않고 끊임없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건 말이 아니라 하염없이 머릿속에다 꾸역꾸역 밀어 넣는 글 같군. 정녕 내 말이 소리를 가졌던가.” 
사뮤엘이 만일, 하고 싶은 말을 단호하고 조리 있게 말할 수 있었더라면 망상에 빠져 혼잣말을 계속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세상에 대한 분노를 쌓으며 사회적으로 고립된 것은, 자신의 목소리가 힘 있는 자들에게 전해질 수 없었던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선택이나 결정과 무관하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정책이 내 삶의 조건을 좌지우지 한다는 건 참을 수가 없었어. 설령 나라가 망한다 해도 그들은 멀쩡할 거야. 결국 피해보는 사람은 나같이 힘 없는 놈이겠지.”
예민하고도 신랄한 혀를 가진 사뮤엘 비크가 녹음기가 아닌, 세상을 향해 좀더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었더라면, 그의 폭발적인 에너지로 다른 일을 계획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갈등하고 고민하는 그는 평범하고 안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진실을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그런 놀랄 만한 사건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닉슨 대통령 암살을 계획했어. 세상에 나를 알리고 찬란한 기억을 남길 수만 있다면 내 목숨 하나쯤은 기꺼이 내 놓을 수 있었지.” 
기억에 잠긴 그가 갑자기 실패의 기억으로 몸서리치다가 이내 귀를 막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외친다.
“악몽을 꾸다가 깨어난 후에 꿈이어서 다행이라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현실에서 비로소 진짜 악몽이 시작됐거든!”
사뮤엘의 시선이 어둠 속에서 맹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며 우리를 회유하지만, 알게 뭐람? 저마다 자신이 정의롭다고 떠들어대니, 잘잘못을 따지는 일조차 부질없게 느껴질 뿐이야. 그래도 소통에 대한 내 희망을 포기하고 싶진 않아.”
사뮤엘은 반복해서 소통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아직 그가 꿈꾸는 것이 세상과의 소통인지, 아니면 세상의 주목인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과 아름다움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속상해 하는 사람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데, 나는 사뮤엘 비크가 그런 류의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한 시간 남짓한 대화로 그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지 않았던가. 형식적인 질문을 하지 않아도 끊어지지 않는 대화는 신선했지만, 종종 의구심을 남겼다. 혹시 사뮤엘은 자신을 비범하게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기 원하는, 자신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과대망상증 환자인 것일까.
“뒤늦게 녹음된 내 목소리 들어본 적 있어. 진작 들어보았다면 난 곧장 이런 괴상한 취미를 때려치웠을 거야. 녹음된 내 목소리가 너무나 낯설고 우스꽝스러웠거든. 난 내가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가졌다고 믿어왔는데 그저 외로운 한 남자가 쓸쓸하게 울부짖는 소리만 들릴 뿐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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